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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 play

지방 선거와 월드컵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페어플레이를 전 영역에 걸쳐 확장, 적용할 필요성을 느낀다. 가만, 그런데 무엇이 페어플레이였더라…. 자신만의 페어플레이를 통해 힘을 기른 5명과의 대화 속에 그 해답이 있다. <br><br> [2006년 7월호]

UpdatedOn June 21, 2006

불후의 명작, 신중현

Photography 보리  Words 이책  Editor 정석헌

 (통화 중) 당신을 페어플레이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내가 이사를 했어요. 여기 용인이에요. 
용인이 아니라 어디에 있어도, 외국에 있다 해도 우리는 갈 겁니다. 그런데 문정동 우드스탁은 어떻게….
전화가 잘 안 들리는데….
아, 예! 아, 여보세요! 이제 좀 들리시나요?
네.
문정 아니, 그럼 언제 찾아가면 좋을까요?
화요일에 오세요. 아침 일찍 여덟 시쯤에. 이야기야 어렵지 않지만 우리 집이 아직 정리가 되질 않아서….
있는 그대로가 좋습니다. 건축 중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사진가가 알아서 잘 표현할 겁니다.
양지 인터체인지 나와서, 전화 주세요. 에스코트해줄 테니까.
아닙니다. 주소만 알려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음, 주소가…, 용인시….
 
