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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四사色색日일記기

지금껏 우리는 매달 `일기(日記)`를 써왔다. 이번에는 방향을 조금 바꿔보았다. 내밀한 마음 속 이야기만 털어놓기에는 무언가 미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하는 과정을 기록해보고 싶었던 거다. 사색일기의 `무한도전 특별판`이라고나 할까.<br><br>[2008년 9월호]

UpdatedOn August 22, 2008

에디터 박지호의 四色日記
노무현을 찾아서

왜 하필 그 순간 노무현이 떠올랐을까.
나는 ‘노빠’는커녕 임기 내내 시큰둥한 방관자에 가까웠는데 말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 시위가 시작된 지 어느덧 수개월이 지났다. 도통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정부의 꽉 막힌 태도 탓에 일부 시위대는 점점 더 과격하게 변해갔다. 그 모습에 질린 일부 시민들이 속속 광장을 떠나갔다. 어느덧 세를 불리기 시작한 보수단체 집회가 촛불 시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주와도 같은 말을 내뱉곤 했다. “아직도 노무현 치하인 줄 아는 빨갱이들 같으니라고.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니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고집과 편견이 셌던 대통령, 노무현 임기 내내 시큰둥한 방관자에 가까웠던 나는 졸지에 ‘노빠’로 몰리고 말았다. 순간 저 멀리서 차디찬 물대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 퍼지는 아비규환의 순간, 왠지 모르게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단단히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금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은 만나주기는커녕 아예 귀를 꽉 막고 있으니…. 그래, 한때 초등학생부터 해병전우회 회원까지 모든 사람들이 노가리 씹듯 질겅질겅 씹어댔던 노무현을 만나보는 거다. 어찌 되었건 전직 대통령으로서 한국 사회가 이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는 데 일말의 책임이 있을 테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정식 인터뷰를 요청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당당하게 약속을 잡고 만나 이것저것 따지듯이 제대로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라인을 거쳐 인터뷰를 요청해야 하는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퇴임과 동시에 언론과 접촉을 일체 끊은 것은 물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식 활동은 완전히 접겠다는 선언을 한 상태였다. 한마디로 공식 핫라인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내다 올해부터 백수가 된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노무현? 느닷없이 왜? 흐흐. 명색이 전직 대통령인데 아무나 만나줄 것 같아? 더군다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는 시기라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을걸? 더군다나 우리 영감은 친노 라인이 아니어서 그쪽과는 별로 친하지 않은데 이걸 어쩐다. 연락처를 하나 줄게. 그냥 내가 소개해줬다고 하고 물어보면 돼. 호칭은 ‘선생님’이라고 하면 되고.”

선생님? 순간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신분도 불분명하고, 이름도 모르는 인물에게 마치 비밀 접선이라도 하듯 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해야 하다니. “하하. 영국 매거진이라고요? 그쪽에서 흥미 있어 할 것 같긴 한데 지금은 어렵겠네요. ‘때’가 오기 전까지는 아예 언론 접촉을 금하기로 한 것 같아요. 올 연말쯤 다시 한 번 전화 주시죠.”

그냥 내 능력껏 섭외를 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청와대 전 대변인이었다.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하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지금까지 그 어떤 인터뷰나 촬영도 절대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정치적인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봉하마을 바깥으로 ‘마실’을 나가긴 하시니까 원하신다면 먼발치에서 사진은 찍으실 수 있을 겁니다. 참, 전 더 이상 대통령님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더 궁금하신 게 있으면 봉하마을에 직접 문의하세요.”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높낮이가 없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몇 마디 말을 더 꺼내보기도 전에 금세 전화는 끊기고 말았다. 이런, 어쩔 수 없이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곧바로 흘러나오는 억센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 “네, 네. 진영읍사무소입니다.”

노무현의 생가로 가는 길을 묻는 방문객을 안내하기 위해 읍사무소의 전화번호를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머리를 싸맨 채 여기저기 수소문을 거듭한 끝에 봉하마을에도 공식 비서관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락처를 알아내는 데만 또 사흘, 매일같이 통화를 시도한 끝에 닷새가 더 지나서야 간신히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인터뷰나 촬영도 절대 허용한 적이….”

이런, 혹시 똑같은 사람이 전화를 받은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톤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무작정 카메라를 둘러메고 봉하마을로 내려가보는 수밖에.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가는 길이었다. 내비게이션은 중부고속도로에서 문경새재를 넘어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탄 뒤 경남 창원을 거쳐 김해시 진영읍으로 들어가는 복잡한 노선을 제시하고 있었다. 내려가는 내내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공식 인터뷰 라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한 탓에 어느덧 마감은 목전에 닥쳐오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연 때마침 집 밖으로 나올지, 안 나올지도 불투명했다. 무엇보다 까마득한 ‘두메산골’에 위치해 있다는 노무현 생가나 제대로 찾을 수 있으려나.

