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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백현진

백현진이 세 번째 개인전을 연다. 전시명은 <들과 새와 개와 재능>이다. 음악감독 방준석과 함께 만든 앨범 <방백>도 출시했다. 그림 그리는 행위를 ‘일을 본다’라고 표현하고, 그림을 ‘물건’이라고 부르는 이 예술가를 우리 시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UpdatedOn February 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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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연남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했다. 개인전에 전시할 작품을 마무리하는 중이어서 작업실은 작품들로 꽉 차 있었다. 그는 이 작품을 칠하다가, 저 작품을 칠하고, 또 저 멀리 있는 작품을 칠하고 다시 이 작품을 칠하는 방식으로 일을 본다. 그는 캔버스를 오래 바라보고, 지칠 때까지 붓질을 하고, 다시 캔버스를 오래 바라본다. 그는 종일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것은 습관 같기도 하고 살기 위해 가까스로 들이쉬고 내뱉는 호흡 같기도 하다. 또한 그는 그렇게 노래를 만든다. 그는 그저 ‘다른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물건들이 무엇이 되고 어떻게 쓰일지를 생각하기 전에 순수하게 그것들을 만든다. 그가 만든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든 그에겐 그저 물건이고 소리다.

2008년 아라리오갤러리에서 한 전시가 첫 개인전이었죠. 전시명이 <산만과 실체>인데, 이름을 잘못 지은 거 같아요. 산만하게 보이려는 부분은 그저 포즈잖아요. 진짜는 다른 건데, 많은 사람들이 그저 ‘산만하다’는 것에 집중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친한 작가들조차 “이게 도대체 뭐야, 너?”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눈 좋은 젊은 애들도 진짜 모르겠데” 이러고. 그러고 나서 “전시가 너무 산만해” 막 이러더라고요. 그 얘기 듣고 진짜 순진하다,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보기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좌충우돌 횡설수설 산만하고 엉망진창이고 그렇게들 사는 것 같아요. 그게 꼭 네거티브는 아니에요. 저는 질서라는 것을 사람들을 끌고 가기 위한 어떤 일종의 힘, 신호, 권력이라고 봐요. 자연에 질서가 어딨어. 보통은 되게 랜덤하죠. 그런 상태가 불안하니까 과학자들이 계속 연구를 한 거고. 번개 맞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일단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으니까, 자연을 컨트롤하고 싶어질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여기까지 오는 거고. 기본적으로 불안해서 그런 거였는데, 불안한 것을 인정하면 질서를 만들기 위해 무리 안 해도 되겠죠. 인간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는 아닌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하찮다는 얘기가 아니고. 자연을, 지구라고 말하는 곳을 이렇게까지 막 쓸 정도로 자기네들이 뭔가 있는 게 아닌데.

보통은 불안을 극복해야 한다고 배워요. 불안을 옆에 두고 살아가는 방식을 모르죠.
불안을 부수어서 이기고, 정상에 서면 불안하지 않을 거라고,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뻥들을 치죠. 자신들이 되게 스페셜하고 잘났다고 뽐내기 위해.

하지만 당신은 그림을 그리면서 혹은 노래를 만들면서 불안과 혼란을 옆에 둘 수 있잖아요. 불안과 나란히 지내고도 멀쩡할 수 있는 도구를 가졌잖아요.
노래하고 붓질할 때는 별 생각이 안 나요. 그 상태가 굉장히 좋아요. 그게 다예요. “그럼 메시지는요? 현대 미술가인데, 음악가인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들 얘기하는 분이 있을 수는 있는데, 저도 친절하게 다시 얘기해 볼 수는 있는데, 그 얘기를 차근차근 하기에는 지금 제 볼일이 바빠서, 그 시간에 그냥 내 작업 하자, 아직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모르죠, 더 나이를 먹어서 예순, 일흔에 가서 그런 것들을 내가 힘 안 들이고 얘기할 수 있을 단계가, 그럴 시간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여전히 백현진을 설명하는 글에는 ‘무의식’이란 단어와 ‘자동기술’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염기 섞인 붉은책(Red Salt Book)>이라고 하는 0.3mm 샤프펜슬로 그린 드로잉 책이 나왔을 때 회자된 말들을 기자나 평론가들이 공부는 안 하고, 계속 반복해서 쓰는 거예요. 저는 ‘무의식’이라는 낱말을 거의 써본 적이 없어요. 자동기술법에 대해선 1990년대 때 제 입으로 얘기하고 다닌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2000년 중반에 미술 하는 몇 사람이 받아 적고, 그다음에는 여러 사람들이 계속 갖다 쓰는 거예요.

