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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라치오의 시대는 갔는가

21세기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사람들의 사고방식, 행동 패턴, 그리고 섹스 방식까지. 오럴섹스는 최근까지도 가장 적극적이고 농밀한 페팅의 일종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페니스를 입에 물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을 거부하는 여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br><Br>[2008년 3월호]

UpdatedOn February 23, 2008

Editor 이기원 Photography 게티이미지

세상 모든 여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모든 남자는 섹스도 좋아하지만 펠라치오는 더 좋아한다는 것. 무릎을 꿇고 자신의 페니스를 입에 넣은 여자를 지켜보는 일은 말 그대로 남자의 정복 욕구를 가장 충족시켜주는 행위다. 하지만 한국에서 펠라치오는 여전히 뭔가 껄끄러운 행위다. 아직도 보수적인 면이 있는 한국 여성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덜렁거리는 살덩이를 입에 넣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역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같은 이유로 많은 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전 만났던 한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이제 펠라치오 시대가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유명 자산 운용사의 잘나가는 펀드 매니저인 친구는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다. 꼭두새벽에 일하러 나가 한밤중에나 들어오는, 어느 날 갑자기 과로사로 죽는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일 욕심이 대단한 녀석이다. 그런데 얼마 전 술자리를 같이 한 친구가 대뜸 내게 푸념을 늘어놨다. 최근 들어 만족스러운 오럴섹스를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거다. 외모도 수려하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여자에게 인기도 좋은 녀석이 최근 들어 괜찮은 서비스를 받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서로 너무 바빠서’다.
녀석은 일이 너무 바빠 대부분 짧고 굵게 섹스를 즐긴다고 했다. 만나는 여자들도 꽤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들뿐이었다. 친구도 그렇지만 만나는 여자들도 그리 즐길 만한 여유가 없는, 시간이 곧 돈인 사람들인 거다. 항상 늦게까지 일하고, 치열하게 동종 업계 사람들과 사교 생활에 매달리고, 주말에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느라 바쁘다. 그래서 녀석과 그의 여자들의 섹스는 굉장히 심플하다. 쉽게 얘기하면 그들에게 섹스란 주어진 업무와 끊임없이 이어진 인간관계로 쌓인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완화시켜주는 행위다.
“너도 이 일 한번 해봐. 퇴근할 때쯤 되면 온몸의 진액이 다 빠진 것 같아. 섹스도 삽입하고 사정할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만 남아. 전희? 웃기지 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보고서 준비하고, 전 세계 증시 정보 둘러보려면 밤늦게까지 희희낙락할 시간이나 있는 줄 아냐. 그건 만나는 여자도 마찬가지야. 걔랑 제대로 된 프렌치 키스를 했던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 어쩌다 호텔이라도 갈라치면 넣어대기도 바빠. 펠라치오? 그런 여유가 안 생긴다니까. 허겁지겁이라고. 배 고파서 밥 먹듯이.”
모두들 자기 앞가림하기도 벅차서 바쁘게 뛰어다니고, 직장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를 앞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 이기적인 21세기의 삶 속에는 오럴섹스를 즐길 여유도 없다니, 차라리 두려움이 앞선다. 10년을 뼈빠지게 일해 벌어도 전셋집 하나 얻기 힘든 부동산 가격, 국민연금제도마저 붕괴 일로에 놓인 이 가련한 세대. 커리어를 쌓느라 모든 힘을 쏟아 부은 우리 세대에게는 여유로운 전희를 즐길 시간도, 에너지도 없는 걸까. 혹시 이건 너무 과장된 말일까. 하지만 상대방의 성적 기호를 차근차근 탐구할 시간도, 그럴 생각도 없지만,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넘쳐난다. 섹스를 ‘해소’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내가 만나는 여자들도 매일 바빠. 호텔은 고사하고 레스토랑에서 저녁 한 번 먹기도 힘든 경우가 많아.” 역시나 꽤 잘나가는 여자들을 만난다는 친구의 직장 선배 역시 비탄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어떨 땐 제대로 밥 먹기도 힘들어. 여자가 너무 피곤해하는 데다가 늦게까지 밖에 있고 싶어하지 않거든. 심지어는 밥 먹는 중에도 내일 할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다니까.”
남자들의 이기적인 성향은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자들도 이젠 충분히 이기적이어서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메트로섹슈얼 이전의 남성들이 그랬듯, 현대 여성들도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지금 현대 남성들은 선대가 저질렀던 과오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이기적인 남자는 더 이상 어떤 여자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시기가 온 거다.
“가끔 즉흥적인 카섹스를 즐기는데 그게 순간적인 욕정 때문만은 아냐. 사실은 그때 아니면 섹스할 시간이 없어. 난 항상 지갑에 콘돔을 넣어 다니거든.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아. 실수로 고객이 그 꼴을 보면 뭐라 그러겠냐고. 그래도 여자가 신호를 보내면 바로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
