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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김대리

<미생>의 김동식 대리는 내 친구다.진짜 이름은 김대명이다. 대명이는 낮은 자세로 삶을 견뎌왔다. 쉬지 않고 달려서 지금에 닿았다.

UpdatedOn December 03, 2014

파란색수트와 흰색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흰색 스니커즈는 카파, 검은색 가죽 밴드시계는 스와로브스키 제품

고등학교 때 대명이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우리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락을 안 했다. 그 사이 대명이는 배우가 됐다.
어느 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여전히 우리는 어릴 때 살던 그 동네에 산다.

<미생>이 반응이 좋아. 기분이 어때?
좋아. 그런데 잘 안 느끼려고 노력해.

그런 노력을 왜 하고 그래?
지금 그걸 느껴버리면 드라마 끝나고 나서 힘들어질 것 같아. 좋았구나, 안 좋았구나, 드라마 끝나고 생각하려고.

지금은 반응이 좋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잖아.

에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냐? 지금 반응이 좋고, 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얘기하니까 좀 누려도 돼.
아냐 아냐, 그런 감정은 보류하고 싶어. 나중에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고.

대명아, 우리가 만나지 않은 몇 년 동안 너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상처 많이 받았어?
꽤 기대한 때도 있었지. 내가 이제 풀리는구나, 라는 마음이 든 적도 있었고. 하지만 언젠가 깨달았어. 잘될 거야라고 기대했을 때 안 되면 더 힘들어진다는 거.

연극 하고 있다는 거 애들한테 들었었어.
응, 알아. 나도 네 연락처 받아서 갖고 있었어.

왜 전화 안 했어? 내가 도울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너한테 부담될까봐.

뭐가?
넌 기자니까. 너 신춘문예 당선한 거 보고 정말 기뻤어.

이해해. 나도 연락 못했으니까. 연극을 한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아주 조금 나도 알아.
그래, 무슨 마음인지 알아.

우리 둘 다 바보구나.
어, 맞아.

언제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거야? 학교 다닐 때는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고등학교 때 꿈은 시인이었어.

그래. 네가 시인이 되고 싶어 했어.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그런데 우리 둘이 바뀌었어.
고3 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어.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생겼어.

내가 자료를 찾아봤더니 스물네 살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더라고. 4년 동안은 뭐한 거야?
아르바이트하고, 다른 학교도 다녔고, 그러면서 연극영화학과 입시 보고 떨어지고.

나는 그냥 추측하는 건데, 연극 하면 힘들지? 가난하고 고되고 그런 거지?
그런데 난… 스물네 살에 학교 들어가자마자 입대했어. 제대하고 나서부터 활동을 시작했지.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를 운 좋게 하게 됐고, 오디션을 봐서 ‘학전’이란 극단에 들어갔어. 학전은 극단이 잘되든 안 되든 배우들한테 기본급은 줬어. 흥행 실적에 따라 얼마를 더 주기도 하고.

학전 출신이야? 엘리트네!
그 이후에 <지하철 1호선>을 하게 됐어. 사실 이 작품이 연극배우들한테는 꿈이거든.

화려했구나.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셨어?
아버지가 이러셨어. 나중에 뭐 먹고살려고 그러니? 그런데 요즘은 좋아하시는 것 같아.

당연하지. 이렇게 잘됐는데. 부모님이랑 같이 살지?
응. TV 바꿔드려야 해.

바꿔드려. 벽에 거는 걸로.
아직 출연료가 다 안 들어왔어. 허허허.

<미생>이 잘되고 있으니까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아니야. 내가 톱스타로서 촬영을 시작한 게 아니잖아. 돈 많으면 좋지. 예전엔 먹고 싶은 거 앞에 두고 고민 많이 했거든. 5천원짜리는 먹었는데 6천원짜리는 잘 안 먹었어.

엄마한테 용돈 좀 달라고 하지.
어떻게 서른 넘어서 그래. 나 학자금 대출도 못 갚았어.

뻥치는 거지?
진짜야.

대명아,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
정신적으로는 항상 힘들었어. 올해 초까지만 해도,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어. 항상 다음이 안 보였어.

연극 하면서 영화를 계속 꿈꾼 거야?
연극도 좋아. 그런데 나는 영화를 동경했어. 스무 살, 스물한 살 때 영화는 보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까, 시사회 하는 날을 알아내서 무작정 그 극장에 갔지. 그리고 어떻게든 영화를 봤어. 시사회 티켓 당첨됐다고 거짓말도 하고, 몰래 들어가서 보기도 하고.

연극 한 것까지 헤아리면 이제 연기한 지 10년 되는 거잖아. 내가 연기를 좀 잘하네, 라고 느낀 적 있어?
없어.

에이.
없어. 나는 하면 할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알면 알수록 겁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겸손하다.
겸손한 게 아니야. 현실을 직시하는 거야.

너 잘해.
모르겠어. 잘한다기보다 조금 독특하다는 생각은 해.

회색 헨리넥 티셔츠는 하트포드 by 에크루, 밝은 남색 패딩 코트는 버버리 프러섬 제품.

