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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날은 가고

On June 22, 2008

`오빠`가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쓸쓸한 귀환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어지기 마련`이라는 옛말로 위안을 삼기에는 하강했던 지난 세월이 길었기 때문일 게다. 맞다. 분명 김건모의 화려한 날은 `갔다`. 그렇지만 김건모는 그저 웃는다. 청춘의 최절정에 섰을 때 억지로 지어 보였던 그 어색한 웃음이 아니라, 이마에 깊이 아로새겨진 주름 속에 깃든 세월의 흔적을 따라 그렇게 소탈하게 웃어젖힌다. <br><br>[2008년 7월호]

Photography 오중석 Editor 박지호 Hair&Make-up 김원숙 Styling 이현하

인터뷰어도 사람이다. 인터뷰를 할 때 최대한 객관적이고자 노력하지만 가끔은 ‘사심(私心)’이 섞일 때도 있다는 뜻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요즘 삼촌들의 가장 ‘핫’한 우상인 ‘소녀시대’의 모든 멤버를 한꺼번에 대면할 수 있다는데 마음 설레지 않을 남자가 과연 있겠는가 말이다. 더군다나 이런 느끼한 멘트를 날리게 될진대. “헤이, 티파니. 물론 네가 아직 어리다는 건 잘 알아. 그렇지만 네게도 이상형이라는 게 있지 않겠니? 자, 우리 한 번 진지하게 최고의 멋진 남성이란 어떤 존재인지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물론 소녀시대 인터뷰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바 있는 한 후배 에디터는 뻣뻣한 말투로 이렇게 강조하긴 했다(경멸하듯 약간 눈을 내리깔았던 것 같기도 하다). “오로지 완벽한 퀄리티의 사진을 뽑아내기 위해 불철주야 촬영에만 몰두했습니다. ‘10대 가수들이 완벽히 점령한 21세기 대한민국 가요계의 앙상한 현실을 고민하는 아이돌’이라는 역설적인 콘셉트로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고자 다각도의 질문을 던지느라 땀을 빼야 했고요.”
뭐, 각설하고 또 다른 의미에서 김건모 인터뷰 또한 사심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에 사춘기, 또는 청년기를 보낸 남자에게 ‘김건모’라는 이름 석 자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김건모와 함께 술을 마셨고, 작업을 걸었으며, 실연을 겪었고, 결국 그렇게 청춘을 탕진했다.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시작된 여정은 ‘잘못된 만남’의 짜릿한 이중주를 거쳐 결국 ‘스피드’의 현란한 비트로 막을 내렸다.
이쯤에서 ‘가수 김건모’의 음악적 공과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당신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 맞다. 1990년대를 상징하는 음악 아이콘을 꼽자면 당연히 서태지와 너바나가 최선두에 서야 한다. 한국적 랩과 록을 창조하기 위해 투철한 실험을 감행했던 서태지와 ‘록 스피릿’의 본령으로 회귀하기 위해 ‘얼터너티브 록’의 기치를 내걸었다가 처절하게 산화한 커트 코베인이야말로 1990년대의 뮤직 신을 상징하는 대표 아이콘인 거, 맞다. 그렇다고 김건모를 두고 한 평론가가 싸늘하게 내뱉었던 ‘뛰어난 가창력과 기교를, 대중이 따라 부르기 쉬운 익숙한 멜로디를 반복 재생산하는 데 소모한 가수’라는 식의 독설이 과연 온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소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땠는가? 노래방에서 ‘스피드’를 듀엣으로 부르며 평소 마음속에 두고 있던 과 여자 동기에게 은근한 작업을 감행했고, 결국 그녀가 또 다른 과 동기와 당신을 두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잘못된 만남’을 밤새도록 불러젖히며 술에 취해 고래고래 악을 써대지 않았던가? 세상이 무너질 듯한 절망감에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의 사이드미러를 깨부수며 ‘쌩쇼’를 해도 결국 다음날 아침이면 태양은 똑같이 떠오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뒤 ‘괜찮아요’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쓰린 속을 풀기 위해 해장국을 먹으러 갔던 옛 기억이 선연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음악에 있어 실험성과 선도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그만큼 대중성과 동시대성 또한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설이 길었다. 이렇게까지 ‘사심’이 깃든 채 인터뷰에 임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청춘의 공과를 함께 나누었던 아이콘, 한때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가요계의 제왕’ 김건모의 요즘 뒷모습이 작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연히 날 선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툭 터놓고 말해도 될까? 얼마 전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참 오랜만에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솔직히 기쁘기보다는 조금 씁쓸했다.
CF에 직접 등장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발표한 것도 아닌, 한 상업 광고의 로고송을 부르는 ‘제왕’ 김건모라니.
아! ‘되고 송’을 말하는 건가? 그 광고 편집을 맡았던 기획사 직원이 절친한 친구다. 어느 날 갑자기 “건모야, 이런 노래가 있는데 한 번 불러볼래?”라고 물어보더라. 뭐, 멜로디도 재밌고 콘셉트도 나쁘지 않았다. 더군다나 친구랍시고 2백만원이나 더 챙겨줬는데 뭘 더 바라겠나?(웃음) 때마침 별다르게 할 일도 없었던 터라 냉큼 받아서 한 거지.

