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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민교

김민교는 지금 가장 웃긴 남자다. 표정, 체형, 말투, 눈빛으로 <SNL 코리아>의 시청자를 압도한다. 그렇다고 그가 눈만 잘 부라리는 건 아니다. 20년을 연극 무대에서 살았다. 그는 희극보다 비극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우린 아직 그의 내공을 한 꺼풀도 벗기지 못했다.

UpdatedOn December 19, 2013

바지는 지이크 파렌화이트, 흰색 슬리브리스와 보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갑자기 등장했다.
하지만 나는 아주 교범대로 길을 걸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해서 영화를 찍고, 드라마를 찍었다. 꾸준히 일을 해왔다.
그런데 로 갑자기 등장한 사람이 된 거지.

혜성처럼 주목받은 배우들은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다 잊히는 경우가 많다.
연기를 천직으로 삼은 게 20년 전인데, 그중 18년은 주목받은 적 없이 노력한 시간이었다. 정극을 해온 시간이 긴데, 개그맨으로 낙인 찍혔다. 배우로서 걸어온 내 역사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18년 동안 단지 눈만 부라려온 건 아니거든, 앞으로 보여줄 게 많다.

웃긴 연기는 어렵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니까. 그런 점에서 웃기는 배우가 진짜 멋진 배우라고 생각한다.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용기가 많이 난다. 사실 18년 동안 연극을 계속 한다는 게 말이 쉽지, 정말 힘든 상황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칼을 갈았다. 기회가 오면 안 놓칠 자신이 있었다.
좁은 한국 땅에서 나한테 눈 한 번 안 돌아오겠나. 누군가 그걸 알아봐줄 때 희열을 느낀다. 신동엽 선배를 존경하고, 감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신동엽에게 인정받은 건가?
신동엽 선배가 후배들 칭찬을 잘 안 하는데, 어느 날 내가 희극에서 정극까지 잘한다고 칭찬을 하더라. 18년 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눈에 다 보인다고, 그 고생을 절대 후회 안 해도 되는 시간이 왔다고 했다. 그 말에 18년간의 고생이 눈 녹듯 싸악.

근데 왜 자꾸 18년일까?
그러게. 하하.

배우는 시간이 지나면 브랜드가 된다. 고정된 이미지이기도 한데, 꼭 나쁘다고 볼 순 없다. 코미디 연기를 꾸준히 하면, 그 연기의 역사가 생길 테고, 역사를 가진 캐릭터는 입체성을 띠게 된다. 입체감 있는 코미디 배우라면, 연기의 폭과 질을 높일 수 있을 거다.
신동엽 선배의 조언도 비슷하다. 나중에 내가 주목받고, 바빠지면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다든지, 드라마 출연 섭외가 여러 개 들어오면 를 관두고 드라마에 집중한다든지 여러 유혹이 있을 거라 했다. 선배의 경험과 촉으로는 는 꽤 오래가고, 나를 절대 안 버릴 거라 하더라. 친정으로 두고, 일을 하면 언제든 잘될 수 있을 거라 했다. 정말 도움이 됐다.
물론 박차고 나간 슬기도 있지만.

트위터에서 무척 아쉬워하는 글을 봤다.
인생의 선택은 언제나 후회와 만족이 따른다. 슬기는 배우를 시작하는 마음이기에, 웃기는 연기만 해서 우울해질 때도 있었을 거다. 정극에 출연해도 의 캐릭터만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슬기 입장에서는 장르에 맞춰 여러 연기를 할 수 있는데, 웃긴 역할만 요구하니 힘들었을 거다. 정말 정극 연기에 목말라했다. 슬기가 내린 결정이니 응원해줘야 한다.
사실 얼마든지 도전해도 괜찮은 나이기도 하고, 나는 그럴 용기가 없거든.

