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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의 매력

혹자는 배우 이성민을 ‘미중년’이라 부르지만 그런 낯간지러운 표현을 쓰고 싶진 않다. 그는 고집스럽게 연기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부인과 딸 얘기에 미소 짓는 매력적인 ‘아재’다.

UpdatedOn February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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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올의 니트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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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가 난다’는 문장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에게서 당연히 사람 냄새가 나지, 대체 무슨 소린가. 그런데 카메라로 담은 이성민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말의 의미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사려 깊은 미소, 부드럽지만 단호한 눈빛이 어우러져 왠지 모를 따뜻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성민은 시종일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함께 촬영하면서 정이 든 로봇이 너무 귀엽다는 말을 할 때도, 이제 중3이 된 딸과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아내 이야기를 할 때도 발그레해진 얼굴로 웃었다. 화면을 장악하는 카리스마의 배우 이성민 대신 소박하고 따뜻한 아저씨 이성민이 보였다.

2014년에 <아레나>에서 멋있는 화보 찍었던 거 기억나나?
기억난다. (정)재영이랑 ‘후까시’ 잡고 찍었더랬지. 하하.

해가 바뀌어서, 한국 나이로 49세가 됐다.
2014년 마지막 날에는 집사람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 “와, 우리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그런데 2015년 말에도 별다를 것 없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지, 했는데 늦잠을 잤고 그냥 2016년이 됐다. 내가 나이를 한 살 먹은 것보다 우리 딸애가 한 살 더 먹는 것이 신기했다. 벌써 16세다.

개봉을 앞둔 영화 <로봇, 소리>는 딸을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촬영하면서 딸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은데.
영화 속 아버지 해관은 딸과 소통을 잘 못했던 사람이다. 그것이 더욱 미안해서 잃어버린 딸을 찾는 일에 몰두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다르다. 요즘 아빠들이 어떤지 궁금해서 딸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물어봤다. 그랬더니 나 같은 아빠가 거의 없더라고. 하하. 다른 집 딸들은 주로 아빠가 혼내고 야단친다는데 나는 안 그런다.

좋은 아빠인가 보다.
그렇게 되려고 항상 노력한다. 원래는 연기하면서 한 번도 딸이나 가족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극 자체에만 몰입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연기하면서 우리 딸이 떠오르더라. 아마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였으면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자연스레 딸을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조니 뎁은 아이들에게 보여줄 영화를 찍고 싶어서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했다고 한다. 이 작품도 아버지로서 딸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라 택한 건가?
그렇지는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로봇이 등장한다는 거였다. 이색적인 소재 아닌가? 이호재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를 받았다. 시놉시스 안에는 이미지 컷이 몇 개 있었는데 그건 꼭 나중에 봐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라고. 궁금한 마음을 꾹 참고 시키는 대로 마지막에 이미지를 꺼내 봤다. 로봇과 남자가 나란히 앉아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독특한 패턴의 수트와 니트는 모두 카루소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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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시기마다 배우로서 동력을 받게 되는 작품을 만난다. 2012년에는 <골든타임>으로 여성 팬을 대거 모았고, 2014년에는 <미생>으로 오과장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대로라면 올해 뭔가 터져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부담과 걱정이 많이 된다. <로봇, 소리>로 2016년 상반기를 열게 됐는데, 실질적인 인간 주인공은 나 하나이지 않나. 그래서 책임질 것이 많다. 촬영 현장에서도 그랬지만 촬영이 끝나고도 마찬가지다. 로봇이랑 홍보를 분담할 수도 없고. 하하.

‘원톱’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가?
이런 기분 처음 느껴본다. 내가 주연으로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이)희준이나 하늬, 그리고 내 부인 역할로 나오는 전혜진까지 선뜻 출연하겠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다. 이게 그렇게 고마운 일인지 미처 몰랐다. 나를 믿고 합류해준 거니까. 그래서 영화 홍보 활동도 시키는 대로 진짜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 봤다. 임시완의 부탁으로 선뜻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더라.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꾸준히 교류하는 편인가?
처음 본 사람과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첫인상과 다르게 한번 마음을 열면 수다 떠는 걸 정말 좋아한다. 격의 없이 대화하다 보면 금방 친해진다. 드라마나 영화 현장에서는 책임감을 가지고 수다를 떠는 편이다. 빨리 다 같이 친해져야 연기를 하면서 서로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으니까.

