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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레터 12월호

<무한도전>과 아레나, 그리고 패션

언제나 그렇듯 폭압적인 마감 막바지 상황에서는 ‘내가 왜 이런 거칠고 험한 길을 택해서…’라는 한숨 섞인 자탄이 슬그머니 뿜어져 나오곤 한다. 그래도 간혹 에디터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 때가 있다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UpdatedOn November 29, 2013

EDITOR IN CHIEF 박지호















언제나 그렇듯 폭압적인 마감 막바지 상황에서는 ‘내가 왜 이런 거칠고 험한 길을 택해서…’라는 한숨 섞인 자탄이 슬그머니 뿜어져 나오곤 한다. 그래도 간혹 에디터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 때가 있다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여기서 ‘좋은 사람’이란, 단순히 유명하다거나 마음씨가 푸근한(?)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 ‘좋은 사람’이란 나에게 항상 새로운 자극을 주는, 또는 새로운 감성과 상상력으로 사회에 충격파를 던지는, 다시 말하자면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사람을 뜻한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 카이스트 교수 정재승, 감독 박찬욱, 배우 하정우, 가수 김창완…. 지금껏 내게 특유의 감각과 창의성으로 신선한 충격파를 던져줬던 쟁쟁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 첫머리에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새삼 돌이켜보니, 김태호 PD와 친분을 맺은 지 어느덧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박찬욱 감독, 배우 이병헌 등과 더불어 제4회 에이어워즈 수상자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던 그를 인터뷰하던 당시의 그 오묘한 정취가 지금도 가끔 오롯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김태호 PD는 참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다. 브라운관에서 멤버들과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며 대화를 하는 모습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의 바른 태도(한참 친해진 다음에도 마찬가지다!)와 조용히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상대방의 대화를 경청하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런 겸손한 애티튜드는 누구에게나 일관되게 적용된다.

그런 그가 유독 <무한도전>에 대해 언급할 때는 열정과 에너지가 펄펄 살아 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에디터 인생에 큰 획을 그은 기사 중 하나로 꼽히는 당시 인터뷰에서 인터뷰어로서 내가 한 역할은 거의 없다. 난 다만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당신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라는 단 한 문장의 질문만 던졌을 뿐이었다.

정말 한 시간 반 동안 물 한 모금 들이켜지 않은 채 <무한도전>에 대한 애정과 구상, 아쉬운 점에서 미래 예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약간의 첨언만 곁들였을 뿐이다.

모험을 거는 게 너무 재미있고, 30%의 확신만 있어도 그대로 실행하며, 위태로운 모험을 감행했을 때 의외로 시청자들이 더 열광적으로 반응하기에 그 쾌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리얼 버라이어티’가 주저앉기 전에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야겠다는 고민을 항상 안고 있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이라 규정한다는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던 그의 대답은, 스스로 가장 자신없는 부분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고백으로까지 이어졌다. 매번 연기자들을 사지로 몰아놓고, 자신을 찾으면 먼 산을 바라보거나 잠시 현장을 피하기도 한다며 출연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기도 했고,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결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며, 멤버들이 결과에 대해 항상 믿음을 가져주기에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이뤄지는 것 같다면서 깊은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후 만남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서로 바쁜 일정 탓에 일요일 오전부터 한남동 브런치 카페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기도 했고, 해외 출장길에 우연히 조우해 밤새 와인을 곁들여 가구와 인테리어, 사회 이슈와 커피의 종류를 거쳐 패션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그날 밤을 풍요롭게 채우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본 그는 탁월한 방송 제작 능력 못지않게 디자인과 패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해외 촬영을 나갔을 때 현지에서 우연찮게 획득한 색색 고운 양말에 대해 줄기차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감성을 보유했으며, <아레나>가 주최한 A-Talk 행사에 강연을 하러 왔을 때 굳이 드레스 코드를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트위드 소재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세련된 코트를 걸치고 나타나 좌중의 감탄을 자아내는 감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의자와 가구, 접시 등 집기,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감식안도 일정 수준을 넘어선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명민한 방송인 중 한 사람이며, 감각과 감성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태호 PD가 패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렇듯 진즉 알고 있었다. 또한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은 누군가 ‘한다’는 말만 내뱉으면 그대로 현실화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말 그대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사실도. 하지만 하품을 참지 못한 채 게으르게 하루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는 오후 5시 무렵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서는 정말 “아…”라는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흥분이 깃든 목소리로 그는 재빨리 핵심을 전달하고 있었다. “홍철이가 녹화를 하면서 ‘밀라노’와 ‘패션’에 대해 발언했어요. 멤버들과 갑론을박을 시작했고요. 실제로 패션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고 밀라노에 도전해보자는 의기투합이 이뤄졌습니다. 내일 저녁 때 패션 전문가들을 몇 분 규합해서 녹화장에 와주실 수 있을까요?”

평소 울렁증 때문에 카메라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초보 중의 초보’의 <무한도전> 촬영 도전기는 이렇게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김태호 PD에 대한 깊은 신뢰가 아니었다면 차마 꿈꾸지도 못했을 일이다.


To be continued…

EDITOR IN CHIEF: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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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n chief 박지호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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