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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보다 로봇

남자는 로봇 영화를 숭배한다. 아니, 영화 안의 로봇에 집착한다. 여자가 스토리에 연연해하는 것처럼,남자는 로봇에 집중하는 것이다.“남자들이 로봇에 환장하는 이유는 뭘까?”심리학 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br><br>[2008년 8월호]

UpdatedOn July 22, 2008

Words 장근영(심리학 박사) Illustration 손문 Editor 이지영

‘왜남자들은 로봇영화에 열광할까?’ <아레나>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이것이 질문 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여자아이들이 작은 컵과 접시를 들고 소꿉장난을 할 때, 남자아이들은 총을 쏘고 작은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판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동안, 남자아이들은 로봇에 열광한다. 로봇과 인형의 차이, 둘 다 인간형의 장난감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남녀가 걸어온 서로 다른 진화의 역사가 있다.
남녀의 진화 과정에 대한 데이빗 부스(David Buss)나 앨런과 바버라 피스(Barbara & Allan Pease) 부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남자는 애초에 사냥꾼이자 싸움꾼이었다. 반면에 여자는 동굴의 안주인이었다. 남자들은 동료와 함께 들판에 나가서 사냥감(그중에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도 있었다)을 찾아 함정으로 몰아넣어 목숨 끊는 일을 잘할수록 인정받았고 더 많은 자손을 남겼다. 그 결과 남자들의 후손은 자신과 사냥감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길목을 머릿속에 지도처럼 그려 넣는 재주가 발달했다. 후대에 와서는 이를 공간지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동굴에 남아 식구들을 꾸리고 농사를 지어야 했던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랫동안 좁은 곳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재주였다. 이를 위해 여자들은 육체적인 능력 대신에 언어로 모든 문제를 감지하고 탐색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발달시켰다. 이를 심리학자들은 언어지능이라고 부른다.
남녀의 또 다른 차이점은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다. 남자들은 목적을 중심으로 타인을 구분한다. ‘저놈이 나와 이 목표를 놓고 경쟁할 적인가 아니면 같이 협력할 동료인가?’ 남자의 모든 인간 이해력은 이런 관점에 집중되어 있다. 중요한 일이긴 하다. 동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적이라든가, 아니면 동료가 될 수도 있었는데 서로 피 튀기며 싸우는 건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 번 판단을 내리면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상대방에 대한 탐색은 짧게 하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남자들의 인간 이해 절차는 악수나 인사를 통해 상대방이 나에게 적의가 없음을 확인한 순간 대충 끝난다.
하지만 여자들은 다르다. 동굴 속에서의 삶은 일회성이 아니라 순환 반복하는 장기적인 관계다. 여기서는 작고 사소한 차이나 갈등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 존재한다. 따라서 좀 더 세밀하게 상대방을 파악하고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세심할 수밖에 없다. 표정, 자세, 냄새, 피부, 옷차림… 그 모든 것이 상대방을 파악하는 단서다. 또한 오랜 동굴 생활을 통해서 여자들은 인간이란 변덕이 심한 존재라는 사실을 소뇌 깊이 각인시켰다. 그래서 여자들이 상대방을 파악하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할 수 있으니 지금 현재는 어떤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검토한다.
즉, 여자들의 인간 이해 절차는 악수나 인사를 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남녀 차이가 로봇과 인형의 선호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간단하다. 로봇은 기본적으로 기계의 연장 선상에 있다. 따라서 기계의 특징, 즉 원칙이나 명령대로만 움직이고, 단순해서 특별히 더 깊이 이해할 것도 없으며, 목표 달성을 위해서 행동하는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로봇은 뛰고 말할 수 있는 특수 자동차다. 이렇듯 기계적인 로봇은 단순한 남자아이들을 닮은 반면, 인형은 여자아이들을 닮았다. 인형은 겉보기와는 달리 온갖 감정과 내밀한 상상과 팥죽처럼 끓어대는 변덕을 품고 있다. 남자아이들에게 로봇을 쥐어주면 그것으로 상대방 로봇과 격투를 벌이거나 날아가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파괴한다(심지어 인형이나 다른 무엇을 쥐어줘도 결과는 비슷하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에게 인형을 쥐어주면 인형과 대화하거나 인형의 기분이나 생각에 대해서 끝없이 수다를 떨어댄다. 그 와중에 작은 컵과 접시를 놓고 티타임을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니 심리적으로 남자아이들의 상태에서 별로 바뀌지 않은 남자 어른들이 로봇영화에 열광하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영화에는 늘 기계를 닮은 로봇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마징가 제트>는 폭주족 오토바이의 현신이다. 처음 이 장난감을 받아 쥔 쇠돌이는 말 그대로 거리를 폭주하며 기물을 파손한다. 이후의 <건담> 시리즈는 로봇으로 하는 본격 전쟁놀이다. 왜 편을 갈라서 싸워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계속 싸워댄다. <태권 브이>의 철이는 무술의 연장으로 태권 브이를 다룬다. <터미네이터>는 주어진 목표를 위해 무조건 전진한다. 2007년 여름, 연령을 막론하고 모든 남자들을 열광시킨 <트랜스포머>도 마찬가지다. 이 로봇들은 인간의 조종을 받지는 않지만, 그 자체가 남자아이다. 지극히 단순하고 유치한 대사를 심각하게 내뱉는 옵티머스 프라임의 얕디얕은 심성, 혹자는 순수함이라고도 하는 그 심성이 바로 남자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외형이 남자들의 또 다른 소망인 자동차니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반면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의 동공을 확장시키거나 심장박동 수를 높이지 못하는 존재도 있다. 그들은 대부분 기계가 아니라 속 깊은 인형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에이아이>의 로봇, 데이비드는 비록 로봇이지만 감정(!)을 가지고 상상(!!)을 한다. <토이스토리>의 버즈와 우디는 말 그대로 인형이다. 그나마 <아이 로봇>의 서니는 남자이긴 한데 진짜 남자보다 더 성숙하다. 세상에, “너희 로봇은 예술 그림도
못 그리고 명곡도 못 만들지?”라며 찌질대는 인간 남자 앞에서 “그러는 너는 할 줄 아니?”라고 묻는 로봇이라니. 이 얼마나 밥맛인가.
결론은 이렇다. 남자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로봇과 로봇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자보다 로봇이 더 이해하기 쉽고 친숙하기 때문이다. 쇼핑센터에 들어가서 끝없이 방랑하며 “이거 어때? 저거 어때?” 질문하는 여자들에게 남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남자들에게 정답이란 상황의 진전을 의미하는데, 여자들에게 어떤 대답을 해도 그 방랑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봇에게는 모든 것이 0과 1로 명확히 구분된다. 그러니 여자 앞에서는 불안하고 부적절함을 느끼는 남자도 로봇 앞에서는 편안하고 당당하다. 또한 남자는 기본적으로 여자와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자들에게 사랑은 통제력을 상실하는 상태를 뜻한다. 그것은 남자들의 무기인 이성과 목표 추구 성향을 포기하는 무장 해제의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로봇은 그렇지 않다. 간단히 말해 로봇은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여자’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람둥이 토니 스타크가 조신한 비서 페퍼를 슬슬 피하면서 로봇 친구들과 ‘아이언맨’ 개발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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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Words 장근영
Illustration 손문
Editor 이지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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