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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김병현의 근성

박찬호 선수에 이어 한국인으로선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에서 10승을 달성한 투수 김병현. 유일한 한국인 메이저리거라는 수식어가 자랑스럽기보다, 그가 시즌 막판 과거의 영광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좀 더 중요하다. <아레나>는 그의 부활에 대해 작은 연말 시상으로 축하 인사를 전한다. <br><br>[2007년 12월호]

UpdatedOn November 22, 2007

Editor 성범수 HAIR 대원(알트 앤 노이) MAKE-UP 이지영

올 시즌 10승을 기록했고, 메이저리그 통산 54승을 달성했다. 어느 리그든 10승 이상을 거두는 건 대단한 거다. 특히 메이저리그라면 그 의미는 더할 듯하다. ‘아레나 A-어워드’ 7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될 만한 성적이다. 당신의 올 성적에 대해 스스로 평가를 내린다면.
그건 업적도 아니고, 만족스러운 결과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1승이 됐든 2승이 됐든 본인 스스로 잘했다, 만족한다고 생각하면, 자기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데, 나한테 10승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내가 좀 무덤덤한 성격이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몇 승을 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매 경기가 중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10승 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세 번, 네 번 실패하다 보니 조금 오기가 생겼다. 10승을 할 수 있는데 자꾸 어그러지니까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던 거다. 또 뒤에서 자꾸 10승 달성에 대한 얘기들을 하니까 더 그랬던 것 같고. 하지만 내겐 여전히 특별하진 않다.

애리조나, 보스턴, 콜로라도, 플로리다, 애리조나, 다시 플로리다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가장 편하게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팀을 꼽는다면.
운동하기 가장 편한 구단은 특별히 없고, 운동이 잘되는 곳이 편한 데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그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얼굴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하고. 운동을 하는 건 어느 팀이나 다 똑같다. 야구만 잘하면 대우가 달라졌으니까. 뭐, 플로리다의 경우엔 조금 다르긴 하다. 플로리다는 그만큼 기대를 하지 않는 팀이다. 자본이 많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우승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선지 항상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보스턴의 경우엔 좀 달랐겠다.
보스턴에 처음 갔을 땐 대우가 괜찮았는데, 아파서 못 뛰고 그러니까 좀 달라지긴 했다.

내년에도 플로리다에서 계속 뛰게 될까.
그건 아직 모르겠다.

특별히 뛰고 싶은 팀이 있나.
나를 인정해주고 대우해주는 팀이라면 어떤 팀이라도 좋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선발로 뛸 수 있는 팀이라면 좋겠다고 말한 걸로 안다. 선발을 굳이 원하는 이유가 있나? 자료를 보면 마무리로 뛰었던 2002년과 2003년의 성적이 가장 좋았다.
마무리로 잘했을 때, 만약 선발을 했다면 역시 성적이 좋았을 거다. 지금도 2이닝 정도는 정말 잘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옛날부터 선발을 하고 싶었다. 이제 안 좋았던 몸이 차츰 좋아지고 있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 중에서 해보고 싶은 걸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한다.

선발 투수의 매력은 뭔가?
사는 데 좀 편하다. 하루 던지고 4일 쉬고, 이런 로테이션이 반복된다. 마무리는 앉아서 1회부터 8회까지 기다려야 한다. 등판을 준비했다가도 안 나갈 수 있고,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한국에서 야구를 했으면 별로 그런 걸 못 느꼈을 텐데, 미국에 갔을 때 첫해에는 대화도 안 통했다. 1회부터 8회까지 게임을 계속 보고 있으면, 내가 1년에 1백62경기 정도를 하는데 야구를 몇 년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삶이 피곤해진다.