(면대) 이 집 정말…, 나무 냄새가 정말 좋다. 진정한 우드스탁! 
아직 정리가 되질 않아서 어디 제대로 앉을 데도 없을 텐데….
언제 이쪽(용인)으로 왔나? 집이 참 좋다.
일 년쯤 됐는데, 그때 몸이 좋지 않았다. 눈이 침침해지고 이유 없이 자꾸 아프고…. 어느 날 우리 아들이 말했다. “제가 용인에 집 한 채 지을 만한 작은 땅을 사놓은 게 있는데, 거기서 작업하시면 어때요?” 내가 문정동 우드스탁에서 20년을 작업했다. 그 공간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 동네에 건물이 딱 세 채 있었다. 나머지는 전부 논밭이었는데….
지금은 이곳이 전부 논밭이다.
내가 그곳에 일군 우드스탁은 완벽한 음악 공간이었다. 그 누구도 우드스탁을 옮기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없었고. 그런데 아프기 시작하면서 아들이 슬쩍 얘기를 꺼낸 거다. 그래서 이제 햇빛 좀 보고 살겠다며 이리로 왔다.
일 년 전이면 꽤 됐는데, 여전히 공사 중이다. 예전에 진짜 우드스탁 공연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무대 제작 과정을 촬영해서 고속으로 보여주는데, 정말 가보고 싶었다. 당신 집도 롱런을 생각하는가 보다.
나는 돈이 없어서 이런 거다. 이게 전부 빚으로 짓는 거니까. 돈 좀 생기면 목수들이 와서 기본 작업해주고, 그리고 작은 못질은 전부 내가 한다. 그러다 또 돈이 생기면 나무 사다 울타리 치고, 또 작은 일들은 내가 하고, 또 돈 생기면 하나 더 만들고…. 그렇게 짓고 있다. 저기 천장에 두꺼운 비닐도 내가 조금씩 하고 있는 거다. 지붕이 나무지만 햇살이 워낙 좋아서 열이 많이 난다. 그거 차단하느라고 하나하나 설치 중인데, 다 끝나면 단열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건강은 좋아 보인다.
그렇다. 굉장히 좋아졌다. 공기 좋고, 볕 잘 들고, 집 짓는다고 일하다 보니 몸이 개운해졌다.
규모도 꽤 있어 보인다.
전원주택 단지에 마련한 거니까 그냥 이렇게 보이는 게 전부다. 전체가 작업실이자 살림 공간인 셈이다. 문정동 우드스탁에 있던 걸 전부 갖다 놔서 1, 2층 전체가 아주 엉망이다. 마당에는 무대도 만들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나?
오! 우드스탁 스테이지다. 그런데 객석은….
객석은 당연히 없다. 공간이 이게 다니까. 저 무대는 학생들이 공연할 때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체험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정식 무대에 서기 전에 저곳에 올라가 리허설을 해보는 거다.
학생이라면, 당신의 사이트 sjhmvd.com에서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을 말하는 건가? 
그렇기도 하지만, 사이트가 아니더라도 그런 학생이 있다면 누구든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다. 아직 사이트에 들어와 배우는 학생은 없다. 지금 준비 중이고, 곧 그렇게 할 거라는 말이다.
슬쩍 둘러보니 살림살이도 꽤 보인다.
하하하. 내가 돌솥밥을 잘한다. 음악하는 후배들이 자주 와서 집짓기를 도와주기 때문에 가마솥도 있고, 삼겹살 구이 전용 솥뚜껑도 있다. 오늘도 애들이 오기로 했는데…. 다들 워낙 늦게 일어나서 어떨 땐 오후 늦게 와서 그저 밥 해먹는다고 부산 떨고 그냥 갈 때도 있고. 사이트를 운영하는 여직원도 있는데, 내가 집에 있을 때에는 나와서 일하고, 내가 외출해야 할 때에는 그 친구도 나오지 않는다.
중간에 듬성듬성 있는 책장, 대나무 발 같은 것만 없으면 완전한 로프트인데? 벽돌이 보이질 않지만. 마룻바닥이나 나무 벽에, 창문에 들어온 풍경이 그냥 월페이퍼 역할도 하고.
침대도 갖다놓았다. ‘라꾸라꾸’ 침대. 하하하. 훌륭한 잠자리다. 지금 진도로 나가면 아마 앞으로 일 년쯤 더 일해야 집이 완성될 것 같다. 어쩌면 평생 해야 할지도 모르고.
집 짓는 일은 그렇고, 음악 활동은 어떤지 궁금하다.
나는 못 했던 음악이 너무 많다. 몸이 움직여야 음악도 하는 거니까, 이사한다는 게 음악과 무관하지 않다. 진정한 음악성이라는 게 지금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방과 표절만이 난무하고 있다. 음악이 존재해야 음악인도 있는 거다. 비난의 의미보다는 프로페셔널리즘과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해달라. 나는 40년을 뮤지션으로 살면서 꽤 완벽한 작업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면 또 다른 미숙함이 발견되고 또 발견되는 거다. 나는 거기서 음악성은 정말 무한대라는 걸 깨닫곤 한다.
당신은 1955년부터 활동했다. 오늘 기준으로 따져봐도 51년을 활동 중인데, 적어도 내 기억에 당신의 신곡이 한번에 귀에 쏙 들어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외람되지만, 훗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신곡 발표 당시에는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나중에 들어보면 정말 좋은 곡들이고, 그래서 지금도 당신의 곡들은 세대를 넘나들며 음악 폴더에 저장되고 있는 거겠지만.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잔’, 김추자의 ‘늦기 전에’, ‘나뭇잎이 떨어져서’, ‘님은 먼 곳에’, 박인수의 ‘봄비’, 장현의 ‘나는 너를’, ‘미련’ 당신이 직접 부르지 않았나?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신중현과 뮤직파워의 ‘아름다운 강산’…. 지금도 좋아하는 노래들이다. 사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음악은 전문가 직업이다. 창작되어진다는 이야기다. 전문직이 다 그렇지 않나? 창작되어진다는 것은 어제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고. 프로 음악가라면 대중에게 당연히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의무고 정체성이다. 오늘의 유행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대중은 냉정하다. 그걸 왜 모르겠나. 하지만 나는 나의 음악에 몰두한다. 그리고 냉정한 대중은, 새롭다며 내놓은 음악이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고, 나중에라도 마음에 들면 늦게라도 받아들이고 한다. 얼마나 명쾌한 원리인가?
지금은 기획 음반이 시장의 주류가 되어 있다. 그래서 기획도 기획사에서 하고 거기에 맞는 작곡가도 기획사에서 정하고, 뮤직 디렉터도 기획사에서 섭외하고, 가수도 기획사에서 뽑고, 돈도 기획사에서 쓰고, 벌어도 기획사가 제일 많이 벌고, 망해도 기획사가 망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기획사가 작곡가나 가수에게 의존하곤 했다. 지금도 그런 음반 제작 구조가 존재하기도 하고. 예전엔 당신의 실험적인 음악들이 음반으로 제작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늘 제작자의 견제를 받았다. 음반을 내긴 내는데, 이게 제작자도 처음 보는 음반이니까, 성공할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사라질 것 같기도 하니까 한참 망설이고, 생각하고…. 그러다 어찌어찌 해서 앨범을 내지만 홍보도 잘 안 하고, 무대 섭외도 제대로 안 하고….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많은 곡이 인기를 얻었고, 또 당시에는 사장되었지만 나중에 대중에 의해 소생하는 경우도 많았다.
내 생각에는 흥행과  음악성 사이에서 갈등 내지는 타협과 관련된 번민도 있었을 것 같다.
아니다. 나는 내 음악성만 믿는다. 그게 내가 아는 페어플레이다. 이것저것 다 따라가면 내 것이 아니다. 내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상업성, 흥행 따위의 언어가 갖고 있는 존재감을 왜곡하며 사는 것 같다. 흥행은 엔터테인먼트 용어다. 흥행에 성공한다는 건 대중이 좋아한다는 말이다. ‘흥행=나쁘다?’는 대중을 욕하는 거다. 대중이 좋아해서 흥행을 따라가는 게 나쁘다? 아니다. 문제는 내 음악성으로 흥행했느냐, 다른 사람의 음악성을 흉내 내서 넘버 투나 스리가 되어 흥행한 척하느냐, 그 차이다. 그러니까 상업성, 흥행, 이런 말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인지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상업성이란 바로 작품성이 말해준다. 진정한 흥행이란 바로 음악성이 말해준다. 바로 그 음악성이야말로 음악하는 사람, 음악으로 먹고사는 사람,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대중에게 불멸의 존재인 거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좋은 작품은 홍보 안 해도 대중이 알아서 찾아와서 품어준다.
작품, 작품으로서의 상업성, 흥행성을 음악인의 페어플레이라는 말로 이해하겠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햇병아리들이 있다. 나중에 싸움닭이 되든, 튼실한 황금닭이 되든 누구나 처음에는 두렵고 가볍고 헤매기 일쑤다. 그들에게도 역시 음악성만을 믿으라고 말할 텐가?
음악은 두 가지다. 유행성과 음악성. 이 둘은 어차피 공존하게 돼 있다. 누구든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둘 중 한 가지만 교조적으로 고집하며 살지는 않는다. 새로운 유행은 어느 시대든 필요하다. 두 가지가 교집합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통째로 지배하는, 합집합 형태로는 갈 수 없다. 그런데, 유행은 하루치기다. 난 도저히 하루치기가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음악은 봄바람에 날리는 먼지 같은 존재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음악은 삶의 정체성이며 우주의 진리다. 정체성이 어찌 변할 수 있으며, 우주가 조석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시대에 음악을 맞출 것이냐, 영혼에 음악을 맞출 것이냐…. 그건 첫발 떼기 전에 선택할 일이다. 두 가지 개념은 섞일 수 없다.
프로페셔널리즘의 극치를 느끼게 된다. 우리의 신중현은 이렇게 지금도 청년 같은 목소리에 소년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당신은 평생 변치 않는 건가? 그저 음악성 하나만이 복된 십자가였나?
그렇다. 하지만 표현은 변한다. 음악성은 도도한 흐름이다. 표현은 강물의 표면과 같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진보는 원점을 향해 전진한다. 음악의 원점은 ‘아무것도 없음’이다. 내 음악도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예전의 음악을 들어보면 복잡하고 화려했다. 지금은 입체감, 심플함, 깊음으로 가고 있다. 무언가 측량할 수 있을 것 같은, 듣는 사람의 공간이 생기는, 그런 것들, 무언가 남겨놓는 음악…. 내 음악이 이렇게 흐르고 있는 사실이 난 부끄럽지 않다. 내 삶이 이렇게 집을 지어가듯 하나하나 쌓여지고 사라지는 게 부끄럽지 않다. 내가 이 집에서, 햇살 좋은 이 집에서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게 나는 참 좋다.