▲ (김민교) 흰색 셔츠는 로드 앤 테일러, 검은색 바지는 디올 옴므, 신발은 소다, 서스펜더와 검은색 벨트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여자 모델) 브라와 브리프는 아장 프로보카퇴르, 오른손 반지는 모두 블랙 뮤즈, 왼손 반지는 미네타니, 검은색 힐은 브라이드 앤 유, 초커와 귀고리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이도 있고, 가족도 있으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나 좀 알아봐달라고 하는 데 18년 걸렸다. 이젠 굳이 불안한 길을 가고 싶진 않다. 천천히 보여줘서 설득시킬 자신 있다. 조급할 건 없다. 일하다 보면 기회가 생길 거다. 억지로 이미지 변신하지도 않을 거다. 그러다 망하는 배우 많이 봤거든.

처음 를 보고, 바로 김민교를 검색했다. 프로필과 영화 사진들이 있었는데, 스님 역할로 찍은 사진밖에 없었다.
스틸 컷과 무대 인사 컷이었는데, 전부 민머리더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스님인 줄 알았다더라.

영화 <동승>은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처음 오디션 봐서 출연한 영화는 박철수 감독의 <성철>이었다. 스님 역으로 캐스팅됐다. 감독님한테 영화 찍으려고 휴학했는데, 할 게 없으니 촬영 없는 날 연출부나 제작부에서 일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감독님이 날 예뻐해주셨다.
현장에서 배식하고, 연출부 일도 했다. 그러면서 스태프들과 꽤 친해졌다. 주인공 다음 역할도 맡으면서 꽤 기대를 했는데, 영화가 고소를 당해서 개봉을 못했다. 날 좋게 봐준 스태프 덕분에 <동승>에 출연하게 됐다. 스님 연기도 해봤으니까….

그럼 스님 역할을 두 번이나 한 건가?
두 번 했는데…. <성철> 때문에 2년 하고, 5년을 더 했다. <동승>을 5년 찍었거든.

그럼 7년 동안 머리를 밀고 지냈다는 건가?
운이 없었다면, 없었던 거지. <성철>은 개봉 못했고, <동승>은 머리 깎고 찍었는데, 영화사가 돈이 없어서 6개월을 기다리게 만들더라고. 그래서 머리 길고, 다른 작품 좀 알아볼라치면, 또 6개월 만에 연락이 오고. 그렇게 5년이 걸렸다. 하하하.

7년이면 꽤 긴 시간이다.
그러니까 다른 건 못했다. 작은 공연 한두 달 올리다가, 또 끌려가면 머리 깎고. 영화를 포기하기 아까운 게 빡빡머리라서 다른 오디션 보기도 어려웠거든.

그럼, 어떻게 먹고 살았나?
공연하면서 살았지. 동기들 중에는 김수로 형이 소개해줘서 <쉬리>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단역, 대사 없는 역할도 많이 하고 그랬다. 내 경우는 그것도 못했지만.

덕분에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더 쌓을 기회가 있지 않았나?
지금 와서 후회할 일은 아니지만, 운이 좀 없었던 것 같다. <동승> 영화와 연기는 호평받고, 상도 탔는데…. 막상 머리가 자라니까 사람들이 못 알아봐서 별 도움은 안 되더라고. 그 스님 역할 덕분에 찍은 영화가 여태껏 딱 한 편밖에 없다. 아무 도움 안 됐다.

동기나 선후배들 중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봤을 텐데, 나라면 배 아팠을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우린 연극 연습을 진짜 열심히 했거든. TV도 별로 못 봤다. 아침 7시부터 트레이닝 받고, 연극 연습 끝나면 밤 9시다. 그리고 차 끊기기 전까지 술 마셨다. 술 더 마시고 싶으면 여관 잡고 마시다가 다음 날 트레이닝 받고.
그래서 동기가 연예인 돼도 잘 몰랐다. 처음 학교 다닐 때는 열심히 하면 되겠지 싶었다.

