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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기술자, 정치 컨설턴트

선거는 수많은 요소들을 합쳐 이루어내는 가장 드라마틱한 승부다. 이 치열한 승부에서 유비 곁의 제갈량처럼 `해결사`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 정치 컨설턴트라 불리는 이들을 만났다.<br><Br>[2008년 4월호]

UpdatedOn March 21, 2008

Editor 이기원 Photography 기성율

대한민국에서 ‘정치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아직 낯설다. 적어도 여전히 지겨워 죽겠는 빨갱이 정서와 지역주의로 얼룩진 현재의 정치 구도에선 어느 지역에서 어느 당의 공천을 받느냐는 것만으로도 승부가 결정되는 상황이다. 인물과 정책보다는 당파와 이념,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중요시하는 유권자들의 ‘무지’ 탓이다. 정치 컨설턴트들은 이런 빈틈을 파고드는 사람들이다.
정치 컨설턴트의 역사는 1988년 연우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4년 17대 총선부터다. 그 이전에는 정치 컨설턴트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자신들 역시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다. 혼탁했던 시대에 자칫 정치적 타깃이 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 이후 이들은 서서히 양지로 나서기 시작했다. 연우 커뮤니케이션과 e윈컴, 인뱅크 코리아는 그 대표 격인 업체다.
1988년 한국에서 처음 정치 컨설팅을 시작한 연우 커뮤니케이션의 김승용 대표는 정치에 관심이 있던 케이스는 아니다. 홍보일을 하던 그는 1986년 우연히 김덕룡 의원의 베이스캠프에 참여했다. 그것이 결국 연우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 됐다.
“당시에는 컨설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떡값을 돌리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기도 했고.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정치 컨설팅에 대한 수요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몇 번 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다.”
정치 컨설팅의 프로세스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선은 후보의 면면을 분석해야 한다. 강점과 약점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인물이냐, 정책이냐 어느 쪽에 주안점을 둘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당선을 자신하는 후보가 컨설팅 업체를 찾는 일은 드물다. 보통은 근소한 2위권, 혹은 지역구에 너무 막강한 상대가 있을 때다. 심각한 약세에 몰려 있는 후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는 경우도 많다. 아군과 적군에 대한 분석이 끝나고 전략이 세워지면 남은 과정은 상황에 따라 순발력 있게 바뀐다. 선거란 워낙 변수가 많은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이다.
인뱅크 코리아의 이재술 대표는 “사실 굉장히 꼼꼼히 준비한다고 해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상상도 못했던 사건들이 터지면서 이제껏 세워온 모든 전략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선거에서 역전이란 그리 흔한 상황은 아니다. 대부분 사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컨설턴트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김승용 대표는 “결국 선거는 구도 싸움이다. 선거 결과는 대부분 출사표를 던지는 순간 70%는 정해진다. 어느 지역의 어느 당 후보로 나오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개인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은 20%가 채 안 된다. 하지만 이 작은 영역이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정당이나 이념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 수도권의 경우 매 선거가 역전의 연속이다. 실제 경기도 광주에 출마했던 통합민주당 문학진 의원의 경우 3표 차이로 고배를 마신 적도 있다. 그래서 수도권에서 출마하는 후보들의 경우, 아주 작은 오류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수도권 후보들이 정치 컨설턴트의 주고객인 이유도 이런 점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선거에 돌입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들이 동원된다. 역발상 혹은 모험이 가장 선호되는 곳이 선거판이다. 한 번 정해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천지가 개벽할 정책을 내놓거나 어떤 정서적 충격이 없을 경우, 유권자들은 어지간해서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절충안이 가장 중요하다. 전략도 너무 집중하면 외려 유권자들의 반감을 산다. 적어도 대중들이 알 만한 것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말이다.
연우 커뮤니케이션의 의 김승용 대표는 말한다. “요즘은 네거티브 전략이 거의 사라지는 추세다. 유권자들도 그런 진흙탕 싸움은 오히려 싫어한다. 조금 더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패했다. 세 명의 컨설턴트들은 공히 지나친 네거티브 전략의 실패라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에게 도덕적 약점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BBK 같은 사안은 일반 대중들의 분노를 자극하기에는 너무 전문적인 분야였다는 것이다. 그런 명확하지 않은 주제를 방송에서 반복하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이다. 인뱅크 코리아 이재술 대표는 말한다. “이회창과 노무현의 대결 구도를 생각해보라. 병역 문제라는 건 매우 선명한 주제였고, 보편적이었다. 이럴 경우에나 네거티브가 제대로 먹힌다.” 결국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후보들이 정책과 공약이 아니라 감성적인 부분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컨설턴트들에게도 고민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컨설턴트는 말한다. “정책 위주의 전략을 세우려 해도 유권자들이 오히려 그런 것을 더 싫어한다. 