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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도 억울하다

발길에 채이는 게 기자인 세상이 왔다. 그래서 요즘은 누구나 기자를 우습게 안다. 억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소신을 지닌 기자.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날밤을 홀딱 새는 기자. 때로는 사건의 최전방에서 가장 날카롭고도 생생한 `보도`를 일삼는 그들은 그래서 더욱 억울하다.<br><Br>[2008년 4월호]

UpdatedOn March 20, 2008

Editor 이지영 illustration 장재훈

이상한 기자회견들에 대한 불만

기자회견은 글자 그대로 기자들을 상대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모여서(會) 얼굴만 보면(見) 회견인가? 아니다.
제대로 된 기자회견이란 질문과 응답으로 이뤄진다. 질의응답 없이 자신의 소견만 줄줄이 읽고 퇴장하는 것은 기자회견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희한한 기자회견들이 자꾸 눈에 띈다.
나훈아는 지난해 1월 25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는데 90분 내내 혼자 말씀하셨다.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했고, 중간에 한 번 “정말 보겠습니까, 안 보고 믿겠습니까?”라고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호 소통은 없었다.
박명수는 지난 3월 6일 자신의 ‘결혼에 관해 알리고 싶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현장에 온 수십 개 매체의 기자 중 단 한 사람(어느 연예 정보 프로그램 리포터)만이 질문을 던지고, 박명수가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수많은 기자들이 서로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들었지만 박명수는 계속해서 그 리포터만을 지목했고, ‘마지막 질문’까지 그 리포터가 해버리자 흥분한 기자들이 그에게 삿대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리포터는 끝까지 “짜고 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런 이상한 기자회견에 간 기자들이 기분 좋았을 리가 없다.
이런 이상한 기자회견의 원조는 서태지다. 1996년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왜 해체가 아니고 은퇴였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회견 당시 서태지는 이주노와 양현석을 양쪽에 세우고 또박또박 ‘창작의 고통’을 거론하며 은퇴의 변을 밝힌 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사라졌다. 질문은 물론 받지 않았다.
사실 이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기자들이 자신들에 대해 써왔던 기사에 대단히 불만이 많았다는 점이다. 나훈아는 기자들이 자기를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고, 박명수는 여자친구가 기자들 때문에 너무 큰 괴로움을 당해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게 모두 기자 탓일까. 나훈아는 처음 공연 취소로 의혹이 제기된 뒤로 1년 동안 아무 이유 없이 잠행 하면서 의혹을 스스로 부추겼다. 박명수는 <무한도전> 동료들과 함께 수시로 여자친구 이야기를 방송에서 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북돋웠다. 그러면서 이제야 ‘여자친구를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이율배반인지.
결국 기자들을 모아놓고 그 앞에서 실컷 욕을 하고, 정작 기자들에게는 무엇 하나 물어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사자들은 사뭇 유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대로 묻고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면, 각 언론사에 팩스나 이메일을 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굳이 얼굴을 내민 걸 보면 사진은 새로 찍히고 싶었던 걸까.
대중의 관심은 연예인이라는 배를 띄우는 물이다. 이런 연예인들이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 혹은 그 관심에 영합하기 위한 미디어의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불평하는 것은 물 위에 뜬 건 좋지만 젖는 건 싫다고 하는 것과 같다. 모든 세상 일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내게 좋은 것만 골라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하기야,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을 남겼던 토머스 제퍼슨도 나중엔 “신문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 신문을 매일 읽는 사람보다 훨씬 똑똑하다” “신문에서 유일하게 진실이 담긴 부분은 광고다”, 심지어 “한 달만 신문을 안 봐도 정말 행복할 것 같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위인전에 나오는 분도 대통령이 되기 전과 후가 이렇게 다른데, 하물며 후세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송원섭(JES/<일간스포츠> 엔터테인먼트 팀장)

