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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이영돈의 모험

재미를 좇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사이에서 올해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은 유독 빛났다. 자본이 이념을 우선하는 시대에 힘없는 소비자의 고충을 해결하고, 엉망이 된 유통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힘을 쏟는다.<br><br>[2007년 12월호]

UpdatedOn November 22, 2007

Editor 이민정 hair 김원숙 make-up 박혜령

‘다사다난’이란 말은 올해 당신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2007년 자신의 과업을 꼽는다면.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이 지난 5월 론칭했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소비문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건전한 소비자와 생산자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 등이 무척 뿌듯하다. 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고.

언제 방송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PD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처음 했나.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여섯 살 때부터 동네 영화관을 어슬렁거렸으니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 영화 한 편, 미국 영화 한 편 동시 상영해주는 극장 앞을 기웃대다가 사람들의 손을 잡고 슬쩍 들어가서 보곤 했다. 하다 보니까 요령이 생기더라. 남녀 커플이나 여자 혼자 온 사람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100% 성공이었다. 그때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 고3 때, 그땐 본고사가 있었는데 담임에게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써달라니까 나보다 공부 잘하는 두 녀석은 써주고 나는 안 써주더라. 끝까지 졸랐다. 그런데 그들은 떨어지고 난 붙었다. 체질적으로 나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방송국 시험을 봤다. 처음 발령받은 부서가 황인용, 문지현이 사회 보던 3시간짜리 프로그램이었다. 방랑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호주로 이민 갔다가 SBS로 옮겨서 <주병진 쇼>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하고, 다시 뉴욕 특파원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추적 60분>과 다큐멘터리 <마음> 등을 만들고 지금 이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방송됐던 이슈 가운데 암초에 부딪혔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아이템은 무엇이었나.
이 프로그램의 기본 콘셉트는 신화를 벗기는 거다. 예를 들어 녹차는 웰빙의 대명사였다. 황토팩은 피부에 무조건 좋은 거였다. 달걀노른자가 노랄수록 좋은 달걀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티백 녹차에서는 다량의 농약이 검출됐고 미용에 쓰이는 황토팩에는 중금속이 들어 있었다. 달걀노른자를 노랗게 만들기 위해 색소를 넣고 파란 귤을 강제로 익히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굉장히 큰 이익을 얻는 거다. 믿어왔던 게 무너지니까 사회적 반향이 뜨거웠던 것 같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심각하게 매출이 감소하거나 망하기도 하니까 그건 몹시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소비자의 권익이고 잘못된 걸 고치면 소비자의 신뢰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잘사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안 한다고 해서 유해 요소가 없어지지 않는 건 아니다. 언론의 감시 기능을 우리가 하는 거다. 문제를 제기하면 경각심을 가져서 제도적으로 개선하지 않겠나. 언론에 그런 기능이 없으면 정부나 관료가 소홀해질 수 있다.

‘황토팩 중금속’ 사건의 상황은 어디까지 갔나.
1차, 2차 검사했는데 중금속이 다 나왔다. 쇳가루는 산화철로 원래 들어 있는 거라고 업체는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작업 절차를 확인했다. 황토를 파다가 말리고 커다란 기계에 몇백 개의 쇠구슬을 넣어서 미세 분말로 만든다. 쇠구슬이 부딪히면 쇳가루가 나오니까 기계 양쪽에 커다란 자석이 붙어 있다. 자석 뒤로 쇳가루가 분리되어 나온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실험해보면 기준치를 초과한다. 황토가 좋다고 하니까 과수원이나 논밭의 황토를 캐다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같은 사람이 없으면 계속 팔 것 아닌가. 가려움증이나 발진 정도의 부작용만 있다고 하지만 중금속은 정말 모르는 거다. 몸에 흡수되어서 다른 성분과 결합되어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기준치’가 있는 게 아닌가. 당장 부작용이 없다고 용인하면 이거야말로 무식한 짓 아닐까. 물론 중금속을 빼면 황토 자체는 좋은 거다. 하지만 그들은 예전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에 오염되지 않은 황토의 신화에 빗대어 그걸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나는 여기에 분노하는 거다.

