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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는 배우`

적당히 남들을 웃길 줄 알고, 연기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보다는 확실히 잘생긴 정재영은 그러나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화면에서든, 촬영장에서든 그는 절대로 먼저 나서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는 황정민 같은 국민 배우가 될 수 없었으나, 여전히 `아는 배우`로는 남을 수 있었다

UpdatedOn April 02, 2009

   

지막 1%가 부족한 배우가 있다. 많은 부분도 아니고 아주 약간 허약한, 안타까운 케이스다. 재능이 없으면 아예 포기라도 시킬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이건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정재영을 보면서 그러한 기분이 들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역시 ‘왜 그는 황정민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해 스무 번도 넘게 생각했다. 그가, (황정민을 국민 배우로 만들어놓기에 충분했던) ‘밥상’ 발언만 했었더라도, 지금쯤 정재영은 황정민 그 이상의 인지도를 지녔을 것이다. 혹은 <추격자>처럼 그해의 모든 상을 쓰나미처럼 휩쓸어버린 작품만 만났었더라도, 그는 지금의 김윤석이 그러한 것처럼 ‘진짜 연기자’라는 호칭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아는 배우’로 남아 있다. 어쩌면 이는 (유독 수명이 짧은 한국 배우의 상황을 고려할 때) 다행인 일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대놓고 사람을 비유하길 좋아하는 언론은, 아예 정재영과 황정민을 같은 자리에 모셔놓고,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동갑내기이고, 같은 학교를 나왔고, 똑같이 연극판에서 뒹굴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종종 이 둘은 나란히 비교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인터뷰를 끝까지 다 읽고 생각한 것은 역시나 정재영이 조금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황정민처럼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차가운 느낌이 좋은 모딜리아니, 그림을 볼 때마다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샤갈을 좋아한다”고 말했더라면 훨씬 더 ‘있어’ 보였을 텐데, 당시 그는 소박하게도(?) “이외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역시 정재영은 그저 순수할 따름이다. 흔히 배우들은 팔색조의 기질을 타고나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말투, 눈동자의 움직임, 그 흔한 헛기침까지 매번 달라진다.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로 비유하자면) 김태우나 유준상은 영화 촬영장에서와 인터뷰 촬영장에서의 태도가 180도 다르다. 그들은 영화 현장에서는 한없이 소탈하지만, 인터뷰 현장에서는 누구보다 예민한 움직임을 보인다. 머리카락 하나에도, 재킷에 살포시 꽂아두는 행커치프 하나에도 일일이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들은 인터뷰 열흘 전부터 다이어트는 기본이고,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말에 있어서도 상당히 조심을 한다. 허나 정재영은 그러한 ‘경계’가 없다. 그러니 그는 확실히 타 배우에 비해 다가가기 쉽다. 자신 앞에 카메라와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굳이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니 말 붙이기 어렵지 않다. 정재영은 유난히도 단정 짓기 좋아하는 기자라는 사람에게 본인이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 그다지 예민하지 않다. 아마도 그가 ‘배우 같지 않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이러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말고 다른 곳에서 다르게 만났으면 우리 진짜 재미있었을 텐데, 안 그래요?” 역시나 불행히도(?) 8백만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정재영보다는 신하균의 이 한마디가 명대사로 남아 있다. <아는 여자>를 통해서도 이나영은 예의 그 엉뚱함으로 어필했지만, 정재영은 그런 그녀를 묵묵히 받쳐줄 따름이었다.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 역시 정재영은 “다 자빠뜨려~”라는 해학의 대사를 남겼지만,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 건 오히려 그가 아닌 유준상이었다. 그가 촌스러운 크로스백을 메고 등장했을 때, 유준상은 그보다 한층 더 우스꽝스러운 복대 가방을 차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좋은 배우는 좋은 사람이다.” 한창 후배 격인 하정우는 좋은 배우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재영은 같은 질문에, “그저 편안한 배우가 좋은 배우겠죠”라며 단정적인 어조가 아닌 말투로 이야기했다.

