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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나 PD의 생존 전략

On October 24, 2013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 월요일 아침 라디오 멘트를 들으며 상암동에 갔다. 나영석 PD는 만드는 족족 대박을 터뜨리는 스타 PD다. 국민 예능이었던 <1박 2일>과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거점인 <꽃보다 할배>를 만들었다. 그에게서 화려한 경력과 성공적인 이직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두 프로그램 <1박 2일>과 <꽃보다 할배>는 모두 여행을 간다. 왜 여행일까?
여행은 확실한 매력이 있다. TV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시청자들은 피곤할 거다. 여행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으로 사는 걸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을 좋아한다. 나도 좋고.

좋아하는 것만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텐데.
물론 그렇겠지.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야지. 하하. 직장인이니까 잘리지 않으려면 또 다른 기획을 해야겠지.

PD들도 직장인이다. 프로그램 기획할 때 상사를 신경 쓰지 않을까?
전혀.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반응이 좋으면 반대하던 상사도 승인하게 되는 거고.
우선 시청자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근데 요즘 시청자들은 까다롭다. 나름 공략법이 있나?
그런 게 있을까? 내 방송 보면 있어 보이나?

패턴은 있는 것 같다. <해피선데이>는 가족 시청 시간대라는 점을 고려해도 전 연령층이 좋아할 요소로 구성됐었다. <꽃보다 할배> 역시 휴머니티를 강조한 프로그램이다.
내 취향이 크게 작용한다. 전 연령대가 보는 걸 원하기도 한다. 대단한 장인은 아닌 것 같다. 감성이 세련되진 않아서 20~30대가 열광하는 방송은 잘 못 만들겠더라. 나는 편한 방송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만들면 꼭 그렇게 되더라고.

그럼 프로듀서는 요즘 시청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예전 시청자들은 방송 내부의 일은 몰랐다. 결과물만 보았으니까. 하지만 요즘 시청자들은 방송이 제작되는 과정, 누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이젠 속일 수가 없다. 방송을 스쳐 보는 사람부터 준방송인 수준으로 보는 사람까지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훨씬 더 신경 쓰이지.

직장인들은 항상 이직에 대해 생각한다. 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뭔가?
어느 한 가지 이유로 이직한 건 아니다. 마음에 안 드는 거 하나 없는 직장이 어디 있겠나.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젊은 감각이 없어질 것 같았다. 근데 KBS는 공무원 같은 조직이다. 틀에 박혀 똑같이 흘러가는 게 싫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편한 자리로 진급해서 시간만 때울 것 같았다. 나는 일하는 것보다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음, 나도 매우 그렇다.
지금 유지하고 있는 감각과 기술들을 녹슬지 않게 하려면, 조금 더 절박한 환경에 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업으로 옮긴 가장 큰 이유다. 또 돈도 더 주고, 좋아하는 선배들, 작가들도 있으니까. 여러 부분이 작용한 거지.

직장 생활을 오래 하면 익숙한 것만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았던 거네?
그렇지. 아직은 젊으니까. 10년밖에 안 했다.

예능 PD는 뭐가 제일 힘든가?
끊임없는 창작의 고뇌? 하하하. 여긴 반복적인 일이 없다. 근데 나는 반복적인 단순 업무를 무척 잘한다. 대학생 때 동사무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동의 세금 납부 인세를 더하는 업무였다. 숫자가 가득한 수십 장을 계속 더하는 거다. 익숙해지면 계산기를 안 보고 더하게 된다. 별것 아닌 단순 작업에서 오는 기술의 향상이랄까? 빠르고 정확해지는 게 뿌듯했다. 어쩌다 직업을 잘못 선택해서 PD가 됐다. PD는 그런 작업이 없다. 특히 내 연차가 되면 고민하는 일만 남는데, 그게 너무 힘들다.
창의력이 샘솟는 인간도 아니고, 편집이나 촬영할 때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너무 피곤하다.

단순 작업은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쨌든 ‘칼퇴’가 가능하니까.
그런 걸 꿈꿨다. 1994년에는 장정일, 하루키처럼 사는 게 유행이었다. 운동권 세대도 아닌데, 현실에서 도피하려 했다. 작은 방 하나 마련해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벌고, 책이나 읽다가 잠들어야겠다는 것. 그런 걸 꿈꿨는데, 시절이 수상해서인지, 마음속에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욕망이 있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맞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더라. 괴롭고 힘들기도 하다.