고발하려고 조사했는데 기준치에 합당해서 방송할 수 없었던 아이템도 있을 것 같다.
인삼을 두세 번 찌면 홍삼이 된다. 아홉 번 찐 후 말리면 흙삼이 된다. 가격은 몇 배로 뛴다. 과연 비싼 만큼 몸에 좋을까 싶어 한번 가져왔는데 냄새를 맡아보니까 탄내가 나는 거다. 손바닥에 재도 묻어나고. 연구소에 맡겼더니 발암 물질이 검출됐다. 난리가 나서 식약청에서 전부 수거해갔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냄새가 우리가 아침마다 마시는 아메리카노 커피에서 나는 거다. 비밀리에 스타벅스, 커피빈, 탐앤탐스, 홀리스의 원두를 모두 검사했다. 이것 터지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떠들썩할 얘기였다. 그런데 안 나왔다. 정상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은 검출이 안 됐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감시를 한다. 결과가 좋아지면 다시 방송하고 칭찬도 한다.

PD로 15년을 넘게 살아왔다. 하필이면 왜 시사 프로그램이었나. <무한도전>이나 <무릎팍 도사> 같은 프로그램 하면 재밌을 텐데.
당시 <주병진 쇼>가 히트쳤다. 주병진이라는 캐릭터는 디렉션을 주지 않아도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뛰어난 최고의 MC였다. 그런 사람을 데려다가 시사적이고 딱딱한 주제를 개그화해, 뒤집는 콘셉트로 성공한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개그 콘서트>가 시사 고발 프로그램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본다. <개그야>나 <웃찾사>보다 생명력이 길고, 죽을 만하면 다시 살아나는 이유는 개그맨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시사적인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개그화하는 분위기가 뛰어나서다. 그게 생명력이다. 시사를 파악하면서 개그맨의 특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하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장막만 걷으면 된다. 시사하는 사람은 예능 못한다? 그건 고정관념이다.
‘PD’라는 직업이 롤모델인 <아레나> 독자가 많다. PD가 꼭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첫째는 창의성. 영상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남하고 다르게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논리력. 창의적인 걸 논리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사안을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눈.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좋은 PD가 된다. 예능· 드라마·시사 PD마다 그 비율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창의성이다.

시사 프로듀서로 사는 건 보람되지만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골치 아픈 일도 많고 적도 생길 테니까.
일은 재미있다. 난 재미없으면 못한다. 몸조심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밤에 혼자 다니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종종 “괜찮으세요?” 하고 물어보더라. 신체상 해를 입힌다든지 협박을 하면 그쪽도 온전할 수 없다. 잘못한 걸 지적해서 고치면 신뢰가 높아지지만 그 과정에서 만두 파동 때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는 거다. 스트레스 받으면 운동하고 쉬고 영화 보면서 푼다. 프로그램이 정착되면 어서 후배한테 물려주고 나도 편안한 삶을 살아야겠지.
지금 박사과정에서 언론학을 공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만 하면 만족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조급함 때문에. 내 팔자가 그렇다. 괜히 공부를 걸어놓고 있으면 마음이 뿌듯해지니까. 박사 코스 마치고 논문 쓰다가 황토팩 때문에 중지된 상태다. 누군가 그러더라. 황토팩 때문에 머리가 노랗지 않냐고. 학문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발전에 한계가 있다. 산업과 공부가 함께 가야 한다. 솔직히 나는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후배들에게 시범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다시 태어나도 방송국에서 일할 생각인가.
뭔가 색다른 걸 해보고 싶다. 영화감독이나 의상 디자이너나 헤어 디자이너?

2008년 이영돈 PD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뭘까.
이 프로그램을 완전히 정착시키는 것. 그리고 제작 PD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PD들의 창의성은 시간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은 PD와 작가 1명이 짝지어 일한다. 그럼 PD는 무슨 일을 하냐며 비판도 듣는다. 하지만 창의력으로 먹고 사는 방송국에서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제작 시스템을 PD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나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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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민정
Hair 김원숙
Make-up 박혜령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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