어쩌면 다행스런 일인 걸까. 문득 ‘아직 그에게서 기대할 바가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얼핏 사람을 웃길 줄도 알고, 연기력이야 말할 것도 없는 배우. 게다가 본인이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 머리를 굴리지 않는 배우는 의외로 흔치 않은 것이다. 지금 모든 것을 보여준 배우에게는 더 기대할 바가 털끝만큼도 없다. 아마도 황정민은 ‘밥상’ 발언보다 더 멋들어진 소감을 말해야 할 것이며, 하정우는 계속해서 본인의 100%를 치열하게 뽑아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재영은 관객을 더 웃길 여지가 남아있고, 조금 더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아직 질리지 않았다. 정말 다행인 일이다. 정재영이 아직도 본인을 드러낼 수 있는 1%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그러니 그는 여전히 ‘아는 배우’여도 좋다. 아니, ‘아는 배우’여서 다행이다.

 “학교 다닐 땐 사발면 하나로 하루를 버티곤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힘든 줄 모르고
 지냈다. 우린 대부분 그렇게 가난했지만, 늘 연극이라든지 영화라든지 연기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할 때였으니까. 다른 부분들은 별 관심도 없었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당신이라는 사람은 감이 잘 안 온다. 한없이 유쾌할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엄청난 냉혈인 같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실미도> 때의 이미지와, <나의 결혼 원정기>의 캐릭터가 마구 뒤섞이는 거다.(웃음) 인생의 우여곡절을 얼마나 겪었는지부터 궁금하다. (히터를 세게 틀며) 그런데 안 추운가. 히터에서 웬 찬바람이….

이것도 다 인생의 우여곡절 중 하나 아니겠나. 찬바람도 이겨내야 된다.(웃음) 누구나 다 비슷하지 않겠나. 나도 뭐 남들과 비슷한 우여곡절을 지니고 있겠지. 저기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라고 해서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을 것이고.(웃음) 그도 나름대로 제한된 행동 범위라든지, 맘대로 나가서 뛰어 놀지 못하는 그런 구속이 있지 않겠나.

그렇다 할지라도 사람마다 극상과 극하의 체험 범위는 모조리 다르다. 어느 정도까지 힘들어봤나.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학교 다닐 땐 사발면 하나로 하루를 버티곤 했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뭐 비슷하게 살았고. 그런데 그때는 먹는 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힘든 줄 모르고 지냈다. 우린 대부분 그렇게 가난했지만, 의식주가 중요했던 시절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랬는지 크게 고통스럽거나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늘 연극이라든지 영화라든지 연기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할 때였으니까. 다른 부분들은 별 관심도 없었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만약 지금 그렇게 가난했더라면 고민이 많이 됐을 것 같기는 하다.

그때와 지금, 행복 지수를 매겨볼 수 있겠나. 지금 당신은 그때보다 훨씬 유명해졌고, 들어오는 시나리오의 개수가 배 이상 늘었을 것이다.

당연히 지금이 그때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이 훨씬 더 완벽하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갈 길이 먼데, 나이는 먹어가고 그런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예전에는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아예 생각을 못했다면, 지금은 그 반대인 거다. 10년 전에 지금과 같은 마음을 느꼈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하고. 만약 그랬더라면 훨씬 더 많이 도전해보고 용기를 내어보고 그랬을 텐데 아쉬운 거다. 하긴 원래 내가 남들보다는 늘 늦는 편이다. 깨달음에 대해서는 특히나.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원래 좀 늦된 사람이 있다.(웃음) 평소 소극적인 성격인가. 용기를 내지 못해서 놓쳐버린 것들이 많은가 보다. 그게 어떤 기회였든 간에 말이다.