작품을 보면 무의식이나 자동기술이라는 단어보다는 ‘직관’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저는 작업할 때 직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직관’보다 더 쉬운 낱말을 찾아보면 ‘반응’이 있어요. 다들 알아듣는 말이잖아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실시간으로 계속 반응하는 거예요. 반응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물리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여기 이 그림 같은 경우 아랫부분을 파란색으로 칠했잖아요. 그다음에 무슨 색깔을 칠할지 저 진짜 몰라요. 아무 색깔이나 먼저 붓으로 찍어놓는 경우가 50, 60퍼센트 넘어요. 또 어떨 때는 이 색을 칠했다가 저 색을 칠했다가, 놔두고 다른 부분을 칠했다가,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반응은 축적된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백현진의 작품을 무의식과 연결하는 게 영 터무니없는 짓은 아니에요. 아무튼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너는 뭘 그리고 있니, 라고. 백현진을 이해할 만한 단서가 너무 없어요. 그래서 오해도 생기는 거고.
제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보면 제가 어떤 사물을 기록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어요. 평범하고 엉성한 것들이에요. 사람 사는 거랑 제일 맞는 무엇들을 저는 그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보면 데이비드 보위를 생각해봐요. 그 사람 정말 딱 떨어지는 느낌의 가수잖아요. 그런데 데이비드 보위를 이미지로 연결할 때 제프 쿤스의 조각이랑 연결될 수도 있고, 시멘트로 대충 메워놓은 강북의 무너진 계단과 연결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 데이비드 보위의 목소리와 퍼포먼스가 제프 쿤스랑 링크가 안 돼요. 오히려 이쪽이랑 링크되지. 그렇다고 데이비드 보위가 강북의 골목 정서를 대변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저에게는 이쪽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거예요. 그런 맥락 안에서 이런 것도 저런 것도 그려보는 거고요.

일반적으로 멋있다고 하는 것은 제프 쿤스의 명료한 조각 작품들이에요.
시장에서 계속 멋있다고 말하고, 쿨하다고 말하고, 세련되었다고 말하는 그 무엇들이 사실은 되게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거예요.

왜요? 그런 것들을 소비하며 살아야 해서?
그게 욕망이니까. 가질 수 없는 욕망이니까. 2005년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두 달 있었어요. 공원에서 혼자 담배 피우며 보드카 마시고 있으면 누가 와서 앉아요. 젊은 사람들끼리니까 같이 얘기하고 놀죠. 그런데 한 번은 자기가 담배 사올 테니 돈을 달라 그래요. 그래서 왜 네가 담배를 사오냐고 같이 가자고 했어요. 같이 가서 계산대 앞에 서 있는데, 여기 사람들 영어 못한다고 자기가 러시아말로 해야 이 사람들이 편하다고 돈을 달래요. 주니까 돈을 갖고 그냥 바로 뛰어요. 그런 일들이 반복돼요. 경찰이 ID 카드 달라고 해서 주면 주머니에 넣고 서 있어요. 뭐지? 제가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결국 돈 달라는 거예요. 돈을 주면 ID 카드 그냥 주고 가요. 그러다가 제가 베를린도 가고 헬싱키도 가게 되었어요. 다른 데 가서 살아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절대 다시 갈 데가 아니에요. 그러다가 문득 나한테 사기친 사람들한테 화를 낼 수 없다는 걸 자각하게 돼요.

왜요? 무슨 계기로요?
베를린도 헬싱키도 런던, 파리, 서울, 도쿄도 전부 소득 수준이 꽤 높잖아요. 그런데 이곳들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나 광고는 거의 동일해요. 당시만 해도 겨우 3백 달러, 5백 달러 벌고 있는 사람들한테 실시간으로 광고를 틀어서 보여줘요. TV만 틀면 광고가 나오고, 건물 옥상에도 광고판이 있어요. 광고에 등장한 물건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살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빠가’가 날 수밖에 없겠구나, 공정하지 못하구나, 그 도시가 되게 슬프구나,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것은 신호들 때문에 그런 거예요, 욕망을 자극하는 신호들 때문에. 그리고 미술 작품 중에서도, 음악 중에서도 계속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들이 있어요. 멋있지? 끝내주지? 이런 거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지? 이런 거 만들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너네 모르겠지? 이러면서 자기네들끼리 지랄들 하거든요, 제가 볼 때는. 정말 못된 거예요. 그것을 우디 앨런이니 홍상수니 이런 좋은 작가들이 끊임없이 기록해요, 그런 짓들 좀 하지 말자고. 근데도 환기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도 되게 조심스러워요. 노래 만들 때도, 그림 그릴 때도. 제발 사람들 헛욕망 안 갖게 하려고. 그리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에 무엇을 안 담았으면 좋겠어요.