장비의 탈을 쓴 관우, 차승재

Photography 황진우  Words 송용덕  Editor 정석헌

어페어플레이라는 주제의 인터뷰에 흥미 있는가.
하하하. 재미있다. 내가 그동안 영화를 40여 편 만들었다. 페어플레이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이번 기회에 한번 자문해보고 점검해보자.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다. 기분이 어떤가.
사실 그런 말을 들으면 좀 쑥스럽고 처신하기 곤란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만족스럽다.
영화인 차승재와 자연인 차승재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주위에서 말한다. 일상과 일의 교집합이 많다는 건가?
일이 좋다. 영화 만드는 작업이 일이고 생활이다. 뭐 별로 할 것도 없고…. 생각도 안 해봤다. 난 욕심이 많지 않다. 그냥 내 존재감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존심 상하지 않게 일이라는 결과물로 나온다면 만족한다.
욕심이 없다? 사람이란 열심히 일해 성과를 얻으면 더 큰 꿈을 꾼다. 전략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렇지 않은가. 당신의 위치에서 말하는 욕심의 사이즈가 궁금하다.
채플린보다 채플린의 영화가 오래 남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 크레디트에 ‘제작 차승재’라는 이름 석 자를 확인하는 게 내게는 가장 큰 욕심이다. 직원들 월급 주고,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여기 걸려 있는 사진 속 체 게바라 형님이 만약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카스트로 같았을까. 삶의 연장이 욕심은 아니지만, 생각하면 좀 웃긴다.  
외신을 보니 카스트로의 비자금이 수억 달러라더라.
정말, 그럴 사람이 아닌데…. 하하하. 웃긴다.
정글 같은 영화 생태계에서 차승재가 살아남은 것은 결국 튼실한 내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 스스로 이곳에서 만들고, 지키고 있는 룰이 궁금하다.
그건 간단하다. 난 욕먹으면서, 손가락질 받으면서, 남에게 상처주면서 살고 싶지 않다. 다른 회사가 공들인 감독을 스카우트하면서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영화사에서 김지운이나 박찬욱 감독하고의 작품은 없다. 하고 싶지만…. 다른 영화사와 작품을 이어가는 연장선상에서 일하고 그 제작자는 많은 기대를 갖고 그 감독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관계 사이에 고무줄 끊기 하듯 내가 가위를 들고 나타날 수는 없는 거다. 그건 내 철칙이다.
이를테면, 선택해야 한다. 당신이 눈 한 번 질끈 감고 룰에서 한 발짝 벗어나면 당신의 계획과 인생을 한 10년쯤 앞당길 수 있다. 삶은 선택할 수 있어 괴로울 때가 있다. 
파이의 문제일 거다. 고민이네…. 하지만 난 그렇게 안 할 것 같다. 그래서 얻은 것이 아무리 크다 한들, 나중에 보면 다 눈깔사탕이더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음, 내가 목표를 성취하고 정상에 섰다고 해두자. 그런데 환호성 지르고 뒤를 보니 시체가 즐비하다면 그게 뭐냐. 정말 전우의 시체를 밟고 넘어 고지를 점령하는 것도 아니고. 피로 얼룩진 승리의 깃발이 시체 밭에서 펄럭인들…. 그건 아니다.
싸이더스에서 데뷔하는 신인감독이 유난히 많다. 신인과의 작업에서 그들을 감별해내는 것은 본능인가, 아니면 오랜 시간 지켜본 관계의 채점표인가?
그들에 대한 데이터나 계량적 수치는 없고 테스트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 정열, 준비 상태는 그 이상을 알려준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나의 선험적인 재능이다. 일단 믿고 그들의 능력이 이 정도에서 어느 정도 발휘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실패도 있지만 허진호, 봉준호, 임상수 같은 신인의 등장은 정말 아름다운 발견이다.
늘 잘 되는 건 아니다. 기대를 꽤 했는데 평단이나 흥행의 실패라는 결과 앞에서 혹시 화가 나거나 힘들진 않나?
전혀. <슈퍼스타 감사용>이나 <지구를 지켜라> 등이 대표적인데 난 우리가 생각하고 원한 만큼 노력해서 얻은 결과에 만족할 뿐이다. 내부에서 1차 시사를 한다. 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거기서 끝이다. 그 이후의 흥행이나 외부의 평가는 또 하나의 참고 자료일 뿐이다. 누구든, 무엇이든 자기 성과를 내는 것이다. 남의 성과를 내 것으로 만들 순 없다.
당신의 영화들을 보면 유난히 당신 친구들이 만든 영화가 많다. 관계에 의한 결정은 아니겠지만, 재미있다. 
내 친구들, 영화 많이 했다. 그들은 제작사가 필요했고 나 역시 그들의 작품을 원했다. 나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했겠지만 서로 편하니까. 관계가 심각하게 작용한 케이스는 없다. 김태균, 임상수, 권칠인, 김인식, 김성수 감독들이다. 그러다 보니 난 괜찮은데 내부에서 견제가 들어오더라. 
학교 강의도 맡고 있는 걸로 안다. 요즘 아이들 어떤가?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부 부교수로 강의를 나간다. 우리 때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 때는 영화한다는 것에 경외감, 일종의 숭고함이 있었다. 그게 전부였고, 그야말로 올인했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들에게 영화는 인생의 포트폴리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학생들이 만드는 작품에도 차이가 있다. 우리는 비장하고 사회 고발적이거나 예술적인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재미’가 주축이다. 뭐, 그런 것도 당연한 거지만.
영화계가 풍성해졌다. 하지만 돈의 병목현상은 더 심해졌다. 힘든 노년을 보내는 영화계 선배들에 대한 배려에 있어 당신의 음양의 흔적이 많이 눈에 띈다.
선배들은 산비탈을 맨손으로 갈고닦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있기에 지금 내가 평지에서 공차고 노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지금 이 잔디밭을 잘 관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난 선배들을 정말 존경한다. 작은 내 표시다.
잠시만 쉬었다 가자. 잡기에 능한가. 고스톱, 카드 뭐 이런 것 말이다. 그리고 판에 뛰어들면 따는 편인가.
카드, 그거 참 많이 쳤다. 영화하는 사람들 돈 좀 긁어모았다. 그때 보면 돈을 따는 것도 두 가지다. 전체적인 판세를 잘 읽는 것과 과감한 배팅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돈을 따더란 말이다. 지금은 정말 시간이 없어 못 친다.
스포츠는 어떤가. 몸매를 보니 좀 관리가 필요하다.
운동하는 건 별로다. 이 몸에 그렇게 뛰는 게 쉽지 않다. 다만 권투나 축구는 좋아한다. 축구는 볼 때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뭔가가 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권투는 특히 페어한 경기다. 체급도 나뉘고, 팔만 쓰고…. 그에 비해 이종격투기는 룰이 충분하지 않아 좀 아쉽다.
그래도 이종격투기가 요즘 대박이다. 사람들이 이 경기를 좋아하는 건 룰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 아닌가.
글쎄 , 인간의 본능 중 공격성이 존재한다. 그것이 도시 속에서 진화하면서 ‘너는 여기 있어라’는 자기 위치, 그러니까 쓰임새가 결정되었다. 그런 식으로 순화된 게 아닐까. 그 공격 디엔에이가 어느 순간, 어떤 계기에 표출되는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스크린쿼터만 해도 그렇다. 2천억원짜리 영화와 40억원짜리 영화가 같이 링 위에 올라가는 건 이종격투기도 아니다. 이종격투기는 미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체급을 일단 나누기는 하니까.
지겨운 의심병, 얄궂은 호기심이다. 축구 경기를 보면 상대를 태클로 넘어뜨리고는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상대방이 부상 당했을 때 공을 밖으로 차 경기를 중단시킨다. 그것을 스포츠맨십이나 페어플레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아무도 안 보는 경기, 중계 안 되는 경기라도 그런 행동이 나올까.
후후…. 심각하다. 그건 인성의 문제다. 누가 보고, 안 보고의 문제 이전에 내 자신이 갖고 있는 품성이다. 그런 것은 영화에도 나타난다. 나는 관습적인 영화를 방법으로 제작하거나 돈을 벌고 싶지 않다. <비트>,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유령>, <무사>, <봄날은 간다>, <화산고>, <로드 무비>, <지구를 지켜라> 등은 죄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것들이다. 그것들은 관객과 팽팽한 경기를 하는 것이다. 관객이 박수를 친다고 손을 내밀고, 그들이 외면한다고 내가 갖고 있는 룰이나 품성을 깰 수는 없다.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페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시인 김정환이다. 한 10년 전에 안면을 트고 3, 4년 전부터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내가 정환이 형을 좋아하는 이유는 볼일 이외의 것을 요구하지도 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형은 한번도 그런 관계를 일로 연결하지 않았다.
음, 틀렸군. 당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한번 일로 잘 연결해보려고 했는데….
하하하, 우리 술이나 먹자.
혹시 지금 두려운 게 있는가.
음, 나이 먹는 것이다. 그것은 직업과 관계가 있다. 영화의 주 소비층인 20대의 생각을 읽어내는 게 두렵다. 왜 또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어릴 때는 이랬는데 요즘은….’ 이런 옛날 얘기가 나오는데 그러면 꼰대가 되는 거 아닌가. 한마디로 ‘간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 직원이 85명인데 다 젊다. 그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데 유리하고 우리 같은 꼰대들은 그 아이디어로 판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데 좀 더 강하다. 난 <국경의 남쪽>을 보며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별로였나 보다.
가끔 죽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는가. 예를 들면 잘 사는 법처럼 잘 죽는 것…. 이런 거 말이다.
노스님들 보면 ‘자, 나 간다’ 그러고 가듯이 나도 그렇게 끝내고 싶다. 언제가 일을 마쳐야 하는 순간도 그렇게 하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죽는 것, 가끔 생각한다. 어디 몽고나 네팔 초원 같은 데서 조용히 가고 싶다.
음, 종교적이다. 그곳이 천당이나 극락과 가깝기 때문인가?
하하하, 난 종교 없다. 맹목적이어서 좀 그렇다. 내 나이가 마흔일곱인데 이제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분명이 짧을 테니까. 이 넓고 많은 사람 속에서 내가 유한하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내세보다 현실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삶의 본질에 충실하고 싶다.
이제 죽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슬슬 마무리하자. 영화 제작자 차승재, 당신 인생의 화두는 무엇인가?
서 있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천천히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겠다.

