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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하는 남자

On June 26, 2014

허경환은 ‘개그’라는 단어의 고정관념에서 한 걸음 비껴나 있다. 자잘한 말장난으로 날리는 잽보다는 내러티브 안에서 핵심을 짚어 우직하게 내지르는 주먹을 닮은 남자다. 웃기지만 우습지 않다. 주목하라. 허경환의 쇼가 시작됐다.

흰색 재킷과 팬츠는 모두 앤디앤뎁, 티셔츠와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허경환 하면 <개그콘서트>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그가 혈혈단신으로 맨 바닥에 주먹을 날리듯 예능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시작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게스트로, MC로 꾸준히 예능의 기술을 익혀왔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해피투게더 3>에 이어 <우리 결혼했어요 4>와 <세바퀴>까지 고정 패널로 확정된 거다.

허경환이란 사람은 가볍고 호들갑스럽고 능글맞을 거라 예상했다. ‘개그맨’이란 단어로 대표되는 몇 가지 고정관념에서 에디터는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허경환은 개그맨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촬영이 시작되자 180도 다른 그가 나타난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코믹하고 유쾌한 표정으로 이따금씩 나지막하게 한마디씩 툭툭 던진다. 역시, 허경환은 웃기는 남자다. 하지만 결코 우스운 남자는 아니다.

인터뷰를 잘 안 하더라.
사실 나도 잡지를 좋아한다. 이 사람이 요즘 뭐하고 있구나, 쭉 훑어보지. 그런데 한 번씩 이 사람은 뜬금없이 잡지에 왜 나왔지, 하잖아. 내가 그런 경우일 수가 있다. 허경환? 딱히 잘 모르겠는데
<아레나> 왜 나왔지? 나한테 별로 물어볼 게 없을 것 같아 내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어떻게 보면 내가 예능인으로서 지금 고군분투하잖나.
내가 <개그콘서트>에서 나왔다. 나왔다기보다는 ‘거지의 품격’ 코너 내리면서 예능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싶어 나온 건데, 그 이유는 주위에 대선배님들 보면서 꾸준하게 오래가는 패턴을 찾고 싶어서이지 않나 싶은데….

아니, 나 질문 준비 많이 했는데 왜 이러나. 혼자 진행을 다 하려고 하네.(웃음)
내가 <해피투게더 3>도 2년 동안 해오고 있고, <맘마미아>는 폐지되긴 했지만 뜨긴 떴고, <세바퀴> <우리 결혼했어요 4>도 이제 막 들어갔고, <옴므>도 3~4년째 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연줄도 없는 내가 혼자 이렇게 하기도 힘들거든. 혈혈단신 통영에서 올라와 신림동에서 자취하며 방송인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오디션을 좀 보고 싶었지.
되든 안 되든 한번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 하고.

지금 혼자 알아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한 건가?
그렇지. 그러다 강남으로 이사 오고 허세 부리는 건 내가 시골 애라서 그러는 건데, 내 생활을 보면 큰 이슈 없이 무난하게 하고 싶은 거 하자는 주의대로 잘해오고 있는 것 같다. 보통 연예인들이 서로 가장 많이 묻는 게 “너 요즘 방송 몇 개 하냐”거든. <개그콘서트>에서 코너에 집중할 때와는 또 다른 환경인 거지. 얼마 전에 개편되면서 <인간의 조건>도 빠지고 <맘마미아>도 폐지되고, 그래서 좀 슬럼프에 빠졌는데 내가….

슬럼프였다고?
사람들은 모른다. 프로그램이 재방송으로 계속 나오니까 내가 꾸준히 나오는구나 하지.