그렇지만 당신은 지금껏 한국 기네스북에 남아 있는, 전무후무한 단일 앨범 2백80만 장 판매를 기록한 그야말로 ‘제왕’이었다. 비록 2000년대 들어 활동이 뜸하긴 했지만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라는 사실은 지금껏 변함이 없다. 대놓고 말하자면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렀더라도 ‘격’을 유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 ‘격’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지금껏 사람들은 항상 내게 이렇게 말해왔다. “이제 이룰 건 다 이루셨잖아요? 앞으로는 지금껏 얻은 인기를 쭉 지켜나가기만 하면 되겠네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가? 맞다. 3집이 대히트를 기록한 다음 스스로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세상 최고라는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 때였지. (김)창환이 형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던 것도 맞다. 스물여섯에 데뷔한 뒤 서른 즈음에 가수로서 최고 위치에 올랐던 당시의 나는 솔직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생각해보라. 앨범을 내는 족족 줄줄이 메가 히트를 치는데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이 두려웠겠는가? 그런데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절정이어야 할 30대 들어 나는 오히려 진창에 빠져 허덕이고만 있었다. 후배들은 자꾸만 치고 올라오고, 인기는 나날이 줄어만 가는데 이미 총알을 다 써버린 나는 빈 소총만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이디어는 고갈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어도 혹시라도 앨범 판매에 영향을 줄까 싶어 주저하게 되고. 그 극심한 스트레스가 당신도 익히 알고 있는 그 해프닝들로 표출된 거다. 1백만 장을 넘기지 못하면 은퇴하겠다는 둥, TV 출연을 중단하고 오로지 라이브 공연과 앨범만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둥. 그렇게 무수한 시간들을 별 의미 없이 날려버리고 난 다음, 마흔둘이 된 지금에야 깨닫게 된 소중한 교훈이 있다.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살자.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말고 그냥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자. 일이건 여자건 오는 것 막지 말고, 가는 것 잡지 말자. 사실 돈도 충분히 벌었고, 남자로서 웬만한 것들도 다 누려봤는데 아쉬울 게 뭐가 있을까, 싶은 거다. 왜 있잖은가? ‘허허실실’ 전략이라고.(웃음)