누군가, 돌아갈 수 있는 인생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했다. 차승재에게도 분명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영화를 시작해 지금껏 많은 날들이 영화로 인해 행복했지만, 그 사랑하는 영화로 인해 가슴 아팠던 것 역시 부지기수였을 테니까. 정말 그가 할 줄 아는 것이 영화밖에 없었다는 뭐, 그런 말들도 ‘설’보다는 ‘썰’일 테니까. 뚝심이다. 1백 미터라 치면 숨 몇 번 쉬고 단숨에 내달리면 되지만 15년 정도라면 이건, 마라톤에 들어선 격이다. 한순간 앞으로 나가고, 뒤처지는 작은 리듬이 15년을 지탱하는 근원일 리 없다. 그가 영화와 아름다운 동행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은 이른바 ‘충무로 플레이’에서 그래도 한결같기 때문이다. 충무로의 룰과 인생의 룰, 그 아귀를 페어하게 맞춰가는 그에게서 난, 장비의 탈을 쓴 관우의 모습을 보았다.

보이지 않는 힘, 복거일

Photography 전재호  Editor 정석헌

당신의 방식대로 페어플레이를 정의해달라. 
페어플레이하려면 선수보다 심판이 중요하지 않을까? 우선 심판이 공평한 경기가 되도록 이끄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건 규칙이다. 규칙이 잘못돼 있으면 사람들이 따르려고 하질 않으니까. 규칙이 잘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운동 경기는 규칙이 잘 정비돼 있다. 그런데 사회제도는 규칙이 잘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게 법이다. 법이 있지만 법의 운용에 문제가 있고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퍼졌기 때문에 자연히 페어플레이하려는 마음이 줄어든다. 그게 문제다. 운동 경기는 단순명료해서 규칙도 합리적이지만, 사회제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규칙이 단순하지도 않고. 무엇이 규칙인지도 모를 만큼 말이다. 그래서 규칙을 잘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규칙은 여러 요소들이 작용해서 나오거나 사람이 만든다. 전자는 하이에크가 말한 자생적 질서, 즉 시장을 통해서 저절로 나오는 질서다. 시장에서 운용되는 규칙은 비교적 공정하다. 하지만 정부가 입법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만드는 규칙에는 정치적 계산이 들어가고 다수의 이익과 견해가 반영되기 때문에 기울 수가 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을 높이 산다. 시장의 규칙은 대부분 공정하다. 시장은 강제가 아니라 양자 거래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애초에 기본적인 규칙이 한쪽에 치우쳐 있지를 않다.
당신과 당신의 언문에서는 어떤 힘이 느껴진다.
궁극적으로는 지식이 힘이다. 지식을 너무 좁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자체가 지식이라고 봐야 한다. 진화를 통해, 세상에 대해 반응해서 결정된 게 우리 몸이니까. 몸 자체가 지식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리에서만 맴도는 게 아니다?
그렇다. 지식을 아주 근본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개인적 차원에서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지식을 자신과 동떨어진 객체로 보지 않고 내 몸, 내 생각이 모두 지식이라고 보면 세상을 사는 데 유리할 거다. 여유도 생기고.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면 다 지식을 얻으려 애쓴다. 문인들은 대체로 지식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흔히 지식과 대비된다고 생각하는 감정을 높이고 이성은 차가운 것으로 분류하는데, 사실 단견이다. 감정 자체도 원시적인 지식이다. 감정은 생존하기 위해 발달한 거다. 위협적인 존재를 만나면 두렵고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사랑, 우정을 느끼고. 감정은 이렇듯 상황에 맞게 적절히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메커니즘이다. 음, 다시 페어플레이로 돌아가면 사람의 중요한 특질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려는 성향이다. 남과 잘 협력하는 기술이 있는 자는 잘 살고 자식을 널리 퍼뜨리고 삶의 목적을 잘 이룬다. 잘 협력하지 못하면 다투고 낙오하고 만다. 그러니 페어플레이하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페어플레이는 자신에게 이로운 거고 스스로를 돕는 거다. 이게 내가 오늘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다.  
최근 목격한 최고의 페어플레이와 그 정반대를 꼽는다면?
누구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도 인정하는 논객을 보았을 때. 가장 힘든 페어플레이다. 내가 논객이어서 잘 안다. 상대의 생각은 분명 나와 다르다. 상대가 옳을 수도 있고, 내 이념이 틀릴 수도 있는 거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상대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하는 태도. 그게 페어플레이의 기본이다. 그 반대는 이렇다. 우리나라에는 성공하는 사람들을 시기하는 풍조가 있다. 성공한 개인이나 기업에 대해 평균보다 엄격한 걸 들이댄다.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왜 실패했는지를 묻지 않지만 성공한 사람, 기업에게는 확대경을 들이대고 따진다. 대표적인 게 세금이다. 일종의 징벌적 과세를 하는데, 그건 근본적으로 페어플레이에 어긋나는 거다. 당장 사회가 위축되고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그런 걸 떠나서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다. 같은 룰을 갖고 경쟁했고, 크게 성공한 사람을 성공하지 못한 다수가 끌어내리려는 건 욕심이다. 반기업 정서가 바로 그거다. 성공한 기업들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사회 환원이란 말을 아예 들이대지 않는다. 실은 페어플레이에 어긋나는 거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이대면서 성공한 사후에 징벌적 과세나 사회 환원을 요구하는 건 페어플레이에 어긋나는 정서다. 하기는 원래 경쟁하는 과정에서 인성이 다듬어져 이런 태도가 인기가 많다. 이런 이야기를 내세우는 민중 정치가 집권하게 마련이다. 이제 시민들이 페어플레이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수입차를 타면 남을 의식해야 하는 억압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만일 그 사람이 돈을 벌거나 출세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그 문제 자체를 벌하면 그만인데 그것과 함께 성공한 자체를 문제시하고, 일부를 전체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양극화 문제도 그런 데서 나온다. 그런데 그게 먹혀든다. 사람들 심리가 원래 좀 그렇다. 