사실 대선이 아닌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약이란 거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차별화할 수가 없다. 여기에는 유권자들의 수준도 한몫 한다. 이 정책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괜히 공들여 정책 연구해봤자 투표 결과에는 큰 영향이 없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시장에 나가서 노인들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컨설턴트라고 올바른 정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당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공약과 성과 대신 이미지 승부가 어쩔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 컨설턴트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요즘 유권자들은 이미지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또한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나 정책이 과거의 유물로 치부되는 시대에 유권자들이 원하는 건 ‘일꾼’이 아니라 ‘스타’다. 이런 상황은 선거 전략을 짤 때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후보자의 과거를 극적으로 포장하는 <인간극장> 풍의 스토리야말로 가장 기초적이면서 효과적인 전략이다. 연우 커뮤니케이션 김승용 대표는 말한다.
“‘노무현의 눈물’이 성공한 것을 보라. 정몽준의 눈물이라면 누가 믿었겠나. 노무현이기 때문에 성공한 거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사람의 성공 스토리는 언제든 엄청난 파장을 만들어낸다. 요즘은 그걸 증폭시키는 장치가 다양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예에서 보듯 정치 환경도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다. 일례로 김승용 대표는 초기에는 여론 조사의 중요성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론 조사의 신뢰성이 확보되면서 수없이 여론 조사와 리서치가 반복된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새로운 전략을 구상해 나간다. 과거 최대한 많은 행사에 나서서 자신을 홍보하려던 전략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후보들의 이미지에 따라 갈 곳을 정해주기도 한다. 김승용 대표는 “의뢰인을 보면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람과 쳐내는 사람이 있다. 인간적인 매력이 없는 후보가 사람이 많은 자리에 나가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이런 후보들에게는 공식석상을 제외한 자리에는 가급적 나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특히 요즘 중점을 두는 것은 여성 유권자들의 표다. 최근에는 부녀자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한다. 후보자와 자신의 이익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남자보다는 여자다.”
정치 컨설턴트들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초기에는 반신반의하던 정치인들도 컨설팅에 대한 필요성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메이저 업체들의 경우에는 몰려드는 의뢰를 오히려 거절해야 할 정도다. e윈컴의 김능구 사장은 “결국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들어오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없다면 신뢰에 금이 간다. 그래서 항상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 우리 같은 경우, 적정 수 이하로 의뢰인을 제한하는 편이다. 물론 최소한의 자격도 없는 이가 의뢰를 할 경우에는 우리가 먼저 거부한다”고 말했다. 컨설팅 시장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의뢰인들이 컨설팅 업체의 전문적인 식견보다는 자신의 ‘감’을 믿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대선은 여전히 거대 광고 기획사들의 차지다. ‘한철 장사’의 개념이다 보니 선거가 없을 때는 회사를 꾸려나가는 일도 쉽지는 않다.
인뱅크 코리아 이재술 사장은 “생각보다는 굉장히 다양한 선거가 있다. 총선 외에도 보궐 선거와 교육감 선거, 심지어는 각종 노조 혹은 단체장들의 선거에도 개입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총선만으로 회사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정치 컨설턴트들의 정확한 수임료는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중앙선관위의 개입이 워낙 엄격한 탓이다. 하지만 한 컨설턴트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메이저 업체의 경우 건당 최소한 5천만원 이상의 수임료를 받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물론 이면 계약도 있다. 당선을 바라는 후보들은 이 정도 금액에는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점점 많은 후보들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상황을 생각할 때 정치 컨설팅 시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게 후보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하지만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이들마저도 회의적이다. 한 컨설턴트는 “당선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정말 인격적으로 수양이 덜 된 후보들도 있다. 이럴 때는 정말 이런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나, 이런 사람에게 국정을 맡겨야 하나 싶은 개인적인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한국의 정치의식이 낮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하지만 이제껏 그래 왔듯 이번 총선도 정신없는 서커스로 끝날 터다. 그리고 정치 컨설턴트들은 또다시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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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기원
Photography 기성율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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