그렇죠. 그래서 이 그림들도 사람들이 추상적이다, 난해하다고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단순하다는 거죠?
네, 별것 없어요. 이 그림 봐요. 눈보라예요. 남녀가 포옹을 하는데 연애하다 보면 눈보라 치는 날들도 있죠. 눈보라 치는 걸 보면 패턴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바람에 따라서 한 송이 한 송이가 무작위로 흩어져요. 눈보라를 오래 본 사람들은 알아요. 눈보라를 오래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경험들을 못하고 살아서 그렇지. 뭐 때문에들 바빠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연애를 생각해보면 남녀만의 관계가 아닐 수도 있어요.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뭐 그리고 몸 섞는 연애 말고도 어떤 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뭔가가 있고. 그런 관계가 눈보라 속에 있는 그림이라고 보면, 뭐가 어려워요?

하지만 그걸 보기까지 여러 결들을 걷어내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두려워해요. 보면 바로 알게 되는 것을 선호하고요.
일반 관객이라고 분류되는 분들이 갤러리에 와서 보는데, 이 그림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눈은 가고, 그러다가 이 생각도 나고, 저 생각도 나는, 그런 그림 그리고 싶어요. 아니면 갑자기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게 되는 그림이요.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의 이름을 보면, 백현진은 더 난해해지려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아직 제가 그것밖에 못하는 거고요.

제가 잘못 본 거죠.
아니에요. 누가 잘 보고 잘못 보는 것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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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름이 ‘뇌신경학과 입자 물리학을 거쳐 다시 괴석이나 괴목 따위를 경험한 이후 어느 동양인에 의해 나올 수 있는 모던 토킹’ 같은 식이니까.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표현은 구체적이지만 무슨 뜻일까 생각하면 모호해요.
좋은 시란 평범한 낱말들을 갖고 어렵지 않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게 뭐지? 계속 보게 되거든요. 제가 아는 좋은 시인들은 평범한 낱말들을 갖고 평범한 문장들을 써내요. 근데 이게 자꾸 어, 어, 어, 어, 어? 이렇게 되는 거죠. 사람들이 각자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게 그나마 어른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종의 어떤 무엇 중에 하나라는 것들을 알 테니까, 그런 시인들은.

백현진은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명확하네요.
다음 전시 땐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제목을 짓는 데 있어서 최대한 헛소리를 안 하려다가 말이 짧아지는 경우가 있고, 헛소리를 안 하려고 하다 보니 말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면, 이번에는 말이 길어지는 경우가 아닌가 싶어요. 이번에는 하여튼 그래요. 그 과정 안에서 제가 혹시 아직도 이런 것들을 갖고 뭔가 뽐내려는 마음이 있다면, 반성해서 앞으로 더 걷어내야겠죠. 이런 것은 어쩌면 제 숙제예요. 음악 쪽에서는 작년에 낸 앨범 <방백> 작업을 하면서 많이 걷어냈어요. 저라는 사람이 하는 거지만 매체가 어떤 것은 조금 더, 소위 제가 생각하는 방향에서 무리 없이 하게 되는 것도 있고, 어떨 때는 갸우뚱거리는 게 있는데… 모르겠어요, 하여튼. 후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몇 년 지나고 에이 되게 부끄러웠다, 그럴 수도 있죠, 이번 전시나 앨범이나.

<방백>에 실린 곡들은 제목이 전부 두 글자예요. 2011년에 두산갤러리에서 연 두 번째 개인전 때도 작품 제목이 짧은 단어들 위주였고요. 난데없지만 백현진이 모더니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더니스트인지는 모르겠는데, 단순한 거 좋아해요. 담백하고 단순한 거.

다시 여쭙는 거지만, 여기 있는 그림들 전부 당신이 보기엔 굉장히 단순하고 담백하게 느껴지죠?
네. 발전, 수정, 개선이라는 낱말들이 제 사전에는 없어요. 없어진 지 오래돼요. 대신 변화, 변경은 믿어요. 그런데 변화란 말보다는 변경을 좋아해요. 변경이 뭔가 드라이해서, 저는 변경이라는 낱말을 써요. 변경은 다른 거 아니에요, 계속 다 변하잖아요. 내 마음도 변하고, 달도 변하고, 냉장고도 변하고, 자동차도 변하고, 쥐포도 변하고.