힘든 일도 오래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지 않나?
무덤덤해지는 게 아닐까? 낯을 가려서 모르는 사람 만나면 얼굴이 빨개졌다. PD가 되니까 더 심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 현장을 장악하는 통제력, 소리 지르면 스태프들이 긴장하는 일이 나와 안 맞았다. 10년 지나니까 조금 괜찮아지더라.
조금씩 뻔뻔해지는 것 같다. 아주 느리지만 직업에 나를 맞춰간다. 안 그러면 도태되니까.

하기 싫은 일도 막상 시작하면 남들한테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이 생긴다.
그런 부분이 굉장히 크다. 내가 정말 공무원처럼 칼퇴근하고, 책이나 읽으려던 사람이 맞나 싶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쓴다.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것 같은데, 돈 벌려던 목적이 전이된 것 같은 기분이다.
뻔한 거 아닌가? 당연히 일이 좋고, 돈이 좋은 거지. 다른 직장인도 그렇다. 그건 나중에 인정하게 된다.

또 어떤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나?
제일 난감하다. 앞으로 계획을 물으면, 10년 뒤 이런 프로그램을 하고 싶습니다, 해야 하는데…. 평소 누가 그런 생각을 할까?
당신도 당장 인터뷰를 어떻게 끝내야 하나, 오늘 회사에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나?

그런 고민은 순간일 뿐이고, 큰 그림은 있다.
나는 없다. 오늘의 편집, 한 시간 후의 것들을 생각하며 산다.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다. 언제나 ‘막방’이라고 생각하며 만든다. 실제로 ‘막방’이었던 적도 많고. 하하. 그렇지 않으면 집중이 안 된다. 그렇게 만든 방송이 몇 번 망하면, 그때쯤 이젠 뭐할까 생각하겠지. 근데 지금 생각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기량이 떨어지고, 실패하고, 회사에서 존재 가치가 없어지면 그때 고민할 거다. 계획하는 성격이 아니다.



예전 KBS PD들에 대한 기사를 봤다. <스케치북>이 모든 PD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방송이라고 하더라. 직장인이라면 편한 부서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많이 부러워했고, 꿈꿨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실 이 직장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어느 부서가 편한지 잘 모른다.

힘든 프로그램을 맡았다는 건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달콤함은 순간이고. 하하하. 지옥 같은 일의 크기나 노동력 때문에 고통은 깊고 오래간다.

평소에는 어떻게 쉬나?
유일하게 쉬었던 기간은 <1박 2일> 끝나고 한 1년 정도다. 놀아봐야 놀 수 있더라고. 가만히 있으려니 황망했다.
그래서 책을 썼다. 쉬는 시간 되면 제일 좋아하는 건 만화방에서 자장면 먹으면서 하루 종일 만화책 보는 것. 돈 좀 있으면 휴양지에서 잡지 읽으며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한다. <1박 2일>이나 <꽃보다 할배>처럼 배낭여행을 떠나고, 산골에 가서 뭘 먹거나 하는 건 완전 싫다.

여유가 생겼는데, 쓸 방법을 모르면 슬프지 않나?
30대 후반에 온전한 휴가라는 게 가능할까? 여름에 휴가를 갈 수는 있다. 근데 신경 쓰여서 놀 수가 없다. 내 나이가 복잡한 나이란 걸 느꼈다. 이 시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1박 2일> 할 때 쉬고 싶었지만, 막상 쉬면 경력이 끊길까봐 걱정을 한다.
그럼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거다. 진정한 휴식은 7세 이전에나 가능한 것 같다. 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먹고살려고 돈을 버는 건데, 벌다 보면 경력에 집착하게 된다는 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무언가 쌓고 있다. 쌓아놓은 게 훼손되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경력이 곧 나의 존재도 되니까?
그렇다. <1박 2일>은 기쁘기도 했지만, 증오스러울 때도 많았다. 5년 넘게 매일 일을 해야 했으니까. 끝나면 자유로울 것 같았는데, 안 그렇더라고. 어디 가서 탓하겠나. 내가 욕심이 많은 탓인데. 1년을 쉬고 이제 그런 고민은 안 한다.
나는 예상외로 욕심 많은 사람이었구나 인정하면 된다.

