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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놈, 구수한 놈, 세련된 놈

강우석, 이준익, 김지운을 비교하는 일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셋은 제각각 너무도 분명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올여름 박빙의 승부를 벌일 예정이라는 것 정도가 되겠다.<br><br>[2008년 7월호]

UpdatedOn June 23, 2008

Editor 이지영

1 강우석

강우석은 영화판을 빠삭하게 훑고 있는 양반이다. 그래서 성공하고 그래서 실패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빠삭하게 훑고 나면 뻔한 영화만 나오기 때문에, 그 뻔한 게 때로는 먹히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도 식상해 외면당하기도 한다.

강우석식(式) 폭탄주 만들기는 자고로 그 비율이 탁월하기로 유명하다. 믿거나 말거나 제법 굵직굵직한 국내 영화사들은 제각각 폭탄주 제조법을 지니고 있는데, 두루 마셔본 결과 강우석식 폭탄주가 가장 맛있다. 강우석은 본인만의 폭탄주 만드는 기술을 ‘시네마 서비스’ 직원들에게도 전수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제아무리 흉내 내도 강우석이 직접 만든 것만큼은 못하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강우석은 일단 본인이 한 바퀴를 돌리고 나면, 그 다음 사람을 딱 지목해서 병권(병을 쥐고 있는 권리)을 ‘이양’하기로 유명하다. 일종의 권력 인계인 셈이다.
한 모금에 탁 털어 넣을 수 있을 만큼만 제조 하는 강우석의 폭탄주는,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가장 큰 힌트다. 그를 직접 만나보면 ‘아, 이 사람이 뭔가를 빨리 전달하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말이 빠르다거나 성질이 급하다는 개념이 아니라, 간단명료하게 핵심만 딱 짚어서 얘기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말이란, 단 한마디도 늘어놓는 법이 없다.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의 설경구 캐릭터가 곧 강우석 본인이라는 얘기는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다. 성격도 있고, 내지르기 좋아하고, 팍팍한 사람이 바로 강우석인 것이다.
그러니 강우석에겐 온갖 악성 소문이 들끓을 수밖에 없다. 그의 탁월한 사업 능력은 존중하지만, 인간적으로 그를 존경한다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의 계산력은 인정하지만, 감독으로서 그를 높이 산다는 관객은 아직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대중 영화와 작품성 사이의 영원한 딜레마일 수 있겠다.)
‘대중 영화’를 만드는 강우석은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영화판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너무 잘 알아서 때론 망하기도 하고 때론 흥하기도 하는 사람이 곧 강우석인 것이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데뷔작 <달콤한 신부들>을 찍은 그는 초고속 성공 가도를 달렸다. <미스터 맘마>의 성공은 그가 데뷔한 지 겨우 4년 만의 일이었으니, 강우석의 행진은 처음부터 (그리고 여전히도) 박진감 그 자체였던 셈이다.
그러니 오늘도 강우석은 빠르고 값싸다는 이유로 라면과 폭탄주(결국 빨리 취하니까 값은 적게 든다는 계산이다)를 좋아한다. 그는 간이 딱 맞는 폭탄주를 돌려 마신 뒤(마시게 한 뒤) 금세 술자리를 파한다. 그리고 그 전날 아무리 많이 마셨다 할지라도 반드시 아침 6시면 일어나 세종호텔에서 러닝머신을 뛴다. 그게 강우석이다.

2 이준익

이준익은 적어도 진심이 무언지를 아는 사람이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그는 그래서인지 외려 방방 뛴다. 그가 훤히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 그게 슬퍼 보이기도 기뻐 보이기도 한다. 이준익 영화의 사람 냄새는 그래서 나는 것이다.