이제 소설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의 이립에 당신을 대입시켜 말하고 싶었던 건 뭔가?
틀은 지적재산권 소송인데, 소설을 이끌어가는 수레가 된다. 어느 사회나 지식인라고 부르는 계층의 속성은 같은데, 우리나라 지식인은 주변부라는 점에서 좀 다르다. 지식도 심성도 시각도 주변부다. 중심부가 아니니까 세계적으로 성공하기 힘들다. 중심부로 진입하기 힘드니까. 중심부에 진입한 지식인에 비해 일단 여러모로 어렵다. 살기도 힘들고 보상도 적고. 또 하나는 다룰 수 있는 것에 제약이 있다. 중심부에서 나온 걸 갖고 주변부 상황에 적용시키는 게 주니까 제약적일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느끼는 게 많다. 주로 비애겠지만. 같은 걸  해도 중심부 지식인이 하면 세계 최초가 되고 지적 보람도 느끼고 보상도 받는다. 하지만 우리(주변부 지식인)가 하다 보면 이미 중심부에서 한 게 많다. 재발견이 많지, 재발견이. <보이지 않는 손>에서도 보편적인 경험을 살려서 주변부 지식인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게 바로 우리나라 지식인의 아이덴티티다. 나는 주변부 지식인이란 걸 문명적 차원에서 바라봤다. 사실 예술 작품은 문명적 차원에서 바라보기 힘들다. 이지적인 거니까. 문학은 그래도 좀 낫다. 미술보다는 사진이 좀 낫고 영화는 더 낫다. 음악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다소 비교 우위가 있고, 그래서 시도해봤다. 
이립은 지적 게임을 즐기고, 법적 정의를 믿는 인물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한 당신의 근원적인 생각을 더 듣고 싶다.

게임은 곧 전략이다. 어떻게 살겠다는. 그러니 인생 자체가 게임이다. 그걸 이 주인공은 의식하고 있다. 모든 게 다 전략적 사고인데 이 주인공은 그것 자체를 의식화해서 삶조차도 게임으로 본다. 내가 주변부에 태어났는데 이 운명을 어떻게 꾸려야 나중에 더 많은 가치를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식. 소설 속 주인공이 직장을 자주 옮긴 걸로 나오는데 그 자체도 계산을 하고 전략을 세운 뒤에 나오는 거다. 그 계산이 꼭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더 큰 가치도 계산을 통해서 한다. 주인공이 나처럼 경제학을 공부했으니까. 경제학을 흔히 돈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인식하지만 실상은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가를 따지는 학문이다. 실제로 경제학은 심리학의 한 분야다. 법이 좋으냐 나쁘냐는 사실 둘째 문제다. 더 중요한 건, 법이 있느냐 없느냐다. 법이 있으면 사람이 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뭐든 나온다. 그런데 법이 없으면 힘에 따르게 된다. 힘 있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질서를 강요한다. 법이 있으면 그걸 막지만. 이립은 재판을 해서 지는 과정에 있으면서도 법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다. 내 개인적인 경험도 있지만, 법이 있어서 사람들 행동에 어떤 준거가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법을 아는 사람들은 신뢰를 갖는다. 그리고 법이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무릇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목성 잠언집> 후기에도 인용했지만, 아주 훌륭한 지도자가 다스릴 때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 앞에 그 조건이 빠지면 뜻이 달라진다. 다른 때라면 어떻게 펜이 칼보다 강하겠나. 하지만 지도자가 공정하다면 가능한 일이다. 논리가 통하니까. 지식의 논리가 힘의 논리를 압도할 수 있을 때에는 가능하다. 내가 등단한 지 한 20년 됐는데 줄곧 자유주의를 부르짖었다. 지나고 보니 계속 외치고 아이디어를 심은 것이 효과가 있다. 말도 안 된다고 저항하더라도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어서 사람 머리에 들어가서 퍼져나간다. 옳은 이야기를 들었으면 아무리 거부하더라도 머릿속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나도 둘레 사람들을 내 글로 많이 오염시켰다. 자유주의 확산에 나도 한목은 했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칼보다 약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칼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다 펜이고, 아이디어다. 칼과 펜을 대립시킬 게 아니라 칼을 든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사상가, 논객, 예술가가 중요하다. 마르크스가 실제로 총을 잡은 건 아니지 않나. 마르크스가 아이디어를 내고 나중에 레닌과 트로츠키가 총칼을 갖고 인민을 억압하고 나라를 세웠듯이. 마르크스가 체 게바라에게 총을 사준 게 아니다. 마르크스의 아이디어가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의 머릿속에 들어간 거다. 아이디어의 힘이 참 위대하다. 마르크스처럼 틀린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계속 거기에 매혹 당한다. 그게 무섭지만 지식인으로선 흥미로운 일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하기 전부터 그릇된 것이라 했다. 70년간 공산주의를 실험했고 결과도 비참했는데 계속 해야 된다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가. 그만큼 무서운 거다.          
요즘 몰두하고 있는 작업이나 사안, 인물 또는 그 무엇은?
소설을 좀 많이 써보려 한다. 사회가 너무 좌파 편향인데, 어떻게든 바로잡고 싶어서다. 젊을 때 사회주의 아닌 사람이 없고 늙어서 보수주의 아닌 사람이 없는 게 일종의 패턴이지 않나? 젊을 때에는 사회를 변혁시키고 자본주의의 문제를 교정해보고 싶어 안달이고 열병을 앓는데, 그걸 좀 줄여주고 싶다. 시장경제에 관한 칼럼도 많이 쓰지만, 될 수 있으면 소설로 말하고 싶다. 환갑이 넘었으니까 내 실속을 차려야 될 거 아닌가. 소설가가 실속 차리는 건 소설 쓰는 거니까. 과학문화재단의 <사이언스 타임>지에 쓰다가 중단한 <역사 속의 나그네>가 있다. 일 년 연재했더니 벌써 네 권 분량의 대하소설이 되었다. 요즘은 여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긴 소설은 연재를 해야 된다. 매일 독촉이 와야 젖 먹던 힘까지 낼 수 있다. 아무튼 소설을 써야 한다. 비평가들도 소설을 써야 한다. 아웃풋이 떨어져서 못마땅해 하는데 습작이라도 써야 된다. 일류 비평가가 삼류 소설 쓰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 이류 시, 삼류 소설, 사류 희곡 쓰는 거 두려워하면 안 된다. 안 쓰면 죽을 때 후회할 거다. 같이 술 마시고 나면 문학 못 한 거 후회하는 사람 많다. 남의 지식을 전파하고 변형시키는 것과 자신이 직접 창조하는 건 다르다. 특히 문학이란 게 그렇다.

