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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스가 무서웠어요

한때 페니스의 `페`자만 들어도 식은땀을 흘리던 한 여자는 어떻게 그 공포에서 벗어났을까. <br><br>

UpdatedOn May 27, 2009

무 살 여름. 나에게 발정기가 찾아왔다. 몽정을 경험한 뒤 치솟는 성적 욕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들썩였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나 서로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가 된 두 친구. 그녀들이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바닷바람을 맞으러 가서는 첫 섹스에 성공했다. 성격이나 취향, 한 인간으로서의 매력 같은 것들이 고만고만한 세 사람이었기에, 연달은 두 친구의 고백은 나를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그리고 내 몸은 한여름 무더운 공기의 습격을 받은 듯 훅 하고 달아올랐다. 그래도 셋 중에 가장 섹시했던 건 나였는데, 연애 조언자로서 그녀들의 첫 섹스를 적극 권장했던 것도 나였는데 어떻게 내가 이 둘에게 뒤처질 수 있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그날 밤 나를 보는 눈빛이 남달랐던 선배 한 명에게 나는 단둘만의 술자리를 청했다. 귀여운 외모, 달콤한 말을 내뱉는 센스, 결정적으로 침대 테크닉이 꽤나 좋을 것만 같은 선배였다. 오늘밤 당신에게 안기고 싶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여자를 거부할 남자는 이 세상에 없었다. 첫 섹스에 대한 두려움 대신 드디어 ‘나도 하게 되는 구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서툴게 몸을 더듬으려는 그의 액션에 적당히 수줍은 몸동작을 취했을 뿐 나는 선배의 손을 방어하지 않았다. 이제 스파링은 끝나고 본게임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팬티 안으로 내 손을 가져갔다. 손에 뭔가가 닿았고, 그의 “만져볼래?”라는 말이 페이드아웃되던 순간, 내 몸이 격렬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나는 손을 재빠르게 빼고는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것’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실체는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었다. 만화건 소설이건 ‘야하다’고 정평이 난 것들을 모두 섭렵했건만 시청각적인 접근은 고등학교 시절 반 여자애들끼리 모여 펜트하우스에서 나온 홈비디오 한 편을 본 게 전부였다. 거기에서도 가슴이 큼직한 언니들이 허리를 돌리고 만족의 탄성은 내질러도 언니들 몸에 들어가는 페니스는 결코 보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태어나 한 번도 페니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바보는 경험치를 올릴 수 있는 그 순간 겁을 먹어버렸다. 그 물컹물컹한 것이 직접 피부로 느껴지던 순간, 너무 큰 이질감을 맛본 것이다.
‘처음이니까 놀란 것뿐이야’ ‘그의 리드가 미숙했기 때문이야’ 하며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손님의 수작에 일부러 넘어갔다. 삼십대는 다르겠지. 나를 에스코트하러 나온 미끈한 외제차, 호텔 수준으로 로맨틱한 인테리어를 갖춘 침실. ‘이 정도 분위기는 되어줘야지. 그래, 오늘은 하는 거다.’ 나는 정말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시커먼 방에서 나는 어떤 조명도 켜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눈을 질끈 감고서 그걸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몸은 분명 흥분하고 젖었는데 그가 내 몸 구석구석 혀를 놀려도 뭔가 꽉 막힌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서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페니스가 닿기가 무섭게 몸을 빼기 바빴다. 그도 꽤나 황당했을 것이다. 생선은 잡아뒀고, 회만 치면 되는 순간인데, 칼만 갖다 대려고 하면 고기가 난리를 치니 말이다. 결국 힘만 잔뜩 뺀 그는 나와의 섹스를 포기했다.

난 페니스를 무서워하는 건가? 대책회의가 필요했다. 친구들을 불러 모은 후 물었다. “너도 그랬어?” “무서웠다기보단 난 남자의 거기에 털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놀랐어.” “난 막상 섹스를 할 때는 두려움이 없었어. 단지 아플까봐 걱정했지. 너도 섹스할 거면 팬티라이너 챙겨 가. 난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피가 나와서 곤란했거든.” 이런 실용적인 조언은 그저 귓가에서 윙윙거릴 뿐이었다. 섹스의 핵심인 페니스가 무서워서 섹스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았다. 이건 나 자신의 섹시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 존재에 대한 이율배반이기도 했다.

