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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을 심사하다

`도대체 당신이 왜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는가?`, `인기는 있지만 자격이 있기는 한 건가?` 이런 의문에 대해 <아레나>가 답하려 한다. 세계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흔들림 없는 눈으로 살폈다. <br><br>[2006년 10월호]

UpdatedOn September 20, 2006

Words 이상용(영화평론가)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성범수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이 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평소 심사를 받는 입장인 감독이나 배우가 ‘심사위원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칸 영화제를 비롯한 유수한 영화제들은 심사위원의 자리에 감독을 앉힌다. 심사위원장 된 감독은 그만한 자리에 오를 만큼 ‘대가’로 인정받고 있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자리도 한두 번이지 감독보다 심사위원 자격으로 영화제에 초청받는 일이 많다 보면 현역에서 물러났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다. 여기에는 휴업 중인 감독도 포함된다. 지난해 에디터가 국내의 한 영화제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가했을 때 심사위원단 중에는 휴업 중인 감독이 여럿 있었다. 물론 부업삼아 나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 본업으로 돌아가 조만간 신작을 내놓을 감독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인 인물들 중에는 개점휴업 상태를 꽤나 오랫동안 유지할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감독이나 배우에게 심사위원 자리는 반드시 명예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이따금 젊은 배우들이 심사위원 자리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기사 중 하나가 제16회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의 비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은 고(故) 이은주의 경우였다. 그녀는 심사숙고 끝에 영화제의 요청을 거절했다.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가 칸, 베니스, 베를린만큼 공신력을 갖고 있는 영화제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중에선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판타스틱 영화제라고 할 수 있다. 이은주는 “심사위원 초청은 무척 영광스럽지만 아직은 작품을 평가할 만큼의 나이가 아니다”라는 뜻을 밝혔다. “영화배우로 좀 더 경험과 연륜을 쌓은 다음에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은주 씨의 말은, 심사위원의 자격은 경험과 연륜이 그만큼 쌓여야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녀가 심사위원으로 추대된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무수한 영화제들은 여배우라는 후광에 눈길을 주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심사위원 자격으로 초대되는 많은 여배우에게는 경험과 연륜보다는 유명세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페스티벌 성격을 지닌 영화제에서 유명세는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심사위원 자격을 활용하면서까지 유명세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국제영화제에 따라서는 종종 ‘페스티벌 레이디’를 임명한다. 영화제에서 페스티벌 레이디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극장이다. 영화가 상영되기 직전에 흘러나오는 ‘트레일러 필름’에는 페스티벌 레이디의 홍보용 인사말이 들어 있다. 홍보 도우미 역할을 자청하는 페스티벌 레이디들은 얼굴 마담 자격으로 영화제 개막식을 밝혀주고, 상영 전 극장의 분위기를 돋운다. 그러나 페스티벌 레이디라는 거창한 이름이 부담스러운 유수한 국제영화제들은 심사위원 자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2006년 5월에 열린 제59회 칸 영화제에서 장쯔이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레드 카펫을 밟았다. 그녀는 세계적인 여배우로 해외의 언론을 통해 주목받아 왔다. 2005년도판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어 세계적인 여배우임을 증명했고, 이듬해 배우가 아닌 심사위원 자격으로 영화제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해 터뜨리는 카메라 플래시는 공정한 심사를 당부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행사장에 참석한 장쯔이는 한 명의 여배우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것이 요즘의 영화제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칸 영화제조차 세간의 이목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장쯔이를 향해 그녀의 지성미보다는 ‘S라인’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기 마련이다. 올해의 칸 영화제에는 또 한 명의 S라인이 있었다. 장쯔이가 동양의 젊은 배우를 대변한다면, 모니카 벨루치는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모델이자 나이가 좀 든 세대를 대변한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에 출연한 장쯔이와는 달리 모니카 벨루치의 출연작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예술과 작가영화의 전통을 대변하는 칸과 어울리는 배우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모니카 벨루치의 미모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서라면 다양한 의견 피력이 가능할 것이다. 1991년에 <라 리파>를 시작으로 <라빠르망>(1996년)이나 <도베르만>(1997년)처럼 독특한 영화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프랑스의 걸출한 여배우들처럼 연기력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모니카 벨루치는 줄리에트 비노시의 차가운 지성미를 갖춘 것도 아니었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온 카트린느 드 뇌브, 안나 카리나, 잔 모로의 매력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프랑스를 대변하는 여배우는 이사벨 위페르다. 그녀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8명의 여인들>을 비롯하여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피아니스트>에 출연했다. 비슷한 시기에 모니카 벨루치가 출연한 영화는 <매트릭스 2 : 리로디드> (2003년), <매트릭스 3 : 레볼루션> (2003년), <그림형제>(2004년)였다. 그것은 칸에서 상영되기에는 거리가 너무 먼 영화들이다. 오늘날 심사위원 선정 과정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칸이 선정하는 영화와는 거리감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우삼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를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선정한 것도 의외였다. <영웅본색>을 만들던 전성기에 오우삼 영화는 절대 칸 영화제에서 소개된 적이 없다. 차라리 칸 영화제가 다양한 인물을 수용하고 싶은 의도라면 토니 모리슨이나 폴 오스터 같은 작가들을 심사위원석에 앉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폴 오스터는 영화감독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미국 문학을 대표한다. 유럽의 작가들도 종종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이 된다. 문학이나 미술이 바라보는 영화를 선정하는 것도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여배우를 심사위원으로 추대하는 것은 여러 영화제들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특히 1980년대부터 중국 영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온 베를린 영화제는 공리 같은 중국의 대표적인 배우는 물론, 최근에는 이영애를 심사위원 자리에 앉혔다. 장이모우로 대변되는 제5세대 중국영화와 함께 공리라는 배우의 자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녀의 심사위원 추대는 그다지 놀랄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시아 영화를 적극적으로 상영해 온 베를린에서 이영애를 임명했을 때에는 다소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베를린 영화제에 상영된 바 있지만 그녀는 주연이 아니었고, <봄날은 간다>의 경우에는 국제영화제에서 크게 주목받은 작품이 아니었다. 그녀의 매력을 발산한 <친절한 금자씨>야말로 전 세계 영화계가 인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놀랍도록 빠른 베를린의 선택은 오늘날 심사위원이 센세이션의 화두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 말은 이영애라는 배우의 자격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의 역량을 갖추었는가를 반문하는 것이다.