말뿐이 아닌 김종철

Photography 한정훈  Editor 정석헌

5·31 지방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렸다. 서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진짜 대표선수가 되려면 좀 더 많은 걸 검증받아야 한다.
일찍 매를 맞은 셈 아닌가?
아주 훌륭한 경험을 했다. 자신감도 많이 붙었고.
나라면 공영주택 쿼터제, 아토피 STOP, 1동 1도서관, 버스 완전공영제, 자립형 사립고 반대 같은 서민 맞춤형 정책이 득표로 이어지지 못해 퍽 서운했을 거다.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게 의식주다. 그 가운데 ‘의식’은 거의 해결된 것 같다. 물론 굶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건 우리 사회 수준을 볼 때 의지만 있으면 해결될 부분이라고 본다. 문제는 ‘주’다. 특히 서울에서 주거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주거는 아주 인간적인 문제여서 집이 없거나 불안하면 인생이 불안하다는 이야기와 같다. 비인간적인 상황인 거다. 그런데 가만 보니까 서울에 집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체 왜 이럴까? 해서 봤더니 소수가 너무 집을 많이 갖고 있고, 투기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어서다. 그걸 잡으면 되는데 왜 못 할까? 교육도 마찬가지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이야기는 물 건너간 이야기고. 자립형 사립고 논쟁은 사실 그 정도의 엄청난 교육을 받으려면 이 나라 1~2%에 들어갈 수 있는 10%간의 논쟁이다. 설사 나머지 90%에서 몇 명이 1~2%에 낄 수 있다 해도 무의미하긴 마찬가지다. 자립형 사립고는 내 사안이 아니고, 그 논쟁에 끼지 못하는 건 내가 잘나지 못해서 그런 거다, 라고 좌절해야만 한다.
철없는 소리인 줄 알지만, 서민이 아닌 부자를 위한 배려도 함께 했으면 득표율이 좀 더 높지 않았을까?
내가 말하는 것의 대부분이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거지만, 종국에는 부유층과도 무관하지 않은 담론들이다. 부유층도 늘 부유층이 아니다. 난 우리나라 부유층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본다. 가난한 게 두려운 거다. 당연할 거다. 가난한 사람도 가난이 두려운데 부유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가난해지고 서민이 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그러니 아예 그런 걱정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놓으면 좋지 않을까? 부유한 집에서 장애아가 나오지 말란 법 없다. 잘나가던 사업이 망해버려도 아이 키우는 데 걱정 없고, 혹 병에 걸리면 돈이 없어도 치료 받을 수 있는 사회…. 난 부유층 사람들에게 불안하지 않은 미래를 주려고 했던 거다. 늘 부유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인간적으로 사는 게 먼저다.
과연 정치에서 페어플레이가 가능하기는 할까? 당신의 방식대로 페어플레이를 정의해보면 어떨까? 스포츠로 치면 ‘빅게임’을 치른 셈인데, 선수로서 느낀 바를 말해달라.
음, 그게 좀 복잡한데…. 반칙하는 것도 나쁘지만, 반칙이 나오게 만드는 시스템도 문제다. 일례로 정치에서는 돈이 있으면 되는 게 많다. 나는 이번에 선거 방송을 못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왜 선거 방송을 안 하느냐고. 한 번 나갈 때 몇 천만원이 드는 데, 무슨 수로 할 수 있겠나?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에 룰이 유리하게 만들어놓고 언페어플레이를 한다.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비용을 돌려받게 해놓은 거다. 선거 방송해도 어차피 돌려받는다. 민주노동당이나 작은 정당은 그만큼 득표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모험을 하고 몇 천만원, 몇 억원을 날려야 한다. 정치의 진입 장벽을 쳐놓은 거다. 대표적인 게 기탁금이다. 시장도 5천만원을 기탁금으로 내야 한다. 자기가 내고 자기가 찾는 거다. 하지만 우리 거는 그냥 다 국고로 귀속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지역의 젊고 개혁적인 정치인들은 정치 자금을 잘 안 받는다. 그런 사람일수록 더 어렵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게 좀 완화된 게 그럼 10%만 얻어라, 그럼 절반은 주겠다, 이거다. 하지만 10%도 만만치 않다.
그건 특히 한국 정치에서 더 심한 건가?
그렇다. 예를 들면 대통령 선거 기탁금 같은 경우, 없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돈으로 뭘 제한하지 않는다. 아주 훌륭한 사람인데 주변에 다 가난한 사람들만 있고, 그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데 돈이 없어서 결국 선거에 나갈 수 없다면, 문제 아닌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 기탁음은 무려 5억원이었는데, 지금은 얼마인지 모르겠다. 지금 돈 있는 사람은 자기만 결심하면 선거에 나갈 수 있다. 차라리 몇 만 명의 서명을 받아라, 이러면 할 수 있는데 말이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의 기탁금은 4백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후보가 난립할 수 있다? 그 후보가 몇 만 명의 서명, 추천을 받아와야 할 수 있다. 이런 건 할 수 있다. 그런데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다. 기탁금 풀어주면 후보가 무분별하게 나올 거고, 결국 불리해질 테니까. 돈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많다. 유심히 봤으면 알겠지만, 내 플랜카드는 높이가 좀 낮았다. 그냥 바닥에 걸려 있기도 하고. 오세훈, 강금실 후보처럼 적당한 눈높이에 걸려면 사다리차, 즉 돈이 더 있어야 된다. 서울시 각 동에 1개씩 5백 개, 교체할 수 있으려면 1천 개 정도를 단다. 하나에 5만원 주면 5천만원 정도 드는 거다. 플랜카드 거는 비용이. 배송, 제작 뭐 이런 것까지 따지면 엄청난데, 우린 그 돈을 쓸 수 없으니….
그나저나 대략 얼마쯤 썼나?
내가 알기로는 8억원쯤 썼다. 기탁금 5천만원에 4백만 가구로 들어가는 공고물에 4, 5억원쯤 들어갔다. 나머지로 사무실 운영하고 플랜카드랑 포스터 찍고. 남은 게 거의 없다. 
