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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거칠게 살아오던 남자가 어느 날 아버지가 되었다. 자신과 꼭 닮은 아들의 눈을 바라보며 살아온 나날보다 살아가야 할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배수빈은 ‘최고의 결혼’을 통해 더 성숙한 배우가 되었다.

UpdatedOn September 22, 2014

니트 톱과 재킷 모두 루이 비통 제품.

작년 8세 연하의 대학원생 아내와 결혼했고, 두 달 전 득남을 했다. 미래가 창창한 아내의 앞길을 막은 셈이다.
현 사회 구조에서 여성들은 일을 하다 결혼하고, 출산하면서 자기 경력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빨리 아기 낳아 기르고, 자기 꿈이 있으면 다시 도전하라고 했다. 나에 비해 아내가 훨씬 젊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결혼은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는 표현을 했다. 어떻게 걸음을 맞추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빨래, 청소 등 다 하는 편이다. 이건 네가 할 일이고, 저건 내가 할 일이라고 구분하기보다 서로 여력이 있는 사람이 한다는 개념으로 말했다. 배우의 경우, 작품 활동이 없을 때는 무직이다. 그럼 나는 가사도우미가 되는 거다.

이제 2개월 된 아들이 있다. 아기 때문에 잠자리가 참 불편할 거다.
처음에는 녀석이 잠을 안 자니까 나도 거의 못 잤다. 요즘은 3~4시간씩 잔다. 나아진 편이다. 요즘 촬영 중이라고 부인이 나에게 다른 방에 가서 자라고 배려한다. 고맙다.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이에 따른 책임감도 있을 것이다.
작품을 쉬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 삶과 예술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거의 맞닿아 있는 듯하다. 내가 어려울 때 오는, 또 출연하는 작품, 잘나갈 때 하는 작품들,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서 한 사람의 전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든 임하는 자세나 정신이 중요한 것이지, 딱히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내게 득이 되는 작품만 한다는 건 되려 실인 것 같다. 살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그 영화 봤다.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하지 않나. 하지만 사람은 책임감이란 것을 짊어진다. 아들 윤해성을 바라보며 이 녀석을 성숙한 인격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최소한 사회에 보탬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의 덕목을 가진 인격체 말이다.

톱은 이스트쿤스트, 코트는 데님앤서플라이 랄프 로렌 제품.

박흥식 감독의 무협 영화 <협녀>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여기에서 내 역할은 크지 않다. 극 초반 사건의 발단이 되는 대사형 역이다. 좋은 선배들(이병헌, 전도연 등)과 일할 기회가 쉽게 오지 않기에 선뜻 출연한 작품이다. 역할의 크기를 따지기보다는 주어진 롤에 맞게 연기 하는 게 배우의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주연, 조연에게 연기의 구분은 없다. 단지 어떤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전체와 장면. 주연일 때는 내가 잘 끌고 갈 수 있을까, 조연일 때는 내가 얼마나 잘 묻어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지금까지 사극, 호러, 로맨틱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연기해왔다. 배수빈은 대단히 남성적인 누아르 장르에서도 빛을 발할 배우처럼 보이는데, 욕심은 없나?
계속 연기를 하다 보면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현재의 나는 무엇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걸 열심히 하는 데 주력한다. 사실 어렸을 때는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았다. 2007~2008년경 나에 대해 실험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1년에 7작품 정도를 했다. 다 하고 싶은 캐릭터여서 덤볐던 작품들이다. 되짚어보면, 내 안의 많은 걸 찾아 헤맸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호기심보다는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 정도가 있을 뿐이다.

사실 배수빈이라는 배우는 영화에서보다 드라마에서 더욱 친숙하다. 많은 배우들이 드라마 현장보다는 영화 현장을 더 선호하고, 또 그에 대한 동경이 많다.
사실 재미로만 따지자면 연극만 한 게 없다. 나는 세상에서 연극 무대만큼 재미있는 공간을 보지 못했다. 배우로서 중량감을 따진다면 영화만 하면서 무게감을 축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미디어에 대한 선입견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화에 많이 출연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연기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장르의 핵심으로 근접하면 다 동일하다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체가 다르다고 거기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폄하하거나 비하할 이유는 없다.

TV조선에서 야심차게 준비 중인 오종록 감독의 드라마 <최고의 결혼>을 촬영 중이다. 이 대본의 무엇이 마음에 들었나.
그간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금 한국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20~40대 중심 세대가 어떤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걸 무겁게 풀고 싶진 않았다. <최고의 결혼>은 방송국이라는 공간 속에서 이 이야기를 위트 있게 풀어낸다.