대체로 소극적인 스타일이다. 누구에게 간섭받는 것 싫어하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안 받기를 원하는 성격인 거지. 배우 하면서 자신에게 점점 열리긴 했다. 하지만 조금 더 빨리 열렸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게 꼭 연기자로서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나는 너무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살아왔는데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살았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또 늘 생각뿐이지 뭐. 항상 결국엔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웃음)

그렇게 한 가지만 생각해온 일 즉, 연기라는 건 어떤가. 언제나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사는 이들에 비해 당신은 한 우물만 파온 셈이다. 이제는 수월해졌을 것 같기도 하고.

매 순간 다르다. 시나리오를 읽고, 그 캐릭터를 보고 ‘야 이건 내가 완벽하게 해낼 수 있겠다’ 하는 순간이 온다면 굉장히 이상적이겠지만, 죽는 날까지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누가 뭐래도 대박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작업을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할 뿐이지 누가 그런 대박을 상상하겠나.

진짜 잘될 줄 알았는데 쪽박을 찼던 영화와, 그 반대의 영화를 각각 꼽아본다면.

없었던 것 같다. 안 될 것 같았던 영화는 결국 안 됐지 뭐.(웃음) 다만 생각보다 잘된 영화는 있다. <웰컴 투 동막골> 같은 경우에는 8백만이 넘었는데, 그렇게까지 잘될지 상상하진 못했다. <실미도>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천만 관객이라는 걸 누가 상상하면서 영화를 만들겠나.

예상보다 안 됐던 영화는 <나의 결혼 원정기>다. 촬영 당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고, 작품성을 봤을 때도 뒤처지는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에 손해는 안 볼 줄 알았는데 손해를 봤다. <아는 여자>의 경우도 내가 이제껏 했던 영화들 중에 모 포털 사이트 평점이 가장 좋은 영화였는데, 예상보다  안 됐다.

두 작품 모두 당신 작품 중에 최고로 꼽는 것들인데 이런!(웃음)

나이가 들었다는 거지.(웃음) <나의 결혼 원정기>가 재미있었다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그게 20대 초반 친구들에게 어필을 못했거든. <아는 여자>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꽤 많았는데, 그분들은 주로 마니아적인 취향을 지녔다. 기자분도 영화를 너무 마니아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닐지.(웃음)

부끄럽지만 <아는 여자>는 DVD까지 구입했다.(웃음) 서플 보면서 느낀 건데, 현장에서 의외로 차분하더라. 의외의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펄펄 나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왜 그리 침잠했나.

현장에서도 가만있을 때 가만있고, 까불 때 까불고 하는 스타일이다. 다만, 이제는 현장에 후배들이 많아졌으니까 가만히 있을 때보다는 까불 때가 더 많다. 내가 과묵하게 있으면, 사람들이 이제 내 눈치를 본다. ‘어? 왜 저러시지?’ ‘기분 안 좋은 거 있나?’ 하면서 조심스러워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현장에서 오버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이번 영화 찍을 때도 감독님도 후배도 촬영 기사님도 후배였으니까.

선배님 대우 좀 받았겠다.(웃음)

그런데 또 그런 경우는 없더라고.(웃음) 워낙에 영화 작업이라는 게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누구를 대우해주게 되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기자분도 그렇지 않나. 내가 뭘 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위에서 압력을 주면 소신껏 글을 쓰지 못하지 않나. 배우도 마찬가지다. 일을 할 때만큼은 나이나 그런 걸 다 떠나서 최대한 동등한 분위기다.

점점 선배가 되면서 현장에서 느끼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아무나 선배가 되는 게 아니니까. 후배의 자리보다는 선배의 자리가 더 어려운 법이니까. 개인적으로 선배가 많은 집단이 훨씬 편할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떠한가.