페어플레이하려면 힘도 있어야 한다. 당신에게는 어떤 힘이 있고, 그 힘의 원천이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 정치하는 사람에게 힘의 원천이라면 누가 뭐래도 자기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그들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이런 거다. 한국 사회는 소위 20대 80으로 나뉜다. 많이 가져가는 상류층 20%와 그렇지 못한 80% 말이다. 내게는 그 80%가 주를 이루는 지지가 꽤 있다. 아직 투표 행위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은 심정적 지지. 김종철, 당신이 우리의 처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후보인 건 맞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당신을 밀어서 되는 거냐, 그게….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한다. 이번 선거에서 지지율이 적게 나왔지만, 우리를 미워해서, 내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좋은데 지금 당장 내 정치적 의사를 당신한테 주기에는(내 몸을 맡기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이런 거니까 되레 용기가 난다.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이 방식이 옳다는 확신이 있다.
선거 캠프를 차린 뒤로 목격한 최고의 페어플레이, 그와 정반대인 최악의 경우를 꼽는다면?
관건은 국민과 나라를 솔직하게 대변하려는 자인가에 있다. 어느 당이든 그 당이 인기가 없으면 ‘그 당스럽지 않은’ 사람을 내세워 포장하려고 한다. 오세훈 후보의 이미지 선거가 바로 그런 예였다. 자신의 모든 걸 드러냈을 때 역공 맞을 게 두려워서 다른 사람을 내세우는 행위야말로 언페어다. 어차피 그 사람 당선시켜 놓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할 말도 할 수 있으니까. 강금실 후보도 그렇게 영입된 케이스라고 본다. 당이 워낙 인기가 없으니까. 열린우리당을 보지 말고 강금실을 보고 찍어달라는 건데, 당은 그러면 안 된다. 정당은 그 이념, 정책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람, 당과 혼연일체가 된 사람을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 사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당을 바꿔야 되는 거다. 당은 그런 사람을 후보로 내세워서는 안 되고.
말을 참 잘하는데, 당신이 말하는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는 어떤 건가? 게다가 당신이 적을 두고 있는 곳의 언어도 강경 일변도가 아닌가. 정말이지 옛날로 치면….
떠우정이다, 떠우정. 중국말로 투쟁! 난 이렇게 본다. 나는 서태지를 참 좋아한다. 그를 둘러싼 평가가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서태지가 왜, 무엇을 잘했느냐 하면 언제나 대중들보다 반 발짝 정도 앞서나가서 좋았다. 너무 앞서가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을 테지만 오히려 이해할 듯 말 듯하면서 이해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기고 그들에게 꿈을 주고 이런 게 좋았다. 민주노동당도 꼭 그렇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은 아방가르드한 곳이다. 전위예술하는 사람들과 같다. 그러니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일례로 당에서 쓰는 말 중에 ‘직주근접’이란 게 있다. 혹시 무슨 말인지 알고 있나? 직장과 주거지는 근접해 있어야 한다는 건데, 정말 중요한 메시지를 담은 말이다. 강남구나 서초구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저 멀리 저소득층이 많은 곳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건 원칙적으로 틀린 거다. 직장과 집이 가까울수록 이롭고 인간적인 삶을 사는 건 당연한 이치. 그렇게 좋은 이야기를 직주근접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뜻을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바꿔야 했던 대변인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당신과 당신의 공약에 의미를 부여한 117,421명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누구라고 말할 순 없지만, 여기 있는 다섯 사람 중에도 몇 명이 있다. 
3%에 불과하지만, 척박한 이 나라 정치에 나름대로 거름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음, 거름을 뿌린 땅이냐 아니냐는 싹을 틔워봐야, 나무가 되고 열매가 열려봐야 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당신 말이 맞다,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우리 삶을 대변하고 좋은 사람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내 이야기가 거름이 될 거라고 느꼈다. 그들은 싹을 틔우려고 김종철이란 거름 위에 씨를 뿌린 이들이었다.
언론은 메니페스토, 정책 선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정말 그랬다고 생각하나? 
재밌는 건, 메니페스토 추진 본부가 뽑은 최고의 공약과 풀뿌리 시민연대가 뽑은 최악의 공약이 같은 경우가 있었다는 거다. 이상을 현실로 바꾸고 싶은 정치가에게는 부딪힐 수밖에 없는 벽일 수도 있다. 이상을 행정적인 걸로 묶어두려고 하니까. 아무튼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당신에게서 민주노동당은 물론, 한국 정치의 미래까지 보는 눈들이 있다. 정치가로서 당신이 꿈꾸는 이상은 무언가?
내가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게 폭력이다. 거부할 수 없는 폭력. 그리고 두 번째는 그것에 굴복했다는 자책감으로 평생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역시 가장 좋은 문제 해결 방식은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힘을 쓸수록 불리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데모하는 경우가 많다. 힘없는 사람들이, 눈에 핏발이 선채로 폭력을 쓴 그들을 그렇게 만든 더 큰 폭력이 없는 사회를 바란다. 
요즘 몰두하고 있는 작업이나 사안, 인물 또는 그 무엇은?
‘구상’한다고 보면 된다. 내년 대선에 누가 나가면 좋을지도 그렇고, 곧 실행에 옮길 내용들을. 지금껏 사람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이런 곳이다’를 인식시켜 왔는데 이제 그걸 뛰어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10년 이상 유효한 꿈을 심어줄 뭔가가 말이다. 내 생각은 있는데, 이걸 당원들과 공감하는 게 중요할 거다. 덧붙이자면, 민주노동당은 지금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산다고 생각한다. 맞다. 친구인 거다. 이거 좋은, 괜찮은 놈 같은데, 괴짜 같기도 하고. 생각한 걸 죄다 실행에 옮기니까. 나를 포함해 이번 선거에 나온 지역 후보들이 모두 다 젊다. 나와 그들이 젊은이들과 함께 늙으면서 정책을 토론하고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다.