그렇다면 차라리 진즉 은퇴하는 길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니 왜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적절한 시기에 은퇴한 다음 좋은 이미지만 간직한 채 편안하게 ‘대선배’ 대우를 받으며 잘살고 있는 동년배 가수들도 참 많다.
당연히도 ‘내가 왜 남의 눈치를 보느라 이렇게도 좋아하는 노래를 손에서 놓아야 하는가?’라는 멘트가 모범 답안이겠지. 그냥 툭 터놓고 이야기하자. 솔직히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심각하게 은퇴할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어느 날, 주변 지인들이 하나 둘 나를 슬슬 피하는 걸 감지하고 나서였다. “건모야, 너 눈빛이 너무 무서워졌다. 사람들에게도 까칠해졌고. 너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 같이 앉아 있기도 부담스럽다”라는 게 그들의 조심스러운 지적이었다. 큰 쇼크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당시 찍은 사진들 모두 하나같이 입술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독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무엇보다 밤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우울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도저히 잠이 들지 않는 기나긴 밤이 이어졌다. 아마 술이라는 좋은 친구가 없었더라면 진즉 머리가 돌아버렸을 것이다. 그 즈음의 심경이 집약된 노래가 바로 ‘반성문’이다. 난생 처음 다른 것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심경을 담아낸 노래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가, 쓸데없이 눈만 높아져서 정작 중요한 것은 잊고 살았다는 회한을 ‘그동안 내가 놓쳤던 여자들의 목록’이라는 소재에 빗대 풀어낸 것이다. 솔직하게 쓸쓸한 감성을 마음껏 표출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 나서 (김)창환이 형을 다시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프로듀서와 함께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긴 세월을 격렬하게 관통해온 지난 인생을 노래에 담고 싶다는 가수로서의 마지막 욕심이 뭉클 솟아오른 것이다.
어느덧 데뷔한 지 16년이 흘렀다. 한국 가요계의 경향도 180도 바뀌었고, 재기 발랄한 후배 가수들도 넘쳐나고 있다. 지금 당신의 음악이 갖고 있는 효용성은 무엇인가? 2008년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가수 김건모’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기가 과연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비장의 무기? 그런 것 없다. 7월 말에 발매될 새 앨범의 타이틀을 ‘펑키앤소울’로 달았지만 그건 굳이 12집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이제는 마음 편하게 노래를 하는 것,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엊그제 방송된 <김정은의 초콜릿>이라는 토크쇼, 혹시 보았나? 혹자는 “데뷔 17년차 가수의 ‘가오’가 있지 후반부에 고작 10분 정도 나올 거면 뭐하러 그 먼 곳까지 갔느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 날 작업은 무척 좋았다. 후배 구준엽의 디제잉에 맞춰 지난 히트 곡들을 새롭게 변주해보는 것은 낯설면서도 설레는 체험이었다. 뭐, 어떤가? 난 지금이 가장 마음 편하고 즐거운데.

그렇다면 새 앨범에서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지난 과거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어떤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난 이제 더 이상 내 노래를 놓고 ‘알앤비’니, ‘솔’이니 하는 분류를 하지 않는다. 레이 찰스가 내 이상향이라는 번드르한 멘트도 내뱉지 않는다. 새롭고 놀라운 혁신을 보여줘야겠다는 강박관념 또한 당연히 없다. 나는 그저 내 노래에 길들여져 있는 과거 팬들의 감성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는 나만의 노래를 만들고, 부를 것이다. 다만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중고생이 되었을 때 “야! 아빠가 왕년에 미쳐 있었던 가수 김건모가 새 앨범을 냈는데 한 번 들어볼래? 죽이지 않냐!”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요즘 세대에게 촌스럽다고 핀잔을 들으면 창피하잖냐.(웃음)
참, 이건 아직 비밀인데 요즘 남몰래 기타 연습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후배들 앞에 ‘서프라이즈!’를 외치며 나타나기 위해서다.(웃음) 마흔이 넘은 지금에야 이런 욕심이 생겼다. 피아노만큼 기타도 잘 쳤으면 좋겠다는 욕심 말이다. 나중에 예순이 되어서 무대 위에 섰을 때 기타 하나 다루지 못하고 썰렁하니 마이크만 잡고 있으면 너무 창피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요즘 기타 잘 치는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기타 리프 잡는 법을 물어보고, 열심히 배우고 있다.