헉. 순간 입에서는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고속도로에서 김해 시내로 진입하자마자 유명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한글, 영어, 중국어 등 3개 국어로 적힌 대문짝만 한 도로 표지판이 곳곳에 돌출해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만 쭉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허허벌판 한구석에 50여 대가 넘는 차를 동시에 세울 수 있는 대규모 주차장이 들어앉아 있는 기묘한 풍경이 시선에 잡혔다. 관광객인지, 노사모 회원인지 모를 1백여 명의 사람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생가 쪽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놀리고 있었다. 입구 근처에는 ‘관광안내소’가 우뚝 서 있었고, 그 아래쪽에는 굵은 글씨가 박힌 안내문이 떡하니 붙어 있었다. ‘워낙 많은 국민들이 방문하시는 탓에 대통령님이 집 밖으로 인사하러 나오는 시간을 따로 정하였습니다. 하루 3번,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방문해주세요.’

무언가 삐딱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완벽한 관광지로 조성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나 보자고 이 먼 거리를 달려온 건 아니었다. 매서운 눈빛으로 방문자들을 한껏 주시하고 있는 보디가드들도, 민간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끝자락에 삐뚤삐뚤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채 어색한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곳곳에 섞여 있는 전경들도 눈에 거슬렸다. 한 10분쯤 기다리다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군중들 앞에 등장했다. 그는 “하루 종일 집 안에 갇혀 지내느라 좀이 쑤신다”며 특유의 억양을 앞세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역시 한국 정계가 낳은 최고의 달변가였다. 처음에는 웅성거리며 기념사진 찍기에 바빴던 방문객(아니, 관광객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들은 금세 숨을 죽인 채 전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에 얽힌 비화를 거쳐 복지 예산을 끊임없이 삭감하고 있는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물론, 의료 민영화인지 영리화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고난도의 사회 이슈를 체크한 뒤, 촛불 시위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현란한 화법에 모두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아까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지요? 경찰이 물대포를 앞세워 강제 진압을 하는 통에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이 줄어들었다고요. 사실은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야 합니다.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이 줄었기 때문에 경찰이 물대포를 마음껏 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면 왜 촛불을 드는 사람이 줄었을까요?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구호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정부끼리 맺은 협정은 함부로 깰 수 없습니다. 국제적인 신뢰가 깨지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회를 압박하면 됩니다. 어느 나라에서건 국회에서 제정하는 법은 행정부 정책보다 우위에 서 있습니다. 한나라당을 압박해 새로운 법을 제정하면 정부는 당연히 이를 핑계로 재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절차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은 채 급박한 재협상만을 요구하다 보니 결국 ‘정권 퇴진’까지 외치는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이죠. 당연히 촛불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난 그때까지도 삐딱한 기분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뭐, 정치적 오해를 피하겠다더니 이건 순전히 지지자들 앞에서 행하는 선거 유세에 버금가는구먼. 그때 한 초등학생이 “대통령이 되면 좋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순간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통령을 하면 물론 좋다, 대신 욕을 많이 먹는다. 이게 제 대답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촛불을 통해 법 개정을 압박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을 억지로 끌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입니다.”

40여 분 동안 쉼 없이 쏟아진 말의 홍수 속에서 그 애절한 멘트만이 오롯이 기억에 남았다. 권좌에 있을 때 그렇게도 욕을 많이 먹었던 전 대통령이 (어찌 보면 가장 강력한 정적일) 현 대통령을 역설적으로 옹호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집 주위 20m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는 전두환, 노태우의 경우에 비춰보면 전 대통령의 바로 코앞에서 자분자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 풍경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척도로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아무것도 따져 묻지 못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이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는 데 대한 그 어떤 해답도 얻지 못했다. 그래도 한 달 내내 좌충우돌하며 노무현을 찾아 헤맸던 시간이 전혀 아깝지는 않았다. 가끔은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더라도 단순한 호기심 하나만으로 무모한 도전을 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에디터 성범수의 四色日記
나 ‘몸짱’이 될래요

극한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통해 7kg 가벼워진 몸으로
2주 동안의 처절했던 과정을 시간을 넘나들며 써내려 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처절하고 드라마틱했던 14일을 생동감 있게 알리고 싶었으니까.

