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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뭐 할까?`란 질문조차 더 이상 하지 않는 커플들을 꼬셔볼 참이다. 수많은 `오늘밤` 중 하나를 특별했던 `그날 밤`으로 만드는 순간이 그녀와의 관계에 가져다줄 변화는 대단히 즐거운 것이므로.<br><br>[2006년 10월호]

UpdatedOn September 19, 2006

Photography 윤상범, 김태균(less) Editor 박인영

깊은 대화가 어울리는 곳
그녀는 내가 그녀의 얼굴보다는 머리를 칭찬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꼭 얼굴을 칭찬해야겠다면 정적이고 피부 조직에 기초를 둔 ‘코’보다는 운동신경과 근육이 통제하는 ‘미소’에 대해 무슨 말을 해주길 바란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머릿결이나 다리 길이, 통장 잔고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영혼 때문이기를 바란다. 사라질 수도 있는 것 때문에 사랑받는다면, 그것과 함께 사랑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슬픈 영화를 보다가 그녀가 물었다. “내가 하반신 마비가 돼도 여전히 사랑할 거야?” 이런 질문엔 충분히 단련돼 있다. 난 1초도 망설임 없이 “당연하지”라고 대답한다. 여자가 심오한 질문을 할 때는, 무조건 그녀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는 것이 상책이란 것은 그야말로 ‘진리’다. 그녀와 헤어지고 돌아와 혼자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우스워졌다. 어딘가 높은 곳에 ‘사랑’을 올려놓고 싶어 하는 그녀와, 남녀 사이의 ‘무조건적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나의 관계. 깊숙한 대화는 대부분 싸움으로 귀결되므로 그 시작부터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다른 별 출신인 여자들은 정기적으로 깊숙한 대화를 하지 않으면 관계에 의구심을 갖는다. 굳이 정기적으로 이런 시간을 갖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와 가끔씩 깊은 대화를 갖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아주 ‘가끔’이라는 전제하에 둘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것은 깊숙한 대화의 귀결이 싸움이 되는 확률을 줄여준다. 그래서 오늘밤 대화를 위한 장소로 그녀와 함께 향한다. 은은한 컬러가 있는 스카이라운지나 도심 속의 조용한 공원이 좋겠다.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곳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우리는 추하고 멍청하고 따분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아름답고 똑똑하고 재치 있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적어도 내 눈엔 완벽했던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 잔인한 역설에 잠시 괴로웠던 적이 있다. “왜 이토록 멋진 그녀가 나를 사랑할까?” 사랑이 성립되기 위해서 나는 그녀가 나보다 나은 상대라고 믿어야 했고, 그 믿음이 철통같았던 시절 - 그러니까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확신하기 전-에 나는 나의 부족함을 완벽한 데이트로 채우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그녀는 화가 단단히 났다. “우리 어디서 만날까?”란 질문은 “이따가 내 오피스텔로 오든가”로 바뀌었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예약하던 데이트 코스가 침대에서 한바탕 한 뒤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켜 먹는 코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위험요소를 잊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내 사랑이 보답 받는 순간 그의 매력도 빛이 바랠 수 있다는 것.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 전전긍긍하다 완벽한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데 빠지는 충격을 겪는 것이 사랑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면 혼란스러워할 필요도 없이 충격 완화를 위한 요건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 스텝은 근사한 데이트 코스가 될 것임은 당연하다. 쿵쾅거리는 음악이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클럽에서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떠들어볼 수도 있고, 야경이 멋진 세련된 와인 바에서 연애 초기, 그녀를 꼬이기 위해 과감히 투자했던 금액보다 조금 넘게 질러볼 수도 있다. 당신이 경외해 마지않던 완벽한 그녀와의 특별한 데이트가 바로 오늘밤 기다리고 있으므로.

특별하고 프라이빗한 밤을 위한 곳
내가 아주 잠깐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고 그녀 역시 나에게 마주 소리를 질렀다면 아마 사소한 말싸움은 저절로 풀려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화가 나거나 상대방의 화를 돋우는 일의 밑바닥에는 그 즉시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는 잘못이 놓여 있다. 상처를 받은 쪽에서는 그 일을 나중을 위해서, 좀 더 고통스럽게 폭발시키기 위해서 쌓아둔다. 그렇게, 문제가 생긴 즉시 이야기했다면 풀렸을 일에 무게가 더해진다. 불쾌한 일이 있으면 즉시 화를 표현하는 것처럼 너그러운 일도 없다. 그러면 상대는 죄책감을 키울 필요도 없고 전투를 중단해 달라고 화난 사람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발단은 늘 아주 사소하다. 나중에는 왜 화가 났을까보다 그녀가 화가 나 있다는 현재 상황이 더 중요할 뿐이다. 몇 번 전화를 해보다가 받지 않는다고 포기해버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귀여운 그녀와 파워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순순히 그녀 회사 앞에 가보기로 결심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면 그녀의 화를 돋울 수 있으므로 기억조차 안 나는 잘못이지만, 일단 사과한다. “미안해”란 말은 아주 짧은 말이지만 하기 힘든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뱉고 나면 그것만큼 간단히 일을 해결해주는 말도 없다. 그녀가 화가 풀리면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가서 다시 한 번 사랑을 확인한다. 오늘 같은 날은 매일 가는 내 오피스텔 말고 어딘가 특별한 곳이 좋다. 자동차극장에서 열기를 돋웠다가 멋진 부티크 호텔에서 쏟아내는 것은 어렵게 뱉은 ‘미안해’란 말을 억 배로 보상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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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윤상범, 김태균(less)
Editor 박인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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