영화 기술이 발전해 배우도 이제는 로봇과 연기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로봇의 대사가 많지 않고, 단문이다 보니 현장에서 연출부가 대사를 쳐준다고 하더라. 가급적이면 연기할 줄 아는 배우와 대사를 주고받고 싶었다. 그래서 극 중에서 딸의 친구 역할을 맡은 배우가 현장에서 로봇 역할을 해줬다. 실제로 참 많은 도움이 됐다. 웃긴 얘기 같지만, 빨간 불이 들어오는 로봇의 눈을 보면서 감정이 울컥한 순간이 있었다. 암만 기술이 발전해도 연기는 사람과 사람 간의 호흡 같다.


사실 영화 줄거리만 봐도 마음 약한 사람은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10년이 넘게 딸을 찾는 아버지라니. 우리가 그간 익히 보아온 한국형 신파 아닌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긴 한데, 관객을 울리려면 끝까지 밀어붙여야 하는데 갑자기 플래시백으로 넘어가고 그런다. 사실 정통 드라마에선 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이호재 감독의 전작이 <작전>인데, 그 영화도 편집 스타일이 되게 한국적인 느낌은 아닌 걸로 봐서, 이게 그 양반 특징 같다. 내가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라, 그래서 오히려 더 신선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그동안 맡았던 역할은 대부분 고집이 엄청 세고, 신념이 강하다 못해 부러질 것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실제 이성민도 고집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맞다. 나 역시 현실과 타협하지 못해서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다. 차이가 있다면 극 중 캐릭터처럼 정의롭거나 용기가 있는 편은 아니라는 것. 굽히거나 포기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것은 비슷하다.

무엇을 할 때 특히 고집이 세지나?
아무래도 천직으로 생각하는 연기, 내 일에 관해서겠지. 배우로서 서른 중반이 되면 뭔가 승부를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젊은 청년 역할부터 좀 더 나이 든 역할까지 연기의 폭이 넓어지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갈고닦아서 배우로서 온전히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 나이 즈음 지방에서 연극을 하다 상경했다. ‘승부’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지질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었다.

지금은 어떤 것에 책임을 느끼나?
매번 작품이 끝나면 반성할 부분이 생겨난다. 결국 연기를 계속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쉬우니까. 그래서 다음엔 좀 더 신중하게 공부하는 마음으로 접근하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비교적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연기했음에도 대중의 인상에 강렬하게 남은 것은 아까 언급한 작품 속 캐릭터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나.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관해서는 기회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내 성격과 맞아떨어지는 편안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이번 영화 역시 지극히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 남자의 일상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굳이 캐릭터를 구분하자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휴머니즘’적인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비슷한 시기에 <검사외전>도 개봉하지 않나?
최대한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됐다. 사실 예상을 못했다. 원래 <검사외전>은 추석쯤 개봉이 얘기됐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물오른 강동원과 황정민 때문에 이때다 싶어서 서둘러 개봉하는 것 같다. 하하.

오늘 계속 로봇 얘기만 해서, 그 팀엔 좀 미안하겠다.
미안한 마음도 있긴 한데, 솔직히 그쪽은 나 같은 사람 열 명이 달려들어도 역부족 아닌가? 하하. 연달아 찍은 작품도 아닌데, 이렇게 개봉 시기가 겹치면 난감하다. 예전에 (조)진웅이도 <군도>랑 <명량>이 같이 개봉해서 엄청 곤란해했다. 그게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는데 마침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한 희준이도 같은 상황에 처했다. 임시완이랑 <오빠 생각>을 찍었더라고. 그 친구도 나란히 개봉을 하게 되어서 난감해하는 눈치다.

하고 싶은데 못해본 역할도 있나?
일단 나이 어린 역할은 절대적으로 못한다. 하하. 액션 영화에 대한 로망은 늘 있다. 특히 전쟁 영화를 아직 못해봤다. 도전해보고 싶은데, 걱정도 되고 자신도 없다. 나는 또 나이가 있으니까 대대장 역할 이하로는 캐스팅이 안 들어오겠지. 직접 전투를 뛰진 못하고 참모 안에서 지시만 할 것 같다. 하하. 사실 액션도 이제는 겁난다. 반응이 반 박자씩 늦어진다.

브래드 피트도 나이 되게 많지만 <퓨리>에서 전쟁터를 날아다니던데?
에이, 그 양반은 노력 많이 하잖아. 나도 올해는 건강을 좀 챙겨야겠다. 안 그래도 이번 주에 미뤘던 건강검진을 할 생각이다. 이제 그래야 할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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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이상엽

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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