포기를 모르는 불꽃 여자. 칠전팔기의 시도.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강하게 나를 껴안은 남자의 건장한 팔을 사랑했다. 남자의 판판한 가슴에 키스하는 것도 좋았다. 옆으로 누워 있는 남자의 어깨에서부터 엉덩이로 떨어지는 각진 선에도 열광했다. 그러나 도무지 덜렁거리는 데다,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페니스만큼은 만지기 싫었다. 아니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낯선 게 당연하지. 하지만 너도 언젠간 그걸 좋아하게 될 날이 올 거야.” 다이어리에 68번째 섹스를 기록하던 똑똑한 친구가 말했다. “난 아침에 눈뜨면 내 곁에서 아직 잠들어 있는 그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의 페니스가 아주 또렷하게 정신을 차리고 봉긋하게 솟아 있거든. 왼손으로 지그시 그걸 잡으면 얼마나 충만한 기분이 드는지 몰라.” 그렇게까지 상세한 부연 설명으로 나를 더욱 좌절하게 만든 건 귀엽게 생긴 친구였다. “처음에 숨이 죽어 있는 녀석을 내 입에 넣으면 조금씩 커지면서 뜨거워져. 어느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입 안 가득 차버리지. 그러면 하루 종일 그걸 핥고, 빨고, 잘근잘근 깨물어주고 싶어.” 나도 친구들과 함께 페니스 예찬론을 펼치고 싶었지만,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난 그녀들에게 입만 까진 친구가 된 것이다.

그 당시 만나던 남자들은 내가 남성지에 섹스 칼럼을 쓸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현재 나를 아는 남자들도 내가 한때 페니스포비아였다는 사실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때의 나는 성급했다. 신체적인 요구보다는 심리적인 발정기를 겪은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 ‘했다니까’, 나도 덩달아 해야 하는 하나의 유행처럼 섹스를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처음’에 걸맞은 상대를 찾지 않고 나를 안고 싶어했던 남자에게 나를 맡겼다. 현명한 선택이 아님을 알고 있는 내 몸이 문을 열지 않은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섹스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리석었던 나는 계속해서 자신을 닦달했다. 하지만 좋은 섹스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과 하는 것임을, 날 달뜨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임을, 그 사람을 만나고 깨달았다.

나를 껴안은 남자의 건장한 팔을 사랑했다. 남자의 판판한 가슴에 키스하는 것도 좋았다.
옆으로 누워 있는 남자의 어깨에서부터 엉덩이로 떨어지는 각진 선에도 열광했다.
그러나 도무지 덜렁거리는 데다,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페니스만큼은 만지기 싫었다.

나 스스로 충분히 느낄 정도로 앳된 주변 여자아이들에 비해 나는 글래머러스하고 도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섹스만을 목적으로 하는 남자들의 성급한 대시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나는 어렴풋이나마 성욕과 사랑을 구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소통보다는 어떻게든 삽입만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거다. 그런 면에서 그는 특별했다. 속으로는 어땠는지 몰라도, 내가 충분히 그와의 섹스를 원하기 전까지는 어떤 성적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굉장할 정도로 정중했고 그런 행동이 나를 자극시켰다. 천하의 명기 황진이는 끝내 서경덕을 유혹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를 안고 말리라는 투지를 불태웠다. 그랬기에 그 역시 나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이고 확실한 증거, 단단해진 그의 페니스를 느끼자,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무한한 애정이 샘솟아났다. 페니스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럴을 하면서 달콤하고 맛있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를 드디어 나도 알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여자들은 자신이 언제 섹스를 원하는지 모른다. 첫 섹스 역시 분위기에 말려서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남자친구가 섹스를 하자고 자꾸 조르니까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섹스는 가치 있는 선택이지만, 안 해주면 헤어지게 될까봐 섹스를 하는 건 옳지 않다. 물론 첫 섹스와 페니스에 두려움을 갖는 여자들의 경우 남자들보다 섹스를 원하는 시기가 더딜 수밖에 없다. 대부분 여자들은 섹스와 페니스에 대해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두려움을 갖는다. 그런 두려움만으로도 온몸이 돌처럼 굳는다.

당신이 그녀와 얼마나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첫 섹스라면 혹은 그녀가 섹스에 미숙한 타입이라면 성급하게 그녀를 밀어붙이지 않길 바란다. 당신이 애타게 조르면 그녀는 당신에게 몸은 내어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당신은 그녀가 진정으로 섹스를 즐길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그녀는 의무감으로 신음소리는 내겠지만 질 내부까지 젖지 않은 상태에서 당신의 페니스를 받아들이느라 아파하고 불편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요구하기보단 그녀 스스로 원하게 만들어라. 달콤하고 진한 키스로 그녀를 들뜨게 만들어 거부할 수 없는 쾌락을 제공하면서도 결정적 순간, 당신은 그 다음은 원하지 않는 사람인 양 그녀의 의사를 물어봐라. 하고 싶다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게 만들어라. 자신이 원하는 건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르고 당신 손에 이끌려 섹스를 하게 되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녀는 두려움보다는 기꺼운 마음으로 모험을 택했기에 미숙할지언정 조금은 더 유연해질 것이다. 잊지 마라. 좋은 섹스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그녀가 기꺼이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 그녀에게 당신은 평생 잊지 못할 ‘첫 경험의 남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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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기원
WORDS 김현정
PHOTOGRAPHY 기성율
COOPERATION 딴지몰(www.ddanzimall.com)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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