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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엄홍길의 진심

1985년부터 시작된 엄홍길 대장의 히말라야 8천 미터 등정은 2007년 봄 로체샤르 남벽에 오르며 완성됐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8천 미터 16좌 등정이라는 신기원을 연 그는 멈추지 않고, 환경보존에 대한 관심까지도 피력한다. 우리가 그를 2007년의 남자 중 한 사람으로 꼽을 수밖에 없는 이유, 차고 넘친다. <br><br>[2007년 12월호]

UpdatedOn November 22, 2007

Editor 성범수 hair 대원(알트 앤 노이) make-up 박혜령

먼 훗날에도 2007년을 회상할 때 엄홍길 대장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한국인의 긍지를 일깨워준 것, <아레나> 독자들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당신은 소수의 도전인 고산 등반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전기를 마련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당신의 업적을 직접 듣고 싶다.
8천 미터 히말라야 원정을 1985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38번 도전을 했다. 그리고 8천 미터 정상을 20번 올랐다. 아시아 최초로 8천 미터 14좌를 완등했고, 세계에선 8번째였다. 올봄에 히말라야 최고의 난공불락이라 불리는 로체샤르 남벽 등정을 성공하면서 인류 사상 최초로 16좌 등반의 새로운 영역에 성공했고, 기적같이 살아남았다. 난 지금까지 도전의 인생을 살아왔다. 내 인생은 산이었고, 인생 목표는 히말라야 8천 미터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많은 사고, 실패, 좌절, 희생 등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고 끝까지 매달렸다. 덕분에 나 자신도 믿기지 않는 결과를 이루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생명을 걸고 산을 타는 이유는? 그리고 가장 포기하고 싶었을 때는?
히말라야 고산 등반이라는 전문적인 산악인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거나, 누군가 날 떠밀어서도 아니다. 자라온 환경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경북 고성에서 태어났는데, 세 살 때 원도봉산 골짜기로 이사를 갔다. 처음엔 그런 환경에서 사는 것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됐고,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산에 눈을 뜨게 됐다. 전문 산악인으로서 산을 오르며 필요한 기술적인 것들을 습득하고, 정신적인 면과 체력적인 면도 단련했다. 여러 형태의 국내 산을 오르다 보니, 좀 더 높고 어려운 산을 추구하게 됐고, 큰 세계를 보게 되면서 목표가 점점 커지게 됐다. 결국 히말라야 쪽으로 가게 된 거다.

생명을 담보해내지 못하는 산에 오른다는 것이 두렵지 않나? 두려움을 잊는 방법은 무엇인가?
목표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된다. 자신감을 잃지 않으니, 다 극복할 수 있었다. 매 순간 포기하고 싶고, 후회되고, 이것이 마지막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순순히 다 받아들이면, 후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목표를 이루겠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 여러 가지 돌발 사태가 발생했을 때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유명한 등반가가 되기 전 롤모델이 있었을 것 같다. 라인홀트 메스너같이 14좌를 첫 번째로 완등한 사람이라면 존경할 만하지 않겠나.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분을 존경하고, 그분의 등반을 보면서, 나도 14좌 봉우리에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인홀트 메스너보다 내가 산에 오르면서 더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폴란드인 예지 쿠크츠카다. 메스너 다음으로 14좌를 등반한 그를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술도 한잔 나누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눴다. 그게 그의 살아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는 로체샤르 남벽을 오르다 추락해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등반 흔적들을 보면, 등로주의자로서의 강인한 정신 세계를 알 수 있다. 그의 등반 행태에 대한 찬사는 그의 스타일을 좇는 내 노력에서도 드러난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봉우리는 어떤 곳이었나.
매번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등반을 하는 것이다. 그 많은 봉우리 중에서 가장 많은 실패와 동료의 죽음을 남겨준 곳은 안나푸르나다. 이 산을 오르는 데 4번 실패하고 5번째에 성공했으니까. 그 과정에 3명의 동료를 잃고, 나 역시도 등반 중에 추락하는 셀파를 구하려다 발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한 발로 7천6백 미터 지점에서 4천5백 미터 지점까지 2박 3일 동안 내려왔다.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었는데, 기적과 같이 살아왔다. 기적 그 이상의 단어가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다. 발목 수술을 받고 나서 산에 더 이상 못 갈 거라 말했지만, 10개월 만에 그 산에 다시 가서 성공하고 돌아왔다. 성한 다리로도 4번이나 성공하지 못했었는데 말이다.

