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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유희

<주군의 태양>의 김유리가 엷게 웃었다. 쑥스러워했다. 목소리가 작고, 가늘게 떨렸다. “데뷔한 지 7년이에요.” 턱을 괴며 말했다.

UpdatedOn November 14, 2013

차이니스 칼라의 흰색 셔츠는 닐 바렛, 금색 곡선 형태 디자인의 스틸레토 힐은 주세페 자노티 제품.

너무 말랐다.
그런가? 일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 것 같다.

<주군의 태양>에서 태이령으로 주목받았다. 태이령 역할은 어떻게 맡게 된 건가?
오디션 봤다. 여러 후보들이 있었는데, 카메라 테스트까지 하고 감독님이 날 선택했다.

2006년에 TV 소설 <강이 되어 만나리>로 데뷔했다. 그 후 7년간 무명이었다. 무명 시절 힘들었던 점은 뭔가?
데뷔한 지 오래되었는데, 연기할 기회가 없었다. 작품을 모아보면 7년이라는 시간은 없다. 공백 기간이 많았다. 일이 없을 때는 정말 힘들다.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니까. 자리 잡기 전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쉬는 동안 일이 없는데 수입은 어떻게 마련했나?
창피한 얘기다. 사실 부모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아직도 용돈을 받고 있다.

이제는 많이 벌지 않나?
사실 그렇지 않다. 용돈을 드려야 되는데 아직까지 받고 있으니 참….

무명 배우가 자리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본인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누군가는 감독이다. 감독이 선택을 해야 우리가 일할 수 있으니까. 선택받으려면 당연히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어느 정도 알려지거나, 감독들이 찾는 배우가 되기 전까지는 불러주길 기다린다. 연기에 대한 기본적인 연습과 자기 관리는 항상 해야 하고.

원래 이렇게 상냥하게 말하나?
이게 나다.

의외다. 엄청 도도할 줄 알았거든.
요즘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서 태이령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드라마 속 인물이다. 사실 난 그냥 평범하다.

◀ 베이지 레이스의 검은색 이너웨어는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검은색 니트 카디건·은색 벨트·회색 모직 롱스커트 모두 프라다 제품.

전형적인 미녀상에 도도한 역할을 맡아왔다.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악녀 역할이 더 매력적이기도 하고.
내가 한 연기니까. 캐릭터에 대해서는 객관적일 수 없는 것 같다.

왜지? 역할을 처음 맡으면 캐릭터 분석이라고 하지 않나? 역할의 장단점을 따지게 될 텐데?
맞다. 하지만 역할에 몰입하는 순간, 단점이란 건 느낄 수 없다. 악역을 맡는 순간 이 캐릭터가 못됐다는 생각을 할 순 없다. 그럼 연기 못한다. 캐릭터와 하나가 되는 순간 단점은 없어진다. 행동의 타당성을 찾게 되니까.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자기 캐릭터가 악역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하지 않을 거다.

그럼 본인의 단점도 모르겠네?
그건 알지. 난 단점이 너무 많다. 단점은 콤플렉스와도 연결되고. 근데 단점을 너무 생각하면 그 안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생각 안 한다. 긍정적으로 살려고 한다. 눈에 띄는 단점은 고치려고 노력하는 정도고.
연애 안 하지?
티 나나? 사람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 근데 하고 싶다. 진짜.

어떤 남자와 하고 싶은데?
설레는 사람.

음, 어렵다. 어떻게 해야 당신한테 설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상형을 물어보면 어렵더라고. 설레는 사람이란 어떤 형태가 아니라 느낌이니까. 하지만 난 정말 마음이 설레는 사람이 좋다.

조건 같은 건 없구나. 돈을 못 벌고, 키가 작아도 상관없는 거지?
너무너무 설레는 남자다. 그런데 키가 작아. 그렇다고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키는 어느 정도고, 손가락은 길고, 쌍꺼풀이 있고 없고. 다들 그런 조건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당장 설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아서 나만의 평균적인 스타일을 제시할 수는 없다.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지 않나?

아니 쉽다.
진짜? 어떤 타입인데?

어린 여자.
하하. 이해한다. 남자들은 보통 어린 여자를 좋아하니까. 상처 받지 않겠다.

