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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시의 존재가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는`(자크 프레베르)` 듯하고 시인의 존재감이 `연탄재처럼 함부로 차여지고`(안도현)` 있다. 그 많던 시인은 어디로 갔을까. 시와 시인이 그립다.<br><Br>[2008년 2월호]

UpdatedOn January 21, 2008

Photography 박원태 Editor 이민정

“아직도 시 읽는 사람이 있네?” 인터뷰 질문지를 끼워놓은 김선우 시집을 힐끗 보더니 사진가 조선희가 말을 건넨다. “제목 좀 보자.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아, 어렵다. 자기는 알아? 제 몸속에 잠든 이가 누군지?” 나라고 속 깊은 시인의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읽을거리를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괴상한 버릇이 있어서 읽지도 않은 채 가방 속에 박아둔 지 한 달째. 그런데 지갑을 꺼내다 시집까지 주섬주섬 딸려 나올 때면 꼭 이런 얘기들이 멜로디처럼 들려온다. “어, 그거 시집이야?” “요즘엔 얼마야?” “와, 오랜만에 본다.” 시와 시집, 시인의 존재감이 불확실한 시대가 온 거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 통계청 등이 분석한 ‘2007 출판계 동향’에 따르면 교보문고 종합 상위 베스트셀러 20종에 시집은 없었다. 2조6천억원이라는 단행본 출판 시장 규모에서 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 몇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독식하고 있었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지지난해에도 그랬고 그 전에도 그랬다. 또한 보고서에선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저자의 인지도가 없어도 기획과 포장으로 초기 승부를 봤다는 사실을 재미있는 이슈로 꼽기도 했다. <시크릿> <경청> <에너지 버스> <살인의 해석> <굿바이 게으름> <금융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비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과 같은 책들 말이다. 여기에도 시집은 없다.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사회가 됐지만 아무도 시집을 내는 사람이 없는 거다. 시를 쓰는 이 없으니 읽는 사람도 없다. 아니, 읽는 사람이 없어서 쓰는 이가 없어진 건가. “요즘 시인 연봉이 1백20만원이라는 얘기가 도는데 누가 시를 쓰겠어? 자장면 한 그릇 시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 먹던 옛날 연극배우들과 다를 바 없는 거지.” 출판 저널리즘을 한탄하던 어느 문화계 인사의 얘기다. 약간 과장됐겠지만 처참한 노릇이다. 문득 함민복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긍정적인 밥’ 중에서). 어쩌다 시가 대중에게 진검승부를 낼 수 없는 결핍의 언어가 된 걸까.

