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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기자 다이어리

한 분야를 열심히 파다 보면,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상태에 이른다. 이른바 `전문가`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담당 분야에서 오래 뒹군 기자는 연륜보다 깊은 정보와 지혜와 인맥을 갖추게 된다. `전문 기자`로 활약 중인 각 분야 8인의 다이어리를 모았다. 아무쪼록 동굴을 파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라. 분명 그 안엔 아찔한 광경이 숨어 있을 것이니.<br><br>[2008년 5월호]

UpdatedOn April 25, 2008

Editor 이지영 illustration 장재훈

1 정치 전문 기자

‘와대.’ 기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청와대를 이렇게 부른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것이 흡사 학교를 다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춘추관(春秋館). 기자들이 상주하는, 쉽게 말해 청와대 안에 있는 프레스센터 주소다. 2층에 대통령 기자회견장이 마련되어 있는 춘추관의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 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예문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취재하겠노라 등록한 기자들은 중앙과 지방 신문, 방송, 카메라, 사진 등등을 포함해 3백 명이 넘는다. 물론 모두 항시 이곳에 대기하면서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이곳에 출근해(일반 독서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공간으로) 각자 주어진 책상에 앉아 당일 벌어지는 일정과 이슈들을 취재한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비서동이 기자들에게 폐쇄된 이후 아직까지 대통령 비서관들이 있는 곳은 기자들에게 출입 금지 구역(Off-limit)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서 기자들에게 정책과 국정 철학 등에 대해 설명해줄 관계자들은 이제 쉽게 만날 수 없다. 그러니 취재 갈증은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브리핑을 통해 해소하는 편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공식 브리핑은 ‘알맹이’가 별로 없다. 기삿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가 안 나온다는 이야기다. 기록으로 남는 공식 브리핑 시간이기 때문에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을 아끼고 몸을 사린다. 그래서 기자들은 그들이 단상에서 내려오는 순간을 기다린다. 카메라가 꺼지게 되는 그때! 기자들은 관계자를 우르르 에워싸고 민감한 사항들에 대해 산발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때 백브리핑(Back-briefing)이 이루어진다. 즉, 실명을 거론하지 않거나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관계자들이 입을 여는 것이다.
청와대에 출입하는 기자라고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대통령은 매일 보시나요?”다. “아니요. 매일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대통령 일정은 기자들끼리 풀(Pool)단이라는 것을 구성해 돌아가면서 취재를 한다. 물론 이 풀단에는 모든 기자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동등한 여건에서 취재하고 싶어하는 비(非)풀단 기자들은 불만이 많다. 대통령은 이렇듯 행사나 아니면 춘추관에 깜짝 ‘출현’할 때 직접 만난다. 여기서 청와대 취재 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모든 행사는 종료 시까지 기본적으로 엠바고 사항이라는 것이다. 엠바고(Embargo)란 합의나 요청에 의해 기자들이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자제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통령 일정은 경호와 의전상 등의 이유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엠바고가 걸려 있다. 최근에 이 엠바고가 깨져 행사 자체가 취소된 경우가 있었다. 바로 3월 29일 예정되었던 프로야구 개막 경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시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일정이 한 스포츠지를 통해 사전 공개되면서 대통령 경호처에 비상이 걸렸다. 참석 인원이 제한되지 않고 사전 스크린이 불가능한, 수만 명의 불특정 다수가 운집하는 야구장에 대통령이 ‘뜰 거다’라는 계획이 미리 알려졌으니, 사람 통제는 어떻게 할 것이며 대통령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하겠나. 그리하여 경호상의 이유로 대통령의 시구 계획은 취소된 바 있다.
대통령이 한 번 ‘뜨면’ 파급 효과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출입 기자들에게도 미리 공지되지 않는 일정들도 꽤 있다.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경찰서를 직접 찾았던 것이 한 예다. 대통령이 경찰의 부실 수사에 ‘화가 나서’ 서를 직접 찾기로 결정한 것은 3월 31일 당일 오전. 이미 현장에는 많은 사회부 기자들이 사건을 취재하고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고, 대통령의 방문 계획이 사전에 알려지면 일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청와대는 동행 취재하는 기자들에게조차 정확한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동 차량이 일산으로 빠지는 강변북로에 들어섰을 때에야 기자들이 ‘알아서’ 눈치를 챘다고 하니, 공지되지 않는 대통령 일정을 사전에 보도하는 것은 특종 아닌 특종이 될 수 있다.
청와대는 정부의 수뇌부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모든 뉴스들에 대해 청와대가 ‘반응’하길 기대한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민감한 사항일수록 최대한 말을 아낀다. 그래서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춘추관을 지키며 대통령의, 그의 참모들의 입이 열리길 기다린다. 그리고 바란다. 우수한 성적으로 이 ‘와대’를 졸업하길.