하지만 변경은 예술가의 언어 같지는 않아요. 기계적인 언어로 느껴져요.
그래서 좋아요. 예술가로, 현대 미술에서 화가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다시 얘기하면, 문명에 대해 동의하지 않아요. 문명을, 뭔가를 더 규명하거나 발전하고 쿨해지고 그런 거라고 절대 안 봐요. 그냥 그렇게 뭔가 달라진 거지. 그러니까 그림 그릴 때도 더 잘 그리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요즘 사람들과 비교할 때 당신은 너무 달라요. 고집도 세고.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입 닥치고 그림 그리는 거죠. 빵 굽는 사람은 빵을 구워서 맛을 보게 하는 거고, 그림 그리는 사람은 계속 그림 그려서 그림 맛을 보게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면 오해도 줄어들겠죠. 그래서 오늘도 작업실에 있는 거예요.

오해 받는다고 생각해요?
오해를 많이 받죠. 화가로 그나마 이만큼 위상이 생긴 게 작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연 기획전 <그림/그림자> 이후예요. 그전에는 백현진,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등 별의별 얘기가 다 있었던 거 알아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몇몇 힘 있는 기획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뮤지션으로는 저를 좋아하니까, 제 전시에 와서 “현진 씨 음악은 좋은데 그림은 잘 모르겠어요” 이러고들 있어요. 환장할 노릇이에요.

그건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언어적인 나쁜 짓인데요.
그 양반들이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운이 좋으면 어떤 식으로든 제가 일하는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사용하겠죠. 작년 플라토 전시 이후에 운신의 폭이 생겨서 여러 사람들이 한 번씩 제 작업들을 더 들여다보고 있어요. 정성 들여서 만든 물건이니까 누군가 잘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작품을 ‘물건’이라고 표현하네요?
저는 그게 편해요. 물건, 사물. 음악은 소리. 상위 개념들이 그나마 덜 오해하고 깨끗한 거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미술 평론이나 리뷰를 별로 안 좋아해요. 낯선 단어나 이론으로 치장하니까…. 다른 거 다 떠나서, 들뢰즈 없으면 평론가들이 글을 어떻게 썼을까 싶어요.
좋은 리뷰나 좋은 평론을 보면 또 다를 거예요. 이렇게 얘기를 해볼게요. 제가 현대 무용이라는 것을 그냥 개지랄들을 하는 거구나, 현대 음악 틀어놓고 똥폼들 잡는 거구나, 재미가 더럽게 없구나, 생각하다가 독일에 가서 피나 바우슈 공연 보고, 피나 바우슈가 초청한 다른 무용팀들 공연을 몇 개 보고, 이거 그냥 사람 사는 얘기들을 하는 거구나, 일단 다 떠나서 너무 재밌구나, 느꼈어요. 이 얘기랑 연결해서 보면, 재밌게 읽은 평론이 그만큼 없었다는 거죠. 평론가들이 반성을 해야 하는 거죠.

작가로서 현대 미술 신 안에서 어느 정도는 위상을 갖고 있다고 느끼죠?
한국에서 페인팅은 올드한 매체로 취급당해요. 뭐, 별로 신경 안 써요. 혼자 일 보기에는 괜찮아요. 상업 갤러리 중에서 큰 데가 빤한데, 그중 한 곳에서 개인전을 여는 정도죠. 제가 운이 좋은 작가라는 것은 알아요. 마흔 중반에 어쨌든 하기 싫은 일 안 하고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리면서 살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제가 그림이 막 잘 팔리는 작가는 아니에요. 특히 한국에서는 그림이 거의 안 팔렸어요. 플라토 미술관에서 전시한 이후에 조금 팔리기 시작한 거죠. 그전까진 유럽 딜러가 작품 팔아준 돈으로 검소하게 꾸려왔는데, 대신 아르바이트는 안 하고 살 수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젊은 작가들 만날 때 예술가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다는 걸 느꼈죠. 어차피 음악이야 돈이 안 되는 일인 거고.