‘몸짱 다이어트 프로젝트’ 시작 이후 8일째 되던 날 현기증이 찾아왔다. 한적한 산속에서 인테리어 화보를 마무리 짓고 짐을 들고 산을 내려올 때였다. 꽤 많은 계단을 반쯤 내려왔을 때 눈앞이 흔들렸다. 고가의 가구를 들고 넘어지면 끝장이란 생각에 멈춰 섰다. 삶은 달걀과 함께한 8일 동안의 배고픔이 현기증으로 돌아온 거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건 조금 더 오래 살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 때문은 아니다. 갓난쟁이 아들만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날 수 없다는 명분이 날 이끌었다고 보는 게 맞다. 8일째 되던 날 어지러움증을 느끼고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를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물을 마셨다.

13일째 날 7kg이 빠진 걸 알았다. 아침 수영을 한 후 무게를 쟀던 터라 100% 고정된 몸무게라곤 할 순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2주 동안 목표로 했던 7kg 감량에 성공했다는 건 태어난 후 꾸준히 상승 곡선만을 그리던 내겐 생경한 경험이었다. 문제는 언제나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부터다. 마지막 날 트레이너 정주호와 최종 몸무게를 재기로 하지 않았다면, 칼국수를 먹으러 갔을지도 모른다. 다이어트 기간 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건 국수였다. 프로젝트 5일째 되던 날 춘천에 갈 일이 있었다. 춘천은 막국수가 유명하다. 나와 동행했던 포토그래퍼는 막국수를 먹겠다고 했다. 빨간 양념에 검은 면은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달걀을 두고 온 에디터는 손두부를 먹어야 했다. 그것도 양념장 없이 출소한 사람처럼 묵묵히 두부만 먹었다. 국수가 그리울 법하지 않은가.

7월 28일 저녁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몸짱 다이어트를 위해선 내게 특화된 적절한 운동과 식단이 절실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배우 이병헌의 날 선 몸을 다잡는 데 일조했던 트레이너 정주호에게 도움을 청했다. 운동은 그와 함께 진행하기에 특별한 설명을 요구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지켜야 할 식단에 대해 물었다. 필기가 필요할 거란 생각에 노트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답은 간단명료해 꺼낸 노트를 무안하게 했다. 매일 아침 식사는 현미밥 반 공기, 기름을 짜버린 참치 캔, 생야채 그리고 아몬드 다섯 알과 종합 비타민을 먹는 것. 점심은 삶은 달걀흰자 세 개와 바나나 한 개, 저녁은 삶은 달걀흰자 두 개와 방울토마토 또는 자몽 반 개로 처참했다. 알겠지만 운동을 할 땐 달걀을 소금에 찍어 먹어선 안 된다. 커피는 하루에 아메리카노 한 잔 그리고 주스를 굳이 마시겠다면 100% 주스만 마실 수 있었다. 현미밥이야 원래 먹던 거라 문제없었다. 생 야채는 싫어하지만 오이는 즐기기에 아침 식사는 문제될 게 없었다. 정작 문제는 점심과 저녁이었다. 삶은 달걀은 콜라와 먹지 않으면, 거들떠보지 않던 게 나다. 콜라는 식단에 없기에 먹으면 안 되는 거고, 달걀은 하루에 다섯 개나 먹어야 했다. 그룹 ‘거북이’의 터틀맨이 안타깝게 횡사한 후 부인이 촉촉한 눈으로 내게 말했던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살을 빼야 한다고 말했던 그녀의 떨림이 나 자신을 굳은 결심으로 내몰았다. 결국 난 굳게 마음먹고 살 빼고 몸짱 되기 위해 삶은 달걀을 먹기로 했다. 물론 약간 반칙 같긴 하지만 찜질방에서 판매하는 구운 달걀로 가닥을 잡았다. 아아, 다이어트에 돌입하기 전 몸무게를 쟀다. 부끄럽다. 무려 101.5kg이었으니까. 그래도 기초대사량은 꽤 높은 편으로 2083kcal였다.

처음 며칠이 힘들었다. 누운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머무는 걸 즐겼던 내게 운동은 귀찮았고, 훈련소에서 주는 간식 ‘맛스타’에도 열광했던 내가 간식을 끊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틀째부터 몸무게가 줄어드는 걸 확인하고부턴 음식에 대한 욕구가 차츰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14일째 마지막 날. 전보다 홀쭉해진 배와 턱선이 드러난 얼굴로 정주호 트레이너를 만나러 갔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내 몸무게는 94.5kg이었다. 기초대사량은 종전보다 100kcal 정도 낮아진 1987kcal였다. 정주호 트레이너는 살을 빼면 근육도 함께 빠진다고 했다. 대략 10kg 정도의 지방이 빠지면 근육도 1~2kg 정도 줄어든다는 거다. 게다가 체중 조절을 위해 나처럼 소식을 하게 되면, 몸에선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고 에너지 고갈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초대사량을 줄여나간다고 한다. 따라서 에너지 소모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장기적으로 보면 다이어트에 역효과라는 거다. 요요현상은 줄어든 기초대사량을 인지하지 못하고, 몸무게가 줄었다는 만족감으로 다시 종전처럼 음식을 먹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기초대사량이 전보다 줄어든 상황에서 칼로리 섭취가 전과 동일하게 되면 결과는 뻔하다. 다이어트 이전보다 살이 더 찔 수밖에 없는 거다. 결국 유산소운동과 더불어 기초대사량을 높이는 근육운동이 필수적인 이유겠다.

