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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량은 톰 포드 효과를 본 `구찌`의 기사회생에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랜 전통을 지닌 브랜드의 역사를 바꾸어놓을 것인가. <아레나>가 3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물었다. “당신의 브랜드와 잘 지내고 있습니까?” <br><br>[2009년 3월호]

UpdatedOn February 24, 2009

Editor 정소영 reporter 김지홍(런던 통신원) cooperation 던힐, 캘빈 클라인 컬렉션, 푸마

던힐 가의 뉴 페이스, 킴 존스

달에 킴 존스는 파리의 남성복 쇼에서 정통 영국 브랜드, 던힐을 위해 자신의 첫 번째 풀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2009년 가장 기대를 모은 데뷔였던 이 행사는 명품 브랜드를 남성복의 주류로 재정립시키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패션계의 프리미어리그에 세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알프레드 던힐이 1893년에 아버지의 마구 제조상을 물려받은 뒤 ‘던힐 모터리티즈’로 이름을 바꾸고 ‘차를 제외한 차를 위한 모든 것’을 판매하는 회사를 창립한 것을 생각하면 ‘던힐’은 참으로 멀리까지 왔다.
존스 역시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로부터 멀리 왔다. 2003년 34세의 나이로 패션계에 뛰어든 그는 런던 패션 위크에서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이후 다채로운 색감의 스포츠 웨어와 스트리트 스타일에 대한 흡인력은 탑맨에서부터 좀 더 와일드한 브랜드인 카세트 플라야의 디자이너 캐리 먼데인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쳤다. 자신의 레이블을 추구하는 동시에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도 활약하고 있는 그는 멀버리, 엄브로, 휴고 보스 등과 함께 작업해왔다. 그가 장수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선 대단히 긍정적이다. <아레나>가 캣워크 데뷔를 갓 마친 킴 존스를 만나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남성복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다가 어떻게 기존의 대형 패션 하우스로 옮겨가게 되었는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난 도전을 즐긴다. 던힐은 전 세계에 수백 개의 매장이 있기 때문에 책임이 엄청나다. 벌써 일한 지 8개월 됐는데, 이제야 그 거대한 조직에 좀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배우고,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각 부서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들은 35년 동안 이곳에서 일해왔기에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정말 제대로 알고 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고 세계적 디자이너로 진정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제대로 해내야만 한다. 그러려면 확실하게 배워야겠지. 나는 돈보다는 배움에 더 관심이 있다. 런던은 남성복의 도시로 남성복을 디자인하기에 좋은 곳이고 던힐은 버버리, 폴 스미스와 더불어 영국의 3대 남성복 브랜드로 꼽힌다.

새로운 던힐에서는 이전의 킴 존스 모습을 어느 정도 보게 될까?
혁신은 계속될 것이다. 애초에 킴 존스의 럭셔리하면서 실용적인 옷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을 때, (스포츠 웨어, 스트리트 웨어, 심지어는 명품 브랜드에서도) 아무도 그런 작업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많은 패션들이 그와 비슷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으니, 지금은 그에 대응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사라지거나.

당신의 진취적인 미학이 던힐과 같은 전통적인 브랜드와 어떤 식으로 부합하는가?
나는 사실 대단히 새로운 재단과 기묘하고 럭셔리한 옷들을 만드는 나만의 레이블로 시작했다. 궁극적으로 여행에 기반을 둔 던힐의 럭셔리한 제품들은 혁신과 좋은 짝을 이룬다. 그리고 알프레드 던힐 그 자신도 모더니스트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러니 통하는 게 있지 않은가.

던힐이 어떤 점에서 모더니스트였는가?
그는 발명가였다. 당신이 냉장고를 열면 불이 들어오는 건 다 알프레드 던힐 덕분이다. 아내의 오페라 가방을 위해 만든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던힐은 또 새로운 기술에 사로잡혔는데, 그 당시에 새로운 기술이라는 건 바로 자동차나 여행 소품 그리고 포켓 사이즈의 다양한 기능을 가진 시계와 같은 물건들을 의미했다.

