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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어요

편혜영은 모르겠다고 말했다.모르겠다고 말하는 소설가가 <아레나옴므 플러스> × <문학과지성사>의 소설프로젝트에 참가해서 좋다. 그녀는 지금‘신다’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 불명확한세계로 걸어가고 있다.

UpdatedOn November 10, 2014

체크무늬의 보트넥 블라우스· 편안한 실루엣의 검은색 팬츠 모두 아페쎄, 새틴 소재의 싱글 코트 로리엣 제품.

단편 소설 <몬순>으로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새삼 프로필을 뒤적이다 놀랐다. 상복이 있다.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세상이 내게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딱 그 정도로 상을 받았다. 복 받은 거지.

이번에 ‘신다’로 소설을 쓴다.
족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족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건 바닥에 신발 자국이 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다. 발자국이 남지 않게 신발 밑창에 뭘 붙인다거나, 어떤 장소에 들어갔을 때 자신의 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인 거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주변의 여러 동기에 의해 싹이 트는 거다. 뉴스에서 본 게 씨앗이 되기도 하고.

편혜영은 씨앗마다 모두 굉장히 섬뜩하단 말이지.
나한테서 발아되는 씨앗의 토양이 다르고 정이현, 손보미한테서 발아되는 씨앗의 토양이 다르고, 전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언젠가 강출판사에서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데, 아홉 명의 여성 작가들이 참여했다. 나하고 하성란, 권여선, 김숨, 강영숙, 김애란, 이혜경 작가가 참여했는데 그 사람들이 쓴 서울이 제각각이었다. 서울이라는 소재는 같은데 다른 서울의 모습이 튀어나온 거다.

이 소설, 쓰고 있나?
응.

편혜영다운, 무서운 소설이 탄생하겠다.
오래전부터 ‘아파트먼트’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아파트먼트?
아파트먼트.

아, 아파트?
응, 아파트. 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파트와 연결해서 재밌게 써보고 싶다.

이런 질문은 결례겠지만, 밝은 이야기를 써볼 생각은 없나?
그러니까… 그러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작년에 이상문학상을 (김)애란이가 탔다. 수상집에 들어간 애란이의 작가 초상을 내가 썼는데, 그 글이 재밌었나 보다. 소설도 그런 식으로 유쾌하게 써주면 안 되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에세이는 되는데 소설은 안 된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일상에서의 자아와 소설을 쓰는 자아가 철저히 분리돼 있다. 내 안의 시니컬한 자아가 소설을 쓰는 것이다.

이 소설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묻고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모르겠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공식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고, 아직 고민하는 과정이라 모르겠다는 말밖에….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건 당신이 처음이다.
정말 모르겠어. 어떤 이야기에 도달하게 될지.

공식, 비공식을 떠나 솔직한 대답인 거지?
책이 나올 때가 되면 다음에 뭐를 써야 할지 고민한다. 단편 하나를 끝냈을 때도 다음엔 어떤 걸 쓸지 고민하고. 그런데 ‘궁극적으로’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상태라고밖에는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직무유기지?

아니.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상태인지는 알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지. 모든 이야기가 다 그러니까. 하지만 그게 굉장히 큰 주제잖나. 그 주제를 내가 어떻게 파고들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는 작품을 통해 길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지도 앞에서 바로 앞의 땅을 파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끔 막막하기도 해.

우리가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몇 번 봤다. 그때마다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진지하고 고민 많고 약간 우울해 보인다. 아까 말한 소설 쓸 때의 자아가 지금의 자아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소설에 관한 고민을 말할 땐 능청을 못 떠는 것 같다. 등단한 지 10년도 넘었으니까 ‘그까이꺼’ 대충 써, 이런 식의 얼버무림이나 대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이상문학상을 받은 <몬순> 말인데, 제목이 상징적이다. 상징성만을 놓고 볼 때 요즘 젊은 작가들은, 물론 한 부류로 묶는 건 모순이지만, 아무튼 몇몇은 소설을 쉽게 쓰는 것 같지 않나?
나는 쉽게 쓰는 소설이 좋은데.

그렇지? 그렇지…. 나도 그런 변화가 좋다. 그런데 당신이 대답을 쉽게 하면 내가 당황하잖아!
나도 바뀐 것 같다. 등단 초기엔 공력을 들여 쓴 소설이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쉽게 쓴 소설이 읽기도 편하지 않아? 내가 힘줘서 쓴 소설을 남들이 얼마나 힘들게 읽었을까 이런 생각을 이제 와서 하는 거다.

아, 이거, 왜, 마음 어딘가 짠해지는 기분이 들지.
하하.

그런데 인터뷰를 할 때 보통… 말을 더 길게 한다.
나도 길게 하고 있다.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작가나, 배우나, 보통… 질문을 툭툭 던지면 대답도 툭툭 나오는데, 지금은 잘 안 온다. 그래서 내색은 안 하지만 내가 당황하고 있다.
아, 진짜?

그래서 하는 말인데 독자를 위해 하나 던져주자. 문학과지성사와 <아레나 옴므 플러스>가 함께 기획한 소설 프로젝트에서 편혜영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혜영의 소설을 기대하게 만들 미끼를 적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아, 있다. <몬순>이라는 단편이, 내가 작년에 내내 장편을 연재했기 때문에 거의 1년 반 만에 쓴 단편이다. <몬순> 그리고 1년 반 전에 쓴 단편 소설, 이번 프로젝트에 쓸 소설, 이렇게 합쳐서 의심과 의혹에 대한 3개의 단편 소설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실체가 없는 의심에 대해 계속 써보고 싶었는데, 이 세 편으로 그걸 하게 된 거다.

오! 낚인다.
낚이지?

2000년에 등단했으니까 14년 차다. 웃긴 질문인데, 그 사이에 소설이 늘었나?
14년이지만 등단하고 3년을 쉬었기 때문에 깎아야 한다. 청탁이 없어서 3년을 쉬었다.

편혜영도 흑역사가 있구나.
그런데 아까 그랬잖아. 쉽게 쓰는 게 쉽게 읽히는 것 같다고. 그런 식의 무게 조절이랄까, 이런 걸 알게 된 것 같다.
어릴 때 단편 소설 하나에 목맸다면 지금은 넓게, 여러 작품이 이루는 맥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아….
작품 하나에 실린 무게가 분산된다고 할까? 힘을 분배하는 것? 그것 말고는 시간이 지났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소설은 별로 익숙해지지 않는 노동이라서 매번 같은 강도로 반복된다. 다만 등단 초기에는 이 작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 지금은 조금 가벼워질 수 있게 된 거지. 잘 쓰게 돼서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가벼워질 수 있는 거지.

그 말이 역설적으로 지금도 계속 공들여 소설을 쓰고 있다는 말로 들려서 좋다. 그런데 독자들이 당신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나? 소설 분위기와 안 어울리게 미인이어서.
예쁘게 생겨서 놀라는 것은 아니고, 멀쩡하게 생겨서 놀란다.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면 농담도 하고 잘 웃고 그러잖아. 그래서 나한테 발랄한 칙릿 소설을 써줄 생각 없냐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농담 삼아 말했다. 명품 백에 장도리 넣어가지고 다니는 여자 이야기를 써볼까?

오! 진짜 재밌겠다.
진짜 써?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Hair: 재황(에이바이봄)
Make-up: 재희(에이바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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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Hair 재황
Make-up 재희

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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