공격성이 굉장히 강하다. 그래서 김병현 선수가 던지는 모습이나 타자와의 싸움이 재밌다고 생각한다. 피해가지 않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인가?
어떻게 보면 어렸을 때부터 실패라는 걸 모르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열심히 하면 다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이 아팠을 때 뒤돌아보니 무언가 많은 것이 느껴졌다. 지금 같은 경우엔 굴곡이 있는데, 그 굴곡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좁혀지는 것 같긴 하지만 역시 옛날 같진 않다. 옛날처럼 던지진 못하지만, 옛날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서 여전히 그러는 것 같다. 예전 것들을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던지다 한 방 맞고 그런 게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당신은 성실한 운동 선수인가 보다. 스캔들 같은 게 하나도 나지 않았으니까.
내가 뉴스거리가 될 만큼 값어치가 없어서가 아닐까? 첫 번째는 그런 이유고, 두 번째는 좁은 공간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만 만나고 싶어하다 보니,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얼굴 알리고 그러는 것 별로 안 좋아한다.
한국에 출입국할 때 조용히 들어왔다 나가는 것 같다.
굳이 들어올 때든 나갈 때든 누구한테 저 나갑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자주 나와봐야 도움 되는 것도 없다. 게을러서 약간 그런 걸 잘 챙기지도 못한다. 그런 걸 잘하려면 머리도 똑똑해야 하는데, 물론 내가 머리가 나쁜 건 아닌데, 게을러서 그런 걸 못하는 것뿐이다. 주위 사람들, 친한 사람들만 챙기고 그런다.

미국 언론은 조금 더 직설적인 방법으로 선수들을 평가하는 것 같다. 언론의 평가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가.
그런 식의 보도가 오히려 낫다. 그 사람들은 내가 하지 않은 이야기는 쓰지 않으니까. 미국에선 칼럼니스트들은 자기 생각을 쓰지만, 기자들은 사실만 쓰는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는 추정 보도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렇다. 단어 하나로 부풀려서 쓰기도 한다. 그건 그런데 미국과 방식이 다른 것뿐이니까 아무 상관없다.

아직도 기억나는, 당신을 화나게 만들었던 기사가 있다면.
원래 기사를 잘 안 본다. 하지만 한 번 그런 적은 있다. 내가 홈런 맞았을 때, 내 얘기는 괜찮은데, 어머니한테 전화 걸어서 김병현 선수가 이틀째 홈런 맞았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죄송하다고 말하셨다. 왜 그게 죄송한 일이냐, 그냥 야구는 스포츠일 뿐인데 말이다. 관중들한테 욕했을 때도 살해 위협을 받았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그런 일 전혀 없었다. 뭐, 지나간 일이니까 지금은 상관없지만.

야구를 되게 좋아한다고 들었다.
아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그럼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야구 선수로 산다는 것은 김병현에겐 무엇인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 선수로 살았으니까. 그만둘 때도 됐다.(웃음) 운동 선수들의 경우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운동을 했고, 사회와 차단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막상 사회로 나가면,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간 지 8년이 됐는데, 겨울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쉴 때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갇혀 있는 생활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5일 일하고, 이틀 노는 직업이다. 여름휴가, 겨울휴가 받고, 추석, 설날 챙기는 그런 직업 말이다.

어린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을 하고 있다. 사실 올해 당신에겐 우여곡절이 많았다. 얻은 것도 많다고 들었는데, 당신의 깨달음을 조금 들을 수 있을까.
프로야구까지 진출해 한국에서 야구 정말 잘하고 난 후에 자신감이 있을 때, 그때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릴 때 미국으로 가는 게 나쁜가.
내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면, 이 정도로 몸이 안 좋아지진 않았을 거다. 또 지금보다 더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 선수들의 경우를 보면, 프로에서 이미 뛰었던 선수들인지라 대우도 잘 받고, 이미 일본 프로에서 배운 게 많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해볼 만하다. 반면 한국에서 젊었을 때 간 친구들을 보면, 한 2~3년은 버틸 수 있다. 한국에서 운동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 가면 운동 방식도 다르고, 한국에서처럼 운동을 시키는 사람도 없다. 자기와의 싸움을 하면서 생활하는 것도 힘들다. 그러다 보면 나태해지고, 몸이 안 좋아지게 된다. 대부분 한국으로 복귀하는 이유는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운동을 한 7년 정도 하면 부인도 생길 거고, 안정적일 때 미국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선진 야구가 정착된 미국에 가면, 몸 관리를 더 잘해줄 것 같은데.
메이저리그가 가장 야구를 잘한다고 생각하기에 미국에 가면 선진 야구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가서 겪어보면 알겠지만, 그렇진 않다. 우리 같은 경우 어렸을 때부터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해왔다. 몸 자체도 다르고, 정확히 우리에게 딱 맞는다곤 할 수 없다.

트레이드에 대한 정신적 피해는 없다고 들었다.
피해가 있긴 하다. 짐 싸는 것, 그건 정말 피해다.
또 익숙해진 길을 떠나 낯선 길을 다시 알아야 한다.
야구 하는 건 어디나 다 똑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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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성범수
Hair 대원(알트 앤 노이)
Make-up 이지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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