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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의 스무 해

김소연의 시간은 어떻게 된 걸까? 1994년 데뷔 때 조숙해 보였던, 그래서 20대 여주인공 역할을 섭렵해야 했던 중학생은 이제 경력 20년의 여배우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통과하는 김소연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았다.

UpdatedOn November 13, 2014

백리스 드레스는 퍼블리카 아뜰리에, 이어커프와 두꺼운 반지는 모두 스와로브스키 제품.

20년 전 데뷔 때가 기억나나?
생생하다. 운이 좋았다. 보조 출연으로 갔다가 두 시간 만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요즘 데뷔하는 친구들은 준비를 해서 나오는데, 나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그때는 연습생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니까.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건데, 급하게 데뷔하니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스타일리스트, 매니저의 존재도 거의 없을 때였다. 언니 옷 빌려 입고, 그러다 옷이 모자라서 사다 보면 끝이 없었다. 고생스러워 울었던 기억이 많다. 방송국은 버스 타고 다니고, 인천의 촬영장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김소연이 교복 입고 나온 드라마 중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단막극의 인기가 대단했었다.
맞다. 나는 착안 애를 꼬드기는 가출 반항아 역할을 했다. 내가 좀 일진같이 생겼나 보다. 하하.

10대 때는 무서운 누나 이미지가 강했다.
데뷔할 때 ‘야누스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는 치기 어린 멘트를 했었다. 중학교 3학년짜리가 말이다. 게다가 ‘선과 악을 오가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라는 말도 했다. 하하. 배역에 대해 잘 모르면서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조숙해 보이는 이미지와 청소년 드라마의 배역 때문에 진짜 일진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그런 소문 많이 돌았다. 나는 학교를 다녀본 기억도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었지. 그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바빴다. 고등학교 3년간 30번 출석했을 정도니까.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너무 다른 세계에 있었고, 촬영장은 너무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내 자리가 어딘지 혼란스럽고, 정신없이 바쁘고, 매일 혼나고,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스무 살까지 말이다.

그리고 스물한 살에 <이브의 모든 것>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브의 모든 것> 이후로 기 센 여배우로 각인됐다. 그전에도 어른 역할은 많이 맡았다. 고2 때는 스물여덟 살까지 연기했다. <예스터데이>라는 주말 드라마였는데, 그때 내 연기는 지금 봐줄 수가 없다. 너무 미흡하다. 다행히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잘 묻어갔다. 다시 생각하면 기회가 빨리 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준비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기회가 왔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 녹색 원피스와 퍼 재킷은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금색 귀고리는 수엘, 반지는 사만다 윌스 by 옵티칼W, 보라색 스웨이드 신발은 프라다 제품.

10대 때 누려야 할 것을 못 누리면, 고민 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사춘기가 늦게 왔다. 20대 내내 사춘기였다. 20대가 되면서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를 다스리지도 못했고, 현혹도 잘 됐다. 귀가 얇았다. 30대가 되니까 나를 다스릴 수 있게 됐고, 듣는 귀가 생겼다.

중심을 잡게 된 건가?
오히려 20대에 철없는 주관, 그러니까 똥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주관이 뚜렷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치기 어릴 때는 그랬다. 이제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남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려고 한다. 내가 생각한 것 말고 다른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메이크업이나 의상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고 한다. 20대 때 한없이 고집 부리면서 깨우친 게 많다.



20대 때 가장 고민했던 건 뭔가?
진로다. 내가 계속 이걸 해도 되나? 도태되는 것 같고, 연기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시기가 왔던 거지. 행복하지 않았다. 예민하고, 자학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런 행운을 감당할 사람이 못 되는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20대 초반부터 중반을 지날 때까지 그 생각이 점점 커졌다.

갈등이 누적된 거지?
맞다.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행운이 찾아왔다. <아이리스>에서 나를 한 번 던져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 배역이 나에게 오리라고 예상 못했다. 인생에서 한 번뿐일 테니,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리스>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건가?
20대 후반에 더 이상 자책하지 말아야겠다면서 정신 차린 시기가 있다. 그때부터 신중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잘못된 선택도 했지만,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30대에는 행복이 화두가 된 거다. 즐겁고 싶다. 지금까지 남을 의식하며 살았다. 배우가 연애하면 퇴출당하던 시기를 지내면서 더 위축되고, 긴장하며 보냈다.