6일째 되던 날 ‘뱃고래’가 줄어든 것 같았다. 달걀이 싫어 토마토나 바나나 하나만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포만감을 주는 토마토 때문인진 모르겠다. 아마도 극한의 식사 관리로 내 위장이 달라진 것일 게다.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좀체 들지 않았으니까.

트레이너와의 운동은 3일째 되던 날부터 시작했다. 그는 집에서 할 수 있는 근력운동과 피트니스 클럽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모두 알려주었다. 짧은 2주 동안 성과가 있어야 하기에 식단을 지키며 아침·저녁으로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해야 했다. 난 더운 날 아침부터 공원을 달리는 것보단 역시 시원한 수영이 백배는 낳을 것 같아 유산소운동은 수영으로 결정했다. 아침 6시 30분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정주호 트레이너와 함께한 근력운동은 웨이트볼을 이용해 집에서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우습게만 보이던 이 운동은 웨이트볼을 이용한다 뿐이지 국민체조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범은 내게 전율을 줄 순 없었다. 하지만 실제 체험을 해보니 달랐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가 시범을 보인 운동은 대부분 일반적인 운동에 정주호 식으로 강도를 한껏 높인 거였다. 팔굽혀펴기를 할 때도 둥글둥글 웨이트볼을 손바닥 밑에 받치고 한다. 웨이트볼은 지면 위에서 조금씩 움직이기에 팔꿈혀펴기는 더 힘들어진다. 모든 운동이 그랬다. 특별한 도구 없이 자신의 몸만으로도 극한까지 갈 수 있는 운동을 알아낸 건 내게 큰 도움이었다. 그는 과거 전쟁 상황에서도 체력 관리를 할 수 있는 운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쟁 중 야전엔 운동기구 같은 건 없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건들과 자신의 몸만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운동을 찾아야 한다. 그런 그의 경험이 집에서도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비법을 에디터에게 전달한 배경이었다. 기계를 가지고 피트니스 클럽에서 하는 운동도 크게 차이는 없었다. 단순하지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운동들로 채워져 있었다. 직접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2주 동안 엄청난 반칙을 하진 않았지만, 다이어트 기간 중 다섯 알만 먹으라 하던 아몬드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스무 알 정도 먹었고, 가끔 복숭아와 자두도 먹었다.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없던 촬영장에서 지나치게 목이 탄 나머지 먹지 말라는 이온 음료도 먹었다. 가끔 바나나도 한 개가 아닌 두 개를 먹기도 했다. 아아, 우유도 먹고 두부도 먹었다. 단백질 식단에 악영향을 주는 음식들이 아니라는 믿음에 그렇게 했던 거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7kg 감량에 성공했으니, 내 선택이 그리 잘못된 건 아니었던 거 같다.

2주 동안의 프로그램이 끝나고, 트레이너에게 요요현상을 막기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단식을 하고 난 후 일반식으로 돌아가는 과정 중에 진행되는 보식 프로그램에 회의적인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담긴 절충식을 제안했다. 절충식은 일주일을 단위로 세 끼만 일반식을 먹고 나머지는 전과 동일한 식단을 유지하는 거다. 회식 같은 때 좀 먹어줘야 하지 않겠나. 절충식으로 계속 살을 빼고, 근력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가다 보면, 기초대사량은 상승하고 요요가 찾아올 가능성이 낮아지는 거다. 결국 그렇게 고생하면 뭐하겠냐던, 요요현상이 찾아올 거라던 주변 사람들 앞에 15kg 감량한 내 라인을 자랑할 수 있게 되겠지. 그 비싼 한우를 구워 먹던 집들이에서도 달걀을 먹었던 나다. 못할 건 없다. 예정된 2주 다이어트가 끝난 오늘도 달걀과 바나나로 점심·저녁을 해결했다. 나중을 위해 일반식을 먹을 수 있는 세 끼를 뒤로 미뤄두고 있다. 내일쯤 점심에 육수로 만든 칼국수나 먹어볼까 생각 중이다. 매일 밥을 먹던 그때보다 일주일에 세 끼 먹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면 거짓일까.

