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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재훈 씨의 유머러스한 삶의 기술

이 남자는 명쾌하다. 분야를 망라하고 멀티 플레이어로 활동하지만 어느 공간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있어야 그림이 되는 줄을 안다. 전체를 살리면서 스스로가 돋보이는 방법, 잔머리 굴리지 않고 감으로 느끼고 판단한다. <br><br>[2006년 7월호]

UpdatedOn June 23, 2006

Photography 한홍일 stylist 임희선 hear 조영재(아우라) make-up 안희정(아우라)

연일 1등을 먹고 있다. 뻔뻔한 연예인 1위, 꼭짓점 댄스 1위, 개그맨보다 웃기는 가수 1위. 이제 연기자보다 연기 잘하는 개그맨 1위로 뽑히는 것만 남았나?

솔직히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무슨 기준으로 뽑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오늘 영화 촬영은 힘들었지만 희열을 느꼈다. 영화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의 엔딩 신에 카메오로 나오는데 무에타이 선수로 출연한다. 내게 주어진 것은 태국 말 몇 마디가 적힌 대본이 전부였지만 현장에서 콘티, 애드리브, 아이디어를 직접 내면서 촬영을 했다. 난 이런 작업 과정이 좋다. 나의 방송 모토는 ‘자연스럽게’ 그냥 분위기에 묻혀가자는 주의다. 나는 대본을 잘 외우지도 않고 꼼꼼히 체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물 흐르듯, 리듬을 파악하듯 스윽~ 훑어보는 게 전부다.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파악해서 포인트를 잡아보는 게 방송 전에 하는 일의 전부다. 난 절대로 설정 맨이 아니다. 설정을 한다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도 없다. 연기는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분야다.

당신 쇼에 나오는 모든 게스트들은 친구 같다. 도대체 언제 다 그들을 만날 수 있었나. 밤 문화의 황제인가? 그 다양한 인맥과 관리법이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이 사람 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개그·영화·스포츠·가요계까지.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고 즐기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난 임재범, 신대철, 김종서 등을 알았다. 중학교 동창인 H2O 그룹의 드러머 김민기 덕분이다. 중학생 때 우린 그렇게 말했다. “넌 드럼을 배워라. 난 기타와 노래를 배울 테니.” 그리고 우린 매일 아침 교실에서 음악 연습을 했다. 민기는 예고로 진학해서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고. 영화 쪽은 1988년에 영화 연출부의 막내로 생활했다. 무지 고생을 했다. 그리고 1989년 11월 17일에 입대해서 1992년 4월 16일에 제대했다. 따져봐라. 딱 30개월일 것이다. 1993년에는 영화 <혼자 뜨는 달>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 영화 개런티는 받았나? 그 돈으로 무얼 했나?

6백만원 받았다. 밀린 카드 값을 내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렸다. 나, 굉장히 효자다. 우리 동네 슈퍼에 가면 다 안다.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것들 사서 시간이 날 때마다 방문하니까. 외할머니는 여든이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유머러스하시다. 나를 웃기신다. 언젠가 내 인생에 슬럼프가 온다면 그건 외할머니의 죽음일 것이다.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하면서도 모르겠다(양쪽 팔을 서로 쓰다듬으며). 생각만으로도 무섭다.

한참 무명 시절이 있었다. 솔로 데뷔, 듀엣 컨츄리 꼬꼬 결성, 그리고 해체 후 MC로 전향, 지금의 영화 연기자로의 변신이 파란만장하다. 스스로 예측하고 진행한 노선이었나?