차라리 작두를 타고 싶다

적어도 기자는 독자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두 손에 돈을 쥐고도 어떤 옷을 골라야 할지 헷갈려 할 때 ‘이 옷을 사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 북적대는 극장 매표소 앞에서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서성일 때 ‘이 영화가 재밌다’고 얘기할 수 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일 때 ‘이 책 한번 읽어보라’고 권유할 수 있으며,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을 때 ‘이것 한번 맛보라’고 숟가락을 내밀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판단의 기준’이 되어주다 보니, 실제 독자의 판단과 기자의 판단이 상충될 때가 있다. 그럴 때 기자는 욕을 먹는다. ‘사라는 옷을 샀는데 안 어울리는데요?’라든지, ‘보라는 영화를 봤는데 영 재미없던데요?’라든지, ‘먹으라는 음식을 맛봤는데 한 입 먹고 다 남겼거든요?’ 하는 경우다. 이럴 때 기자는 수십 통의 항의 메일과 전화, 그리고 인터넷 악플을 얻어 ‘먹는다.’ “야! 너는 이 영화가 별로였다고 생각하니? 난 재밌어서 열 번도 더 봤다. 너 그 영화 본 것 맞니?” 이 정도 메일은 양호하다. 때로는 이런 메일도 받는다. “너 홈페이지 검색 해봤더니 굉장히 귀여운 척하더라. 귀여움 떨 시간에 영화나 제대로 봐라 이 인간아.” 이쯤 되면 해명할 여력조차 없어진다. 수없이 많은 영화 리뷰를 써본 결과, 가장 많은 항의가 쏟아지는 경우는 주로 ‘마니아성’ 영화다. 확실한 팬층을 확보한 감독의 영화, 엄청난 ‘빠순이’들을 거느린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의 리뷰를 쓸 때는 그래서 조심스러워진다. 길 가다 뒤통수 맞을 일이 생길까봐서이다. 나의 경우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오다기리 조가 출연하는 영화의 리뷰를 썼을 때 빠순이들로부터 가장 많은 협박을 들어야 했다. (그녀들은 정말로 무서웠으며, 당시 나는 퇴근길에 누가 따라올까봐 자꾸 뒤돌아보곤 했다.)
기자의 말이 반드시 ‘정설’일 수는 없다.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란, 어쩌면 지극히 주관적인 행위임을 떠올릴 때 ‘기자 말이 정답’이 아님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기자는 대중보다 ‘먼저’ 그것들을 체험하고 그 결과를 들려줄 뿐이다. 기자로 일하는 수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은, 다름 아닌 ‘내 판단이 옳은가’에 대한 가치 기준의 문제였다. 내 눈에는 즐겁고 신나기만 한 것이 때로 독자들의 눈에는 졸리고 지루할 수 있음을 깨달은 뒤로는 끊임없이 자책해왔다. “기자님 별점을 믿을 수가 없군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차라리 작두라도 타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짬밥’이 쌓이면서, ‘내 판단이 반드시 옳을 수는 없다’는 초년 시절의 갈등보다는 ‘내 판단에 확신이 있으면 된다’는 마음속의 단단함이 생겼다. 기자는 생쌀을 씹어 먹는 점쟁이가 아니기 때문에 때로 예상이 빗나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구미에 맞출 수도 없으며, 모든 이들의 취향을 일일이 대신해줄 수는 없다. 다만 적어도 수도 없는 ‘판단’을 해왔고, 그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이기에 적어도 독자들에게 ‘믿고 참고할 만한 친구’ 정도는 될 수 있다.
가끔 이런 저런 기사에 흥분해오는 독자들이 있는데, 미안하지만 ‘기자들의 말이 다는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기자들의 기사는 단지 참고일 뿐, 그것들을 체험하고 느끼는 바는 독자의 몫인 것이다. 덧붙이자면 차라리 기사 내용을 가지고 지적하는 경우는 좀 나은 것 같다. 매번 하는 말인데 제발 좀 대한민국 표기법을 제대로 알고 지적해주길 바란다. 가령 ‘그는 더 이상 아이들 스타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야! 너 국어 공부 좀 해라. 아이들 스타가 아니고, 아이돌이야 임마!” 하는 경우는 좀 당황스럽다. 표기법상 ‘아이들’이 맞다.

이지영(<아레나> 피처 에디터)