로체샤르와 같이 높은 산과 북한산 같이 낮은 산엔 분명 차이가 있을 듯하다.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다 힘들고 어렵다.

매번 산에 올라갈 때마다 기쁜가.
좋다.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산과 같이 하는 시간, 산에 있는 내 모습은 너무 행복하고 좋다. 큰 산에 올라갈 땐 후회도 되고, 고통스럽고 괴롭기도 하지만, 산에 들어가는 그 순간과 내려오는 순간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좋다.

방송을 보니 대원들에게 욕도 많이 하고 그러더라.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결부되어 있지 않다면, 그렇게 날카로울 필요도 없다. 다치면 후송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죽는 문제는 다르다. 대원들은 자신의 임무와 대장이 시키는 것만을 하면 된다. 하지만 대장은 모든 대원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대장의 말 한마디에 대원이 죽을 수도 있다. 또한 대원들뿐 아니라 전체적인 것을 모두 생각하고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획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항상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산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최고로 높은 곳을 걸어서 다니는 사람이다. 우리는 돈 많은 사람이 부럽고, 예쁜 여자친구 있는 사람이 부럽고 그렇다. 하지만 당신은 부러운 게 없을 것 같다.
문명 세계를 떠난 외계인도 아니고, 가족과 동떨어져 있으니까,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든 자기가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한 부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면, 모두 놓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아빠들이 부럽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산에서 배운 교훈 중 우리가 일상사를 살아가는 데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산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라든가 체험 그리고 모험정신을 전해주고 싶다. 극한 상황에서 자신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죽음을 각오하면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거다.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성웅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각오를 다져야 한다. 결국 자기가 하는 일에 미쳐야 바라는 걸 얻어낼 수 있다.

당신에게 있어 산은 무엇인가?
산은 인생에 무한한 도전을 하게 만드는 대상이다.

은퇴할 생각은 아직 없는 건가?
아직 없다. 단지 8천 미터는 좀 자제하려고 한다. 그 아래 산들에 도전하려 한다.
남극에 간다고 들었다.
12월에 남극 대륙의 최고봉인 빈슨 메시프에 등반하기 위해 떠날 예정이다. 산이라는 것이 도전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산이야말로 위대한 정신 세계의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 산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환경 변화의 영향으로 얼음이 많이 녹고 그랬을 것 같은데. 환경과 가장 가까운 현장에 있는 당신이 직접 환경운동을 한다면 파급 효과가 대단할 것 같다.
때 묻지 않은 무공해 청정 지역 히말라야 산들을 20여 년 이상 다녔던 사람으로, 난 기후 온난화를 직접 현장에서 체험한 사람이다. 90년대 후반부터 히말라야가 변하는 것을 느꼈다. 눈도 잘 오지 않고,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녹아 1년 전과 현재 모습의 차이를 그대로 알 수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기존 기후 데이터 같은 것들이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기상 상태도 예측 불허다. 인간의 진정한 생명줄은 자연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물질문명 속에서 살다 보니 잘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21세기의 문제는 진정 환경에 있다. 그런 쪽에 많은 관심을 갖고, 기회가 되어 인터뷰할 때마다 환경 관련 문제들을 많이 얘기하려 한다.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나.

이제 짐을 덜고 후배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혹 당신을 이어나갈 후배가 있는지?
좋은 후배들이 많다. 앞으로도 계속 키워야 되겠지만,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후배들을 위해 미력하나마 뒷바라지를 하려고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꿈이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게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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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성범수
Hair 대원(알트 앤 노이)
Make-up 박혜령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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