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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서 건진 턱선

얼굴 크기라면 어디 가서도 밀리지 않던 에디터가 변신을 시도했다. 에스테틱에 가는 게 어찌 진정한 남자의 모습이냐고? 아니다. 고민이 있다면 그것에 맞서 해결하는 게 맞다. 그게 진정한 남자인 것이다. <br><br>[2006년 12월호]

UpdatedOn November 19, 2006

Photography 우정훈 cooperation 더 디오비(THE DOB, 02-516-6590) Editor 성범수

심각하진 않았지만 고민 좀 됐던 게 사실이다. ‘모여라 꿈동산’이라고 놀리던 친구들을 응징해야 했던 것 말이다. 머리 좀 큰 게 주홍글씨의 낙인도 아니고 잊을 만하면 놀리는지, 참다 보면 그놈의 ‘욱’ 하는 성질 때문에 일을 내곤 했다. 주먹을 쓰기도 했지만, 그들을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육중한 머리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내 머리가 크다고 ‘깐죽’거리던 아이들은 하나 둘씩 헤딩을 맞고 코피를 흘려야 했다. 극약처방으로 잠잠해지긴 했지만 화해하고 나면 그 큰 머리로 사람을 죽이려 했다며 또 놀려댔다. 그다음에는 손 쓸 방도가 없었다. 또 화를 내면 ‘왕따’의 숙명을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큰 머리 수그리고 혼자 학교를 다니고 싶진 않았다. 머리 큰 아이는 놀림당하는 것보다 외로운 게 더 싫었다. 참고 참아 병날 뻔했던 고민은 나이가 들면서 익숙해졌다. 가냘픈 몸을 가졌던 그때와는 달리 살이 오른 지금, 머리가 크다는 놀림은 거의 사라졌다. 난 살이 쪄도 얼굴보다는 몸에 몰리는 타입이다. 결국 정상적인 체형과 흡사하게 변했다. 물론 뚱뚱하다는 새로운 놀림거리가 생기긴 했지만.
얼굴 작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몸집이 있으니 얼굴을 조금만 더 작게 만들어도 얼굴 작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다. 그렇다고 뼛소리를 들으며 턱을 깎아낼 순 없었다. 부작용도 걱정이었지만, 사실 인공적인 방법은 거부하고 싶다. 더구나 대한민국 남자 아닌가? 고루한 나머지 부모님이 주신 기골이 장대한 얼굴 뼈를 갉아 부스럼 만들고 싶진 않았다. 도대체 어떤 방법이 좋을까? 머리 큰 동족들을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리고 가상한 노력 덕분에 난 더 디오비(The DOB)라는,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구원자를 찾아냈다. 내 귓전에는 신세계 교향곡이 조용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더 디오비의 임건희 원장은 내 얼굴을 야생마 같은 상태라고 했다. 사실, 남자들은 로션도 잘 챙겨 바르지 않는다. 피부는 물론, 얼굴이 커 보이는 이유도 역시 태생적 결함으로 둘러댄다. 오랜 흡연과 과도한 음주가 얼굴을 상하게 하고, 림프가 노폐물로 꽉 차 있어 얼굴이 부어 있다고는, 나노미터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내 얼굴은 황야에서 뛰어놀던 치기 어린 야생마처럼 제멋대로였던 거다.
내가 경험한 얼굴 축소 시술은 적어도 10회 이상 관리를 받아야 원하는 성과가 나온다고 한다. 물론 즉각적인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몸의 특성상 사이즈를 줄인다고 해도 36시간 정도 지나면 브래지어의 형상기억 소재처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결국 10회의 관리를 이틀마다 한 번씩 받아줘야 “니 얼굴 참 작구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얼굴이 큰 이유는 골격의 문제가 첫 번째고, 순수하게 살이 쪘기 때문이고, 턱 밑에 있는 림프가 막혀 부어 있기 때문이다.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임건희 원장의 노하우는 내 얼굴의 문제점을 단박에 짚어냈다. 통뼈인 나는 골격 자체가 크고, 생각보다 얼굴에 살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난 절망에 빠졌다. 뼈를 깎는 것밖에는 크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절망하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아줬다. 막혀 있는 림프만 풀어줘도 얼굴 사이즈는 줄어들 거라며 흐릿해진 희망을 곧추세워줬다. 그리고 수술 없이도 ‘실버’라는 시술을 통해 뼈를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믿기 어려운 이 모든 말들은 신의 계시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내려앉았다.