성태경(아리랑 TV)

2 야구 전문 기자

아침 8시 30분. 오늘도 늦었다. 아찔하다. 부장은 데스크 회의에 들어갔을 것이고, 아침 기사 메뉴는 올려놓질 못했다. 젠장, 전화로라도 불러놓을걸. 이럴 때는 예전부터 써먹던 방법을 꺼내는 수밖에 없다.
부원들이 주욱 책상에 앉아 있다. 표정을 심하게 구기고 의자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후우 하고 한숨을 쉰다. “에이 xx.” 데스크 지면 회의를 마치고 온 부장도 이 모습을 보면 일단 말을 못 건다. 화도 못 낸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겠지.
이 방법을 너무 써먹었다. 매년 계절별로 한 번씩은 사용해서 이제 잘 안 통한다. 정말 꾸준하다. 스포츠신문 야구부의 아침은 꾸준하게 힘들고, 꾸준하게 바쁘다. 그리고 시장통이다.
롯데가 잘나간다. 매년 그래 왔고, 올해도 또 속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일단 롯데 위주의 지면 제작이 필요하다. 후배에게 몇 가지를 지시한다. “야마는 로이스터야. 너도 알겠지만…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야. 그냥 발가벗겨봐. 24시간 취재한다고 생각하고 로이스터의 모든 걸 한번 처리해보자.”
언제나 말은 쉽다. 내가 2~3년차 때 과연 그랬던가. 그렇게 열심히 했던가. 오히려 그때 놓친 게 많아서, 그때 아쉬운 게 많아서 이슈가 터지면 주문이 더 많은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언제나 지시는 쉽다.
아침 1면은 로이스터 윈드 재킷이 3일 만에 불티나게 팔렸다는 이야기다. 이 내용은 그날 아침 연합뉴스에도 떠 있다. 한 번 틀어주는 게 중요하다. 재킷을 공급하는 롯데, 즉 공급자 시점에서 취재하지 말고, 재킷 사지 못한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왜 그 재킷을 그렇게 사고 싶어하는지 그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이것 역시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쉽고 간결하게 지시를 내린다.
지시를 하나 더 해봤다. 롯데 팬의 심리학 취재. 왜 롯데, 부산 팬들은 매년 4월, 5월이면 그렇게 미치는지. 그리고 여름이 가기 전 4강 탈락이 확실시되면 썰물 빠지듯 야구장에서 빠져 나간 뒤 다시금 내년을 기약하는지. 루저(Loser)의 심리학쯤 되겠다.
전쟁 같은 아침 마감이 끝났다. 기사 몇 꼭지를 썼던가. 아, 오늘은 안 썼구나. 메이저리그 외신 정리를 하는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담배만 반 갑 소화. 봉지 커피 두 잔. 대개 기자 8~10명 정도 규모의 야구팀, 또는 스포츠 2팀이 각 스포츠신문사마다 있다. 이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약 6.5면 정도의 기사를 토해낸다. 야구란 게임, 야구란 스포츠는 스포츠신문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게임이 치러진다. 기록이 나오고, 스타가 탄생한다. 갈등이 벌어지고 이 와중에 배시시 웃음 짓게 하는 에피소드가 태어난다.
오전 11시 30분께. 석간신문들의 점심 시간이 대개 이때부터 이뤄진다. 일반 직장인보다 딱 하나 좋은 점 아닐까. 30분 먼저 느긋하게 식당을 차지해 때로는 소주잔을 기울인다. 요즘이야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점심에 반주를 곁들이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15년 전, 90년대 중반만 해도 매일같이 반주 곁들인 식사를 했다. 고역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식사 시간을 어떻게 치러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LG-삼성의 잠실 경기. 오후 6시 30분 게임 시작보다 약 3시간 전에 도착, 사전 취재를 시작한다(게으른 기자 중엔 일찍 와서도 더그아웃에 안 내려오는 이들, 분명히 있다. 또 어떨 때는 현장 취재 없이도 더 유려한 ‘초치기’ 문장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는 이도 더러 있다. 그러나 역시 금세 들통난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놈들을 이겨내지 못한다. 하물며 현장에 와서도 기자실에만 박혀 있으면?).
인터넷 매체가 무척 많아졌다. 잠실 같은 경우엔 대개 10개 이상의 매체가 몰려든다. 취재 경쟁이 이뤄질 듯하지만 의외로 조용하다. 더그아웃에 있는 감독에게 질문 진행은 아무래도 고참들이 주도하게 마련이다. 대부분 취재원들이 그렇지만 수첩을 꺼내들고 막 적어대는 것 싫어한다. 취조당하는 기분일 게다. 안면이 있으니 편하게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다.
“선 감독, 요즘엔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지방간 수치가 무척 높았잖아요.”
“아유, 지난달 검사했더니 수치가 뚝 내려갔습니다. 시즌 시작하면서 고민 많이 했는데 다행입니다.”
이런 식이다. 대개 3분의 2 이상이 야구 이외의 것, 또는 야구 언저리 이야기로 진행된다. 선문답처럼 진행되는, 느슨한 대화 진행에도 분명 ‘야마’는 있다. 찾아내는 것은 기자의 몫이다.
“저기, 감독님. 컨트롤이 좋은 투수는 어떤 투수죠?”
아아, 최악의 질문. 수습을 갓 뗀 놈으로 보인다. 침 꿀떡꿀떡 삼키고 있다가 회심의 질문이란 듯이 건넨다. 선동열 감독이 한참 쳐다보다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자, 선 감독과의 대화는 여기서 그칠 때가 됐다. 상대 더그아웃으로 이동할 때다. 어쨌든 야구장에 가면 꼭 이런 기자들이 있다.
경기가 시작됐다. 시작에 앞서 랩톱 컴퓨터로 사전 취재한 내용들을 때로는 가십, 때로는 말풍선 등으로 처리해 다양하게 보낸다. 누가 이기고 지고는 크게 상관없다. 과정이 중요하고, 그걸 이끌어낸 사람이 중요하다. 과정의 중요함은 멋들어진 분석 박스로 탄생될 수 있다. 담당 기자들도 잘 모르던 스타가 탄생한다면, 그간 담당 팀을 어떻게 취재했는지 역량이 금세 드러난다. 기자는 대개 같은 사건, 같은 내용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승부가 확연하게 갈리지 않던가.
제기랄, 연장전에 돌입했다. 밤 10시 30분이 넘었다. 일간스포츠 저녁 53판 강판 시간이다. 아무리 늦어도 10분 전, 즉 10시 20분쯤에는 동점 상황까지 상보를 어슴푸레 써서 전송해야 한다. 끝내기 안타가 나와 승부가 결정될 경우엔 서울 가판 마감 처리를 해야 한다. 경기 결과가 제대로 실리지 않아 아침 항의 전화를 받는 것은 데스크의 몫이다.
밤 11시 10분. 연장 13회 경기가 LG 선수의 끝내기 홈런으로 가름 났다. ‘누구의 끝내기 포로 어쩌고’를 앞에 한 줄 붙여서 부랴부랴 전송한다. 업무 마감. 집에 돌아가면 새벽 1시다.