당신은 라프 시몬스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웨어나 스트리트 웨어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남성성의 개념을 하이 패션과 연결시킨다. 현재 좋은 남성복의 요건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라프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을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그의 옷들이 불안에 휩싸인 젊은이에 좀 더 가까운 반면, 내 쪽은 좀 더 발랄하고 낙천적이다. 패션계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정말 많지만 그것 모두 진짜 세계에서 사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레이블이 강요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옷들을 본다. 예를 들어, YSL의 옷들은 정말 바람직하다. 진짜로 시크하니까. 요즈음엔 절제된 것들을 좋아한다. ‘와’ 하는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라 ‘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 말이다. 또 나는 코트를 정말 좋아하고, 어떤 모양이나 형태이든 간에 아우터를 선호한다. 아우터는 사서 매일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니까, 확실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남자들이 꼭 어떤 브랜드에 충성을 바치진 않지만, 좋은 바지나 재킷 브랜드에는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미우미우와 헬무트 랭의 어떤 재킷들은 소재나 색깔에 관계 없이 꼭 구입한다.

여행에 대해 얘기해보자. 나는 스페인의 기차에서 미래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는 열차를 1등칸과 2등칸 대신 관광객칸과 비즈니스칸으로 나누어놓았다. 직업상 여행을 한다는 것이 지위를 가르는 가장 현대적인 척도가 아니겠는가?
내게 여행이란 공항에서 곧바로 미팅으로 달려가야만 하는 스포츠와 같다. 세관에 시달리면서 가방에 든 물건들을 모두 꺼내야만 하는 상황은 기능적인 스포츠 웨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든다. 난 그걸 엄브로 시절부터 깨달았다. 심지어 3주간 여행을 해야 할 때도 나는 짐을 싸는 데 20분 이상 걸리지 않는다(그래야만 한다. 난 올해에만 벌써 80번 정도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헬스클럽 회원이나 사이클로 통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 편안하면서 실용적인 옷이 필요하다.

던힐은 세계적인 브랜드이고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다. 현재 가장 흥미를 느끼는 도시는 어디인가?
쇼핑에서 홍콩을 능가할 도시는 없다. 퍼시픽 플레이스 몰에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이 있다(명품들이 정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홍콩은 세계 최고의 백화점, 레인 크로포드의 고향이기도 하다. 레인 크로포드의 캠페인은 독일 사진작가 듀오인 이네즈와 비누가 찍는데 최근 작품에선 뉴욕에 기반을 둔 펑크 아티스트 테렌스 고와 사진작가 빅토리아 탕의 모습이 등장한다. 나는 정말 힘이 있어서 그 모두를 좋아한다. 그리고 또 다른 도시로는 사람들이 이제 비로소 자유를 즐기기 시작한 모스크바가 있다. 그 에너지, 건설 중인 거대한 마천루들, 그런 것들이 참 흥미롭다.

테렌스 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는 당신과 친구 사이 아닌가?
지금은 그다지 클럽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예전엔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그룹들과 잘 어울렸다. 테렌스라든가 카니예 웨스트 같은 이들은 뉴욕이나 혹은 베이징에서 한 주 정도 마주치곤 한다.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이미지를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미술가와 그들의 작품들에 관해서 대화를 나눈다. 나는 테렌스의 ‘초콜릿 마이클 잭슨’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던힐 같은 기성 레이블에 카니예 웨스트와 어울리는 디자이너가 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롭다. 그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창조적인 면에서 당신들 둘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가?
우린 그저 얘기를 나누고, 서로 책들을 보여주곤 한다. 그는 정말 놀라운 것들을 좋아한다. 마르니의 여성복에 눈을 뜨게 만든 것도 카니예였다.