기자는 항상 코끼리의 밥이다

‘때르릉’, 스포츠신문 편집국 전화통은 아침 10시 이전까지 불난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화통이 울리자 무심코 받아든 기자는 난데없이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에 덜 깬 아침잠이 확 달아난다. ‘코끼리’ 김응룡 해태 감독의 전화. 좀체 기자들에게 전화를 모르던 양반이 ‘몸소’ 수화기를 들어 심각한 항의를 그치지 않는다. “이봐, 이러지들 좀 말아. 내가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야. 왜 자꾸 이런 것 들먹여! 정말이지 우리 딸내미들 보기 창피해서 그래. 내 맘 도대체 알아?!”
그리고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긴다. 기자로선 시쳇말로 ‘벙찌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여름에 일어난 일. 사연은 이렇다. 전날 저녁 모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다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야구는 모두 알다시피 기록 경기 아니던가. 퇴장을 당할 경우 한국야구위원회는 관련 기록을 발표한다. 통산 몇 호, 시즌 몇 호째 감독 퇴장.
이 기록엔 항상 전가의 보도처럼 김응룡 감독이 등장한다. 그는 퇴장으로 치자면 그야말로 최다 기록 보유자다. 감독을 1983년부터 2003년까지 했으니 당연히 퇴장 기록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해마다 감독
퇴장 소식이 들리면 관련 기사로 ‘한편 김응룡 감독은 통산 몇 회 퇴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어 이 부문 최다다. 프로 초창기에는 심판과 드잡이를 하다 경찰서까지 끌려가는 불상사…’ 어쩌구 하는 소식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김 감독의 두 딸은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가족 보기 민망해 참다 참다 기자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끊은 것이었다. 이날 전화는 동시에 모든 스포츠신문사에 걸려왔다고 한다.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였던 셈이다.
사실 이건 아이러니에 가깝다. 감독의 퇴장 기록이야말로 스포츠, 특히 야구에선 게임의 일부다. 퇴장 기록이 많을수록 오히려 훈장처럼 여기기도 한다. 메이저리그 애틀랜타의 바비 콕스 감독이 그런 예다. 콕스 감독은 “내 승부 근성이 평생 그랬다. 경기 중 퇴장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부끄럽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평생을 야구에 바쳐온 분이 왜 퇴장을, 이기기 위해 판관 격인 심판과 벌이는 언쟁을 부끄러워했을까.
김응룡 감독의 속내는 참 묘하다. 그는 기자들과 접촉을 무척 꺼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이용할 때는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잡는다. 또한 그는 주로 오래된 고참 기자들, 얼굴이 익은 기자들과 소통(이건 어디나 비슷하지 않겠는가)한다.
1998년 한국시리즈 때의 일. 그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갑자기 기자들에게 “인천 연고의 심판이 주심을 맡으면 경기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는 인천 연고 현대 유니콘스가 욱일승천 기세로 분위기를 타고 있던 터. 객관적인 승부에 앞서 느닷없이 심판 문제를 꺼내며 주도권을 잡았다. 그해 결국 해태는 또다시 우승했고, 김 감독은 나중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가 “이기고 싶었던 승부라 분위기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 감독의 고성, 분노는 분명 사실이었고 기자들은 이를 크게 받아 적었다. 하지만 속내와 진실은 전혀 달랐다. 예나 지금이나 기자들은 스타들에게, 감독들에게 항상 당한다.

김성원 (<일간스포츠> 야구부 팀장)

잘 팔리는 기사와 좋은 기사는 다르다?

3년 전 이맘때였다. 부산에서 스와핑 알선 인터넷 사이트가 적발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출근하자마자 편집장이 나를 불렀다. “부산에 내려가라.” 세면도구도 챙기지 못하고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스와핑은 잘 팔리는 기삿감이다. 섹시하고도 일탈적인 주제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독자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기사가 과연 좋은 기사인가. 달리는 열차 안에서 나는 그런 고민에 빠졌다.
예상대로 경찰은 불친절했다. 취재를 하려면 스와핑 회원들과 접촉해야 하는데, 경찰이 사이트에 접근하도록 해줄 리 만무했다. 자정 넘은 시각에 통닭과 맥주를 사가는 정성을 보였지만 사무실 밖으로 쫓겨나기만 했다. 유치장에 갇힌 운영자를 면회하러 갔다가 담당 형사에게 걸려 욕만 먹었다. 남은 방법은 하나. 담당 형사 주변을 알짱거리다가 그의 책상에서 사이트 주소와 아이디, 비밀번호를 적어놓은 메모를 발견하곤 몰래 베꼈다. 그렇게 해서 스와핑 회원들과 메일로, 전화 통화로 취재를 했다. 덕분에 원고지 40매가 넘는 스와핑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이 기사는 그후 오랫동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순위 맨 상단부에 오르는 히트작(?)이 되었지만 나는 전혀 영예롭지 않았다. 부산에서 만난 주재 기자 선배가 했던 말이 지금도 내 가슴을 찌른다. “그런 기사나 쓰고, 나중에 어떻게 속죄하려고 하니?” 선배는 관음증을 자극하는 기사에 매달리는 후배가 맘에 들지 않았으리라. 그후 몇 번 나는 ‘발신자 정보 없음’으로 전화를 걸어와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남정네들로부터 시달렸다(참고로 본인은 여기자다).
그다지 좋은 기사가 아닌 것은 맞다. 그런 기사에 매달리는 기자가 좀 품위 떨어진다는 비난도 맞다. 그러나 잘 읽히는 기사를 싣고자 하는 편집장의 욕망도 맞다. 이러한 언밸런스한 상황에서 기자가 어떻게 했어야 하나. 3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되씹어보니 여전히 고민스럽고 좀 억울하단 기분이 든다.