에디터 이지영의 四色日記
보도 프로그램의 하루를 추적하다

기본적으로 난 언론을 믿는 편이 못 된다.
의심이 많은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하나의 사실이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는가를 이미 체득한 덕분이기도 하다.
‘불신’이라는 심술보를 단 기자가 한 보도 프로그램의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딱 두 가지 마음이 있다. 언론을 추호도 못 믿겠다는 언짢은 심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타당성 여부를 끊임없이 지켜보고자 하는 정반대의 기질이 그것이다. 아마도 전자는 타고난 의심이 불러일으킨 본능일 것이고, 후자는 ‘기자’라는 후천적인 직업에서 기인한 ‘팔이 안으로 굽는’ 심리일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이런 이중적인 성격 덕분에 ‘언론’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늘 흑과 백을 오간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절대 못 믿겠다는, 그러니까 사실의 2차 전달 도구일 뿐인 언론을 대할 땐 무척이나 차갑다. 그것이 사건 사고이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든, 영화나 오락에 대한 평이든 간에 일단 무시하고 보는 것이다. ‘분명 다른 측면이 존재하고 있을 거야. 보이는 게 다가 아닐 거라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적어도 내가 기자이기 때문에, 언론의(혹은 기자 자신의) 양심을 믿으려 드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심이라는 게 있을 것이고, 정당하고자 하는 욕구라는 게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직업인의 신념’을 믿겠다는 자세다. 그럴 때 나는 언론을 무조건 지지한다.

불행히도 큼직한 사건 사고가 많은 요즘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언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이런 시국에 누가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그는(혹은 그가 몸담고 있는 매체는) 죽어난다. 모두 예민한 촉수를 들고서 언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MBC 이 화두에 올랐고, 이는 ‘언론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과연 언론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이는 걸까. 아무 뉴스도, 아무 신문도 믿지 않게 된 이 시점에서 나는 무모한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언론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 대한 도전. 그리고 그 언론을 만들어내고 있는 자들에 대한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KBS <추적 60분>에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우리 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스트레스인 것은, 좋은 일로 제보하고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죠.” 아침 10시. 이제 막 취재를 떠나려는 강성훈 PD가 애끓는 하소연으로 말문을 튼다. “서로 잘못한 게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니까, 계속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 누구의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것 역시 100% 확신할 수는 없는 거죠.” 오늘의 취재원은 모 중소기업체 사장 두 명이다. 중소기업 기술 유출 사례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실제 사례를 파고드는 중이다. “보통 방송은 의도된 상황 안에서 찍는 거니까 ‘연출’이라고 하죠. 그런데 우리는 달라요. 취재라고 하죠. 시사 프로그램은 고구마 줄기처럼 캐내야 될 게 자꾸만 나와요. 수사 기관이 아니고서는 판단하기 힘든 문제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거죠.” 취재 차량은 에어컨 덕분에 여름날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강 PD의 머릿속은 덥다 못해 김이 날 지경으로 보였다. 이렇게 조곤조곤 차분하게 기자를 대하는 PD를 본 적이 없는지라(내가 만나본 PD들은 불행히도 대부분 저승사자 같았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직장에 다니는 누군들 힘든 점이 없겠느냐마는 강 PD의 말은 ‘직업의 고초’치고는 심각했다. 8월 7일 서울의 한낮 기온은 33℃. 취재 차량은 용산의 모 기업 사무실에 도착했다.

“어이쿠 잘 오셨습니다. 제가 특허청에서 나온 답변을 보여드릴게요. 사실과 다릅니다. 완전히 달라요. 다 장난을 치고 있는 겁니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낸 거죠.” <추적 60분>에 직접 제보를 한 유씨는 취재진의 방문을 오랫동안 기다린 눈치다. 취재진이 들어서자마자 찬물 한 컵씩 따라주더니 일장 연설이 이어진다. “저희 제품 맞습니다. 제가 개발한 게 맞고요. 카탈로그 보여드릴게요. 이 카탈로그가 이번 사기 사건의 증거예요.”