최종 목표는 MC겠지?
그렇지. 예능인으로서 최종 목표지. 그걸 위해 혼자서 모든 걸 준비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개그콘서트> 코너 만들 때처럼 콤비나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흰색에 페인팅 패턴이 들어간 수트는 엠비오, 데님 셔츠는
유니클로,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래도 지금 이 모든 게 <개그콘서트>에서 다진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 가능한 게 아니겠나.
7~8년 동안 <개그콘서트> 하면서 많이 배웠고 개그의 매력을 느꼈고 지금 내가 가진 모든 인지도를 다 얻었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예능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메인 MC에 오르기 위해 혼자서 1~2년 버티고 있는 거지. 그래도 가장 기분 좋을 때가 TV를 안 봐도 나를 안다는 사람들 만날 때.
여전히 사람들이 “TV 틀면 너 나오더라, 웃기더라” 하면 뿌듯하더라. 내가 예능인으로서 사회생활하듯 관성화된 게 아니다. 이렇게 꾸준히 해야 ‘한방’도 터지는 거지, 가만히 있다가 이슈를 억지로 만들어 터뜨리는 건 예전 얘기다. 자기 걸 계속 하다 보면, 타이밍이 잘 맞으면 잘될 거라 믿고 열심히 하고 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자신감이 느껴지는데?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주위에 믿을 놈 나밖에 없다.’ 내가 무대 위를 올라가든 방송 녹화에 들어가든 그 순간 나 자신밖에 없는 거다. 무대 위에 서면 난 외톨이고, 나 자신을 잃는 순간 끝인 거지. 공연 시작됐는데 “선배, 저 좀 도와주세요” 이럴 순 없잖나. 녹화 시작한 후 두세 마디만 하면 그날 밤 나 스스로 엄청나게 질책한다.

자책이 너무 심하면 헤어나오기 힘들지 않나?
아, 그거 짧게! 2~3일 이런 게 아니라 1시간 정도? 토요일에 녹화가 있어서 항상 약속을 잡아둔다. 일 끝나고 노는 걸 좋아하거든. 근데 그날 내가 녹화에서 너무 못했어, 그럼 바로 집에 간다. 오늘 너무 못했어, 혼자 소파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하지. 내가 과연 지금 놀 형편인가부터 시작해서 내가 왜 그렇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앉아 있었나, 그 멘트를 왜 날렸나, 하고. 가만~히 있어.
보통 그렇게 되면 반나절 정도는 ‘내가 왜 그랬나’ 해야 하는데 1시간 정도 반성하고 놀러 나간다. 내가 후회도 빠르고 회복도 빠르다.

다음엔 그걸 고치고?
고정 패널은 계속해서 경험을 쌓을 수 있으니까. 가수가 나왔을 땐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배우가 나왔을 땐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경험이지.

경험이 늘수록 예능감이 늘어간다는 걸 본인 스스로 느끼나?
그렇지. 예전에 나 <개그콘서트> 할 땐 촬영 전날부터 밥을 못 먹었다. 수백 명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너무 긴장돼서.

무대에서 연기하는 게? 아니면 연기를 하다가 못 웃길까봐?
둘 다. 사실 나는 경험도 별로 없이 개그맨 공채 시험 봐서 덜컥 됐는데 동기들은 대학로 무대에서 7~8년 개그를 해온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초반에 운 좋게 기회도 많이 왔는데 나는 준비가 안 된 애라 긴장한 거지. 그때 그랬지. ‘내가 여기에 적응만 잘하면 누구보다 더 웃길 자신 있는데.’ 축구도 그렇잖나. 사람들이 분석은 잘한다. 나도 상황 분석은 한다. 내가 만약에 지금 열심히 한다고 축구선수가 될 수 있을까? 못 된다. 이런 건 빨리 포기한다. 그런데 개그는 그게 아니거든. 여기서 좀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다. 지금 단지 경험이 없기 때문에 힘든 거란 결론을 내리면 믿음이 생기고, 그러면 열심히 하게 된다.

사업도 잘됐는데 회사 이름이 ‘(주)얼떨결’이더라.
맞다.

아~ 진짜였구나.
인생이란 사소한 것에 연연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거다. 내가 이름을 아무리 잘 지어도 찌그러질 건 찌그러진다.

개그맨으로서 허경환도 얼떨결에 시작됐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땐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준비는 항상 해둬야 한다. 개그맨은 뭔가 계속 터뜨리지 않으면 금세 잊혀지거든.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지. 잘되면 쫙! 올라가, 그런데 조금 있으면 쭉! 내려가. 우린 그걸 안다. 그럴 때가 슬럼프인데 사람들은 잘 모르지.

