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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버지를 팔자

`이건, 빈티지야!` 작가 박민규가, `So Trendy`하다는 <핑퐁>의 박민규가 단편 <누런 강, 배 한 척>을 쓰면서 그렇게 자위했더란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기 위해 썼다는, 그래서 역력히 진지하고 지극히 따스한 글. 분명 박민규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글. <br><br>

UpdatedOn April 27, 2009

‘이건, 빈티지야!’


작가 박민규가, ‘So Trendy’하다는 <핑퐁>의 박민규가 단편 <누런 강, 배 한 척>을 쓰면서 그렇게 자위했더란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기 위해 썼다는, 그래서 역력히 진지하고 지극히 따스한 글. 분명 박민규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글. 무릇 아버지란 그런 것인가. ‘그래, 이건 빈티지야’라고 어느 순간 자위하게 하고, 어느 순간 감동하게 하여, 불현듯 당신을 기리게 하는 순간을 선사하는 그런 무형의 빈티지. 작가는 그랬다. ‘처음엔 <아빠 앞에서 실러캔스>란 소설(하하, 박민규다운 발상이다. 수억 년 동안 진화하지 않은 물고기 실러캔스라니…)
을 구상했는데 이게 아니다 싶었다. 도통, 뭔 소린지… 울컥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버지가 읽고 옳거니, 느낄 수 있는 소설을 써야만 했다. 써보지 뭐. 사용하던 매킨토시를 끄고 먼지가 쌓인 도스 컴퓨터를 꺼내 켠 기분이었다. 도스엔 물론 도스의 매력이 있었다.’

그래,
도스에는 도스의 매력이 있다. 
넓적한 플로피 디스켓을 컴퓨터에 넣었다 뺐다, 건건이 명령어를 입력해 굽이굽이 돌아가는 오퍼레이팅 시스템. 그 고루한 빈티지 시스템엔 슬로 푸드 같은 느긋한 매력이 있다. 뜨거운 물에 흰 수건을 담갔다 짜고, 벽에 걸린 가죽에 칼날을 문지르고, 거품을 묻힌 솔로 턱 주변을 문지르고, 결을 따라 조심스레 수염을 밀던 수제 면도법처럼 말이다.

그래,
그건 빈티지의 힘이다.
아버지에게서 내려 받은 철 지난 코트와 나란히 대물림된 잔소리 세트. 이 아버지표 빈티지 이종 세트는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을 지녔다. 결국 철이 바뀌고, 철이 들면서 자식들도 빈티지 이종 세트의 일부가 된다. 살을 나누고 태어난 자식은 아버지의 옷을 나눔으로써 그렇게 된다. 난 척하는 놈들도, 디지털 노마드인 놈들도 결국 아버지의 옷 속에서 철 지난 잔소리를 듣게 된다. 부자지간이라면 그 정도 텔레파시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게 아버지표 빈티지의 힘이다. 

그래,
운이 좋은 거다. 
당신이 아버지의 옷을, 아버지의 빈티지를 일찌감치 물려받았다면 말이다. <아레나>는 그런 당신의 운을 양껏 뽐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버지 옷을 입어봅시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콘테스트를 열기로 한 거다. 표지에 박힌 대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옷과 소품을 가지고 멋을 부리는 콘테스트다. 여기서 출중하다 인정받게 되면, 대대손손 물려줘도 될 만한 시계와 선글라스를 상으로 준다. 어쩌면 30년 후 당신의 아들도, 당신이 상으로 받은 <아레나> 선물로 치장하고 ‘5월 아버지 옷 콘테스트’에 대를 이어 응모할지 모르겠다.

그래,
그건 5월 본능이었다.
어리석은 자식들의 본성이 들끓는 달. 잊고 또 잊고 살다 5월만 되면, 기념의 깃발을 올리는 알량한 본성. 그 5월에 나는 잡지쟁이의 본성으로 아버지를 팔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들은 이렇게라도 자신들의 조각을 기억하는 자식들을 기꺼워할 것이라 담담하다. 사실 그렇게라도 아버지를 기념하는 시간을 갖게 될 당신은 행운아다.

그래,
나는 당신이 부럽다.
아직까지 아버지로부터 변변한 물건을 물려받은 적 없는 나는 그 콘테스트에 참여할 자격을 지닌 당신이 부럽다. 젊은 시절 아버지의 책장에 꽂혀 있던 <몽테뉴 수상록>은 어디로 갔을까? 기운 센 아버지를 상징하던, 맥아더 장군의 것과 똑같았던 금테 레이밴 선글라스는?

그래,
그런 게 명품인 거다.
물려받은 게 없는 난, 대신 내 아들에게 물려줄 만한 명품을 찾고 있다. 아들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적에 그때에도 건재할 것을 말이다. 오랜 시간 후, 얼굴 붉어질 만한 디자인이어선 안 된다. 그런 소재여서도 안 된다. 오래 묵힐수록 무던해지고, 오히려 기품 있어지는 것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성(性)이 다른 관계로 옷가지를 물려줄 순 없는 게 안타깝지만 대신 소품 몇 가지를 목록에 올렸다. 내 이니셜이 새겨진 몽블랑 만년필, 일할 때마다 쓰는 톰 포드의 블랙 안경테,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캔버스 소재 여행 가방, 행커치프로도 쓸 수 있는 폴 스미스의 손수건들과 <아레나> 부록으로 제작됐던 줄무늬 노트, 속지를 갈아 쓸 수 있는 에르메스의 가죽 다이어리…. 앞으로 20년은 나를 보필할 것들, 그리고 그 이후엔 나의 아들을 호위할 것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프로페셔널한 잡지인으로 살아왔던 나를 기념할 만한 물건이라는 거다.

그래, 그런 게 명물인 거다. 
그래, 그런 명품들을 챙겨 <아레나> 콘테스트에 참가할 당신은 명물인 거다.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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