당연히 선배가 많은 집단이 훨씬 편하다. 후배가 많은 곳에 딱 앉아 있으면 얼마나 외로운지 모른다. 부담감도 크고, 어리광 부릴 대상도 없고. 선배가 많은 현장이 훨씬 좋다. 막말을 해도 되고, 실컷 개겨도 ‘그냥 쟤는 저런가 보다’ 하고.(웃음) 감독님도 스태프들도 나보다 선배뻘이면 할 얘기가 배로 많아진다. 이건 이게 아니지 않느냐고 따지듯 물어볼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는 한마디를 못한다. 그랬다가는 ‘지가 또 선배라고 저러는구나’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도 말이다. 그러니까 매사에 조심해야 된다. 선배 자리에 있다는 건, 그래서 훨씬 어려운 거다.

그 고충 뭔지 알 것 같다.(웃음) 어쩌면 배우로서 더 많이 배우고 익힐 나이인데, 워낙 현장 연령층이 어려졌으니까. 그리고 아마도 선배가 되면 그 배움의 속도는 느려지다 못해 어느 순간 뚝 하고 멈춰버릴 것이다.

맞다. 배우는 배우는 게 많을수록 좋은 건데, 그게 어느 순간 멈춰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배가 되는 순간 계속 주기만 해야 하는 건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래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지금이 연기자로서 한창 배울 나이 아닌가. 연기자는 사실 30대 중반부터가 진짜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현장 연령층이 어려지다 보니까 배운 것도 없는데 배운 거를 써먹어야 하더라. 알려줘야 하고, 가르쳐줘야 하고. 지금 내 나이엔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나보다 뛰어나고, 경험 많은 선배들한테 배워서 40대, 50대, 60때까지 무언가 완성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내가 후배들한테 얘기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풍토상 어딜 가서 연기를 배운다는 게 가능하지도 않고. 외국 배우들은 그렇게들 많이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 가서 배우겠나. 학원 가서 배우겠나?

그건 좀 오버인 것 같고.(웃음) 원래 배움이라는 건 사람들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거 아닌가. 학원은 좀….

결국에는 나보다 더 어리고 경험은 없지만 뭔가 번뜩이는 후배들한테 배워야 한다. 결론은 그거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선배인 나를 항상 지켜보고 평가하고 있을 테니까 그들이야말로 나보다 나의 장단점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배우는 것이 방법이 되겠지 뭐.

선후배를 통틀어 가장 자주 듣는 얘기가 뭔가.

생각보다 털털하다? 좀 까탈스러울 것 같은데 생각보다 배우 같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맞다. 당신은 언뜻 배우 같지 않다.(웃음) 그런데 배우가 아니라면 굉장한 미남 측에 들었을 것 같은데.

당연하지. 배우가 아니면 완전 킹카지. 나름대로 남자답고. 완소? 완소인 거지.

 “영화를 보고 뭘 느끼나. 그냥 재미있으면 되는 거지. 슬퍼도 재미있는 거고
 웃겨도 재미있는 거고 잔잔하지만 뭔가 와 닿아도 재미있는 거다. 
  뭘 느끼길 강요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그저 재미를 느끼면 된다.”
 

어려서부터 잘생겼다는 말, 자주 듣고 자랐나 보다.

아니 또 그건 아니고.(웃음) 배우 해서 많이 나아진 거지. 학교 다닐 때는 그저 평범했다. 남자들은 다 머리 빡빡 깎고 다니기 때문에 아무리 꽃미남이라 한들 잘생겼다는 얘기 듣기 쉽지 않다. 그리고 또 사실은 남자들끼리 “야 쟤 잘생기지 않았냐?” 하면 그건 좀 동성애 취향인 거고.(웃음) 잘생겼다는 의미를 남자애들은 거꾸로 얘기한다. 계집애처럼 생겼다 뭐 이런 식으로. 오히려 남성적으로 생긴 스타일을 멋있다고 그러지.

문득 배우 이전의 삶이 궁금하다. 듣고 보니 남자답게는 생겼는데.(웃음)

평범했었고, 지금보다 훨씬 더 소극적이었다. 나를 안 건드리면 아무 문제없는데 일단 건드리면 안 돼.(웃음) 고등학교 때는 방송반 하면서 그냥 거기에서만 놀았다. 친한 애들도 딱 몇 명이었고. 워낙에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키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는데 항상 뒤에 앉으려고 하고. 앞에 앉으면 자꾸 뭘 시키니까.(웃음)

이게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를 두고 고민하지 않고, ‘아 이건가 보다!’ 하고 한길만 파게 된 건 언제였나.