김성원(<일간스포츠>)

3 사회 전문 기자

신문사에서 야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제보 전화를 받는다. 이 가운데에는 그 다음날 신문에 경천동지할 뉴스가 되는 따끈따끈한 정보일 경우도 있(으면 아주 좋겠지만 생각보다 그런 경우는 많지 않)고, 제보 전화라기보다는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참 잘 썼다”는 격려 전화도 있다. 또 몇 마디 나눈 후 다짜고짜 욕부터 내지르는 과격한 이도 아주 가끔 있고, 기자와 끝장 토론을 해보자는 엉뚱한 제안도 있다. 사소한 것이라 기록을 하지는 않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기억에 남는 ‘제보 전화’ 몇 케이스를 소개해본다.
에피소드 하나. 왁자지껄한 목소리 틈에 들려오는 높은 톤의 목소리. “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잠실야구장 첫 홈런의 주인공이 류중일인가요? 이만수인가요?” “예?” “정말 죄송한데, 술 먹다가 친구랑 술값 내기를 했는데, 마땅히 확인해주는 곳이 없어서요….”
그놈의 호기심이 문제였다. 바쁜 와중이었지만, 옛 신문을 뒤졌다. 1982년 7월, 당시 잠실야구장의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우수 고교 초청 야구’ 부산고-경북고 결승전. “6회말 선두 타자로 나온 류중일은 부산고 좌완 에이스 김종석과 풀카운트의 씨름 끝에 통쾌한 좌월 역전 솔로 홈런을 날려 3만여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한국일보> 1982년 7월 18일자 9면).” 잠실야구장 1호 홈런이었다. 내기에서 이긴 목소리의 주인공은 연신 “고맙다”고 했고, 그 사이 일이 밀린 기자는 편집부의 눈총을 샀다.
에피소드 둘. 밤 12시가 넘었을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는 첫 마디부터 취기가 묻어났다. “80년대부터 민주화 하자고 소리치던 XXX 신문사 맞죠?” “예, 그렇죠.” “그런데 왜 이렇게 살기 힘들어졌죠? 민주화를 하는 게 맞은 거였나요? 민주화를 하자고 했던 사람들이 답 좀 해봐요.”
난감한 질문이다. 몇 마디가 더 오갔지만, 전화를 건 사람이 원한 것은 애당초 기자의 답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따질 듯한 목소리는 높아졌고, 이내 욕이 섞였다. 이쯤 되면 통화를 계속할 이유가 없어진다. 전화를 끊겠노라고 말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그날 밤 그는 열 통이 넘게 전화를 걸었고, 야근 업무를 계속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결국 30분 동안 전화선을 뽑고, 그의 취기가 자연스럽게 가라앉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에피소드 셋. 걸려온 내용은 이렇다. 그의 말을 그대로 얘기하자면 가족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기 위해서 모의했다. 정신과 의사도 가족들의 꾐에 넘어갔다. 그는 모 도시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2년 4개월 동안 감금당했다. 모든 국가 권력 기관도 그의 아버지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갔다. 경찰·검찰·국정원· 청와대·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을 넣었지만 모두가 모른 체했다. 이 사실을 전하는 그의 말에선 긴장감이 넘쳤지만,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기자는 혹시나, 정말로 혹시나 싶어서 다음날 그가 감금당했다는 병원에 연락을 했지만, 그가 말한 이름의 병원은 존재하지도, 존재한 적도 없었다.
늦은 밤, 신문사 편집국으로 다이얼을 돌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의 질감은 다양하다. 기쁨과 분노, 실망과 좌절, 호기심과 편견 등 여러 가지 극단이 수화기 너머에서 뒤범벅이 되어 들려온다. 얘기를 듣다 보면 기자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수화기를 벽에다 냅다 집어던지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는 전화선 끝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결국 함께 웃기도 하며 진하게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사에 전화를 거는 이들 대부분은 사실 주변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외롭고 무기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생의 업보 때문에 앞으로 3생은 바퀴벌레로 태어날 저주를 불러온다는 ‘기자질’이지만, 이런 생생한 체험은 기자 생활이 가져다주는 축복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기자는 이른 마감을 마치고 회사에 야근을 하러 들어간다. 오늘은 낯선 목소리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잔뜩 기대되고, 또 두렵다.