유 사장은 강 PD에게 내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기록들(다 합쳐놓으면 전과 두세 권 분량은 된다), 동영상 자료, 녹취 자료, 길고 긴 사연과 사실이라 얘기하는 모든 팩트까지, 유 사장의 말은 쉴 틈이 없이 이어진다.
“말보다는 객관적 근거 자료 제시 여부에 따르죠. 그런데도 억울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입장이 강하기 때문에 진실을 밝힌다는 게 정말 쉽지 않습니다.” 3시간이 넘는 유 사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근처 평양냉면집에 털썩 앉았더니, 어느새 강 PD의 넋두리가 이어진다. 대부분 시사 프로그램에 제보를 하는 사건들은 법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 혹은 진행 중이긴 하나 방송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법 제도적으로 구제가 안 되는 일, 즉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추적 60분>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찾아왔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실제로 변호사들이 진실을 밝히려고 현장을 뛰어다니진 않잖아요. 서류를 보죠. 법조계의 협조를 구하기가 그래서 힘들어요.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왜 언론이 나서느냐는 투거든요.” 카메라가 권력이었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져버렸다. 어쩌면 지금이 정상일 수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사 프로그램의 취재는 힘들다. 취재 절차에 무리수를 두면, 법적으로 바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기 얘기를 안 들어준다는 분들이 제보자의 대부분이에요. 시사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가 거기 있는 거죠.” 순간 강 PD의 모습이 마치 예수처럼 느껴졌다. 과연 시사 프로그램의 PD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자, 이번엔 상대편 나 사장의 말을 들을 차례다. 나 사장을 만나러 인천까지 갔다가, 시간이 어긋나 다시 KBS로 돌아왔다. 기다리는 동안 편집실에 들러 전날 촬영분을 다시 훑어보기로 했다. “편집은 하나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과정이에요.” 이번 사건만으로 총 51개의 테이프가 줄지어 있는 걸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방송이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은 아까 유 사장의 사무실에서 그 많은 증빙 서류를 보고 느꼈지만, 이 테이프들 역시 보통 분량은 아닌 것이다. <추적 60분> 한 회 방송을 위해 평균 70~80개 정도 테이프 분량의 인터뷰를 시도한다. 그 테이프를 문자로 풀어낸 ‘프리뷰 노트’를 보니, 이건 정말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고시 공부하던 애들이 자기 키만큼의 ‘기록’을 읽는 건 봤어도, 현직 PD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분량의 문서를 읽어야 하는 줄은 몰랐다. “보통 방송 분량의 1백 배 정도는 찍어요. 사례자뿐만이 아니라 관련 인물,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보통 5시간씩 스무 명 이상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프리뷰 노트가 두세 권 나오죠.” 이 두꺼운 기록들 중에서 ‘진실의 분량’은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니, 이내 머리가 혼미해져왔다. 미추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내는 일이란, 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오후 6시 10분. 드디어 기다리던 나 사장이 등장했다. 오전에 만났던 제보자 유 사장이 유들저는 하늘 앞에 맹세합니다.” 나 사장은 무척 흥분돼 있었다.

오후 6시 10분. 드디어 기다리던 나 사장이 등장했다. 오전에 만났던 제보자 유 사장이 유들유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면, 나 사장은 무언가 주체하지 못해 상기된 얼굴이다. 나 사장 역시 엄청난 분량의 증빙 서류를 턱하니 올려놓았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습니까. 나는 사람이 무서워요, 이제는. 모든 진실은 밝혀지리라 생각해요.

저는 하늘 앞에 맹세합니다.” 나 사장은 무척 흥분돼 있었다.

쉴 새 없이 많은 말을 털어놨고, 정말 끝도 없는 자료들을 제시했다. 말의 중간중간 ‘거짓말. 비밀 누설. 메일. 답답. 안 받아요. 짠 거죠. 계약서. 진술서. 이중 계약. 녹취. 메일 해킹. 각서. 위조. 가짜. 고발. 인증. 함정’ 등등의 단어가 계속해서 떠다녔다. 그중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죠”라는 말은 오전에 유 사장을 만났을 때도 동일하게 나왔던 말이다.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고 한때 좋았다던 이 둘의 관계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사람의 관계가 깨지는 순간과, 악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과, 용서와 화해가 아닌 고발과 제보로 이루어지는 현실이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머리가 혼미해져간다.

밤 9시 10분. 나 사장은 반드시 읽어보라며 전과처럼 두꺼운 자료들을 몇 덩이 두고 떠났다. ‘이 많은 기록들을 언제 다 읽어볼 것인가’ 하는 걱정보다 앞서는 건, 도대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다. 강 PD 역시 마찬가지 표정으로 나 사장을 배웅하고 돌아왔다. 취재 후반. 이제부터 고행은 시작이라는데, 강 PD의 얼굴이 절반은 이미 어둡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취재는 언제쯤 맑게 갠 하늘처럼 깔끔하게 마무리될까. 보다 명확하게 진실을 구분해줄 것은 앞으로 남은 취재와 PD의 사실관계 확인일 것이다.