난 잠시 병원에 다닌 적이 있다. 얼굴 크기를 줄이기 위해 주사를 맞고 경락 마사지를 조금 받아봤다. 경락 마사지는 얼굴에 퍼런 멍을 만들었다(어쩐지 가격이 싸다 했다. 경락 마사지 노하우가 없으면 종종 이런 실수를 한다고 한다). 어머니는 걱정했다. 누가 또 머리 크다고 놀려 얼굴로 받아버렸느냐고 묻기까지 하셨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사이즈는 줄어든 것 같지 않은데 얼굴 때문에 싸웠느냐는 오해를 받았으니. 처참했다. 주사도 맞아보려 했지만 겁부터 났다. 효과가 있을 순 있다. 주사를 맞으면 지방을 녹이고 그 지방이 소변을 타고 흘러나간다는 거다.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술이고 이미 여러 번 임상실험을 했을 거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얼굴에 주사를 맞을 수 있단 말인가? 엉덩이에 주사 맞는 것도 싫어하는 나다. 선풍기 아줌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고, 그냥 ‘얼큰짱’으로 살기로 맘먹고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이미 아픈 경험이 있는 내겐 섬세한 관리와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시술이 필요했다. 더 디오비에서 임건희 원장의 상담을 받고 침대에 올랐다. 시술이 바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피부를 어루만져주는 관리부터 찬찬히 진행됐다. 얼굴 사이즈만 줄이면 뭐하나, 눈꽃처럼 올라온 각질과 색소 침착이 얼굴에 산재해 있는데 말이다. 더 디오비의 관리는 나와 몇 해를 함께한 속궁합 맞는 여인네처럼 그렇게 정확하게 진행됐다. 기본적인 피부 관리가 끝나고 ‘에너지’라는, 막힌 림프를 풀어주는 시술을 받게 됐다.
기구를 이용해 뭉친 림프를 30분이 넘게 풀어줬다. 한량없이 편안해 졸음이 왔다. 자고 일어나니 오른쪽 부분의 시술이 끝나 있었다. 거울을 보니, 내 턱의 오른쪽과 왼쪽 사이즈가 현격히 달랐다. 그냥 손거울이었고, 영화 <프레스티지>에서 볼 수 있는 마술 거울 같은 게 아니었다. 작은 희망이 완벽하게 현실화됐다.
내 얼굴은 좀 복잡하다. T존은 막강한 오일 저장고이며 볼은 민감하고 턱 주변은 여드름이 나 있다. 햇빛에 약해 주근깨도 많다. 이런 상태라는 건 상담을 받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민감한 피부를 위해 팩도 해주고 피지도 조절해주는 관리를 받았다. 더구나 이곳의 장점은 발 마사지와 팔 마사지를 해준다는 거다. 남자들은 팩을 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잠이 들면 상관없지만, 팩이 마르기를 마냥 기다리다 보면 지루해 혼이 빠질 지경이다. 눈까지 덮고 있으니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없다. 하지만 더 디오비는 그 지겨운 순간에 발 마사지와 팔 마사지를 선사한다. 난 놀랐다. 여자들의 악력이 이 정도일 줄은 말이다. ‘에너지’ 시술을 2회 정도 받으니 턱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건 나보다 내 주변 사람들이 얼굴 살이 빠졌다며, 요즘 힘드냐고 물어본 편견 없는 사실을 통해 깨닫게 된 거다.
림프를 어느 정도 풀어주고 세 번째부터는 뼈를 축소해주는 ‘실버’ 시술을 받았다. 최근의 성형 수술은 과감하게 진행하지 않는다. 밀리미터 단위로 성형하면 고쳤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예뻐졌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한계점까지만 시술한다. ‘실버’를 받는다고 얼굴 크기가 확연하게 줄어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밀리미터만큼의 변화로 인생은 확연히 바뀔 수 있다는 거다. ‘실버’는 말 그대로 은을 이용한 시술이다. 은사로 만든 장갑을 끼고, 경락과 유사한 마사지를 한다. 은사로 만든 장갑과 연결된 전기 자극이 눈을 감고 있어도 번개처럼 번쩍거린다. 이 방법은 손으로 마사지를 하는 것보다 통증이 적으면서도 효과는 6배나 있는 작용이다. 그리고 마사지를 받다 보면 여자친구의 손가락을 빨았을 때 맛본 은반지의 맛이 입 안에 맴돈다. 그리고 통증도 수반된다. 똑같은 곳을 여러 번 반복해서 마사지하니 어찌 안 아프겠는가. 고통의 절정은 얼굴을 눌러주는 마지막 단계다. 이건 좀 절절한 고통의 탄식이 나올 만하다. 얼굴을 작게 만들겠다는 일념이 날 붙잡았고, 울지 않고 참았다. 과장해서 그렇지, 눈물이 흘러나올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놀림당하던 과거의 기억, 그리고 정신적으로 받았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성형은 확실하게 얼굴을 줄이는 방법이긴 하다. 약간 불편함도 참으면 된다. 요즘에는 부작용 건수도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맘 달랠 길 없다. 어떤 식의 투자든 불안 요소가 있으면 피해가는 게 좋다. 과감한 투자로 한몫 잡아보려 했던 친구는 위험 요소가 많았던 친디아 펀드에 투자했다가 실패했다. 한탕으로 무언가를 얻겠다는 요행은 저 멀리 던져버렸다.
얼굴 축소도 마찬가지다. 크기도 줄이고, 피부도 좋아지고, 몸에 쌓인 피로도 풀고 모든 걸 한번에 얻을 수 있는데, 그리고 어떤 부작용도 없는데(물론 실버 시술을 받고 난 후 약간 통증이 남고 붓기도 한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는다) 고민할 거 뭐 있나. 5회의 시술을 받고 마감 때문에 더 디오비에 가는 걸 포기했다.
드러난 턱 선은 아직 살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야식에 있다. 늦은 밤 집에 가면 찰떡 아이스를 두 개씩 먹는다. 그게 문제다. 하지만 이번 달 내 얼굴 일러스트는 좀 바꿔야 할 것 같다. 턱 선을 고쳐달라. 저건 내 진정한 모습이 아니니까. 어떤 경우라도 독자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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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우정훈
cooperation 더 디오비(THE DOB, 02-516-6590)
Editor 성범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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