캘빈 클라인의 뉴 아메리칸, 이탈로 주첼리

2003년 캘빈 클라인이 물러났을 때, 작은 마을 출신의 소년은 이 브랜드의 남성복 분야를 맡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현재 자신의 책임하에서 여덟 번째 시즌을 맞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이탈로 주첼리는 단정한 미국 클래식을 새로운 유럽풍 미학으로 길들이면서 이 브랜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왔다. 그가 <아레나>에게 미국에 대해서, 건축에 대해서, 그리고 음악도로 보낸 젊은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금까지의 당신 경력은 크고 작은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의 초기 컬렉션은 매우 절제되고 전통적이었는데, 지난 시즌에는 네온 수트를 런웨이에 올렸다. 어떻게 된 일인가?
2004년에 처음 남성복을 인수받았을 때, 캘빈이 그동안 해왔던 작업과 앞으로 할 작업 사이에 부드러운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감이 커지면서 새로운 것들을 탐험해도 좋다고 결정했다. 2007년 S/S 컬렉션을 디자인하던 때가 전환점이었다. 난 ‘좋아, 이제 이런 걸 할 준비가 됐어’라고 생각했고 다른 시도들을 했다. 그리고 엄청난 반응이 있었다.

캘빈 클라인을 만나면 당신의 컬렉션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지?
전혀. 우리는 일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성장했고, 여성복 컬렉션에서 1년, 남성복 컬렉션에서 2년간 그와 함께 작업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비전에 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고, 그런 감각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내겐 자연스런 일이다. 그가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탤리언인 당신은 미국적인 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상상만 할 수 있는 아웃사이더가 아닌가.
캘빈 클라인은 분명 미국을 대표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나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 미국적 스타일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 같다. 글자 그대로 미국적인 것이 아니라 내 관점 안에 녹아들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 풍부해지는 것 말이다.

어떻게 패션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나?
13세 때 영어를 배우러 런던에 와서 여름을 보내는 동안 영국 음악과 클럽들에 눈을 떴다. 부모님은 내가 조용히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난 매일 밤 파티를 벌였다. 주로 ‘터부’나 ‘팰리스’ 등의 런던 클럽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와 같은 잡지들을 집으로 가져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영감도 얻어 사진을 찍으며 놀곤 했다.

어떤 식으로 옷을 입고 다녔나?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오랫동안 머리를 흰색으로 물들였고, 장 폴 고티에의 치마를 입고 다니기도 했다. 정통 고스족 시기도 거쳤다.

컬렉션에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들에 대해 항상 살짝 힌트만 주지, 끝까지 밀고 나가거나 극단으로 간 경우는 절대 없다.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 적은 없는가?
없다. 그런 경우를 젊은 디자이너들에게서 보게 되는데,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예를 들어 가레스 푸는 많은 관심을 끌지만 작업을 할 때 전혀 타협하지 않는다. 최근에 그의 옷들을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보았는데,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날카로운 비전을 잃지 않았다. 그가 한계를 두지 않고 작업하고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캘빈 클라인은 그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브랜드를 세운 사람이고 내게는 그의 방식이 맞는다. 지금 나의 도전은 남자들이 실제로 입고 싶어지는 옷들을 만드는 동시에 패션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난 런웨이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남성복에 디테일을 추가할 경우에도 실제 목적이 있을 때에만 유효한 거다.

그러니까 당신은 정말 미니멀리스트적 접근법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재의 미니멀리즘은 90년대에 질 샌더가 발전시켰던 미니멀리즘과는 다르다. 현재 내가 하는 작업은 좀 더 층이 있고 단순한 외곽선이 훨씬 더 복잡한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장식 요소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기능성에 더 충실한다. 예를 들어 지난번 컬렉션에서 나는 구멍이 뚫려 있는 굉장히 장식적인 재킷을 선보였는데, 사실 그 구멍들은 재킷을 입었을 때 기능적 역할을 한다.

당신은 패션을 공부하기 전에 건축 공부를 했다. 그것이 패션의 기능성에 대한 관심에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FIT의 이탈리아 지원에 다니고 싶었는데, 플로렌스에 문을 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입학 수속을 하고 있을 때 계획이 연기되었다. 그래서 건축 공부를 시작했고, 1년 반 뒤에 패션 스쿨이 마침내 문을 열었을 때 전학을 갔다. 지금도 건축에 관심이 있고 지속적으로 그곳에서 영감을 얻는다. 탐구심을 자극하는 공간들을 사랑한다,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구경꾼으로서.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제품 디자인을 하게 될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지금 디자이너가 아니고 한 가지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면 가수가 되고 싶다!