등이 깊게 파인 드레스와 광택 있는 스틸레토 힐 모두 구찌 제품.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
원래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미술이 전공인데, 왜 갑자기 연기를 시작했을까?
평범한 학생이었다.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또 거리에서 캐스팅을 제의받은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연기에 관심이 있거나 배우를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연기 수업을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배우 하려던 건 아니고, 누가 제의해서 갔었다. 연기학원을 가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갔는데, 나는 누구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 그런 고민해본 적 있나?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은 사춘기 때 하는 거 아닌가?
음, 그 연기학원의 커리큘럼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던지게 된다. 본질을 건드려주더라. 예전에는 대본을 잘 외워서 자연스럽게 대사하는 게 연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연기는 그런 게 아니다.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연기 수업에 빠지게 됐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블랙홀처럼 연기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나와의 싸움이 시작됐지. 그 수업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미술을 하는 사람이고, 간접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표현하는 사람인데, 내 몸 하나 표현을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미술을 하다 보면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행위 예술도 접하게 되지 않나?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내가 순수 미술에 더 잘 맞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디자인과 가라고 해서 갔는데, 사각 프레임이 너무 답답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대학에서 순수 미술에 목말라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럼 전과하면 되잖아?
그 생각도 했다. 연기를 안 했으면, 공부를 더 했을 수도 있다. 여튼 나와의 싸움을 할 때 데뷔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휴학을 하고, 연기 수업을 들었을 정도로 그 수업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던 차에 이금림 선생님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선생님이 잘 봐주셔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데뷔하게 됐다. 그래서 세세한 건 현장에서 다 배웠다. 선생님 덕분에 배우를 시작하게 됐다.

연기학원을 조금 더 일찍 갔다면, 더 빨리 배우가 됐을 수도 있었겠네?
만약 시야가 좀 더 넓었더라면, 사람들의 권유를 일찍 받아들였다면 빨리 데뷔할 수도 있었을 거다. 내가 놓친 나이대의 연기들을 할 수도 있었을 테고. 아쉽지만 뒤늦게 데뷔한 게 그만큼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준 것 같다.

◀ 검은색 코트는 타임, 하이 웨이스트 디자인의 반바지는 곽현주 컬렉션, 스웨이드 소재의 롱부츠는 스튜어트 와이츠먼 제품.

무명 기간이 길면 포기할 생각도 들고, 다른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나?
당연히 들지. 나는 데뷔를 먼저 하고, 그 후에 회사에 들어간 경우다. 나이 많은 신인 배우들이 흔히 겪는 일인데,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싶지만 못하는 상황들이 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하고 안 되면 포기가 되지만, 난 시작조차 못했다. 오디션을 볼 기회조차 없었거든.

그래도 기다린 자에게 복이 오지 않았나?
데뷔한 지 오래된 배우들은 다들 사연이 있다. 나 역시 무척 힘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이금림 선생님께서 잡아주셨다. 선생님 덕분에 연기할 기회가 있었다. 햇수로 데뷔 7년 차인데, 연기한 게 얼마 안 된다. 그래서 창피하다. 당당히 7년 차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래도 이제 태이령으로 주목받지 않았나? 사실 머리 스타일 덕도 컸다고 본다. 신의 한 수였다.
<청담동 앨리스> 때도 짧은 머리였다. 작품 끝나고 기르던 중에 태이령이라는 역을 맡았다. 그때 머리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이미 짧은 상태였으니까.

남자들은 단발머리파, 긴 생머리파가 있다. 긴 생머리는 흔하지만, 짧은 머리는 희소성이 있다. 전략적 성공이라고 본다.
그건 여자들이 머리를 짧게 자를 용기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음, 쇼트커트의 진 세버그는 유명하지만, 긴 머리의 진 세버그는 사진도 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헤어 실장님에게 감사할 일이지.

싫어하는 남자 유형이 있나?
어렵다. 딱히 싫어하는 유형은 없다. 내게 호감을 표현해준 남자는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같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정중히 거절한다.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인간적으로는 너무 좋지만, 이성적으로 같은 마음일 수 없다. 내가 상대의 마음을 알면서, 책임질 수 없다면 관계를 정확히 하는 게 옳다고 본다.

나도 좋은 친구가 된 여자들이 가장 싫다.
정말 안 좋다. 상대의 마음을 모른 척하는 건 희망 고문이다.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박정민
STYLIST: 구동현
HAIR: 박효심(재클린)
MAKE-UP: 김지영(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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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Photography 박정민
Stylist 구동현
Hair 박효심(재클린)
Make-up 김지영(이희)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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