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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가 모르는 게임의 미학

On December 03, 2013

게임을 전혀 하지 않고, 그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게임 산업과 종사자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 게임이 지닌 미학의 역사와 숭고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게임에 대해 논하는 게 옳을까?

배명훈의 <현실주의>
척박한 SF 소설 시장에서 배명훈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래서 그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는 시대의 그늘을 본다.
그러나 고루하지 않고 권위적이지도 않고 선(善)하지도 않다.
그저 쓰거나 말한다.

유럽에는 19세기 말 가장 효율적이라고 알려진 다섯 개의 기관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 의회, 로마 교황청, 독일 육군참모부, 러시아 발레단, 프랑스 오페라단. 이 다섯 중에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최정예 엘리트 조직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독일 육군참모부다.

1870년과 1871년 독일 통일전쟁에서 프랑스군을 단 6주 만에 무장 해제시키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 초엘리트 집단에는 일인지 놀이인지 헷갈리는 업무가 하나 있었는데, 독일어로는 크릭스슈필(Kriegsspiel), 영어로는 직역해서 워게임(war game)이라고 하는 훈련이다.

진행 방식은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에도 나온 적 있는 <던전&드래곤> 같은 RPG 게임을 연상하면 된다. 정밀하게 제작된 지도 위에 적군은 빨간색, 아군은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대를 배치하고 참모부 소속 장교 한 명이 한 부대의 지휘관 역할을 맡아 일종의 연극 같은 전쟁을 수행한다. 경험 많은 장교들이 심판 역할을 하고 교전이 벌어졌을 때 피해를 입는 정도는 주사위와 심판의 판정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니, <던전&드래곤>과 좀 비슷한 게 아니라 완전히 똑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군참모부에서 하던 도상 연습이 전쟁 좋아하는 일반인에게까지 퍼지면서 게임 형태로 바뀐 것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군대에서 이 놀이를 시작한 게 19세기 중반은 되는 것으로 보아 이 설이 맞을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독일군의 전쟁 계획으로 알려진 ‘슐리펜 플랜’ 평가를 연구 과제로 삼았다. 이때 1차 자료로 활용한 것이 전쟁 발발 전 20여 년간 독일 육군참모부가 했던 도상 연습, 즉 워게임 기록과 도상 연습이 실제 상황에서도 유효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매년 현장에서 개최한 기동 연습에 관한 기록이었다.

그 결과, 그로부터 몇 년 후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를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확신을 갖고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었다.
당신이 젊은 나이에 스스로 깨우친 전략이나 감각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는 제일 유능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지식이라고. 그러면서 클라우제비츠나 리델 하트 같은 유명한 전략 이론가들의 책을 몇 권 챙겨 주었는데 그가 그 책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읽었다면 마이클 한델 같은 세계적인 클라우제비츠 권위자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낼 거라고 생각하지만, 읽지 않았어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자신의 힘으로 쌓아올린 지식이었으니까.

물론 이 점은 비단 임요환 한 명에게만 해당되는 사실이 아니다. 종종 드는 예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는 보병 단계를 건너뛰어 곧바로 기갑부대 단계로 넘어가는 일명 ‘메카닉 테란’이라는 전략이 있었다. 게임 개발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게이머들이 도출한 이 전략의 기본 개념이나 전개 방식은 찰스 풀러라는 영국 전략가가 발전시킨, 보병에서 완전히 독립된 기갑부대의 전쟁 수행 방식(armored warfare)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바로 이 이론을 이어받아 실제로 구현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그 유명한 ‘전격전(Blitzkrieg)’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사소한 우연은 아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런 전략 개념들을 스스로 찾아낸 프로게이머들이 대부분 아직 군대를 모르는 젊은 20대들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군대에 가도 요즘 군대에서는 도저히 알 방법이 없는 20세기 초쯤의 경기병 활용법을 터득하고 있을 정도니, ‘슐리펜 플랜’을 만들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능력자 슐리펜 백작이 살아서 그 광경을 봤다면 얼마나 깜짝 놀라고 흐뭇해했을까.