너무 막연했구나.
삼십 줄 되니까. 수로 형이 잘되더라고. 또 극단까지 함께했던 이종혁이 잘되더라. 그리고 임형준도 잘되고. 그때 난 뭐하고 있나? 비참해지고,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그렇게 연극만 하다 보니까 다 내공이 됐다. 결국 올라갈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고, 그 기회를 잡으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빨리 올라가면 내려오는 길밖에 없다. 나는 천천히 올라갔으니 아주 천천히 내려올 수 있게 준비만 하면 된다. 정상이 아니라 언덕 위에만 서는 삶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민교) 흰색 셔츠는 로드 앤 테일러, 바지는 지이크 파렌화이트, 시계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by 파슬 코리아,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여자 모델) 브리프·가터벨트는 모두 아장 프로보카퇴르, 목걸이는 미네타니, 하이힐은 브라이드 앤 유,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장 힘들고,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경제적인 부분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 경제적인 건 정말…. 서른 때까지는 그냥 거지였다고 보면 된다.

노숙했나?
그건 아닌데, 어머니와 지금 매니저인 친구와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4년 살았다. 야외에 얼음 물 수도꼭지 하나 있고, 화장실도 밖에 있는 그런 집이었다.

매니저는 무슨 죄인가?
30년 지기다. 나는 내가 일찍 잘될 줄 알고, 매니저 하라고 했다. 다른 회사에서 매니저 일 배우고, 나중에 나랑 같이 일하자고 했는데, 그게 18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지.

그럼, 서른 넘어서는 안정된 건가?
20대를 그렇게 보냈고, 30대는 거의 옥탑방에서 살았다. 보증금 1백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다. 지금도 잘 찾아보면 서울에 그런 집 있을 거다. 그게 한 5년 전이니까.

힘들면, 보통 취직할 생각을 하지 않나?
음, 20대에는 연기를 왜 하냐고 물어보면, ”잘한다 잘한다 해서요”라고 했다. 서른 넘어서 생각해보니 그때는 돌이킬 수가 없더라고. 시간을 이만큼 투자해서, 쫄딱 망한 집을 다시 일으킬 일이 없더라. 확률상 연기가 가장 높았다. 친구가 자기 회사 오라는 둥 유혹은 많았다. 근데 안 갔다. 가면 못 돌아올까봐.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다신 연기 못할 테니까.

동기들과 함께 극단을 꾸렸다고 들었다. 연극으로 돈을 벌긴 어려웠을 거다.
50만원 내고, 1만원짜리 티켓을 1백 장씩 나눠 갖는다. 티켓 1백 장을 모두 팔면 50만원이 남는다. 그 50만원이 월급이다.
동기들끼리 그런 식으로 규칙을 정해서, 극단을 운영했다.

일종의 피라미드네.
하하. 돈을 만들 방법이 없으니까. 어떻게든 50만원을 벌어 생활비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슬펐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티켓 태우면서 다 같이 울고, 소주 마시고 그랬다.

그렇게 고생한 동기들은 서로 이끌고,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능력이 된다면야. 결정은 감독이 하는 거니까 쉽진 않다. 동기들끼리는 서로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단역 같은 것도 많이 했고, 수로 형 덕분에 늘 오디션 최종까지 갔었다.

이제는 전셋집으로 이사한 건가?
빚이 4억이다. 극단 시절 연기 강사나 대본, 연출 등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당시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3개월 남았다는 소리에 너무 안타까웠다. 공연할 때 초대권을 많이 뿌려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렸다. 그러니까 병세가 호전되시는 거다.
나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했다. 차도 사고, 결혼도 했다. 3개월 판정받으셨는데, 2년을 버티셨다.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려다 빚을 졌다. 내가 TV에 나오는 모습을 좋아하셨는데, 에 출연한 모습을 못 보고 가셨다. 그게 가장 아쉽다.

이젠, 빚만 갚으면 되겠다.
이자 못 낼 지경이 아니니까 다행이다. 원금을 갚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에 출연하지 않았으면 삶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럼 절대 를 그만둘 일은 없겠네.
늘 고마운 팀이다. 흥망성쇠의 흥과 성을 함께했으니까. 망과 쇠도 함께할 거다.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이상엽
STYLIST: 박미경
HAIR: 대원(순수 청담 이야기)
MAKE-UP: 이명선(순수 청담 이야
MODEL: 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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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이상엽
Stylist 박미경
Hair 대운(순수 청담 이야기)
Make-up 이명선(순수 청담 이야기)
Model 천은영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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