대학교 때다. 그때는 연기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했고, 연극이야말로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PD나 기자가 되고 싶어서 신문방송학과에 가려고 했었는데, 성적이 안 됐고.(웃음) 선배들이 PD 되려면 연극영화과를 가야 된다고 해서 막연히 서울예전에 들어가게 됐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연기는 진짜 끼 있는 애들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선배 권유로 청소년 연극제에 나갔다가 전국에서 한 사람만 받는 상도 받고 하면서 ‘어라? 연기는 아무나 해도 되는 거구나’ 했던 거지.

처음부터 연기자를 꿈꿔왔던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너무 쉽게 재능을 발견한 게 아닐까.

그러게 말이다. 사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연기 안 하고 스태프 일 하고 그랬다. 그런데 저쪽 장독대에서 애들이 연기 연습을 하고 있는 걸 봤을 때 딱 다시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연기를 마냥 우습게만 보다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또 안 하니까 짝사랑 같은 게 생긴 거다.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안 하니까 너무 그립고, 보고 싶고 그랬던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기에 대단한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연극 작업 자체가 너무나 창조적인 일이라는 데 끌렸다. 연기, 세트, 조명, 디자인 그런 걸 다 우리가 해야 했으니까. 이것보다 더 창조적인 일은 지구상에 없다고 생각했던 거지. 아마 그때부터 연극에 미쳤던 것 같다.

무엇이 그렇게 당신을 미치게 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나 같은 사람은 안 해봤기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그 감정을 모르거든.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거? 어느 순간에 조금 알 것 같다가도, 또 어느 순간엔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래서 연기는 쉽게 질리지 않는 것 같다. 아, 이제 좀 뭔지 알 것 같다 그러면 또 재미없으니까 다른 거 해봐야겠다 할 텐데, 이건 아무리 고민을 하고 아무리 토론을 하고, 아무리 책을 읽고 무언가를 해도 모르겠는 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문득 성장해 있는 자신을 보게 되지 않을까.

그게 또 본인은 모르는 거다. 남들이 판단해주는 거지. 내 생각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똑같이 어색해!(웃음) 다만 그때에 비해 눈과 귀가 좋아졌다는 건 안다. 연기가 스포츠랑 다른 게, 둘 다 연륜이 쌓이면 훨씬 더 좋은 눈과 귀가 생긴다는 거겠지만, 스포츠는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즈음이 되면 자기가 직접 할 수 없게 된다. 반면 연기는 체력으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해력이 좋아지고 머리가 좋아지면 점점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

연기가 하기 싫었던 적은 없다. 다만, 속상한 적은 있었지. 뜻대로 안 되니까. 영화라는 건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누가 시켜줘야 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제안이 안 들어오고 오디션 보면 떨어지고 했을 때는 정말 속상했지 뭐. 그런데 속상한 마음뿐이었지, 연기 자체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아직까지 좋아하는 것 같고.

<김씨 표류기>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언뜻 <캐스트 어웨이>가 생각나더라.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다. 코미디적인 부분도 그렇고, 뭔가 과장되지 않으면서 얘기가 잘 풀려 나간다고 해야 하나. 억지스럽지 않고, 정말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럴 법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코미디를 보는 눈은 참 까다로운 편이다. 유치한 건 딱 질색이다. 남들은 그럭저럭 재미있다고 하는 영화도 나는 절대 용납 못한다. 차라리 버라이어티 쇼가 재미있지. <패밀리가 떴다>나 <무한도전>이나 <해피선데이-1박 2일>이 훨씬 재미있다. 나는 연극 할 때 코미디를 많이 해서  그런지 무조건 리얼리티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의다. 그걸 벗어나는 작품은 일단 재미가 없다. <김씨 표류기>는 아기자기하면서 섬세했고, 작은 이야기인데 잘 읽혔고 재미있었다. 문제는 내가 과연 이걸 해낼 수 있느냐였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건 거의 연극으로 따지면 모노드라마 수준이었다.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인가 보다.(웃음)