김기태(<한겨레>)

4 여행 전문 기자

에피소드 하나. 90년대 후반쯤의 일이다. 새해를 며칠 앞둔 연말, 아내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책상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달력에는 출장으로 집에 들어오지 못한 날이 100여 일이 넘었고, 자정을 넘겨 들어온 날이 또 100여 일쯤 표시돼 있다. 하기야 1주일에 한 번 국내 출장을 갔고, 많으면 한 달에 한 번, 적어도 서너 달에 한 번씩은 해외 출장을 다녔으니 집에 들어간 날을 손에 꼽을 만했을 것이다. “여행도 일이라니까?” 이리저리 달래봤지만 아내의 화는 여간해서 풀리지 않았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아빠와의 만남이며 학부모 행사에 ‘아빠는 늘 출장 중’이었다는 핀잔만 들었다. “애들이 아파서 응급실에 달려갈 때 남편이 없으면 얼마나 서럽고 힘든 줄 알아?” 아내의 주장은 조목조목 다 들어맞았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없다.
그날 이후 휴일엔 약속을 잡지 않는다. 골프도 안 친다. 그때나 지금이나 출장은 여전히 많은데 그나마 휴일에 골프가방 메고 나간다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PGA 우승자들만 모여 대회를 연다는 하와이의 한 골프 리조트에 묵을 때도, 미셸 위가 연습한다는 골프 리조트를 찾았을 때도 그린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실제로 여행 담당 기자 중 골프 치는 사람은 드물다.
에피소드 둘. 타히티 이야기다. 타히티 보라보라 섬의 바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 몰디브의 바다는 연하디연한 푸른빛을 띠지만 타히티는 이런 연푸른 빛깔부터 진녹색 빛깔까지 다양한 색을 띤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신혼여행지다. 아니나 다를까 보라보라 섬에 남자 혼자 온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혼자면 어떠리, 태양을 즐기며 선탠을 하든지 수영이나 하다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여행 기자는 이 아름다운 바다를 즐기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 남들이 수영하고 있을 때 사진기를 들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커플에게 다가가 사진 한 방만 찍자고 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고, 해먹 위에 잠자는 미인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가 그녀의 험상궂은 남자친구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로 욕을 먹기도 했다.
왜 그리 사진이 중요하냐고? 사진은 형편없는데 기사만 아름답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그렇다고 현지 리조트 팸플릿을 얻어가거나 관광청에서 제공한 사진을 쓸 수도 없다. 굳이 자료를 제공받을 거면 신문사가 시간과 돈을 들여 기자를 타히티까지 보낼 필요가 없다. 느지막이 일어나 브런치를 먹고 해변에 나가 찬란한 태양 아래 선탠을 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1991년 입사해서 2년을 제외하곤 여행 담당 기자를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선탠베드에 누워본 적이 없다니…, 허~ 참.
에피소드 셋. 태백산에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여관집 주인은 자칫하면 길이 미끄럽고, 교통을 통제할지도 모른다고 서울로 빨리 올라가라고 채근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눈이 그치길 기다렸다가 산에 오르는 거였다. 눈은 조만간 그칠 거고, 2~3일 뒤에 도로 제설 작업이 끝나면 주말부터 등산객들이 설산 트레킹을 하러 올 게 뻔하다. 그렇다면 눈이 가장 좋을 때 사진도 찍고, 취재도 해야 한다. 여행 기자는 꽃피기 전에 꽃을 걱정해야 하고, 단풍이 채 들기 전에 단풍 기사를 준비해야 한다. 남들보다 ‘한 템포’ 빨리 살아야 한다.
그래도 여행 기자가 좋냐고? 물론이다. 세상에 산과 들과 바다가 취재원인 기자는 아마 여행 기자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을 한 발자국 더 가까이서 보게 된다. 이를테면 달은 보름 다음날이 더 둥글고 크며, 5월쯤이면 서에서 동으로 바람이 불어 서울에서 속초까지 자전거 횡단 여행을 하기 좋다는 것도 알게 됐다. 노을은 해지고 난 20분 뒤가 가장 붉고, 해 뜨기 전의 새벽하늘은 푸른빛을 띤다…. 이렇게 자연에 더듬이를 맞추고 살면 더욱 잘 알게 된다. 여행 기자, 결코 편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지만 달도, 별도 다르게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다.

