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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願成就 인터뷰 - 싸구려 커피 들고 돌진 장기하

에디터들이 평소 꼭 만나보고 싶었던 유쾌한 사람들만 한자리에 모아보자는, 이른바 `소원성취 인터뷰`를 기획하게 된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다. 그저 당신들을 만나보고 싶었다.`리먼 브라더스의 몰락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 위기가 불과 두세 달 만에 한국 사회를 컴컴한 나락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운운하는 암울한 언명 따위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던 거다.궁금하다, 당신들의 머릿속이. 그 톡톡 튀는 발랄함과 생동감이.<br><br>[2009년 1월호]

UpdatedOn December 30, 2008

Photography 김린용 Editor 박지호 Styling 이현하 hair&make-up 이소연

이청년, 빅뱅에 버금가는 아이돌도 아니고 G-드래곤 못지않은 패션 감각을 갖춘 것도 아니건만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독특한 매력과 스타일을 갖췄다. 애초에 시작은 EBS 교육방송의 공개 콘서트 현장이었으니,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기상천외한 이름을 달고 등장한 것도 모자라 송창식인지, 배철수인지, 그도 아니라면 ‘꺾기’ 좋아하는 초야의 트로트 가수인지 모를 독특한 음색을 마구 뽑아 올리기 시작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느닷없는 노래 가사에 하도 어이가 없어 관객들이 가만히 ‘멍’ 때리고 있을 무렵,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흐느적흐느적 아래위로 팔을 흔드는 ‘오징어 외계인’ 안무까지 덧붙이니 그야말로 객석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헌데 세상사 참 알 수 없는 것이 그 다음날, ‘디씨갤’을 중심으로 각종 패러디 사진이 인터넷을 뒤덮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네이버 가수 검색 순위에서 ‘빅뱅’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본인은 극구 1시간 정도 빅뱅을 잠시 역전하기도 했었다고 주장하나 별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참, 미리 밝혀두고 시작하자면 ‘충만한 백수 정신’과 ‘막무가내 자취생 라이프’가 뒤섞인 독특한 노래 가사와는 달리 장기하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얼마 전에 졸업한 번듯한 청년이다. 말하자면 한국 최고의 엘리트군에 속한다는 뜻. 그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이 그의 머릿속이 궁금했던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백수와 회사원
흐흐. 누군 놀고 싶어서 노나요? 그래도 꽉 짜여진 조직 생활은 절대로 하기 싫기 때문에 둘 중 전 백수를 선택하렵니다. 항상 느끼는 불만인데 한국 사회는 너무 딱딱한 것 같아요. 보니까 유럽에서는 담배 한 개비나 점심값을 구걸하는 거지마저도 당당하더구먼. 어차피 자기 인생 스스로 책임지는 건데 뭘 그리 눈치 보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지하철 타고 가다 보면 겉으로는 번듯한 사람들이 다들 굳은 표정으로 주위 눈치만 슬슬 살피고 있어요. 문제예요, 문제.

대학과 군대
당연히 대학이 최고죠. 학교를 너무 사랑해서 9년이나 다녔을 정도니까. 반면 군대는 너무나 가기 싫었던 탓에 6학년이 되어서야(혹시 세상 물정 모르는 ‘고딩’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서울대라고 6년제인 거 절대 아니다!) 마지못해 입대 신청서를 냈죠. 제 노래에 ‘자취생 삘’이 담겨 있다고요? 흐흐. 대학을 다닐 때 친구들의 자취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었거든요. 제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몰래 집어 들고 이 닦다가 잇몸에 피 여러 번 맺혔었고, 밤새 모기 때려잡다 벌겋게 피가 번진 거울 앞에 섰다가 흠칫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죠.

홍대 앞과 압구정동
그냥 압구정동에는 별로 나가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난 술값이 싼 동네를 좋아하니까. 3백65일 중 3백 일은 술만 먹고 살기 때문에 술값이 비싸면 곤란하거든요. 고등학생 때는 강남역, 대학생 때는 신림동, 그리고 요즘은 홍대 앞에서 죽치고 있죠. 어, 홍대 클럽 ‘죽돌이’하다가 어찌어찌 라인을 타서 가수로 데뷔하게 된 거라고 오해하면 곤란해요. 이래봬도 나름 대학 밴드에서 활동할 당시 ‘눈뜨고 코베인’ 리더에게 턱하니 드러머로 발탁된 몸인걸요. 물론, 친구들이 하나같이 보컬 아니면, 기타만 맡으려 했던 탓에 드럼을 칠 줄 아는 멤버가 나밖에 없었다는 ‘야설’도 있긴 하지만.

바퀴벌레와 담배꽁초
둘 중 더 좋아하는 걸 꼭 선택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바퀴벌레. 친구 자취방에서 밤새 술을 마시다가 콜라 캔에 빠져 있던 담배꽁초를 통째로 삼킨 적이 있는데 그 기분 정말 더럽더라고요.