진실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그 어딘가를 찾아 강 PD는 뛰고 있었다. 같은 언론에 몸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분명 강 PD는 좀 더 정확한 팩트를 찾기 위해 밤을 꼴딱 샐 것이다. 대충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는 절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언론인의 자존심이란, 이렇게 본인을 해치면서도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취재와 취재 사이 먹었던 평양냉면의 면발은 굵고 거칠었다. 함흥냉면의 면발처럼 매끈하니 윤기가 나질 않았다. “이상하게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아요. 필요한 장면이라는 게 기다리면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파고드는 수밖에 없는 거죠.” 세상이 이 냉면의 면발처럼 한없이 거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후룩후룩 계속해서 면발을 삼키는 건, 어쩌면 소신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와 일치할는지 모른다. 자, 똑같은 이치로 대한민국 언론은 뛰고 있다.

그 숨 가쁜 여정에 하루를 실어보니, 적어도 언론이 이렇게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계속해서 마른침을 삼키게 되는 것은 그 거친 면발 같은 세상 때문일 것이다.

에디터 이기원의 四色日記
채식주의자로 살 수 있을까?

살다 살다 내가 풀뿌리만 먹으며 한 달을 보내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봤던 그 ‘짧은 영상’이 문제였다.
나는 동참할 방법을 고민했고, 가장 쉬운 방법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채식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나는 꽤나 육식을 좋아하고, 또 즐기는 사람이다. 고백하자면 사자가 가젤을 사냥하고, 상어가 바다 생물들을 포식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축을 사육하고, 또 그것을 도륙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기에 고기를 먹는 것에 그 어떤 죄책감도 없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랍시고 유난 떠는 이들이 꼴 보기 싫었다. 회식 자리 왔으면 그냥 삼겹살 좀 구워 먹으면 될 것을 굳이 상추에 밥만 싸먹으며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곱게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꼭 그럴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굳이 의 광우병 보도 장면을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먹고, 싸는 행위만을 반복하다 결국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건 생물을 다루는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사육되는 생물이 아니라, 팩토리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을 보고 있었다. 최소 비용으로 먹이고, 키워서, 죽이는 단순하고 잔인한 3단계의 반복.

나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생명체에 대해 가져야 할 윤리 의식, 지구상에서 공존하는 존재들에 대한 동지 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진부한 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었다. 그 영상을 본 다음날 나는 태연하게 항정살을 구워 먹었다.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 돼지의 목덜미살은 기가 막히도록 맛있었고, 쫄깃했다. 그 고기가 어떤 환경에서 키워졌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도축된 건지 모른 채로. 혀로 느껴지는 육즙과 고기를 어금니로 씹을 때 그 담백한 맛은 죄책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죄책감과 미각 사이에서 방황하기를 수차례, 나는 이제 채식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담배를 끊으라고 했다면 못했겠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일정 수준의 포만감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식욕도 자연스럽게 억제되니까. 고기 대신 탄수화물을 적당히 섭취해주면 될 것이었고, 부족하면 빵이라도 먹으면 되는 거였다. 더구나 왠지 고기를 먹지 않으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물론 그 시작은 참 엉성했다. 나는 비건이니, 락토니 하는 부분 채식의 분류도 몰랐다. 다만, 내가 정한 원칙은 간단명료했다. 모든 고기 그리고 생선이나 해물 등 움직이는 모든 것들, 그리고 그걸 가공한 것들을 먹지 않을 것. 대신 달걀과 유제품 등은 가리지 않고 먹을 것. 굳이 따지자면 나는 락토오보(LactoOvo, 유란채식)의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서고 나니 대수롭지 않은 일 같았다. 너무 쉬운 일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우리 식단이 얼마나 고기 위주로 되어 있는지를.

고난이 시작됐다. 고기를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를 가도 고기가 빠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중국집의 자장면에도, 순대국밥에도, 심지어 편의점 삼각김밥까지 고기가 점령하지 않은 음식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고기는 빼주세요’라고 얘기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그나마 무난한 것이 된장찌개나 청국장이었지만 아무리 전 우주에서 제일 맛있는 된장찌개라 해도 하루에 두 끼 이상 먹는 건 무리였다. 김치찌개를 먹으려 해도 고기를 골라내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따지면 고기를 우려낸 국물로 만든 김치찌개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채식이냐고 따진다면, 살다 보면 ‘융통성’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고 대답하겠다. 라면 역시 마찬가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음식인 라면까지 포기하지는 못했다.)