이준익은 삶 자체가 드라마다.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을 테지만, 그는 감독으로 알려지기 한참 전 ‘특이한 젊은이’로 <우먼센스>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전쯤의 일일 텐데, 당시 그는 스무 가지 직업을 가지고 뛰어서 화제(?)가 되었다. 이준익은 그렇게 안 해본 일이 없이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니 그는 아트 영화도, 대중 영화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다. 강우석은 사업가니까 대중 영화만 가능하고, 김지운은 출발부터가 히피 청년이라 ‘대중 영화’ 라는 네이밍 자체를 못 참을 테지만, 삶 자체가 드라마였던 이준익은 둘 다 가능하다.
일찍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그러하듯, 이준익은 달변으로 유명하다. 그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는, 서른 가지 질문을 준비해 간 기자가 단 한 개의 질문도 던지지 못했다는 일화로 설명이 된다. 이준익은 혼자서 절절절절 잘도 말한다. 말이 많고, 재미있다. 그는 늘 장면 하나, 캐릭터 설정 하나에도 사회, 정치, 문화, 경제, 철학적 식견을 담아내고 있는 듯(설사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얘기한다. 그보다 말 잘하는 감독을 본 적은 없으며, 이준익 때문에 ‘감독들은 연출력으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주둥이로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김지운은 쪽팔려서 안 찍을 영화를 이준익은 찍는다. 강우석은 사람 냄새를 적절히 활용하고자 한다면, 이준익은 진짜 그런 냄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찍는다. 그러니 정에 호소하는 작품도 나오고, 동시에 아직 영화판에서 뭐가 통하는지 감을 못 잡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준익은 그렇게 김지운보다 어른스럽고, 강우석보다는 젊은 느낌이다. 이준익은 진심이라는 것을 진짜로 믿기에 굉장히 시시한 코드들도 관객의 마음에 다가오기도 하고, 성공을 일구어내기도 한다. 너무 중후한 나이에 성공을 쥐었기 때문에 사람도 영화도 거짓은 아닐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의 어른스러우면서도 아이 같은 모습은 사람들과 격 없이 친해지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그가 ‘겸손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이미 한 단계를 초월한 사람의 속 깊은 면모일 것이다. 이준익은 스태프 막내와도 금세 친구가 되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김지운이 홀로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 이준익은 주변 사람들을 위해 맥심 커피를 탄다. 굉장히 어른스러우면서도 아이 같은 이준익은 사실 몇 안 되는 포토제닉한 감독 중 하나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모자를 쓰기도 하고 벗기도 한다. 얼마나 능수능란한지는 그의 사무실에 걸린 몇 장의 사진들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준다는 사실을 굉장히 신나 하며 얘기한다. 그리고 이건, 과시가 아닌 자랑이다.

3 김지운

김지운은 영화판에서 뭐가 통하는지 영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제멋에 사는 젊은이의 이미지가 곧 김지운인 것이다. 그는 여전히 아티스틱한 면모를 선보이며 본인만의 분위기를 충실히도 내비친다. 김지운은 아직도 낭만 어린 반항아다.

김지운은 에스프레소를 즐긴다. 청담동 야외 카페에 앉아 ‘홀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는 그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세상의 온갖 고뇌를 짊어진 사람처럼 그윽하게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그런 그의 모습은 묘하게도 홀로 쇼핑을 하는 행위와 이어진다. 갤러리아에서 명품 쇼핑백을 양손에 잔뜩 든 채 맞닥뜨리게 되는 그의 모습이 이제는 익숙한 것이다. 영화판에 유일하게 명품 쇼핑과 어울리는 이가 바로 김지운과 이재용이다(이재용 역시 유일무이한 멋쟁이 감독으로 통한다). 학동 사거리 모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그의 ‘간지’는 영화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가 <장화 홍련>을 찍을 때 영국에서 벽지를 수입해다가 발랐다는 얘기는, 한때 충무로의 가장 핫한 에피소드였다. 그렇게 김지운은 여전히도 폼 나는 장면을 뽑는 데 몰두하고, 세트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애초에 영화감독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던 건 아니라는 김지운의 말은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는 자그마치 10년을 백수로 지내왔던 부르조아 히피 청년이다. 인생에서 직업적으로 가장 길게 한 게 ‘백수’였다는 그는 사실 끝까지 백수로 살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우연히 당선된 시나리오가 오늘날 그를 감독으로 만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감독은 작품과 작품 사이 백수로 지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의 영화에선 ‘문화 백수’로 지내왔던 그 특유의 낭만과 자존심(겉멋)이 자꾸만 묻어난다. 김지운의 영화엔 지나치게 상업적이라거나, 처절하게 감정에 호소한다거나 하는 구석이 전혀 없다. 적당히 아트적이며, 어느 한편으로는 덜 적극적이어서 오히려 폼이 난다. 영화광으로 자라온 감독은 자신이 봤던 영화의 감동을 이런 방식으로 투영하는 것이다.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혼자 영화 보기를 즐긴다는 김지운은, 그런 만큼 낯을 가리기로 유명하다. 그를 만나본 기자들은 이구동성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다’라는 말을 내놓는다. 혼자 놀기에 익숙해왔던 감독은 떠들썩한 카메라 세례를 여전히 쑥스러워한다. 하지만 그는 정말 약은 서울내기처럼, 본인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최근 칸 영화제에서 찍힌 그의 모습은 그런 그의 속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병헌, 송강호, 정우성 등 주연 배우와 나란히 선 김지운의 모습은 ‘배우 뺨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유난히 패셔너블했다. 이쯤이면 누가 배우고 누가 감독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김지운은 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햇살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고, 그런 본인의 모습이 만족스럽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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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지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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