최병준(<경향신문>)

5 영화 전문 기자

나는 영화 주간지 기자다. 영화를 보고, 배우를 만나고, 감독과 얘기하고, 영화 자체와 그 주변머리의 크고 작은 일들을 취재한다. 그렇게 쓴 글로 먹고 사는 노동자다. 은행에서 돈 세는 일보다 그게 더 쉽고 더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살고 있는 거다. 사람들은 그런다. “영화 표 좀 줘!” 속으로 내뱉는 답은 명확하다. ‘사자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하지만 입으로는 웅얼거린다. “나는, 야, 에이, 뭐, 그냥, 야, 표는 없어, 그냥 보는 거야.” 미심쩍어 보이기 십상이다. 자기는 실컷 보면서 표 한 장 안 준다는 옹색한 인상 심어주기 딱 좋은 그런 시추에이션이다. 내가 영화를 ‘공짜’로 보는 스케줄을 짜드리겠다. 나처럼만 하면 일주일에 영화 대여섯 편 보는 건 껌도 아니다. 냉큼 따라 해보시길.
월요일(진짜 월요일): 출근한다. 오전에 회의가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 끝맺지 못한 특집 디테일 회의다. 길어봤자 한 시간이면 떡을 친다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 하나가 뜬다. ‘서울 거시기국제영화제 몇 월 며칠 개막 보도자료 보내드렸습니다.’ 다음 정거장에 채 서기도 전에 또 하나 뜬다. ‘영화 <뭐시기의 하루> 언론 배급 시사, 며칠 몇 시 어느 극장입니다.’ 아 까먹을 뻔했군, 내 담당인데. (여기서 ‘담당’이라 함은, 동사무소로 치면 호적, 민방위, 전입, 승용차 요일제, 선거, 지적제증명 등의 업무를 나눠 보는, 그런 담당과 본질적으로 많이 다르지 않다. 담당 영화사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내가 맡는다는 거다. 영화 보고, 프리뷰 쓰고, 배우 만나고, 기획 기사 쓰고….) 특집은 무슨! 겨우 월요일인데 내일부터 쓰지 뭐(하는 심정이다).
화요일(진짜 화요일): 화요일까지의 시사회는 그럭저럭 편집부의 여러 동료들이 함께 다닌다. 본인 담당이 아니더라도, 두루두루 연관성 있는 기사나 기획에 도움이 될까 해서다. 참고로 이거 모르는 분들 꽤 많으실 텐데, 영화판(이쪽 사람들은 ‘영화계’라는 말 대신 ‘영화판’이라고 쓰고 말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물들었다)에선 점심을 먹고 딱 배부르고 딱 졸리고 딱 무너지기 쉬운 오후 2시에 거의 매일 언론(배급) 시사회라는 걸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월화수목금 거의 내내 그렇다. 그 시간에 시사회를 못 잡은 영화는 오후 4시 30분에도 하고 아예 오전 10시 30분이나 11시에 하기도 한다. 그랬는데도 담당 영화를 못 보는 사람은 대략 저녁 8시 30분~9시쯤 있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에 가기도 한다. 나는 최고, 그렇게 하루에 다섯 편까지 영화를 본 적도 있다. 아침에 한 편, 오후에 두 편, 저녁에 한 편, 그리고 집에서 DVD로 또 한 편! 좋겠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거, 안구 혹사와 신체의 하방 경직성을 동반한 정신적 손실이 비일비재한 중노동이다.
목요일(가짜 수요일): 월요일, 화요일에 틈틈이 고정 기사들을 넘겨놓지 않았던들 나는 이 가짜 수요일(목요일)을 떳떳하게 맞을 수 없으리. 화요일 다음에 바로 목요일이 오는 건, 어쩌면 나의 유비무환주의 때문일 수도 있다. ‘미리 해놓지 않으면 이미 늦어버린 것과 같다’(는 명언(!)을 지금 만들어놓고 뿌듯해하고 있다)! 주간지에서 하루는 월간지의 일주일만큼이나 치명적이다. 그렇다고 수요일에 운동복 차림으로 나타나는 쟤는 뭐래!
목요일(진짜 목요일): 전날 샌 밤의 잔재가 아직도 다크 서클로 형상화된 날. 하필 그런 날 <응응응은 참아줘요> 제작 보고회가 있는 건 뭐냐. 무뎌질 대로 무뎌진 몸을 이끌고 허위허위 거기로 간다. 오오! 가오리다! 내가 가장 흠냐흠냐해 마지않는 톱스타 중에서도 킹왕짱 톱스타, 가오리! 그래, 이런 와중에 저런 위안이라도 있으니 내 살고 있지. 저 배우의 <응응응은 참아줘요>가 있는 한 아직 당분간은 그만두겠단 생각일랑 말아야지. 이건 숫제 항정신성이다. 참고로 제작보고회는 ‘우리 영화 어떻게 찍었습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하는 취지에서 기자들 모아놓고 자랑하는 자리다. 시사회 날 배우들이 하는 무대 인사의 전초전이라 보면 맞다. 영화 프로그램 같은 데서 많이들 보셨으리라.
금요일(첫 번째 금요일): 이 금요일은 이번 일주일과 다음 일주일을 결정짓는 주요 분수령이다. 이 주 마감과 다음 주 기획이 동시에 진행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교정 교열을 봐야 하고 머리로는 다음 주 아이템을 생각해야 하며 두 손으로는 자료를 뒤적여야 한다. 하이테크 휴머노이드라도 돼야 할 판이다. 그 와중에 인터뷰 스케줄도 잡아야 하고, 스튜디오와 연락도 해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기사 배열에 맞춰 러프 스케치도 해야 한다. 당최 밥은 언제쯤 먹을 수 있는 거냐.
금요일(두 번째 금요일, 사실은 토요일): 차분하게 다음 주 기사에 대해 숙고해야 할 시간, 술 약속이 막 집중된다. 영화사 사람들과의 술자리다. 그제야 비로소 온갖 비사와 야사가 쏟아져 나오고, 허심탄회 솔직담백한 영화 얘기도 주고받는 자리다. 배우와 감독을 헐뜯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도 약속을 잡자는 영화사 언니의 메신저가 깜빡거린다.) 물론 건설적인 얘기가 더 많이 오간다. 그래서 만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런 자리가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진다. 2차는 지양하는 건전한 문화는 여기엔 거의 없다. 1차 끝나면 으레 집으로 간다. 술집으로, 다른 술집으로. 회 못 먹는 사람 있으면 횟집으로 가고, 소주 못 먹는 사람 있으면 소줏집으로 간다. 나름 입을 줄이기 위해서다. 아무튼 그래서 진정한 주말은 띵한 머리로 시작되기 일쑤다.
일요일(그냥 일요일): 가급적 잔다. 짜파게티 요리사는 애당초 포기했다. 오후쯤 TV를 틀었는데 혹여 마라톤 중계라도 하고 있으면 한마디 중얼거리고 또 잔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자, 이렇게만 살면 영화, 공짜로 일주일에 몇 편은 볼 수 있다.