강지남(<주간동아> 기자)

기사 한 줄로 영화가 엎어져?

‘기자’라는 직함은 참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다. 특히 ‘영화 기자’라는 타이틀은 더욱 그렇다. 지금에야 클럽 컬처 매거진 <블링>의 편집장을 맡고 있지만, 불과 9개월 전만 해도 나 역시 영화 주간지 <무비위크>의 기자였다. 이제야 털어놓는 이야기는 그 기간의 배수 정도가 지난 시절의 사건 아닌 사건이다. 그건 다름 아닌 2007년 11월 개봉하여 전국 2백만 명에 가까운 관객 몰이에 성공한 <세븐 데이즈>와 관련된 것이다. 이 영화, 원신연 감독 연출에 ‘미드’ <로스트>로 월드 헤로인이 된 김윤진이 주연으로 나섰지만, 애초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세븐 데이즈>는 본시 <목요일의 아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진 영화였다. 충무로에선 ‘기똥찬 시나리오’로 소문이 자자했었고, 윤재구 감독이 메가폰을 쥐고 김선아가 유괴당한 아이의 엄마로 출연하는 콘셉트였다. 하지만 20% 이상 촬영이 진행된 이 작품에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윤재구 감독이 중도 하차하고, 촬영감독이 연출까지 맡아 다시금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일단 감독이 중간 탈락한 건 이미 기정사실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루머가 충무로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입담에 올랐다.
문제는 촬영감독이 기자와도 친분이 있는 형님이란 점이었다. 그런 루머를 듣고 난 촬영감독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었고, 본인이 감독을 맡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길 들었다.
기자란 직업은 알면서도 쓰지 못하는 애로 사항을 분명 가지고 있다. <목요일의 아이> 감독 교체설은 입증된 ‘사실’이긴 하지만 기사화하긴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편집장에게 이런 이야길 꺼냈더니 바로 기사로 작성하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책이 나가자마자 그 촬영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영아, 이 기사 때문에 나 곤란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정말 죄스러웠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제작사로부터였다. “기자님, 아예 저희에게 기름을 부으시는군요”라는 한탄 섞인 비아냥거림이었다. “그거 하나 못 막아주세요?”라며 나에게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아니,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보도했을 뿐이고, 그 기사 한 줄로 영화가 엎어지고, 제작사가 문 닫을 판이란 게 말이 되느냐는 말이다. 아무튼 이 일로 제작사는 물론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촬영감독과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 이제야 밝히지만, 당시 촬영감독은 정정훈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죄송스런 마음을 전한다.

이주영(영화 칼럼니스트 & <블링> 편집장)