사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다. 가족을 위해, 미래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것 아닌가?
완전 그렇다. 다른 이득은 덤으로 따라온다. 근데 요즘 사람들은 조금 다른 것 같더라. 놀고 싶으면 논다. 어르신들과 프랑스를 갔을 때 배낭여행객을 만났는데 대학생이 아닌 사람들이 많았다. 사표 내고 여행 온 사람들 얼굴이 밝았다. 나라면 돈 생각에, 앞으로의 생활 때문에 불안했을 텐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조직화된 PD들과 작가들 수십 명이 체계화된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공장 같은 메커니즘이 있는 거다. 그 공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다루느냐에 따라 좋은 PD와 나쁜 PD로 나뉜다.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사람도 좋지만, 나는 그런 낭만의 시기가 끝났다.

바쁘니까 가족과 함께할 시간도 부족하겠다.
주말을 제외하면 새벽에나 집에 들어간다. 아이와 아내 보기가 아쉽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취업해서 돈 벌면 주말에는 여행 가고, 퇴근 후 아이들과 놀 줄 알았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런 직장들이 있나 보다. 앞으로는 더더욱 없어질 것 같은데.

왜지?
웹서핑을 하다 보면, 실리콘밸리의 구글 본사 사진이 나온다. 카페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 말이다. 나는 전혀 믿지 않는다.
고도로 조작되었거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지 진짜 복지는 아닐 거라 생각하거든. 내가 회사 윗사람이라도 그럴 것 같다.
더 뽑아 먹을 생각하겠지. 그렇게 시대가 역행하는 일이 있겠나? 말하고 보니 암울하네.

나 PD는 지금 관리직인 셈이다. 신입 때 보던 상사들의 싫은 면을 답습하는 경우도 있나?
많다. 공장을 돌리려면 필요하다. 밤새 편집도 해야 하고, 촬영, 회의도 한다. 많은 일이다. 나도 예전에는 톱니바퀴 같은 직공이었다면, 이제는 작은 공장장 정도 된다. 위에선 톱니 하나 안 돌아가서 공장이 멈추는 게 보인다. 그 톱니들이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아주 좋은 말로 달랜다. 예전에 내 상사가 재수 없는 말을 했다면, 나는 공손하게 말하는 정도다. 뉘앙스가 바뀐 것뿐이다.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니 결국 돌아서면 씁쓸하다.

어느 조직이나 정치가 있다. 방송국 그러니까 PD들의 정치는 어떤 걸까?
다른 직장과 똑같다. 여기도 세분화된 등급이 있다. 대리, 과장이라는 호칭만 없을 뿐 마음은 똑같다. 승진하고 싶고, 누구한테 잘 보여야 할 것 같고, 최소한 눈 밖에 나면 안 될 것 같고.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하고 그렇다.

나 PD는 정치를 잘하는 편인가?
엄청 못한다. 하하. 정치에 익숙하지 않고, 잘 못하는 타입이다. 예전부터 그랬는데 다들 잘 대해준다. 왜냐면 어느 순간 스타 PD가 돼버려서 그렇다. <1박 2일> 때도 회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존재니까 그랬을 거다. 지금도 <꽃보다 할배>가 잘되어서 평화롭다.
내가 밉거나 싫어도 이 시기에는 다들 잘해준다. 하지만 이런 건 보인다. 이 시기가 끝나면….
하하하. 아, 무섭겠다. 이런 생각도 한다.

직장에서 나 PD만의 생존 전략은 뭔가?
생존 전략은 아주 간단하다. 엄청나게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하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 옆에서 2인자로 살거나.

후자가 더 쉽겠네?
훨씬 쉽다. 게다가 1등보다 훨씬 편하고 오래간다. 마라톤을 보면 30km까지는 다들 2등 그룹에서 달린다. 선두는 대부분 고꾸라지거든. 조용히 뭉쳐 가는 게 제일 좋다. 그렇다고 3위나 4위로 떨어지면 사람들이 욕한다. 1등은 질투당해서 욕먹는다.
2등은 쓸모 있으니까 욕 안듣고, 질투도 안 받는다.

지금 1등 아닌가?
지금은 그런 것 같다. 2등 자리로 돌아가려는 고민은 늘 하고 있다.

하지만 1등에서 내려가면 타격이 크지 않을까?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관리직으로 가야 합니다” 뭐, 이런 식으로 조용히 내려가면 된다. 하하하.

photography: 우상희
editor: 조진혁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 월요일 아침 라디오 멘트를 들으며 상암동에 갔다. 나영석 PD는 만드는 족족 대박을 터뜨리는 스타 PD다. 국민 예능이었던 &lt;1박 2일&gt;과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거점인 &lt;꽃보다 할배&gt;를 만들었다. 그에게서 화려한 경력과 성공적인 이직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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