시상황이 그렇다 보니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아카데미 역시 회원으로 다코타 패닝을 받아들임으로써 도마에 올랐다. 다코타 패닝의 연기력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말이다. 더불어 키이라 나이틀리, 호아킨 피닉스, 레이첼 와이즈 등 젊은 배우들에게 대거 문을 열어주면서 보수적인 분위기를 바꾸어가고 있음을 만방에 알렸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수용함으로써 다른 문화권에도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사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겸손한 거절로 일단락지어졌지만, 심사위원 자격을 통해 문화 개방을 시도하려는 아카데미의 모습을 뚜렷하게 목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베니스 영화제 역시 유럽 중심의 태도에서 벗어나 할리우드의 대표적 감독인 카메룬 크로나 박찬욱 감독을 심사위원으로 추대하면서 미국과 아시아에 개방적인 태도를 지속적으로 취하고 있다. 물론 이들과 함께 심사위원 자리에 오른 이들 중에는 유럽을 대표하는 에로틱 감독 비기스 루나와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 카트린느 드 뇌브가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심사위원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영화제 분위기를 쇄신하고, 다양한 문화권의 영화를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전히 절반가량을 유럽의 인사로 채움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심사위원을 임명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선택과 균형’의 문제였다.
그것은 수상 위주의 행사로 진행되는 국내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영화계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계파를 적절히 안배하면서 심사위원을 배치할 때는 파열음이 적기 마련이다. 과거 대종상 영화제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것은 편향된 입장을 대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심사라는 행위 자체가 ‘순수한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냉소적으로 보면,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온전한 평가라기보다는 적절한 합의에 의해 도출된 의견에 가까울 때가 많다. 간혹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있으면 이긴다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해진 기간에 심사를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잡음을 줄이기 위한 조율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순간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덧 국내에서도 다양한 국제영화제와 대종상 같은 화려한 시상식으로 이루어진 국내영화제들이 일 년 내내 개최되고 있다. 영화제에 따라서는 수상 결과보다는 무대를 달구는 가수들의 춤과 노래가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 역시 심사위원의 도발적인 선정처럼 본말이 전도된 경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장 아이로니컬한 영화제가 미장센 단편영화제다. 단편영화를 만드는 젊은 감독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행사는 매년 만석을 이루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런데 정작 대상을 수상한 감독은 보도를 통해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이 소위 스타급 감독이기 때문이다. 이현승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유수 감독들이 심사를 하다 보니 언론의 관심은 새롭게 탄생한 젊은 감독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을 향한다. 명예심사위원 자격으로 유명 배우들을 끌어들이는 것 역시 영화제 홍보에 단단히 한 몫을 하지만 정작 영화가 가져야 할 영광을 빼앗는 꼴이다.

‘심사위원을 심사한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 글이 다다른 진짜 고민은 여기에 있다. 심사위원을 뽑아서 몇 편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심사위원 자격을 부여하고 인정해주는 것은 공적인 의미에서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개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처럼 투표로 뽑을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영화제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관객과 언론의 목소리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기울어진 영화제를 바로 세우고, 공정한 심사를 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결코 영화제만의 일이 아니라 영화제를 즐기고 바라보는 관객과 언론의 눈에 의해 이루어지는 셈이다. ‘영화제의 권위’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의 심사 결과가 영화제를 지나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좋은 영화라는 공론을 얻어내며 쌓여갈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심사위원 자격을 단박에 평가하는 것, 한 개인을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과거 공정하지 못한 수상 결과로 말미암아 평판을 잃어버린 대종상 영화제는 아직까지도 대중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한 영화제에 대한 세상의 준엄한 평가이자 심사위원에 대한 평가인 셈이다. 과거의 심사위원들은 자신이 대종상 심사위원임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심사위원을 평가하는 냉정한 눈은 누가 뭐래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과 세상의 눈’이다. 영화제의 도덕성과 예술을 향한 치열한 평가 역시 관객과 긴장감을 이루면서 때로는 고집을 부리고(이런 예술적인 영화를 한번 발견해주십시오!), 때로는 스스로 반성하면서(관객들의 평판에 대해서 냉정히 생각해보겠습니다!) 나아가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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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이상용(영화평론가)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성범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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