아니, 천하의 김건모가 후배에게 기타 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뭐, 어떤가? 지금껏 기타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분야에서는 신인이나 마찬가지다. 얼마 전 <윤도현의 러브레터> 300회 특집에 나갔을 때 탤런트 지현우와 함께 무대에 섰다. 그런데 그 녀석 기타 리프 정말 ‘쥑’이대! 그렇게 악기 연주 잘하고, 노래 잘하는 배우는 난생 처음 봤다. 즉석에서 30분 동안 기타 치는 법을 전수받았지, 뭐. 처음에는 “아니, 건모 형. 도대체 왜 그러세요”라고 뻘쭘해하던 현우가 내 진지한 눈빛을 보고 나더니 가장 좋아하는 곡을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 멋들어지게 연주해내더라. 음악을 한다는 건 이런 거다. 서로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

인터뷰 내내 마흔이 넘고 나서 마음이 정말 편해졌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요즘이 그렇게도 좋은가? 분명 당신 인생의 최절정기였던 30대에 대한 아릿한 기억이 남았을 법도 한대. 그리고 솔직히 말해 아직 20~30대에 머물러 있는 우리로서는 마흔이 넘으면 남자로서의 매력은 모두 사그라지고 그야말로 인생의 황혼을 향해 달려가는 것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웃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좋다. 서툴렀던 청춘을 격렬하게 관통하는 동안 온몸으로 익힌 삶의 교훈이 은근하게 배어나는 지금이 정말 마음 편하다. 그리고 과학 기술이 발달한 요즘 마흔이 뭐, 옛날 마흔인가? 누릴 것 다 누리며 잘살 수 있다. 참, 당신이 혹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마흔이 넘으면 여자에게 훨씬 더 잘 어필할 수 있다. 정말이다.(웃음) 솔직히 여자를 만날 때는 지나치게 의기소침한 것도, 쓸데없이 자신을 부풀리는 것도 모두 쥐약이지 않은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20대 때는 당연히 자신감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한창 활발한 사회 생활을 이어가는 30대 때는 쓸데없이 오만해지고 자존심만 앞세우다 좋은 여자를 떠나보내기 십상이다. 마흔이 넘으면 이런 게 다 내려다보인다. 무엇보다 가진 자의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제 웬만큼 돈도 벌었고, 사회적인 위치도 튼튼하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넉넉해 보인다. 이따 인터뷰 끝나고 포장마차에 같이 가볼까? 남자가 40대가 되면 소주에 닭똥집 안주만 앞에 놓고도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겠다.(웃음)

참, 그러고 보니 ‘김건모’ 하면 젊었을 때부터 여자에게 한 인기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지.
무슨 소리. ‘잘못된 만남’이라는 노래가 왜 나왔겠나. 그 노래는 당시 뺀질뺀질한 것으로 유명한 지인에게 여자를 빼앗긴 내 절절한 체험이 담긴 노래다.(웃음)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하하. 맞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만나본 사람들 중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잘못된 만남’의 가사와 비슷한 경험 한 번쯤 안 해본 남자가 없더라. 사는 건 다 그런 거다. 그래서 나는 ‘사랑 노래’가 참 좋다. 누군가는 통속적이라고 비판할지언정 나이, 지위, 성별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테마는 역시 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이를 더 먹더라도 나는 지나간 사랑의 상처와 앞으로 다가올 사랑에 대한 기대를 담은 노래를 줄기차게 만들고, 부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수 김건모’가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물일 테니까.

`오빠`가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쓸쓸한 귀환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어지기 마련`이라는 옛말로 위안을 삼기에는 하강했던 지난 세월이 길었기 때문일 게다. 맞다. 분명 김건모의 화려한 날은 `갔다`. 그렇지만 김건모는 그저 웃는다. 청춘의 최절정에 섰을 때 억지로 지어 보였던 그 어색한 웃음이 아니라, 이마에 깊이 아로새겨진 주름 속에 깃든 세월의 흔적을 따라 그렇게 소탈하게 웃어젖힌다. &lt;br&gt;&lt;br&gt;[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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