아우 그런 거 딱 질색이다. 같이 있되,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지 혼자서 외로움을 즐긴다거나 하는 편은 절대 아니다. 어렸을 때 외동이라 계속 외롭게 자랐거든. 항상 친구네 집 앞에 가서 “누구야~ 놀자~” 했던 기억뿐이다.(웃음) 혼자 있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현장에서 감독님과 거의 매번 밥을 같이 먹으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다. 감독도 또 외로운 위치에 있는 사람 아닌가.

김씨 캐릭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희망이다. 사회에서는 소통을 못하는 인간이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소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활력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의외의 곳에서 희망을 찾게 된다는 거다. 그러면서 소극적인 삶이 적극적인 삶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의 90%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캐릭터라, 이런 류의 영화를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다. 여러 번 올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좋은 영화에 대한 기준이 있는가. 혹은 어떤 배우가 감동을 줄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는가.

영화는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관객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최고로 꼽는다.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가 아닐까. 아무리 어디서 호평을 받은 영화라도 내가 영화를 보고 공부를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건 나랑은 맞지 않는 영화인 거다. 좋은 배우의 기준 역시 마찬가지다. 관객으로서 배우로서 나에게 공감을 주는 연기를 하는 배우를 좋은 배우로 꼽는다. 따로 정해놓은 거창한 기준 같은 건 없다.

이 영화를 어떻게 감상해주길 바라나. 뭔가 느끼고 돌아가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에이~ 영화를 보고 뭘 느끼나. 그냥 재미있으면 되는 거지. 슬퍼도 재미있는 거고 웃겨도 재미있는 거고 잔잔하지만 뭔가 와 닿아도 재미있는 거다. 뭘 느끼길 강요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사람이 살아온 게 다르고, 영화 보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다른 거니까. 그저 재미를 느끼면 된다. 단지 나는 이 영화가 재미없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래도 혹시 느끼는 사람이 있으려나?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라면 뭔가를 느낄지도 모르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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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여름 <가짜사나이>는 유튜브를 뒤흔들었다. 교관들은 진심을 다해 소리쳤고, 백만 유튜버 교육생들은 유튜버가 아닌 진짜 자신을 드러냈다. 진정성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응원의 댓글이 이어졌다. 제목 빼고 모든 게 진실인 <가짜사나이>. 교관으로 출연한 로건, 에이전트 H, 야전삽 짱재를 만났다. 그들 역시 진심뿐인 사나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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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중년의 리즈 시절

    문득 추억 속 배우들이 떠올랐다. 지금이야 연기 잘하는 명배우들이지만, 그들도 외모 전성기 시절이 있었다. 그들의 ‘리즈’ 시절과 스타일이 궁금해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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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내내 쓰고

    산과 바다, 수영장은 물론이고 불타는 도시에서도 매일같이 쓸 수 있는 명랑한 모자 13.

  • FEATURE

    Z세대 아티스트 100 Part3

    젠지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든지 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를 뜻하는 젠지들의 가치관이다. 사진가이자 모델이자, 소설가이자, 래퍼가 되는 것은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아닐뿐더러, 경계를 나누고, 장르화하며, 정체성을 규정짓는 행위 또한 의미가 없다. 전 세계 젠지들 중 주목할 아티스트 100명을 모았다. 그들의 움직임이 지금이자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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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로 여름 나기

    더위에는 과일만 한 게 없다. 지금 먹으면 맛도 영양도 두 배다. 서울 과일 디저트 상점 4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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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덥고 끈적한 여름의 열기 속에서도 종일 곁에 두고 싶은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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