<미생> 촬영할 때 초반에 어땠어? 감독님이 네가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까 미심쩍어할 수도 있었잖아?
많이 믿어주셨어. 감독님도 캐스팅할 때 나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하셨더라고. 그럴 수밖에 없잖아. 큰 역할인데 나한테 믿고 맡기는 게 쉽지 않으셨겠지. 당연해. 나를 캐스팅한 게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는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야 알겠지.

아니, 이제 다 알아. 너는 잘하고 있어.
우성아, 내 어깨 위에 책임감이라는 세 글자가 있어. 나한테 주어진 걸 해내야 하는 거지.

대명아, 고집 너무 세면 안 돼.
고집? 그래, 나 고집 세.

납득이 안 돼도 받아들이고 해야 할 때도 있어. 너무 단단해 보여.
납득이 안 되면 못해. 나는 이만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날 설득시켜라, 이런 거지. 타당한 이유가 없는데 어떻게 하겠어?



<미생> 감독님도 힘들겠다.
감독님도 고집이 엄청 세. 나뿐만 아니라 감독님도 다른 배우들도 작품에 대해 분석하는 거야. 그냥 좋게 좋게 합시다, 넘어갑시다, 이러면 지금처럼 많은 분들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

네가 균형을 잘 잡아주고 있어. 네가 없었으면 배역과 배역 사이에 공백이 있었을 거야. 네가 잘 받쳐주고 있는 거야.
당연한 얘기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야. 이 드라마 같은 경우는 더 그래. 의사소통이 활발해야 하고, 각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켜야 해. 그래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 내가 잘 받쳐줬다는 말은 결국 배우들 모두가 각자의 포지션을 잘 지켰다는 이야기야.

너는 하루 종일 겸손하냐?
매니저한테 만날 말해. 나 이러다 망할 거라고.

말이 씨 된다.
아직까지는 씨가 안 됐으니까.

좋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내 친구가 나온다! 근데 대명아, 사람들이 <미생>에 대해 말하면 나는 듣고만 있어. 네가 내 친구라고 말 안 해. 그냥, 김대명 걔 연기 좀 해? 물어만 봐. 괜히 싫더라고. 몇 년 동안 연락 안 했는데 TV에 나오니까 친구라고 말하는 것 같고.
그런다고 네 친구가 아닌 건 아니야.

너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가 될 거야.
안 되면 어떡하려고?

되면 되지. 나는 연기가 뭔지 몰라. 그런데 문학을 하니까, 뭐가 좋고 뭐가 나쁜 건지 느낄 수는 있어. 네 연기는 좋아.
고마운 마음으로 들을게. 맞아, 라고 대답하는 건 말도 안 되고. 우성아, 고마워.

요즘 힘든 건 없니?
몰랐는데 확실히 나이가 들었더라고. 선배님들이 보면 노하시겠지만, 체력이 작년하고 많이 달라. 배역 때문에 몸무게를 많이 불려놓아서 더 그래. 관절에도 무리가 와.

<미생> 끝나면 허탈하겠지?
엄청 허탈할 것 같아.

이겨야 해.
그럴 거야.
혹시라도 다시 예전처럼 대중의 관심 밖에 놓이더라도 무너지면 안 돼.
그럼.

그리고 오과장님, 그러니까 이성민 옆에 붙어 있어. 연기 정말 잘하는 배우니까 배울 게 많을 거 같아.
응, 우리 과장님, 정말 좋은 배우야. 조언도 많이 해주셔.

너 연극영화학과 몇 년씩 떨어지고, 돈 없어서 시사회 하는 극장 가서 거짓말하면서 영화 보고 했던 시간이 다 연기 공부였던 거야. 그 시간들이 어디로 가는 게 아니라, 네 안에 있을 거야.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모든 게 잘 풀렸으면 고마운 게 뭔지 몰랐을 거야. 막말로 내가 지금 잘하나 보다, 라고 생각했겠지.
다행이야.

<미생>에서 너를 본 사람들이, 네가 과거에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궁금했나봐. <개들의 전쟁> <방황하는 칼날> <표적> <역린> <타짜>에 나왔고 <더 테러 라이브>에서 테러범 목소리가 너였다는 거 알고 놀라워하더라. 앞으론 어떤 작품에 나올지 얘기해줘.
<내부자들> 다 찍었어.

오, 정말? 그것도 윤태호 작가 원작이네. 이병헌이 주연인 영화잖아. 분량은?
분량도 꽤 돼. 내년 5월쯤 개봉하지 않을까?

대명아, 그 영화 나올 때쯤엔 나랑 인터뷰하지 말고, 영화와 연기에 대해 잘 아는 기자랑 인터뷰하면 좋겠어. 이동진 기자랑 백은하 기자. 그 둘이 인터뷰하는 배우는 다 멋진 배우들이더라고. 네가 그 기자들이랑 인터뷰하면 내가 정말 기쁠 것 같아.
에이.

에이 뭐?
그냥.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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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이우성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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