그 속에서 당신이 맡은 캐릭터은 어떤가?
아주 옛날식 마초다. 남성우월주의자에 보수적이기까지 한 남자. 박시연 씨가 맡은 역할은 개방적이고 능력 있는, 시쳇말로 신여성 같은 인물이다. 이런 극과 극의 두 사람이 충돌하면서 소통하는 방식을 그린 코미디다.

직업이 앵커다. 그래서 뉴스를 더욱 주의 깊게 지켜봤을 것 같다.
찾아보기도 했지만, 항상 보아온 게 뉴스 아닌가. 뉴스를 보면서 좋은 앵커란 기사를 잘 읽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앵커는 사회 현상에 대한 전반적인 혜안을 가지고, 어떤 게 이 시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걸까 헤아릴 수 있는, 확실한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사실 연기도 그렇다. 대본을 읽는 건 쉽다. 그걸 이해하고 말을 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출연작 제목에 유독 ‘사랑’ ‘결혼’ ‘유혹’과 같은 단어가 많이 들어가 있다. 외적으로 당신은 훈훈하고 친근한 이미지다. 진짜 배수빈은 어떤 사람인가.
글쎄. 시시때때 다른 것 같다. 총각 시절에는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고, 캠핑 좋아하는, 언제나 야생, 야전의 느낌으로 살았다.
지금은 주부 습진이 생기는 삶이다. 그때그때 맞춰서 사는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주관을 너무 강하게 가지고 주변과 소통하면 잘 안 될 때가 많다. 최민수 선배를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아주머니를 만나면 또 그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또 한 가지. 주변 사람들과 아주 잘 지내는 걸 보면서 의리 있는 사람이란 생각도 했다.
사실 사람 마음이란 다 똑같다. 잘나가는 사람과 일하고 싶고, 잘되는 사람과 하고 싶은 것. 아이러니한 건 사람이 언제나 잘나갈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나방처럼 영예를 추구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동안 최대한 오래 하고 싶은 마음.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보다는 나도 잘하고 그도 잘하고 있으면 관계가 오래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다.
소속사와도 마찬가지다.

  • 튜브톱 드레스는 B.C꾸띄르, 보디 체인·귀고리·반지 모두
    빈티지 헐리우드 제품.
  • 누드 드레스는 브라이덜공, 뷔스티에는 라펠라, 귀고리는
    자라, 반지는 모두 H&M 제품.

(왼쪽 ) 가죽 셔츠와 어깨에 걸친 재킷 모두 곽현주 컬렉션, 팬츠는 이스트쿤스트, 링과 뱅글 모두 퀀테즈 by 커드, 슈즈는 로크 제품. (오른쪽) 송치로 만든 코트·팬츠·슈즈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링은 모두 퀀테즈 by 커드 제품.

소속사도 좋은 파트너로서 잘 지속되고 있는 건가?
맞다. 남자 배우로서 결혼을 했고, 애도 딸렸다. 나이도 마흔을 바라본다. 점차 이점이 떨어져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흐름에서 다른 좋은 게 올 수도 있는 거다. 중요한 건 관계 속에서 함께 노력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런 게 사는 거라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생체 리듬처럼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어떨 때는 대중의 모진 시선을 받을 수 있고, 그걸 견디다 보면 다시 멋진 배우가 되어 있다. <명량>의 최민식 선배를 봐도 그렇지 않나. 오래도록 좋은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그런 바이오리듬의 측면에서 불혹을 바라보는 배우 배수빈에게 드라마 <최고의 결혼>은 중요한 지점에 있는 듯 보인다.
맞다. 어릴 때처럼 잘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니 연기도 더 편하게 되더라. 그리고 내 이력에서 단막극을 제외하고는 이처럼 대놓고 발랄하고 가벼운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다. 좀 더 유연해진 셈이다. 아마 과거에 이걸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거다. 보여주고 싶은 게 많으니까. 이 작품이 참 신기하다. 오종록 감독님도 그간 굴곡이 많았다. 시연 씨도 그랬다. 제작사인 TV조선도 그렇다.
절박한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그것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다.

이제 완전한 중년으로 가고 있는 남자 배우로서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인터뷰하러 나오기 전에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 소식이었다. 허망하더라. 한 시대, 한 세대를 들썩였던 명배우가 나이 육십 넘어 그리 가는 걸 보니 말이다. 나는 그처럼 큰 배우도 아닌데, 이렇게 살다 가는구나 하는…. 그래서 더 잘살고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예전에는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대의 이야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었으면 한다.

photography: 임한수
contributing editor: 이주영
STYLIST: 박만현
HAIR: 재황(에이바이봄)
MAKE-UP: 재희(에이바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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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임한수
Contributing Editor 이주영
Stylist 박만현
Hair 재황
Make-up 재희

2014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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