내 친구들이 학력고사 시험을 보던 날, 나는 부산 바닷가에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그래, 니들은 대학 가라, 나는 대학 안 가고도 니들보다 잘 살겠다’ 하는 맘이 들었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서가 아니었으니까 뭐. 성공이나 돈에 대한 대단한 야망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다른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여자 수영복을 파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수 직업에 있는 언니(?)들이었던 것 같다. 친한 형들이 가서 이거 팔아보라고 해서 팔았는데 거절도 당하고 때로는 후한 대접도 받았다. 뭐, 얼굴 반반한 아이라서 시킨 게 아니었나 싶다. 솔직히 내가 그 정도로 순진했다.
무명 시절에도 나는 떳떳했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고기를 얻어먹을 배짱이 있었지만 나만의 스타일은 유지했다.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는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는 변한 게 없다. 물론 당시에 나를 알던 사람들, 그들의 평가나 잣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진정으로 난 변한 것이 없다. 당시 그런 생각을 했다. ‘10년 후에 난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되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아갈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재치 만점, 유머 실력은 그 뻔뻔함?


난 이치에 맞지 않으면 뻔뻔하고 이치에 맞으면 겸손한 스타일이다.

당신을 외유내강형이라고 말하더라. 화가 나거나 배신감을 느낄 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맞다, 난 외유내강형이다. 난 속으로 많이 삭이는 스타일이지만 반드시 말은 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대 다시는 신임하지 않는다.

정말로 아이큐가 두 자리 수?


맞다. 지금까지 딱 한 번 아이큐 테스트를 받았다. 중학교 2학년 때. 그 테스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결과가 96으로 나왔지만 인정했다. 그렇게 알고 나니까 공부가 더 안 됐다. 그때부터 ‘감(感)’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진정으로 궁금하다. 당신의 그 말재주가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면 신이 준 축복?(개그맨 이홍렬은 그의 전성기 유학 시절에 ‘최고의 웃기는 남자들’로 컨츄리 꼬꼬를 꼽았다)


솔직히 나는 노력형이 아니다. 그래서 더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게 아닐까 정도? 신기가 들었다, 혹은 그분이 오셨다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부모님이나 하느님이 주신 ‘끼’라는 선물은 있겠다. 유머는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한다고 해보자. 예전보다 10~20% 정도 나아질 수는 있지만 노력한 만큼 쑥쑥 오르는 성격이 아니다. 전적으로 노력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혼잣말로~) 너무 노력을 너무 안 해서 발전이 없나?

그렇다면 당신이 자라온 환경을 말해보라. 제대로 노력을 하지 않고 공부조차 않는다는데 유머감각과 순발력이 뛰어나다면 이건 너무도 불공평하지 않은가.

어릴 때 집안에 LP판이 많았다. 나훈아, 조용필 등등. 당대의 대중 가수들 LP를 늘 한 번씩 틀어놓고 심취한 적이 있었다. 조용필의 모창도 다 그때 혼자서 따라 하고 터득한 것이다. 그것을 방송 중 자연스럽게 보여줄 기회가 있었던 것이고. 어머니가 노래를 참 잘하셨다. 극장에 가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도 많이 봤다. 영화 <차탈레 부인의 사랑>, <개인교수> 등도 그때 봤다. 굳이 찾아보라면 대중문화에 대한 감각은 그것이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여든이 넘으신 외할머니는 아직도 나를 웃기신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웃음이 난다. 핏줄이라면 그것 정도?
지금 난 밀린 일기를 쓰고 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던 그 시절에 재미있는 캐릭터나 성격의 소유자를 만나며 관찰을 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관찰하고 탐구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경험들이 방송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난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다. 그룹 활동을 할 때 민기가 드럼을 쳤지만 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냥 기타만 쳤다. 다른 친구가 노래를 불렀다. 내 마음속에 ‘에이, 이 노래 실력으로 무슨 노래’ 그랬다. 잠재의식 속에 내 안의 끼와 재능은 알았지만 스스로 이런 반문을 하면서 나서지 않았다. 난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호기심, 탐구력은 있었으나 세상의 기준선을 넘으려고 하면 가슴이 떨렸다. 도저히 넘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때 모아놓았던 축적물들을 지금 쏟아내는 중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조용히 쌓아놓았던 것들이 풀어놓다 보니 그것들에 가속도가 붙는다고나 할까.