송지환(<무비위크>)

6 경제 전문 기자

경제신문 기자는 ‘길목’을 잘 지켜야 한다. 그래야 특종이 가능하다. 길목은 대개 ‘일정’이다. 예컨대 재계의 주요 인물이 외국 투자회사와 만나는 약속이 잡혀 있다면, 중요한 뉴스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일정을 사전에 입수했느냐에 따라 특종과 낙종의 희비가 엇갈린다.
길목은 때로 ‘사람’에게서 나온다. 중요한 정보를 줄 만한 사람을 차근차근 잘 사귀는 게 중요한 이유다. 선배들은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후배 기자들에게 ‘사무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사무관 때부터 잘 사귀어놓으면, 이들이 고위 공직자가 됐을 때 정보를 얻기 쉽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맥 관리’다.
이 길목이 ‘보도자료’에서 자주 나온다는 사실은 기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자료만 꼼꼼히 뜯어봐도 특종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2005년 9월의 일이다. 당시 부동산 기자로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의 국정감사 현장에 나가 있었다. 국회의원들은 국감 때마다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치열한 ‘자료 경쟁’을 벌이기 마련. 당시 경기도 분당의 주공 감사장 앞에는 30여 개의 보도자료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쓸 만한’ 기사를 건지기 위해 신문·방송·통신 기자들 간 경쟁은 만만치 않았다.
책상 앞에 보도자료를 층층이 쌓아놓고 하나씩 검토해 나가던 중 내 눈을 확 잡아끄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주공의 성남 신도시 개발 추진’. 여당의 한 의원 보좌관이 만든 자료엔 더이상 부연 설명이 없었다. 빽빽한 문장들 속에서 그 작은 문구가 얼마나 크게 보이던지….
수소문 끝에 자료를 만든 보좌관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국감 자료 준비를 하던 중 주공이 신도시 개발을 새로 추진 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분당·판교 외에 이 지역에 또 다른 신도시를 조성하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추가 취재에 들어갔다. 우선 주공 내 관련 태스크포스팀(TFT)이 있는지 알아봤다. 평소 알던 임원을 통해 관련 팀장을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주공이 판교에서 불과 1km 떨어진 성남 대장동 일대에 미국의 ‘비벌리힐스’와 같은 호화 전원주택 단지(1,289,262㎡ 규모)를 조성하려던 것은 사실이었다.
기사는 다음날 <한국경제신문> 1면 톱 기사로 단독 보도됐다. 주공은 처음엔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그 다음날 신도시 개발 계획이 사전에 유출됐다는 기사가 또 게재됐다. 일부 부동산 업자들이 도면까지 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가감 없이 전달됐다. 시민단체들은 사전 유출 의혹에 대해 조사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주공이 신도시 개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백지화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후였다. 주공 내 관련 팀도 해체됐다. 경찰은 집중 조사 끝에 대장동 개발 정보를 사전에 빼내 투기에 나섰던 성남시 공무원 등 22명을 붙잡았다.
기자들은 특종에 목을 맨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어서다. 요즘엔 단순히 사내 특종상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자를 평가하고 연봉에 반영한다. 특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배경이다. 오늘도 나만의 ‘길목’을 지키고 찾기 위해 기자들은 포성 없는 전선(戰線)에 나선다.

