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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야 부탁해

On August 19, 2015

그녀에게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다. 먹기만 하는 요리 말고.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익숙해질 즈음이다. VOD 다시 보기로 <무한도전>을 보거나, 치킨을 시켜 먹는 일 외에는 즐거울 것이 없었다. 익숙함은 권태를 동반한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에게 낭만이나 유행을 잘 아는 남자로 기억되고 싶었다. TV에서는 매일 요리하는 남자들이 나왔고, 나는 그들보다 더 섹시해지고 싶었다. 우리의 권태를 격파할 수 있는 것은 보기 좋은 음식이 아니라, 서로의 입속을 오가는 식재료들이라 믿었다. 자취방이라 대단한 것은 없지만, 술안주용 해산물과 채소들, 선물 받은 와인과 올리브, 엄마가 보내준 양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내 작은 냉장고에 있었다. 그녀의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와인 젤리
섹스에 필요한 질감을 떠올리면, 젤리처럼 물컹거리는 소재만큼 탁월한 것도 없다. 디저트인 젤리는 식사 후 섹스로 가기 위한 식탁과 침대의 교두보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젤리는 만들기 쉽고, 분위기 있게 먹기 좋으며, 섹스에도 활용하기 좋다.

어떻게 즐길까?
젤리는 액체 음료에 젤라틴을 불려 녹인 것을 잘 섞고, 틀에 넣어 냉장고에서 굳히면 끝이다. 액체 음료는 주스나 우유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모스카토 다스티’ 같은 달콤한 화이트 와인을 추천한다. 일단 먹고 나면 입안이 개운하다. 우유는 텁텁하고, 시간이 지나면 비릿한 냄새가 난다. 우유 젤리는 그 냄새가 입만이 아니라 몸에도 남기 때문에 ‘비추’다. 과일 주스도 좋지만 살짝 취기를 올릴 수 있는 와인이 한 수 위이지 싶다. 어쨌든 완성된 젤리는 냉장고에 보관해두자. 그래야 젤리를 몸에 얹었을 때 피부의 긴장감이 상승한다. 젤리는 몸에 얹어 혀로 으깨거나, 미끌거리는 젤리로 살결을 훑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참, 주사기에 넣어 굳힌 젤리를 서로의 입에 흘려 넣어주거나, 몸에 흘려 맛을 보는 간호사 놀이도 좋은 활용법이다.

재료 화이트 와인 1+1/2컵, 판 젤라틴 9g
만들기
1. 젤라틴은 실온의 물에 5분간 불렸다가 손으로 물기를 꼭 짠 뒤, 전자레인지에 5초 간격으로 여러 번 돌려 완전히 녹인 다음 화이트 와인에 조금씩 부어가며 섞는다.
2. ①을 원하는 틀에 붓고 냉장고에 넣어 4~5시간 이상 굳혀 완성한다.
* 주사기에 넣을 거라면 젤라틴을 6g 정도 사용한다.

허니 버터 조랭이 떡볶이
허니 버터. 이름부터 달고, 느끼하다. 닭살 돋는 연인들을 위한 최적의 양념장이다. 요즘에는 어지간한 음식들에 붙는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꿀과 버터의 조합은 실패가 제로에 수렴하는, 누가 먹어도 맛있는 공식 중 하나다. 떡볶이와도 잘 어울리지만 일반 떡이 아닌, 조랭이떡을 이용한 허니 버터 떡볶이를 만들어보자.

어떻게 즐길까?
조랭이떡을 반으로 잘라 동그란 모양으로 만든다. 이걸 뜨거운 물에 넣어 익히면 말랑말랑해지는데, 말랑하고 동글동글한 것이 식감이 좋다. 입안에서 좋은 것은 다른 신체 부위에 닿아도 기분을 좋게 한다는 의미다. 조랭이떡을 매끄러운 버터, 꿀과 섞어 피부에 문지르면 그 촉감이 마치 오일과도 같다. 우리가 컴퓨터로만 보아온 마사지 영상을 재현할 수도 있을 듯. 또한 스푼으로 서로의 입에 떠 넣어주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하기에도 좋다. 먹여주다가 몸에 슬쩍 흘려서 말랑한 떡을 입술로 굴려가며 달콤한 흔적을 핥아먹는 재미도 있다. 참고로 버터와 꿀은 피부에 참 좋다. 미용과 맛, 그녀를 고루 만족시키는 효율적인 떡볶이다.

재료조랭이떡 2컵 분량, 버터 1큰술, 꿀 적당량
만들기
1. 조랭이떡을 절반으로 잘라 동그란 모양으로 만든 뒤, 끓는 물에 넣어 부드럽게 익힌다.
2. 떡이 말랑해지면 체로 건져서 뜨거울 때 버터를 넣고 섞는다.
3. ②에 꿀을 듬뿍 넣고 고르게 섞어 완성한다.

레몬과 올리브오일로 맛을 낸 산낙지
산낙지는 쓰러진 소도 일으킨다고 한다. 그녀 앞에서 힘주기 귀찮아하는 나와 같은 남자들에게 필요한 ‘물컹이’다. 물론 낙지는 요리를 만들어 먹어도 훌륭하다. 하지만 먹는 걸로만 활용하기에는 오늘밤이 아쉽다. 쫄깃한 산낙지의 식감은 충분히 입을 즐겁게 해주지만, 알고 보면 입 말고 우리 몸 구석구석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고수의 도구이기도 하다.

어떻게 즐길까?
상대의 몸에 산낙지를 올린다. 한 마리가 아니어도 좋다. 빨판으로 그녀의 땀구멍을 빨아들이며 미끄러지는 산낙지의 몸부림이 중요하다. 낙지가 몸 위를 구석구석 다닐 수 있게 길(?)을 터주자. 목과 등, 옆구리 등 성감대가 발달한 부위에서 낙지는 묘수를 부린다. 미끄덩하면서도 빨판이 피부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꽤 묘하다. 낙지가 지나간 자리를 맛보는 것도 즐거움을 배가한다. 낙지의 체력이 다 하면 본격적인 손질을 시작한다. 산낙지를 칼로 토막 낸 뒤, 그녀의 등 위나 배 위에 살며시 얹어보자. 그리고 그 위에 레몬즙을 짠 다음, 약간의 소금과 올리브오일을 뿌린다. 향긋한 레몬즙과 올리브오일은 해물과 궁합이 잘 맞아, 별다른 재료 없이 신선한 해물의 맛을 잘 살려낸다. 게다가 레몬즙을 짜는 순간 침실은 향긋한 향으로 가득하게 된다. 미각, 촉각, 후각을 만족시키는 요리인 셈이다. 또한 보양식의 대명사인 만큼 섹스 후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에도 좋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 요리를 ‘한 판 더? 헉헉’이라고 부른다.

재료 산낙지 2마리, 레몬 1/4개, 올리브오일 2큰술, 소금 약간
만들기
산낙지를 칼로 적당히 토막 낸 뒤, 레몬즙과 올리브오일, 소금을 뿌리고 가볍게 섞는다. 생 바질 잎이 있다면 살짝 다져서 섞어 내도 맛있다.

EDITOR: 조진혁
ILLUSTRATION: 김민영

그녀에게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다. 먹기만 하는 요리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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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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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201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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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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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