구어체와 표준어
방송에서 아나운서가 “자장면 좋아하시죠?” “요즘 좋은 건수가 있으시다고요?”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 짜증이 나요. ‘짜’장면이나 ‘껀’수라고 발언하면 지구가 뒤집어지나요? 꼭 그렇게 각을 잡고 살 필요가 있을까요? 조금은 삐딱한 삶의 태도도 용인되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굳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어’” “나를 받아‘주오’” “‘워찍’하까?”라고 노래하는 이유랍니다.

잘생긴 얼굴과 못생긴 얼굴
우하핫. 우리 밴드 구성원들을 오직 얼굴만 보고 뽑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눈치 채셨군요.

배철수 창법과 소몰이 창법
어렸을 적, 소년 장기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철수 아저씨의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이 아저씨는 참 말하는 것마저 음악처럼 하는구나.” 어느덧 청년이 된 장기하는 술에 취해 열변을 토하노라면 침과 함께 랩이 튀어나오는 걸 깨닫고는 노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죠. 역시 가수는 얼굴이 중요하기에 ‘한 얼굴’하는 홍대 앞 음악인들을 수소문하다가 운 좋게 만난 3인과 합심,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하게 되었답니다. 우연히 찾은 ‘딴스홀’에서 똑같은 복장을 갖춰 입은 채 무표정하게 춤에만 몰두하는 두 여인네를 만나 역시 가수라면 댄스를 빼놓을 수 없지 하는 깨달음을 얻고 지금의 진용을 갖추게 된 거죠. 흐흐. 사실 거창할 것도 없이 소몰이 창법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우리 밴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답니다. 음, 별것도 아닌 대목에서 이맛살에 핏줄이 툭툭 설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은 절대 사절이에요.

인디 밴드와 제6의 동방신기 멤버
‘동방신기’의 새로운 멤버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죠! 혹시 진짜 러브콜이 온 건가요? 너무 기쁩니다. 당연히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테니까. 앗, 절대 그렇지 않다고요? 흠, 그럼 ‘소꼬리’ 대신 지금의 ‘닭 머리’에 만족해야겠네.

전업 음악인과 투잡족
흐흐. 벌써 눈치 채셨겠지만 전 돈에 꽤 집착한답니다. 왜냐고요? 집에서 독립해야 하니까! 바로 얼마 전까지 짧은 영어 실력으로 악전고투하며 번역 ‘알바’를 한 이유는 오로지 돈 때문이었답니다. 사실 지금도 고민이에요. 되지도 않는 밴드 활동에 몰두하다가 간신히 잡은 ‘알바계’에서 완전히 퇴출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말이죠. 흐흐. 그래도 괜찮아요. 요즘 ‘살짝’ 뜬 통에 최소한 내년 초까지 마실 술값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나저나 디지털 음원 사용료가 빨리 정산되어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음악 사이트에서 내 노래 다운로드가 활발하다는 희소식에 잔뜩 외상을 끌어다가 마셨는데 월 단위가 아닌 분기별로 수수료가 정산된다네요. 이런, 젠장.

프라다와 유니클로
뭐 보시다시피 어디 제 몸에 명품이 가당키나 한가요. 앗, 누가 선물해준다면 당연히 ‘땡큐’죠. 명품이 괜히 명품이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유니클로’ 브랜드가 참 좋아요. 일단 상표가 밖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아서 좋고요, 값이 싼데도 마감이나 바느질이 깔끔해서 맘에 들어요.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브랜드가 없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깔끔 떠는 일본 사람들이 저절로 연상되어 살짝 얄밉기도 하더라고요.

서울대생과 천재
아, 당연히 서울대생이라고 천재는 아니랍니다. 아니, 고등학생 때 1, 2등 한 게 뭐 그리 대단한가요? 교정을 거닐고 있노라면 저처럼 헐렁하고 빈틈 많은 사람이 열에 두셋 되는 걸 보면 극소수 천재들을 제외하고 사람은 다 똑같은가 봐요.

행복과 교훈
인생에 있어 행복이 중요할까요, 교훈이 더 중요할까요? 지독히도 끔찍했던 군대 생활을 되짚어보면 비록 행복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교훈은 얻은 시기였어요. 갇혀 있었기 때문에 천명관의 <고래>나 영어로 된 <토킹 헤즈 자서전>과 같은 놀라운 책들을 접해볼 수 있었으니까. 한 집단 내에서 철저하게 낮은 위치에서 생활한 것도 놀라운 체험이었고요. 그렇다면 ‘깜방’에서도 배울 교훈은 있을 테니 언제든지 들어가도 좋다는 이야기? 흐흐. 모르겠네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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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김린용
Editor 박지호
Styling 이현하
hair&make-up 이소연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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