어릴 때 우리는 시를 읽으며 자랐다. 읽기도 했고 외우기도 했으며 그도 모자라 짓기도 했다.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 하는 것만큼이나 백일장에서 동시를 지어 상을 타는 건 학교의 자랑거리이자 교무실 선생님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학생이 되는 방법 일순위였다. 학창 시절에는 삼각함수를 풀기 전 서정윤의 ‘홀로서기’가 적힌 연습장 뚜껑을 먼저 열었고 공책 정리를 하기 전 책받침에 있는 윤동주의 ‘서시’를 먼저 읽었다.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는 이성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칼릴 지브란) 따위의, 내 마음을 기똥차게 은유적으로 표현한 구절들을 옮겨 보냈다.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애들은 ‘문학의 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음악을 틀고 생강차를 마시며 시를 낭송했다. 미술에 소질 있던 이들은 그림에 시를 곁들인 ‘시화(詩畵)’라는 장르를 교내에 퍼뜨렸던 것도 같다. 생각해보면 진짜 풍류를 아는 친구들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불만 없었지 중앙도서관이 제 집인 줄 아는 학생의 일부가 사법고시생이었다면 나머지는 ‘신춘문예’ 고시생이었다. 시로 등단한 소설가 김연수가 처음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학교 식당에 들어가 “난 시인이다!” 하고 크게 외쳤다는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인으로 가는 문은 좁고 험했다. 그럼에도 시를 좀 아는 선배는 단벌 신사여도 기름진 머리칼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있어도 멋져 보였다. ‘시인은 인간의 가슴속에 있는 선(善)한 마음을 능히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던 간디의 칭송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황지우, 기형도, 이성복, 황동규, 허수경, 마종기, 곽재구, 유하, 장정일, 정현종, 천상병… 동아리방의 불빛은 희미했으나 시가 있고 시인의 인생을 답습하는 선배가 있어 가슴은 훈훈했다. 누구나 시를 쓰는 세상이었다. 목사(용혜원)도 시를 쓰고 수녀(이해인)도 시를 쓰고 가수(강수지)도 시를 썼다. 라디오에서 DJ는 시를 낭송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시를 읽으려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외국도 예외는 아니라 서점 진열대에서 시집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시집을 내더라도 대개 자비 출판해 소수 동호인끼리 즐기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이 ‘시의 느린 속도감과 운율이 바쁜 현대인에게 잘 맞지 않아서’라고 그 이유를 밝힌 바 있는데 과연 그뿐일까. 나는 이 칼럼을 위해(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몇몇 젊은 시인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냈다. 자기네들끼리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가 사회의 중심적 담론에서 벗어난 이 시대를 참혹한 심정으로 논한다는 얘기를 얼핏 들어서였는데 이상스레 공식적인 대화에선 모두 말을 아꼈다. “모든 시인들이 고민하고 있는 심각한 얘기라서요.” 어느 시인의 친절하지만 허허로운 대답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시의 위기라는 말 자체가 그들에게는 언급조차 하기 싫은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시의 본질로 잠시 돌아가보자. 공자는 “시는 감흥을 돋우고 사물을 보게 하고 여럿이 어울리게 하며 은근히 정치를 비판하게 한다”고 기원전 6세기에 말했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시의 존재 이유는 미학적 공감이나 한 사회의 명료한 자기 이해라는 근본적 지반”이라 주장하고, 시인 김경주도 “시는 언어예술의 전위로서 당대의 모든 언어 질서와 싸워야 한다”고 얘기했다. 다 일맥상통한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자의식을 가지고 그 자의식을 커뮤니케이션으로 연결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 고되고 외로운 싸움 과정을 거쳐야만 자기 현실의 회복과 극복이라는 명제가 해결되니까 말이다. 문제는 이 자의식이 지나친 서정성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시인 강정이 한 인터뷰에서 지적한 문제의식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해 이단이 되어야 해요. 자신이 써왔던 것, 했던 것을 까뒤집는 전복이 필요하지요. 요즘 들어 이성복 시인을 제외하고 선배 시인 가운데 그런 전복의 힘을 본 적이 없어요. 근래 서정시들은 거개가 ‘자기가 눈 똥을 예쁘다’고 자평하는 동어 반복에 불과하지요.”
어디 시인 탓만이겠는가. 지금은 시뿐만 아니라 영상 문화에 비해 모든 아날로그적 문화가 소외당하고 있는 시대다. 문학 교육과 제도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시가 충분히 수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론과 비평가의 문학적 인식에 대한 부재 때문이다. 독자와 시인 사이에서 건강한 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비평가가 부지런히 시를 읽지 않으며 자본 메커니즘, 인간적인 유대감, 부분적인 혈연과 지연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언론은 문학의 진정성에 대해 그리 고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비평가들이 시 전문지보다 계간지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은 계간지를 중심으로 문학 권력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어서다. 문학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한국 문학의 아주 특수한 예로 종종 ‘문학 귀족’들을 꼽는데 엘리트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이들끼리 닫힌 서클 안에서 언론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는 거다. 지나친 편애와 멤버십으로 언론이 문학을 끌고 가선 안 되는데도.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조선일보>가 새해부터 ‘시인 100명이 추천하는 현대시 100편’을 소개하는 지면은 퍽 반갑다. 한국 현대시가 새해로 100주년(1908년에 발표된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현대시의 효시다)이기 때문이다. 정끝별과 문태준 두 시인이 시평을 곁들이고 권신아와 잠산의 일러스트로 세련미까지 더했다. 예전에는 시집이 서점에서 독자를 기다렸지만 지금은 시를 소개할 다양한 무대와 장치를 고안해서 시가 독자를 찾아가야 한다는 이문재 시인의 목소리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마감이 끝날 무렵 나는 메일을 보냈던 시인 중 한 명으로부터 짧은 답장을 받았다. 내용은 이랬다. ‘죽어가는 시를 살리려는 모든 시도는 추태라는 선배도 있었습니다만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시의 중심은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대중은 시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목말라 합니다. 개미처럼 시를 쓰겠습니다. 가슴으로 읽어주십시오.’
얼마 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봤다. 존 키팅 선생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외치며 휘트먼과 바이런의 ‘꿀 같은’ 시들을 들려주고 사춘기 괴물들은 밤마다 동굴에 모여 색소폰을 불며 시를 낭송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청춘들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죽은 ‘시인’의 사회였을까. 해답은 키팅 선생의 대사 속에 들어 있었다. “시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야.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걸 기억해라.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이지.” 당신도 동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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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박원태
Editor 이민정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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