조재길(<한국경제신문>)

7 자동차 전문 기자

“여보, 나 이 차 사줘.” 유럽 메이커의 디젤 해치백을 타고 남해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난 아내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연비가 얼마나 환상적인지, 승차감은 또 어찌나 훌륭한지, 실내 품질과 쓰임새는 또 얼마나 뛰어난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휴대폰 속 아내에게선 ‘이 남자 또 시작했군’ 하는 듯 귀에 익은 한숨 소리. 마음에 드는 차를 만났을 때면 어김없이 시작하는 ‘사줘’ 타령이 벌써 몇 년짼가. 질리다 못해 이젠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아내는 그래도 성의껏 맞장구를 쳐준다. “그래, 사자. 그 차 얼만데?” “으응, 3천만원 후반….” 아내도 알고 나도 안다. 그래 봐야 결국 사지는 못하고 들뜬 기분으로 카탈로그만 뒤적거리다 말 거란 걸. 영화지 기자가 영화를 보고 건축지 기자가 건축물을 살피듯 자동차지 기자는 차를 보고 만지고 운전하는 게 주된 업무다. 마냥 보고 만지고 운전하면 그만일 것을 걸핏하면 감동하고 흥에 겨워하다가 마침내는 끓어오르는 물욕에 몸살을 앓는다. 어쩌다 한 번 발동하는 물욕의 대상이 대부분 내 연봉보다 비싼 차라는 게 더 큰 문제겠지만.
그래도 좋은 차를 타보기만 하는 거라면 행복할 테지만 그럼 그게 시간 많고 돈은 더 많은 한량이지 어디 기자겠나. 독자들에게 내가 타본 차의 이런 점이 좋고 저런 점은 보완해야겠다고 설명하기 위해 자동차 전문지 기자들은 매일같이 자동차와 대화를 시도한다. 말도 안 통하는 차와 무슨 대화냐겠지만 사실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넌 누구세요’부터 ‘넌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세요’까지 나름 기승전결에 맞춰 궁금한 걸 묻고 피드백을 받는다. 운전대를 잡은 손으로는 차의 움직임을 읽고 시트에 얹은 엉덩이로 전해오는 노면 진동을 통해선 승차감을 이해한다. 눈과 귀와 코, 손과 발과 몸을 통해 채집한 느낌과 정보를 통해서 차마다 다른 미묘한 감성을 읽어들이고 그렇게 모인 데이터를 종합해서 그 차의 성격을 이해해간다. 대단히 예민한 감각 능력을 지녀서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잘 나간다, 답답하다, 멋지다, 못생겼다로 표현하는 걸 조금 더 정교하고 적확한 말로 전달하기 위해 아주 조금 더 신경 써 살필 뿐이다. 그런데 자동차도 그야말로 성격 나름이라 대화가 통하는 차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찌르고 윽박질러도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수 없는 차도 있다. 그건 대체로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다가 지향점을 상실한 차이거나 이 사람도 좋아라 하고 저 사람도 좋아라 하라고 만든 보편타당한 대중차가 그렇다. 열흘 전 탔던 대형 세단, 오늘 아침에 반납한 대형 SUV가 꼭 그랬다. 이런 차를 만났을 땐 정말 당혹스럽다. 차라리 내가 제 아비인지도 모르고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응애응애뿐인 2개월짜리 아들과 대화하는 게 속 편하다.
예의 탐스러운 디젤차를 타고 서울 언저리에 당도할 무렵, 또 다른 유럽 메이커의 홍보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님, 지난달 기사 잘 봤어요. 그런데 저희한테 서운한 게 있으셨나 봐요.” 서운했던 것도, 어떤 불순한 의도도 없었다고 설명하지만 다소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에 뾰로통해진 그녀의 목소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애정이 깊을수록 비평의 강도는 높아진다는 걸 이해해주면 좋으련만. 어떤 자동차 회사는 전문지 기사를 존중하고 또 어떤 불순한 자동차 회사는 기사의 토씨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판매나 광고를 운운한다. 비평을 사심 가득한 미끼로 바라보는 건 아직 이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 그러고 보면 우리 자동차 시장은 복부에만 잔뜩 살이 찐 중년 남자처럼 특정 메이커가 전체 시장을 절반 이상 점유하고 있다. 그 원인을 따져 묻다 보면 습자지처럼 얄팍한 한국의 자동차 문화를 들먹이게 되고 이는 다시 차 팔기에만 급급했던 어떤 메이커의 기업 정신, 아울러 그 기업을 보호하기에만 급급했던 국가 정책에까지 귀결된다.
그럭저럭 오해를 풀고 홍보 담당자의 전화를 끊는 그때, 술자리에서 건넨 선배의 덕담이 떠오른 건 어째서일까.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아껴주던 선배는 거나하게 취해 젓가락으로 타닥타닥 구워지는 곱창을 뒤집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넌 오래 해야 한다. 오래 해서 좋은 칼럼니스트가 돼야 해. 그럴 수 있지?” 유능한 기자는 많지만 유능한 칼럼니스트는 드문 자동차 전문지 시장. 그게 비단 먹고 살기 힘들어서만은 아니란 걸 적어도 나와 선배와 내 아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김형준(<모터 트렌드>)

