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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있다

통영에 갔다. 이순신 장군이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에 갔다. 그곳에서 3명의 장인을 만났다.

UpdatedOn February 03, 2015


서양의 상업 브랜드들은 ‘장인’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자신들이 만든 물건이 장인의 혼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은 오래된 것들을 현재의 시간으로 끌고 나온다. 첨단을 상징하는 물건을 만들지만 그 원류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장인이 있을까? 우문이다. 장인, 오래된 것, 전통에 대해 우리는 관심이 없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1초라도 빨리 미래로 가기 위해 몸부림쳐왔다. 자원이 없는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선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전통이라는 자원은 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장인들이 ‘계시다’. 굉장히 멋지고 유용한 장인들!

통영에서 열린 <2014 KCDF 릴레이 비전 나눔식>에 다녀왔다. KCDF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이니셜이다. ‘비전 나눔식’은 공예·디자인 문화와 산업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마련되었다. 9월 30일 서울을 시작으로 공주와 광주를 거쳐 통영에서 막을 내렸다. 이날 KCDF가 발표한 중장기 정책의 골자는 대한민국 각 지역의 공예·디자인 문화를 발굴·지원하고 초석을 다진 후에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여러 정책이 발표되었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팔려야 할 것 아닌가? 팔려야 만들고, 누리고, 다시 만들 것 아닌가? 하지만 거듭, 전통 공예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다. 전통 공예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도 잘 모른다.

KCDF의 정책 발표가 끝난 후 통영의 공예 작가들, 종사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는데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안 들었다. 막막함을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체감했기 때문일까? 비전 나눔식이 끝난 후에 공방의 장인을 만나는 순서가 마련되었다. 낯설었다. 공방의 장인이라고? 정확한 명칭은 ‘통영12공방’이라고 한다. 솔직히 적으면서 이날 처음 알았다. 통영12공방은 이순신 장군이 머물던 삼도수군통제영에 1592년부터 있었다. 임진왜란 때 군수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전국의 공인들이 이곳에 모여 12공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통영시는 2011년 7월 통영12공방을 통영 전통 공예품을 일컫는 브랜드로 상표권을 등록했다. 당연히 지금은 군수 물자를 만들지 않고, 생활 용품을 만든다.

3명의 장인을 만났는데 소름 끼치도록 멋있었다. 나전장의 송방웅, 염장의 조대용, 두석장의 김극천이다. 나전장은 나전칠기를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송방웅 장인이 자개를 일일이 붙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선 자개를 붙일 검정 나무판을 혀로 문질렀다.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묻자 아교를 녹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옛날 선배들은 아교를 3리터를 먹어야 나전 장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혀로 녹이면 아교가 입에 들어간다. 그런 식으로 3리터를 먹으려면 평생이 걸려도 불가능할 것이다. 송방웅 장인의 말은 혼신과 희생에 대한 의지였다. 그는 자개를 한 가닥 한 가닥 침을 묻혀 붙였다. 종일 작업해도 작은 보석함 하나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전은 시간의 예술이다. 안타깝게도 속절없다. “굉장히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자개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감정이 내포된 것이다.

 

 


조대용은 염장이다. 염장은 대나무로 발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이 과정도 만만치 않다. 한 자리에 앉아서 얇은 대나무와 대나무를 실로 엮는다. 동시에 실로 무늬까지 집어넣는다. 조대용 장인의 왼편에 완성된 발이 걸려 있었는데, 무늬가 신기했다. 실로 저걸 어떻게 그리지,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단아하고도 화려했다. 이러한 정서는 온전히 우리 민족만의 것이다. 그런데 어릴 때 집에 발이 있었다. 그땐 감흥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땐 집에 다 있었다. 안방에 나전칠기로 만든 문갑도 있었다. 다시 또 생각해보면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니 모던 가구니 말을 하는데, 우리 전통 가구나 물건을 지칭하는 표현은 그럴듯한 게 없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가구 못지않게 세련된 것만은 분명하다. 아니, 더 멋지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예술의 경지다.

김극천은 두석장이다. 두석장은 놋쇠, 즉 황동을 잘라 장식을 만든다. 나전으로 만든 가구를 떠올려보자. 황동으로 만든 장식이 붙어 있다. 경첩과 고리도 두석장이 만든다. 김극천 장인은 두석장답게 얼굴이 용감무쌍하게 생겼다. 황동을 무쇠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내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장식을 보니 액자에 넣으면 작품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 상품으로 개발해도 될 것 같았다. 밤에 일정이 끝나고 호텔에 왔는데 복도에 황동으로 만든 장식이 걸려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김극천이라는 장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예술 상품으로 만든다는 게 혼자의 공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전칠기 가구나 대나무로 만든 발도 그렇다. 전국의 호텔 사장들이 전통 공예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을 걸어놓는 것 못지않게 전통 공예 작품을 전시하는 게 멋지다는 것을 알 텐데. KCDF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결국 전통 공예가 발달하기 위해선 어떻게 상업화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봐야 할까?

다음 날 오전 통영 서호시장에서 아침밥을 먹고 시장을 구경했다. 시장 구석에 대장간이 있었다. 한 어르신이 집게로 쇠를 집어 불구덩이 속에 넣었다. 한참을 달구더니 찬물로 잠시 식히고 망치로 두들겼다. 서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알 것 같았다. 전통 공예를 왜 부흥씩이나 시켜야 하는지.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서 오래된 것들이 명백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파이팅!
12월 4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통영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공예 유통 산업 진흥과 문화 확산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멋진 걸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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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KCDF

2015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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