물론 시한부 외톨이가 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 혼자 점심을 먹거나, 채식 레스토랑만 찾아다닌다면, 혹은 샐러드가 들어간 유기농 샌드위치만 먹는다면. 하지만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직장인인지라, 매일 혼자서 점심을 먹을 용기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괴로운 점심 시간이 이어졌다. 먹을 메뉴는 마땅치 않았고, 대개 된장찌개 정도로 한정돼 있었다. 복날, 사무실 동료들이 다 같이 삼계탕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혼자 김치찌개를 시키던 순간, 고아 같았던 내 기분을 누가 알아줄까. 뿐만 아니다. 비 오는 날 중국 음식을 먹고 싶어도 항상 야채볶음밥만 시켜야 했고, 동료들이 추가로 시키는 탕수육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최악은 늦은 저녁 야참을 먹던 순간이었다. 야근 중 배가 고프다며 야참을 먹기 위해 나를 데리고 나갔던 선배는 결국 나와 함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 근처에서 늦은 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곤 갈비탕, 감자탕, 해장국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고기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견딜 만했고, 1주일 정도 지나자, 몸에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우선 담배가 줄었다. 보통 기름진 고기류를 먹고 나면 담배가 무척 태우고 싶어진다. 이유는 모르지만 육즙의 흔적이 남아 있는 혀가 담배를 만나고 나면 엄청난 화학작용을 일으키곤 했다. 그 맛을 비흡연자들은 쉽게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채식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입 안이 담백해졌고, 담배는 꽤나 맛없는 것으로 변했다. 담배의 양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으나 그 쾌감은 확연히 떨어졌다. 그러니 이전같이 담배 연기를 발가락 끝까지 흡입하거나, 정말 즐거워 피우는 경우는 분명 줄어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담배를 피우던 순간 ‘이 쓴 걸 왜 피워?’ 했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담배를 참는 것이 조금은 더 용이해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더 확연한 변화는 배변 문제였다. 변비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쾌변도 아니었다. 하지만 채식 이후 뭔가 달라졌다. 애초에 인간의 장 구조는 육식이 아니라 채식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확실히 채식을 시작한 이후에는 소화가 쉬워졌고, 몸도 가벼워졌다. 아, 이래서 채식이 몸에 좋다고 한 거였구나.

기뻤다. 딱히 고기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조금 더 건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단 현상은 급작스럽게 다가왔다. 채식을 시작한 지 10일쯤 되는 날, 고기를 씹을 때 느껴졌던 육즙의 맛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육식을 즐겼던 과거의 기억이 유령처럼 떠올랐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단군 신화 속 호랑이와 곰의 우화마저 떠올랐다. 겨우 10일 참은 나도 이렇게 고기가 먹고 싶은데 육식동물인 그것들은 오죽했을까. 정말 쑥과 마늘만으로 1백 일을 났다면, 인간이 될 만도 하겠다는 생각까지.

눈 딱 감고 고기 한 점 먹고 싶은 욕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랐다.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써는 순간 금속 나이프와 식기가 맞부딪칠 때의 그 청량한 소리, 상추에 고기와 마늘과 쌈장을 함께 싸서 입에 넣고 씹을 때의 그 환상적인 하모니도 떠올랐다. 여름만 되면 기력 보충을 위해 먹곤 하던 개고기의 아이스크림 같은 육질은 또 어떻고.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채식을 하며 다이어트에 성공하기는커녕, 몸무게가 2kg이 늘었다. 그제야 나는 절실히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만에 관여하는 건, 단백질과 지방이 아니라 탄수화물이라는 걸.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일종의 보상 심리가 생긴 것이 문제였다. 고기를 먹지 않으니 대신 밥과 빵 같은 군것질을 더 많이 하게 된 것이다.

이쯤 되니 뭔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왜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는 거지? 그냥 남들 먹는 대로 먹고 살면 되지 않을까? 내가 괜한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얼마 전 한국을 방한했던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쇠고기 1kg을 얻기 위해서는 16kg의 곡물 사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그 곡물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지요. 우리는 오랜 세월 육식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하지만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고통이나 공포, 절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채식을 시작한 지 4주를 넘어서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평안이 찾아왔다. 여전히 고기에 대한 욕구는 간헐적으로 나타났지만, 채식 레스토랑에 가서 먹었던 고기 맛에 가까운 두부나 버섯 요리들은 육식에 대한 욕구를 조금은 억눌렀다. 그리고 살은 쪘을지언정 몸은 가벼워졌다. 고질적인 소화불량 역시 많이 완화됐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들이 말하듯 공격적인 성격이 줄어든다거나 하는 성정의 변화는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꽤 예민하고, 스트레스도 잘 받으며, 직장 생활이나 사람들과의 협업에도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기사를 쓴 후에도 채식을 조금 더 해볼 생각이다. 물론 앞으로도 평생 고기를 입에 대지 않겠다고는 말 못한다. 나는 수도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 생각은 없다. 다만, 그 고기의 양을 최소한으로 줄일 생각은 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나는 왜 채식주의가 되었는가>의 저자 하워드 리먼의 말을 떠올리고 있다. “세상은 더 평화로운 곳이 되었는가? 가지고 갈 수 없다면, 정말 중요한 모든 것은 뒤에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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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지호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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