8 패션&뷰티 전문 기자

4월 3일 AM 06:30, 노라 존스의 감미로운 목소리도 모닝콜 음악으로 들으면 짜증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점점 나오는 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우유 한 잔을 들이켜고 운동 가방을 든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내 보디라인은 솔직히 그리 퉁퉁하진 않다. 하지만 패션 기자로 살아남기 위해선 슬림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 모델에게 옷을 잘 입히는 것만큼이나 나의 스타일도 중요하다. 어떤 브랜드를 입고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가로 평가받는(대놓고 평가하진 않지만, 대부분 이 기준으로 서로를 평가한다) 패션 기자니까. 패션은 일종의 판타지라는데 아마도 나는 지금 잡을 수 없는 판타지를 좇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에잇, 그러면 어떠랴. 그 판타지가 항상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을.
AM 11:30, 청담동에 위치한 화려한 살바토레 페라가모 매장에 들른다. 오후에 있을 촬영을 위해 정신없이 제품을 고르고 함께 사용할 소품에 대해 고민하며 매장을 서성인다. 눈만 호사다. 맞은편에 새로 오픈한 ‘10 꼬르소 꼬모 서울’ 1층 카페로 달린다. ‘란스미어’라는 하이엔드 클래식 편집매장의 홍보 담당자와 점심 식사가 있다. 카페는 벌써부터 패피(패션 피플의 줄임말)들로 북적인다. 나라고 빠질 수 없지.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일도, 만들어진 트렌드를 향유하는 일도 모두 패션 기자의 몫이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정신없이 나오느라 옷도 헤어스타일도 엉망이다. 젠장.
건너편 테이블에 영화배우 K양과 패션모델 L군이 앉아 있다. “둘이 정말 사귀는 거야? 근데 좀 어울리긴 한다.” 뒤 테이블에 앉은 한 무리의 여자들이 수군거린다. ‘패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둘의 조합이 멋진 것은 사실이다.
4월 4일 AM 09:00, 아직도 아침 바람이 차다. 봄이 채 오지도 않았는데, 6월호에 실릴 여름 패션 화보 준비를 위한 미팅을 하러 가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남자 모델 캐스팅이 가능하다는 말에 벌써 마음이 들뜬다. 그래, 이 기분에 사는 거야. 촬영을 위해 어렵게 밀라노로 찾아가는 수고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
AM 10:30,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리바이스의 새로운 모델 공동 프로모션을 협의하는 자리로 재빨리 이동한다. 충격적인 콘셉트를 내세우는 것을 보니 이젠 패션 브랜드도 웬만큼 센 것 아니면 안 먹힌다는 한 동료의 얘기가 생각난다.
PM 11:00, 3건의 미팅과 2건의 행사 참석을 마친 후에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오늘 최소한 원고 3개는 넘겨야 한다.
4월 5일 AM 08:00, 취리히와 제네바에서 매년 열리는 하이엔드 워치와 주얼리 박람회 취재를 위해 공항 버스에 몸을 싣는다. 마감이 임박한 시점이라 마음이 무겁다. 옆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스튜어디스를 보니 왠지 웃음이 난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일이 힘들고 피곤한가 보다. 그래도 이게 웬 호사인가. 1년이나 앞선 유행을 접하고, 새로운 매장과 신제품들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으며, 세계적인 패션계의 거물이 그득한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란 이 모든 것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없는 스케줄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패셔너블한 에너지가 나를 이끌고 있다.
취리히까지는 12시간 정도 걸린다. 아무 방해 없이 푹 잘 수 있다. 이게 얼마 만인가, 5시간 이상의 수면 시간.

민병준(<아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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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지영
illustration 장재훈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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