그럼 쫙! 하고 올라갔을 때 즐겁지만은 않겠네. 금세 내려갈 거란 걸 아니까.
그렇지. 인기가 너무 좋아도 불안하고 그다음이 두려운 거지. 이만큼의 반응 이상을 또 얻을 수 있을까? ‘거지의 품격’ 할 땐 그 누구도 이만큼 인기를 끌 거라 생각 안 했다. 한번 해보고 반응 없으면 무조건 없어지는구나, 했는데 잘된 거지. 거지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때.

검은색 재킷과 네크라인에 포인트가 들어간 검은색 슬리브리스는 모두 에이치에스에이치 by 커드 제품.

그렇게 애정이 많던 <개그콘서트>를 뒤로하고 예능에만 전념하기로 한 건 왜일까?
물론 <개그콘서트>를 할 때보다 주목을 못 받을 수도, 이슈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너무 재밌게 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 준비한 걸 무대 위에서 한번에 쏟아내는 희열이나 쾌감은 덜 할지 모르겠지만 예능에선 더 자유롭게 놀 수 있지. 개그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두 가지를 병행하기엔 시간적으로 무리가 있기 때문에 한쪽에만 더 집중을 하는 거다.

개그맨에 대한 사회나 사람들의 인식은 어떻게 느끼나?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지. 내가 신인일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어디 가서 제일 대접 못 받는 연예인이 개그맨이라고 누가 그랬었다. 제일 만만한 게 개그맨이라고. 그런데 지금도 나는 가수, 배우, 개그맨, 인지도는 똑같은데 이 중에서 뭐할래, 하면 개그맨 할 거다. 사람들이 봤을 때 쉬우니까.

쉽다고?
사람들이 봤을 때 더 친근감이 가잖나. 나 길거리 다니면 사람들이 얼마나 만지는데. 여자들도 엄청 만진다. 아줌마들뿐만 아니라 젊은 여자들도. 동네 오빠인 줄 아나 보다. 그런 만큼 연예인 중에서도 생활하기 자유롭다.

‘키 작은, 하지만 잘생긴 남자’를 개그로 이용해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런 소재를 포기하고서라도 여전히 키 크고 싶나?
내가 세상에 태어나 키 작은 남자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은 모두 발휘한 것 같다. 그래서 키가 작아도 난 상관없다….
이게 아니라, 키 작아도 매력 있어요, 어쩌고, 다 필요 없이 난 키가 컸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작은 남자들 중에서도 가장 매력 있는 캐릭터를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매력이 없어진다 해도 난 10cm 더 컸으면 좋겠고….

그걸 개그 소재로 활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키 크면 다른 걸 하지. 키를 선택할 거다.

개그맨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연인이나 친구 관계를 만들기 힘들 것 같다.
우리야 뭐 사생활이 공개된 사람들이라 대부분 편견이 있지. 어떤 사람은 개그맨이기 때문에 재밌을 거라 하고, 어떤 사람은 여자가 많을 것 같다고 하고.

농담 한마디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는 하지.
프로와 아마추어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야한 농담을 해도 우리는 은근히 둘러서 한다. 그런 게 프로거든. 어설픈 유머를 계속 날리면 아마추어인 거다. 우리는 은근히 툭툭 던지지. 나 어디 가서 말 엄청 안 하거든. 그냥 툭툭. 말 많은 사람은 자기 단점 들킬까봐 말을 많이 하는 거다.

말이… 없다고???
이렇게 해야 멋있고, 이렇게 해야 좋다고, 이론만 아는 거지. 본 게 많으니까. 성공한 사람들 보면 이런 게 있구나,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거지. 근데 난 이렇게 왜 안 되지?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이상엽
stylist: 이진규
hair&make-up: 오채연

허경환은 ‘개그’라는 단어의 고정관념에서 한 걸음 비껴나 있다. 자잘한 말장난으로 날리는 잽보다는 내러티브 안에서 핵심을 짚어 우직하게 내지르는 주먹을 닮은 남자다. 웃기지만 우습지 않다. 주목하라. 허경환의 쇼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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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하나
Photography
이상엽
Stylist
이진규
Hair&Make-up
오채연

2014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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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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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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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규
Hair&Make-up
오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