운이 필요한 거죠…? 아까도 운이 좋으면이라는 말을 했잖아요.
굉장히 필요한 거고. 저는 운이 되게 좋은 거 같아요. 누가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누가 누구보다 머리가 좋아서 인정을 받겠어요? 약간 날카롭게 얘기하면 안일하게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거죠. 머리가 좋고, 안 좋고, 열심히 하고, 안 하고, 성실하고, 안 성실하고, 이런 걸 떠나서 절박하게 작업하는 작가들이 거의 안 보여요.

절박하게 그리세요?
이렇게 대답할게요. 미술 시장에서 아무런 관심을 못 받아도 계속 그림 그리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년 해봤더니 할 수 있겠더라고요.

음악도요?
음악으로 돈 벌 생각하지 않겠다는 게 지금까지 저의 원칙이에요. 저도 사람이라서 몇 번 헷갈린 적은 있었는데, 잠깐 헷갈렸을 뿐이에요. 어떻게 하면 그림이 팔릴까 하는 생각도 한 적 없어요. 그걸 다르게 얘기하면 그림 팔아서 재미를 보면 오히려 크게 해먹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냥 묵묵하게 자기 일 하다가 시장에서 화가로 성과를 거두면 그 가치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고요.

어떤 작가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볼 건데, 지금 이 질문은 작가들에게 늘 묻는 ‘어떤 작가 좋아하세요’랑 달라요. 많이 달라요.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요. 현재 제가 제일 관심 있는 예술가는 이준규 시인이에요. 한때 홍상수 감독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그전에는 최정화라는 미술가를 보면서 희한하다고 느꼈어요. 지금은 이준규 시인이 제일 좋아요. 작년에 나온 시집 <네모>가 특히 근사해요. 그전에 나온 시집도 재미는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저를 자극하지는 못했어요. 저의 문맥에서 이 사람은 당분간 적수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대 미술이건 문학이건 음악이건 뭐건 간에.

이준규 시인과 백현진의 공통점이 있죠. 반복해서 동일한 형태의 붓질을 하는 것, 반복해서 동일한 문장을 쓰는 것.
이준규 시인도 뭘 안 담으려고 하죠. 언어에 굉장히 엄격하고 절박한 사람인데, 뭔가 뻥 뚫린 걸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걸 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거든요. 문제는 일을 어떻게 보느냐인데 이준규 시인은 그런 면에서 일을 굉장히 잘 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번 전시 도록에 들어갈 글도 이준규 시인한테 부탁했어요. 그림 보고 아무 글이나 써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시를 써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도록에 글은 그것 하나뿐이에요.

1월 27일부터 2월 27일까지 PKM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합니다. 매일 퍼포먼스를 한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전시 공간에 소리가 계속 있어요. 일종의 OST라고 표현해도 되고. 내 목소리를 트는 건 아니고 지속음을 설계해서 트는 거예요.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두 시간 동안 현장에서 그 소리를 만들 거예요. 만드는 걸 보는 사람들한테는 콘서트가 되는 거고, 갤러리라는 공간을 감안하면 사운드 퍼포먼스가 될 수도 있겠죠.

최근에 나온 앨범 <방백>을 정말 좋아하며 들었어요. 그런데 그 음악이 지금 여기 있는 이 작품들에서 들리는, 보이는 소리와 비슷해요.
그렇게 보이고 들리면 저는 정말 좋죠. 두산 갤러리에 맹지영 큐레이터라고 있는데, 이 사람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요. 페인팅이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도 높아요. 그런데 이번에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방백>이 내 그림과 싱크로율이 높게 들린다고. 과거에 나온 어떤 앨범보다. 저는 그 말이 반가웠어요.

갤러리에서 매일 만들고 틀 소리도 이번에 전시할 작품들과 연결될까요?
제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에 빠졌어요. 1960년대 말에 과학자들이 전통적인 악기로 낼 수 없는 영역의 소리를 다루려는 목적으로 만든 거죠. 인간의 가청 주파수가 20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인데 일반적인 악기들로는 이 영역을 다 감당할 수가 없거든요. 특히 저는 저음들 아니면 고음들에 관심이 생겨서 공부하고 있어요. 복잡한 기계를 만져야 하니까 계속 공부해야 하거든요. 2년 동안 술을 끊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전시 <산만과 실체> 이후 거의 10년이 흘렀습니다. 백현진의 작품, 백현진이라는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을까요?
전에는 인터넷에서 제 이름을 검색해서 보면 괴짜, 기인, 괴물, 이런 표현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거야 뭐 저의 비즈니스가 아니고 그분들이 하는 얘기죠. 모르겠어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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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Contributing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린용

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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