깊고 단단한 홈베이스, 김성근

Photography 김도석  Words 이주연 Editor 김영진

일본에서의 코칭스태프 생활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 
별 차이는 없다. 원래 야구라는 건 비슷하니까. 어떻게 보면 한국 코치들이 더 고생한다. 일본은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어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코치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인원 차이랄까?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데이터를 뽑는 일 등에도 사람 수가 모자라다 보니 코치가 개입해야 한다.
일본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이유라기보다는, 보비 발렌타인 감독의 요청으로 오게 되었다.
발렌타인 감독과는 원래 친분이 있었나?
원래 친분은 없었다. 재작년에 두어 번 만났나? 거기서 요청을 받게 됐다. 
롯데 마린스에서의 구체적인 임무는 무엇인가?
1·2군 순회 코치를 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은 1군에 있지만, 감독의 요청에 의해 2군 선수들을 보러 가기도 한다. 2군의 신인들, 1군에서 내려간 선수들을 보러 가기도 한다. 
이승엽 선수에게 많은 도움을 줬고 이승엽 선수도 감독님의 조언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자주 한다. 이승엽 선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올해도 벌써, 어제(지난 6월 9일)로 홈런 18개를 쳤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선수다. 그동안 일본 야구에 익숙하지 않아 첫 해는 고생이 많았지만, 너무 착해서 그런 거다. 주위에서의 압박도 심했을 것이다. 견제도 견제지만 이 세계는 어느 정도 아집이 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저런 남의 이야기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 세계는 약간 흔들린다 싶으면 개미 모이듯이 우우 달려들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사람을 흔들어놓는다. 작년에 나와 함께 하면서 그런 점들은 줄었지만 작년에도 실력의 반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올해는 그쪽(요미우리)의 감독과 코치가 잘 배려해주고 있고, 잘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종범 선수의 경우라든가 초기 이승엽 선수의 적응기를 보면 한국 출신 선수들에 대한 견제가 심했다. 당신에 대한 어떤 견제는 없는가?
특별히 견제라기보다는…,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일본에 왔을 때는 일본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과거 한국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위치는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것에 연연하다가는 결국 실패한다. 선동렬과 이승엽의 경우는 1년 안에 그것을 떨쳐버렸다. 나머지 실패한 케이스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지위에 도취되어 있어선 안 된다. 
일본과 한국 중 어디서 활동하기가 편한가?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한국이 더 편하다. 일본에 있으면 자존심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제까지 일본에 있을진 모르지만 지금은 일본에서의 위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점은 나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활동하는 선수들, 미국에 있는 박찬호 같은 선수들도 모두 거치는 과정이다.          
특히 야구는 상대를 속이는 스포츠다. 어느 선까지가 페어플레이라고 보는가?
속인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는 것 같다. ‘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도’와 ‘기술’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을 건다고 하는 것은 모든 요건을 알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래서 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목적의식이 확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스포츠가 야구다. 적당히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임한다면 한 번은 이길지 몰라도 지속적일 순 없다. 페어플레이라는 말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규칙의 범위 안에서 하는 행동을 모두 지칭한다고 본다. 그 규칙을 벗어나는 건 속임수고 그 속에 있는 것은 일종의 전술이요, 전법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스포츠에서의 페어플레이란 무엇인가?
스포츠라고 하는 것은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하는 것이고
그 테두리를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직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우리 사회는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눈감아주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과거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퇴장도 많이 당하고 비난도 많이 당했지만 그것은 내가 너무 직선적으로 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성격상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 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그냥 넘길 수가 없다. 그런 집단에서는 생활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야구에서의 더티플레이와 페어플레이는 경기 중 어떻게 나타나는가?
스포츠는 서로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것은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물론, 프로다 보니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포츠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은 서로를 생각해주는 동업자 정신이다.
어떤 플레이가 좋고 나쁘다고 말하기보다는 프로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 예를 들면 프로 투수는 타자의 몸에 가깝게 던지는 게 프로의 플레이다. 그렇지 않으면 프로로서 살 수가 없다. 그러한 기술을 연마해나가는 것이 프로이고, 그렇지 못해 상대방의 몸에 맞추는 것은 프로가 아닌 것이다.
그 속에 진정한 프로 정신이 있고 프로 기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야구뿐만이 아닌 세상 모든 일에 통하는 정신이다.
이기는 것과 페어플레이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배가 고플 때 빵 하나를 훔치느냐 훔치지 않느냐는 결국 자제력의 문제 아닐까. 알면서도 눈감아가는 것, 나만 좋으면 된다는 것, 그런 것은 원치 않는다.
당신의 야구 철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과 당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특별히 그런 인물은 없다. 나의 경우 재일교포로서 처음 한국으로 영주 귀국할 때, 나는 혼자였다. 여기서 실패하면 끝이다라는 정신으로 갔었다. 소위 ‘내 자신의 일과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 그 결과를 남에게 전가시키지 않겠다’는 게 나의 야구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몸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가 속한 조직을 위해서는 내 자신이 최상의 상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1960년대에 한국에 넘어가서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살아가며 익힌 자립정신과 프로정신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부할 수 있는 것은, 트러블도 많았지만 누군가의 줄을 타거나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서 감독이 된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실력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그쪽의 부탁을 통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결과만이 중요하고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과정을 모르고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결과와 그 덕만을 바라보고 쫓아가서는 안 된다. 남이 만들어놓은 길을 편하게 걸어가려고 하는 것보다는 남이 만들어두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걸어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일본 야구만화를 유독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본 야구만화나, 영화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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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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