푸마의 디자인 창조자, 후세인 살라얀

년 이맘때쯤 푸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명된 후세인 살라얀은 푸마의 앞날에 대해 호기심 어린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지난 15년간 그는 어떤 디자이너들도 접근하지 않은,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아이디얼한 디자인을 보여준 천재였으니까. 그간의 성과물들을 모아 디자인 뮤지엄에서 전시회가 시작된 날 <아레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푸마와 후세인 살라얀 자신에 대해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작품들은 패션뿐 아니라 건축물, 단편영화 등 너무도 다양하지 않은가. 그렇게 방대한 것들을 한번에 담아낸 이번 전시회는 어떤 의미인가?
지난 15년 동안 해온 나의 대표적인 작업들을 정리하는 의미가 크다. 사람들을 건축의 세계 혹은 디자인의 세계로 초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했다. 특별히 이번 개인전을 그동안 작업을 진행해온 런던에서 할 수 있어서 너무 흥분된다. 나의 작품들은 런던에서 비롯되었다. 런던에는 독특한 앵글로색슨들이 있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 진보적이면서도 관용적이다. 또한 유럽의 다른 도시보다 오랜 이주 역사가 있기에 이방인에게 관대한 편이다. 터키 출신인 나에게는 작품을 진행하는 데 아주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런던이 아니면 당신의 작업은 지금과 같지 않을 수도 있었는가?
그럴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런던의 날씨는 나를 집 안에 처박혀 작업에 충실하게 했다. 날씨가 안 좋으면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뭔가 만들어볼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할 일이 많았다면 나는 많은 시간을 다른 데 투자했을 거다.

푸마와 후세인 살랴얀의 만남을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푸마는 지극히 대중적인 스포츠 브랜드이고 당신은 늘 창조적인 데다 테크놀로지와 패션의 결합을 보여주는 디자이너 아닌가?
스포츠 웨어 라이프스타일 회사들은 패션 레이블보다 테크놀로지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한다. 그 점이 나에게는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만약 나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충돌하는 브랜드였다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방시 같은 회사 말이다.

당신의 실험적인 옷들이 푸마라는 브랜드와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대중적인 의상으로 전환점을 어디에서 찾으려 하는가?
푸마는 스포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많이 다르지만, 스타일과 디자인 감각은 교차한다고 생각한다. 푸마 소비자들에게 나만의 테크놀로지와 아이디어의 조합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브랜드답게 디자인뿐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도 집중할 것이다.

당신은 푸마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는가. 또 당신이 만들어내려는 푸마는 어떤 모습인가?
푸마는 신발 회사로 알려져 있다. 옷이 아니라 신발을 통해서 아이덴티티를 정립해왔지만 나는 이제 옷에 집중해 정체성을 굳건히 다질 생각이다. 스포츠 웨어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여주고, 그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만들어갈 푸마는 이런 기능성이 패션 트렌드 역할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운동 후 바로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가도 푸마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멋져 보이는 것이다.

푸마와의 협력이 자신의 브랜드인 ‘후세인 살라얀’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먼저 나의 브랜드와 푸마는 매우 다르다. 푸마는 스포츠 브랜드이고, 소비자, 시장 등 많은 면에서 나와는 다르다. 예전에 나의 브랜드와 비슷한 다른 브랜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때 난 비슷한 스타일의 브랜드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차별성을 두려 노력했다. 푸마 역시 나의 철학과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방향을 확실히 할 것이다.

당신은 센세이셔널한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예산 때문에 실현하지 못한 것도 많다. 푸마와의 작업이 당신의 야망을 실현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믈론! 그들의 재정 능력과 노하우로 내 브랜드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들을 생산해내는 데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당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대부분 테크놀로지와 건축에서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면, 난 고전적인 테마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내 디자인에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디자인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주변 환경과 미래.

남성복에 대한 관심사는 어느 정도인가?
솔직히 개인적으로 쇼핑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남성복에 대한 관심은 많다. 특히 마르지엘라의 심플함을 좋아한다. 브랜드는 중요치 않다. 유니클로의 캐시미어 점퍼나 갭의 색감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아레나 2009년 3월호 기사>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정소영
reporter 김지홍
cooperation 던힐, 캘빈 클라인 컬렉션, 푸마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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