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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을 아시나요

혹시 `초식남`이라고 들어봤는가. `토이남`은 어떤가. `메트로섹슈얼`이야 철 지난 유행어겠지만 초식남이니 토이남이니 하는 말들은 요새 트렌디하다는 `언니`들 사이에 유행하는 최신 유행어다.<br><br>

UpdatedOn April 23, 2009

이남’에 대해서는 칼럼니스트 김현진의 말을 빌리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토이’의 노래를 좋아하며 토이 노래에 나오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독신 남자>를 토이남이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 하자면 누구보다(당연히 애인보다) 더 자기 자신‘만’을 좋아하는 남자란 얘기다. 그러면 ‘초식남’은? 이 부류를 굳이 설명하자면 ‘하드보일드 버전의 토이남’이다. 그러니까 ‘초식남’은 연애에도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남자지만 그렇다고 여자를 돌같이 보는 것도 아니다. 섹스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고, 남자친구보다 여자친구가 더 많으며 애인이 아닌데도 늦은 밤 여자를 집에 바래다주는 남자. 거리 두기의 달인.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아아,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뜨끔 하는 당신, 왜 뜨끔하는가? ‘초식남’이 남자의 막장도 아닌데.

초식남과 토이남 등등의 말이 등장하는 건 그만큼 지금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각해보자. 이전까지 한국에서 남자를 일컫는 말은 단 3개였다. 학생, 총각, 아저씨. 반면 여자를 일컫는 말은 3개보단 많았다. 위악적인 뉘앙스지만 온갖 수식어가 붙는 ‘~녀’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의도야 어쨌든 한국에선 남자보다 여자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었던 게 사실이고 그 이유는 여자들이 그만큼 복잡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복잡하다는 말은 그녀들의 욕망이나 취향이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사람들이 자꾸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건, 일단 그걸 뭐라고 부를지 결정해야 거기에 대해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식남’ 같은 말이 유행하는 건 그 정도로 남자들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자, 남자들이 달라졌다. 어떻게? 3년 전 인터넷 연재 칼럼 ‘U35 남자 마케팅 도감’에서 ‘초식동물형 남자’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일본의 칼럼니스트 후카자와 마키의 정의에 따르면 ‘초식남’이란 아가씨형 남자로 ‘연애와 섹스 대신 자신의 취미 활동에 에너지를 들이붓는 남자’다. 남자란 자고로 ‘작업’과 ‘정복’의 동물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이라면 ‘어찌 이런 일이!’라고 개탄할 만하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일단 남자들의 욕망이 변했다는 게 아니라 다양해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애인은 없어도 섹스 파트너만 있으면 좋을 뿐, 딱히 없어도 그만이다. 결혼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도 희박하다. 그걸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곧 초식남이다.

세상에는 섹스 말고도 할 게 많다는 걸 알아버린 남자들이 많아졌다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연애는 피곤하다. 밀고 당겨야 하는 게 아니라 물건이든 감정이든 뭔가를 매번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야근이니 철야니 바빠 죽겠는데 섹스가 웬 말이냐고 반문할 남자들도 많다. 애인은 없어도 섹스 파트너만 있으면 좋을 뿐, 딱히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결혼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도 희박하다. 왜냐면 그걸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곧 초식남이다. 여자들이 자신을 위해 마놀로 블라닉과 샤넬 백을 사듯이 ‘건강을 위해’ 수영을 하고 고급 자전거를 타고 내키는 대로 혼자 여행을 떠나고 주말이면 홍대 근처 카페에 앉아 드립 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읽는 남자들. 그리고 여자들과 한 시간 이상 ‘사심 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남자들. 그들이 바로 ‘초식남’이고, 그들의 등장은 남자들의 삶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걸 얘기한다.

이런 이들은 남자들도 충분히 자기 자신을 위해 돈과 시간을 마음껏 투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뉴 제너레이션이다. 물론 여자와 섹스가 좋아 죽겠는 남자라면 풋, 비웃으면 그만이다. 진짜 삶의 재미를 모르는 애송이라고 비웃어도 좋다. 중요한 건 진짜 남자가 아니라 다양한 남자들의 등장이니까. 다양한 남자들이 등장하는 건 그만큼 남자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자신의 감수성을 계발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남자가 영원한 육식남이 아니듯이 영원히 초식남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필연코 변하기 마련이다. 천 명의 여자와 섹스하는 걸 목표로 삼는 것보다 천 명의 여자와 친구로 지내는 게 더 즐거울 수도 있다. 여자친구에게 명품 구두를 선물하는 것보다 그 돈으로 오디오룸을 꾸미는 게 더 즐거울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잠깐 동안 초식남으로 살아도 좋단 얘기다. 인생은 길고 남자는 변하기 마련이니까. 소년에서 청년으로, 이십대 후반에서 어라라 우물쭈물하다가 곧장 아저씨행 특급열차에 처박히는 비참한 삶보단 유유자적 풀이나 뜯으면서 자기애를 실천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단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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