많이 놀았다는 느낌은 들지만 당신에겐 이상하게도 불량기가 없어 보인다. 룸살롱에서 제대로 놀 줄 알지만 플레이는 깨끗할 것 같은.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한 친구가 나를 미아리에 데려 갔다. 그때 받은 충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말 깜짝 놀랐다. 아! 세상에 이런 거래가 있다니! 싫다, 아주 싫어한다. 그런 거. 지금까지 난 여자를 돈으로 사본 적이 없다. 잠깐만! 근데 이거 기사로 쓸 거냐? (쓸 거라고 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다면 다시 곰곰이 찬찬히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실수가 있었는지 말이다.

‘한 끝 차이’라는 말이 있다. 당신이 넘지 않았던 그 한 끝의 힘은 무엇인가?


글쎄…. (한참을 생각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를 키우지 않았나.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착하게 살아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라.” 소극적인 탓도 있겠지만 늘 들었던 이 말씀들이 그 한 끝을 지키게 한 것이 아닐까?
아들 하나에 경제적으로도 넉넉했다. 그런데도 무명 시절의 고생을 감수했다. 손을 벌리고 싶은 유혹이 많았을 텐데.
부모님이 일을 하시느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군대 있을 때나 번듯한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을 때에도 한 달에 한 번씩 3만원을 쥐어주시곤 했다. 말 그대로 쌈짓돈 아닌가. 어떻게 함부로 쓸 수 있겠는가.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은 그냥 싫었다. 돈 달래서 내 사업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엄청 고생하는 것을 보고 엄마가 딱 한 번 포텐샤를 사주셨다. 그게 전부다.
뒤늦게 국민대 연영과에 입학했다.
00학번인데 졸업을 못 했다. 노력은 했는데 잘 안 됐다. 포기한 것이다.
바쁘지만 트렌디하다. 재기발랄하다. 놀면서, 바쁘지만 공부하는 비법이 분명히 있을 법하다.
놀았던(?) 그 시절, 다양하게 사람을 만났던 십 년 전, 그 시절을 나는 모두 기억한다. 그것들이 내 웃음의 자양분임은 분명하지만 트렌드와 감각에 맞추려는 노력을 한다. 시절이 달라졌으니까. 그리고 이런 원칙은 있다. 스스로 ‘나이’에 지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는 것. 나이에 커트라인을 두지 않는다. ‘이 나이에 이런 말을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은 덫이 되고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된다. 유행어가 된 ‘에이, 뭐야!’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의식했다면 전혀 할 수 없었던 말이다. “근데 좋잖아?” 딸아이가 그 말을 했을 때 ‘언젠가 쓸 수 있겠다’ 하고 염두에 두었다. 게스트와 MC 사이에 썰렁한 순간이 올 때면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처음 만난 스태프들도 순간적으로 파악을 했다. 제일 먼저 말을 걸었던 스타일리스트 중 한 명이 첫 번째 상대였다. 바지를 갈아입으려는데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더라. “나 팬티 입었는데요.”, “내 엉덩이가 이상해요?” 이렇게 말했는데 웃지 않았다면 나한테는 좋은 공격 상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에 웃었다.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논다.

축구가 주는 힘은?


즐겁다. 재미있다. 아! 축구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 모르는 것이다. 오늘 경기도 봐라. 호주가 역전하지 않았나.

내일은 월드컵 첫 경기 토고전이 있는 날이다. 어디서 응원할 텐가?


염정아 씨와 출연하는 영화 <내 셍에 최악의 남자> 워크숍이 있다. 양평에서 보고 있겠지. 진다면? 아! 모르겠다.

가정이 주는 힘은?


안정, 영원한 세상의 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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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한홍일
stylist 임희선
임희선 조영재(아우라)
make-up 안희정(아우라)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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