그런데 21세기 한국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쓸데없는 짓으로 폄하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들의 지식을 실용적으로 활용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성취하고 있는 것들이 그냥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생의 낭비 정도로 생각하고 넘겨버릴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그들이 분명 무언가를 성취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알아봐주는 젊은 세대가 한둘이 아니고, 외국에서도 그들의 인기는 가볍지 않다.

그런데 지난달, 어느 프로게이머가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겼다. ‘프로 중독자.’ 그는 과연 프로 중독자인가.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안에 도대체 뭐가 있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건 안 보면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20세기 후반에는 오락실에 가는 어린이는 거의 타락한 어린이로 낙인이 찍혔는데, 오락실에는 갔지만 타락은 별로 안 했던 내 눈에는 그것만큼 이상한 이데올로기가 또 없었다. 그냥 직접 보지 않아서 그러는 거겠거니 생각할 따름이었다.

국가가 몇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규제를 시도하는 인터넷 게임에는, 이전 세대에는 나타난 적이 없는 독특한 미학 하나가 잠재해 있다. 어쩌면 이미 꽃을 피웠는데 제대로 평가해줄 사람이 없어서 사장되고 있는 미학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IT 산업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 인터넷은 여전히 빠르다. 1초만 늦어져도 도저히 참지 못하는 사용자들 때문이다.

그 안 좋다는 ‘빨리빨리’ 문화는 IT 환경의 변화에도 언제나 한결같다. 광고에도 늘 나오는 소리지만, 인터넷 속도는 곧 삶의 질이다. 그렇게 기계와 기계 사이를 연결하는 속도를 최대로 끌어올린 세대에서는, 결국 기계와 사람 사이의 연결 속도까지 빨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고야 만다. 그래야 속도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처음 보편화된 시절에는 타자 속도를 비교하는 게 유행이었고, 휴대폰 시절에는 문자 메시지 입력 속도가 그랬다.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30대 프로게이머가 거의 없는 건, 판단력이나 반사신경처럼 사람에서 기계로 또 기계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연결점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본 적 없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최고 수준의 프로게이머는 반응속도가 극한에 이를 정도로 빨라지다 못해, 심지어 거의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손이 움직이는 정도까지 도달해 있다. 사후 반응 속도가 극에 달하면 사건 발생과 동시에 반응하는 단계를 넘어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예측하고 움직이는 것 같은 상황이 나타나는데, 이 점은 옛날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 조종사가 하필 10대 소년 소녀여야 하는 이유와 똑같다. ‘이게 무슨 소리야!’ 싶었던 그 거짓말 같은 설정이 이미 현실인 영역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어마어마한 속도 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사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게임 채널에서 하는 중계방송을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볼 수조차 없다. 그러나 수많은 젊은이가 그 무언가를 알아보고 열광하고 있다. 게임의 나쁜 쪽 극단에 중독이 있다면 반대쪽 극단에서는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지는 감동과 전율의 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게임 이용자는 그 두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분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게임을 모르는 세대는 그 반대쪽 극단을 모른다. 그래서 낙인을 찍는다. 오락실 가는 어린이에게 찍곤 했던 무시무시한 타락의 낙인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천지개벽할 일이었던가. 이런 식의 오해와 편견이 단순히 세대 간의 격차 수준을 넘어,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 독설을 쏟아내고 규제를 예고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건 우려스러우면서도 기묘한 일이다.

21세기 기술 문명을 이어가면서 게임만 쏙 빼놓을 방법은 없다. 게임은 대단히 중요한 콘텐츠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양식이라고 할 만큼 보편적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 문명이 길러낸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의 상당수가 성인이 되어가거나 이미 성인이다. 국가는 이 세대를 반드시 대변해야만 한다. 모르면 공부해야 하고 안 보이면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겠다고 나선다는 건, 이 세대의 입장에서나 대의정치의 관점에서나 불행하고 어정쩡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Words: 배명훈(소설가)
Editor: 이우성
ILLUSTRATION: 이우식

게임을 전혀 하지 않고, 그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게임 산업과 종사자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 게임이 지닌 미학의 역사와 숭고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게임에 대해 논하는 게 옳을까?

Credit Info

Words
배명훈(소설가)
Editor
이우성
Illustration
이우식

2013년 12월호

이달의 목차
Words
배명훈(소설가)
Editor
이우성
Illustration
이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