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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나 잘 붙였을 뿐인데

테크 제품의 이름 짓기는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특히 이름이 많은 것을 의미해야 할 경우에는 더더욱.<br><br>[2008년 7월호]

UpdatedOn June 23, 2008

Photography 기성율 Editor 박지호

소싯적 스쿨 밴드에는 통과의례가 있었다. 솔직히 실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몰라도 밴드에 가입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까. 가장 중요한 지상 과제는 밴드의 이름 짓기였다. 팀원들 모두 연습은 뒤로 제쳐둔 채 밴드를 포장할 ‘쌈빡한’ 영어 이름을 쥐어짜느라 여념이 없을 때가 많았다. 결국 ‘ROY(Revolution Of Youth?)’라는 얼토당토한 이름을 내건 그 밴드는 첫 공연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문을 닫아야 했다.
IT와 가전업계에서도 이름은 무척 중요하다. 소비자에게 한 번에 호소하는 마케팅을 위해 기존의 영어와 숫자를 결합한 제품명 외에 ‘이름(일명 펫네임, Pet Name)’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각 제조사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카피라이터 못지않게 고뇌 중이다. 나날이 고민이 깊어지는 데에는 모든 제품의 성능과 기능이 상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네이밍 센스 격돌의 최대 격전장은 역시 거의 매달 트렌드가 뒤바뀌는 휴대폰업계다.
펫네임에도 명암은 분명 존재한다. 슈팅스타폰, 주얼리폰, 스톰폰, 듀얼페이스폰 등의 이름에서 제품 모습과 자세한 신상 명세를 떠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고민은 많이 했으나 뒷심이 따라주지 못한, 한마디로 ‘뜻이 부족한’ 경우다. 국내 휴대폰 펫네임(사용자가 아닌 제조사가 붙인)의 효시는 LG싸이언의 ‘초콜릿폰’이다. 이후 LG싸이언은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는 뜻을 가진 샤인폰을 공전의 히트 반열에 올렸고, 삼성 애니콜 역시 이에 질세라 울트라 에디션폰, 미니스커트폰과 같은 여러 제품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아직 삼성이 선두 주자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LG 싸이언 마케팅팀에는 막강한 실력의 작명가가 합류해 있는 것만 같다. 고화소, 고속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폰이라는 장점을 부각시켰던 뷰티폰에 이어 분리형 액정을 채용한 최근의 비키니폰 등 수작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전통적으로 화질 하나는 당대 최고였던 캔유(CanU)도 최신작에 파파라치란 이름을 붙여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성명학(姓名學)을 기본으로 하는 작명에 대원칙이 존재하듯, 테크 제품도 마찬가지다. 이 원칙에는 ‘재미와 익숙함’이 가장 중요하다. 이 원칙을 살짝 비튼 것이 바로 2008년 상반기 공전의 히트 휴대폰인 삼성 애니콜의 ‘햅틱폰’이다. 무언가 익숙하긴 한데 정확한 뜻은 모르겠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검색을 했고, 이러한 바이럴 효과 덕에 80만원대의 높은 출시 가격에도 불구, 무려 20만 대가 팔려 나갔다. 용기백배한 삼성은 조만간 햅틱의 두 번째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500만 화소 카메라, 풀터치 스크린, 새로운 UI, WVGA 해상도 등 기존 휴대폰의 모든 것을 갖춘 괴물과도 같은 녀석이다. 휴대폰의 최신 트렌드를 한데 합쳐놓은 이 스펙 덕에 업계에선 ‘괴물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고, 삼성 애니콜은 ‘로모폰’이란 펫네임(가칭, 기사 작성 시점에서)을 선택했다. 로모는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그 토이 카메라를 말한다. 삼성 애니콜이 카메라 분야에 무게를 실은 것은 올해 초 뷰티폰과 맞붙었던 ‘포토제닉폰’의 실패로 고화소 카메라 경쟁에서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리라. 문제는 바로 ‘로모’라는 이름이다. 로모 카메라는 프로 사진작가조차 의도하지 못한 결과물을 내놓는 게 독특한 매력이지만, 누구에게나 압도적인 매혹을 던져주진 않는다. 소수 마니아용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성능과 아우라 측면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춘 이름 ‘라이카’를 끌어오는 것이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불러오지 않을까?
Words 고진우(<얼리어답터> 콘텐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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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기성율
Editor 박지호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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