거짓과 진실 사이

타블로이드 주간지에서 일할 때였다. 쇼킹한 이야깃거리를 찾아 헤매던 초짜 사회부 기자였던 나는 어느 날 엄청난 국가적 음모를 제보하겠다는 과학도의 메일을 받았다. 지금처럼 따뜻한 봄날, 나는 그를 만나러 천안의 한 대학교로 향했다.
물리학 박사 과정을 이수 중이었던 30대 남자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는 러시아에서 위성체의 낙하 궤도를 계산하는 법을 공부했는데, 그것은 장거리 미사일이 목표 지점에 정확히 떨어지도록 하는 중요한 기술이다. 이 때문에 그는 귀국 후 24시간 국가기관의 감시를 받고 있고, 매일같이 외출에서 돌아와 보면 그들이 자신의 방을 뒤진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할머니까지 포섭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고 했다.
러시아에서는 그 기술이 한국으로 유출될까봐 옆방 동료의 감시를 받았으며, 심지어 어떤 동료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옥상에서 흰색 독성 가루를 뿌려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귀국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한국 정부에서는 러시아 유학을 한 그가 북한 유학생과 접촉한 것을 의심해 감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말로 친할머니가 그를 감시하고 보고했을까. 그는 몰래 나가는 척하고 지켜봤더니 자신의 방을 청소하면서 서류들을 뒤지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앞뒤가 딱딱 맞는 시나리오였다. 게다가 그 사람은 너무 멀쩡했고 똑똑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영화 <지구를 지켜라> 못지않은 음모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치밀한 음모론에 동화된 나는 곧장 사회부장에게 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실을 전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편집장은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는 그 뒤로 아무 언급도 없었다. 아까운 차비와 휴일 시간을 반납한 나의 인터뷰는 그렇게 헛고생으로 끝나고 말았다. 아마도 편집장은 이 황당무계한 사연이 기사화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 이후에도 나는 수없이 황당한 일들(절대 기사화될 수 없는)을 많이 겪었다. 한 번은 가족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며 택시 기사가 찾아온 적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기자에게 올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가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가끔씩은 기자가 아닌 카운슬러가 되곤 한다.
2년 뒤 그 물리학도에게서 연락이 왔다. 국내 대형 항공사에 취직했다는 것이다. 그의 신분과 전공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는 진실일 수도 있었을까, 거짓말이었더라도 그런 시나리오를 지어낼 수 있다면 망상증은 천재성의 또 다른 단면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기사화되기 힘든 수도 없이 많은 사연과 사람들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기자는 언제나 갈등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그런데 그들은 왜 날 찾아왔던 걸까.

우종국(<한경비즈니스> 기자)

저의를 의심받다

프로 스포츠는 종목에 따라 연고 지역과 선호하는 팀에 따라 팬층이 확연하게 갈린다. 스포츠를 취재하면서 그동안 두 차례 팬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은 기억이 있다. 기아 타이거즈를 담당(스포츠 전문지에는 야구부가 독립돼 있고, 각 구단별로 담당 기자가 있다)하고 있던 2001년 여름 프로야구의 가장 큰 관심은 이종범의 국내 복귀였다.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기아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 2군에서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이종범의 영입을 결정했다.
`‘바람의 아들’로 불리던 이종범, 한때 한국 프로야구를 쥐락펴락 했던 이종범, 새로 출범한 기아로선 그의 실력뿐 아니라 흥행 능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종범은 그해 여름 프로야구를 뜨겁게 달궜다.
관중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구름 관중이 몰렸다. 당연히 기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욕설이 담긴 메일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너, 이종범하고 무슨 관계야!”
비슷한 예는 또 있다. ‘호남 출신의 조폭 xxx가 이종범 띄우기에 나섰다’는 기사가 나간 직후였다. 이때는 공개하기 민망한 욕설까지 먹었다. 메일을 보낸 이들은 대부분 기아 타이거즈를 싫어하거나, 반호남 정서를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사실 나는 호남 출신도 아니고, 기아 타이거즈를 담당하고 있었을 뿐인데….
2006년 여름. 축구 담당을 하면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한국 프로축구 K-리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불투명한 관중 집계와 선수들의 과도한 연봉이다. 경기장 관중석을 보면 4천~5천 명 수준인데 구단 발표는 항상 1만 명 이상이었다. 당시 나는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를 타깃으로 삼아 양 구단의 관중 집계 현실을 파헤쳤다. 구단 발표와 구단이 경기장의 소유주인 지자체 소속 경기장 관리소에 신고한 집계를 비교했다. 구단은 관중 수에 따라 경기장 관리소에 운동장 사용료를 지불하기 때문에 관중 수를 부풀릴수록 손해를 본다.
예상대로 구단이 발표한 관중의 40~50%는 허수였다. 울산 현대의 경우 한 시즌 입장 총수입(약 6억원)이 이천수의 연봉(약 1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구단이 관중을 부풀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구단들이 모기업에 그럴듯한 실적을 보고하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저조한 관중 동원 능력을 은폐하기 위해서다. 보도가 나간 뒤 나는 축구팬들로부터 수십 통의 항의 메일을 받았다. 주된 내용은 축구에 도움이 안 되는 기사를 내보낸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야구 기사를 주로 썼던 이전 경력을 들어, 야구 기자가 작심하고 축구를 죽이려고 한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중에 압권은 한 현대 계열사 관계자로부터 온 전화였다. “기사에 나오는 구단 모두 현대가 들어가는데 무슨 이유가 있는 겁니까?”

민창기(<스포츠조선> 체육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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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지영
illustration 장재훈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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