영국의 유명 섹스 카운슬러인 폴라 홀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생활 방식이 섹스 라이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 일에 함몰돼 있는 사람들은 즐기는 방법을 모를 때가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섹스라는 건 충족되어야 할 무엇이지, 쾌락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말 그대로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면 섹스는 그저 기능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긴장감이 이완되는 느낌은 있지만 그게 전부다.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활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식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서구인의 의견이기는 하지만 이 말을 한국의 상황에 대입한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섹스를 기능적인 것으로 한정지어버렸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아야 하고, 귀중한 여가 시간에 딱 들어맞는 데다 회전 속도가 빠른 소비재로 말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면 오래지 않아 건강하고 멋진 섹스는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른다.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가며 먹어야 하는 것같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오럴섹스는 뜨거운 감자다.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난 현대 여성들은 남자에게 펠라치오를 해주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만 그런 줄 알지? 여자들한테도 섹스는 일종의 게임이야.” 키도 크고 얼굴도 모델 뺨치게 예쁜, 이제 막 서른 중반에 접어든 한 여자 선배는 말했다. 소싯적엔 서울에서 벌어지는 모든 파티를 섭렵하며 파티의 여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녀는 수많은 블랙칼라 워커들과 만남을 가져왔다. “요즘 여자들은 섹스를 이용할 줄 알아. 갖고 싶은 게 생기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섹스를 하는 여자들도 있단 말이지. 여자들도 남자들이 펠라치오 좋아하는 걸 알아. 그만큼 여자한테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거야.”
남자들도 똑같은 수법을 쓸 수 있다고 말하자 그녀가 대답했다. “아유, 그건 문제도 아냐. 여자들은 한 가지 목적에 엄청 충실하거든. 나도 너무 섹스하고 싶을 때 있지. 하지만 남자들은 항상 그렇다는 걸 잘 알거든. 내 친구 중에는 갖고 싶은 선물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 펠라치오 안 해주면서 남자 애간장 태우는 애들도 있어.”
이어지는 대답이 걸작이다.
“내 친구 중에 구두가 정말 많은 애가 있어. 근데 그게 다 남자한테 펠라치오 거부하면서 받은 것들이야. 천박해 보여? 창녀 같아?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남자들이 원하는 걸 주고 늘 목마르게 만드는 여자들이 관계에서 우위에 서는 거야. 그 구두들은 일종의 전리품 아니니?”
요즘 여자들은 남자가 부탁한다고 고분고분 따르지는 않는다. 페미니즘의 거센 물결이 스치고 간 자리,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획득한 여자들은 이제 오럴섹스에 대한 요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평상시 친하게 지내는, 올해로 결혼 10년차에 접어든 한 40대 화가가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결혼 생활이 독특하다. 그의 와이프는 대기업에서 중역 자리에까지 올라간 커리어우먼이다. 당연히 야근은 밥 먹듯이 하고, 평상시에도 가정을 돌볼 여유 같은 건 찾기 힘들다.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남편 몫이다. 그는 아내의 성공을 시기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좋은 남편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온갖 가사까지 맡았다. 아마도 그런 행동들이 진정 존경받는 남편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관계의 역전은 그들의 섹스 라이프에 영향을 미쳤다. 모든 관계가 결코 평등할 수 없다는 얘기는 부부간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에서도 적용됐다.
“와이프는 내가 커닐링구스를 해주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속된 말로 깜빡 넘어갈 정도로 좋아했죠. 섹스하기 전에는 대부분 내가 자발적으로 오럴섹스를 해줬어요. 그런데 참 웃기는 게 와이프가 어느 순간부턴가 조금씩 변하더라고. 가정을 꾸리는 생활비를 대부분 자기가 낸다는 걸 강조하면서 오럴섹스를 은근히 강요하기 시작하는 거야. 물론 아직도 와이프를 사랑하긴 하는데 그런 건 한국에서 큰 남자한테는 굉장히 모욕적이라고요. 부부관계마저 그렇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너무 싫더라고. 얼마 전엔 그 문제로 대판 싸웠어.”
현대 사회가 주는 속도의 압박, 이제야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성의 정치학은 정말 오럴섹스가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
“한때는 남자들만 오럴섹스의 혜택을 누렸잖아. 근데 지금은 아냐. 업소 같은 곳이 아니라 정말 자기 여자가 펠라치오를 해주길 원한다면, 남자들 역시 커닐링구스의 달인이 돼야지. 쉽게 말하면 남자들이 와이프에게만 평생 헌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거나, 여자들이 보답하지 않고는 못 배길 뭔가를 줘야만 하는 거지. 너, 입으로 여자 거길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되는 것 같니? 그런 남자는 정말이지 극소수야. 하긴, 제대로 키스하는 법도 모르는 남자가 널렸는데, 오럴은 무슨….”
지금 서울은 어쩌면 과도기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남자와 여자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서로의 관계를 정의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거다.
지금 섹스는 초등학생들의 싸움같이 유치하면서도 격렬한 무언가가 되었고, 인터넷 상에서는 각종 섹스 토이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섹스가 주는 고결한 즐거움 역시 오래지 않아 비슷한 과정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주는 여유를 누리며 상대의 살과 땀, 체액 냄새를 맡고 몸을 유심히 관찰하던 시절은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지금, 적어도 섹스에 있어서는 동물학적 퇴화 단계에 서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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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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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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