그럼 20대 때 연애를 못했다는 건가?
물론 남들만큼 했지만 연애하는 게 알려지면 여자 배우에게는 굉장한 치명타였다. 눈에 안 띄게 조용히 했다. 그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제는 좀 편안하고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이제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연애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것 같다. 나는 예능도 무섭고, 남에게 웃음 주는 게 나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지 않았나?
엄청 많이 했다. 고등학교 때는 <슈퍼선데이>에서 춤추고, 별거 다 했다. 그런 기억들이 나를 조심하게 만들었다. 너무 미숙했거든.

드레스는 버버리 프로섬, 귀고리는 수엘, 더블핑거
반지는 스와로브스키 제품.

김소연의 20대 시절 필모그래피를 보면 도도하고, 고지식한 배우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아이리스> <검사 프린세스>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작했다.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몇 년을 허송세월하고 나니까. 소중한 기회에 온몸 바쳐 매달리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며 깨달았다. 이 배역을 연기하고 싶어 하는 몇만 명의 연기자들이 있을 텐데, 이걸 놓치면 더 쉬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뭘 모르던 시절에는 인생의 가치를 다른 곳에 뒀던 게 아닐까?
어떤 계기로 마음이 바뀌었는지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어느 순간 연기자가 행복한 직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당시에 절실하지 않았던 게 후회가 남는다. 가장 예뻤을 시기인데.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없었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다. 고민해도 결국은 연기밖에 없으니까. 난 종교가 없는데도 매일 기도했다. 그러다 액션 연기가 들어왔는데, 다리가 부러져도 죽기야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운동 잘하는 줄 알았다.
하하. 내가 다 속였다. 물론 대역도 있었지만, <아이리스>는 연습만 6개월 했다. 밤 10시에 촬영 끝나도 헬스클럽 가서 운동했다. 프로틴 먹으면서 식단 조절하고 드레스 입으면 남자 같았다.

그때 드레스 입은 사진 보면 강해 보인다.
<진짜 사나이> 보고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어떻게 된 거냐고. 평소에 근육을 좀 길러뒀어야 했는데, 많이 반성하고 있다. 그래도 또 액션 배역이 들어오면 할 거다.

이제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다. 잠깐 쉬면 금세 잊혀진다.
공백기가 오면서 비슷한 역할만 들어왔다. 매력 없고, 밋밋한 악역들이었다. 나는 혈기왕성했고, 다양한 배역을 하고 싶었다. 거절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제의가 안 들어왔다. 나락에 떨어져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제대로 겪고 나니까 소중함을 알게 됐다. 지금도 3개월 정도 쉬었는데, <진짜 사나이> 아니었으면 정말 잊혀질 뻔했다. <진짜 사나이> 출연하면서 느낀 건데 나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다.

옅은 회색 원피스는 도나 카란 제품.

대중을 너무 의식하며 지낸 게 아닐까?
시청자가 원하는 이미지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 프린세스>가 제일 편했다. 그 3개월이 인생에서 ‘아, 이게 행복이구나’라고 느낀 시간이었다. 본래 성격과 잘 맞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내 이미지와 본래 내 모습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이번 예능 덕분에 사람들이 편하게 봐준다. 강한 역할이 안 어울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솔직한 게 가장 편한 거 아닐까?
그래서 연기 욕심이 더 생긴다.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니 응원해주는 팬들이 생겼다. 이제 더 보여주고 싶다. 예전에 했던 배역을 나이를 먹고 다시 하면 어떨까? 선입견 없이 나를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배역을 고르라면 예전에 했던 배역들이다.

연기는 애증의 대상인가?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그리고 호의적인 사람도 어떤 순간에는 남이 될 수도 있다.


다들 자기 입장에서 정의를 말하니까.
무작정 하늘을 나는 기분 같은 건 사라졌다. 이제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한 편이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인생의 가치가 행복일까?
그럴 것 같다. 애인이 있어도 결혼은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결혼을 생각하게 된다.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분명 연기를 하겠지? 나도 내 미래가 궁금하다. 30대 후반과 40대는 2라운드가 될 텐데.

김소연의 연기 인생 20년은 내가 산 주식처럼 반등 폭이 크다.
이제는 현상 유지만 돼도 좋을 것 같다.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김영준
STYLIST: 남혜미
HAIR: 수안(아쥬레)
MAKE-UP: 권인선(아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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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김영준
Stylist 남혜미
Hair 수안
Make-up 권인선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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