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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떠난 자리

On June 15, 2006

<아레나>는 트렌드를 다룬다. 그것도 핵심 트렌드를 다룬다. 하지만 트렌드는 야박하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뛰어들 숨소리 요란하게 육탄공세를 퍼붓다가 절정에 치닫기도 전에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등을 돌려버린다. <br><br>[2006년 6월호]

<아레나>는 트렌드를 다룬다. 그것도 핵심 트렌드를 다룬다. 하지만 트렌드는 야박하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뛰어들 숨소리 요란하게 육탄공세를 퍼붓다가 절정에 치닫기도 전에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등을 돌려버린다. 그 등짝을 돌려세우거나 혹여 그 등짝을 하염없이 쳐다본다는 건 우매한 짓이다. 사실 그럴 시간적 여유도 낭만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겠다. 담배 한대 피워 물 여유도 없이 재빨리 성장(盛裝)을 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트렌드’라는 명찰을 단 뉴페이스를 찾아야만 하니까.

달거리하는 동물적 본능으로 짐작컨대, 6월호를 점령한 월드컵이라는 거대 트렌드도 한 달 후 나의 손을 매몰차게 놓아버릴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달은 월드컵이란 괴물이 대한민국을 점령하고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걸. 하물며 수많은 패션 브랜드 역시 월드컵을 겨냥한 제품을 출시하고 그에 맞춰 홍보하기 위해 눈이 벌겋더란 말이다. 남성 패션지임을 부르짖어온 <아레나>라도 이번엔 이 축구라는 놈을 당해낼 재간이 없더란 말이다. 어떤 상대를 내세워도 1회전에 넉다운될 판이니.

그래서 <아레나>도 곧 싸늘하게 식어버릴 월드컵이란 트렌드의 열기 속에 뛰어들었다. 뭐, 뛰어들자마자 취재 거부의 벽에 부딪혀 식은땀으로 뒤범벅되기 일쑤였지만.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두 달 전 <아레나> 피처팀은 맨처스터유나이티드 구단과 접촉해 웨인루니와 박지성을 모델로 하는 화보를 찍기로 작당했다. 여기에 패션팀이 지원 사격을 더해 글로벌 브랜드의 의상을 공수하고 나섰고 하루가 멀다 하고 국제 전화를 돌려댔다. 하지만 선수대기석에서 몸풀기만 되풀이하다, 루니의 부상과 더불어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수포가 되어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마감 직전까지 축구관련 인사라면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 섭외 줄다리기를 계속하다 손바닥은 괴이한 물집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당신이 만약 ‘그런데, 이 정도냐?’고 말한다면 나는 아스팔트라도 깨서 당신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지도 모른다. (노하지마시라. 지금, 나는 밤새도록 골세레모니를 연습하다 무릎이 찢어진 것 마냥 허망하고 허탈한 마감 후 공황상태에 있으므로 좀 과격한 표현을 썼을 뿐이다. 이틀이면 회복된다.)  

패션지라는 콘셉트는 트렌드를 최고의 비주얼로 표현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으므로 월드컵을 패셔너블하게 형상화하는 것이 이번 달 <아레나>가 숙명처럼 짊어진 최대의 과제였음은 물론이다. AC밀란 선수들의 빼어난 수트 화보로부터 월드컵 최강국의 국기를 모티브로 한 패션 화보, 국내 디자이너들의 레드 티셔츠 제작 화보에 이르기까지, <아레식>의 월드컵은 그야말로 형이상학적 서바이벌 게임이었음을 본 책을 보며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테크 제품 하나, 음식 칼럼 하나에도 월드컵 코드를 살짝 가미했으니 이달 <아레나>는 평소보다 더 집중해 정독해야 할 것이다. 숨은그림찾기의 묘미를 경험할테니 말이다. 패셔너블한 비주얼을 월드컵 기사에 접목시키려다보니 격한 패스를 반복만하다 미드필드에서 부상당하기 일쑤였고, 골문을 코 앞에 두고 퇴장 명령을 받기도 했고, 파울 아닌 파울을 거듭하기도 했고, 헤딩슛을 날리려고 공중부양을 시도하다 민망해진 것도 수차례. 하지만 결국 적당한 페어플레이로 전후반을 마쳤으며 <아레나>의 모든 에디터들은 지금 이 시간 잔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에디터들의 노고를 등에 업고 한마디 덧붙이려 한다.

박지성군이 그랬다. 대한민국은 축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팀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지당하신 말씀이다. 신기루에 홀리듯 한 달 내내 월드컵 대표 선수의 뒤꽁무니를 쫓았음을 고백하면서 <아레나>팀의 감독인 나는 지조있는 애인이 되기 위해-적어도 ‘어머, 축구라는 애가 누구니?’라며 백치같은 얼굴을 들이밀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유소년 축구 장학금 마련을 위한 작은 칼럼을 기획했다. 애인이 떠났다고 그 자리에 패인 구멍을 흙으로 채우기는 좀 그렇고…. 아무래도 그 자리에 정표라도 하나 꽂아야 하겠기에 말이다. 사실, 이 칼럼의 취지를 당당하게 표지에 적고 싶었지만 기부액의 액수가 변변치 않을 것으로 예상한 나의 소심이 발동, 내지에만 살짝 끼워 넣었다. 하지만 내심 ‘애국심을 돈뭉치로 마케팅하는 덩치 큰 기업에 비해 그래도 순진하지 않은가’라고 자위해 보기는 한다.  

 

P.S 취지에 비해 목표액이 심히 부끄러운 <아레나>의 유소년 축구 장학금 후원 캠페인은 <아레나> 128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국내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축구 모티브 티셔츠를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 것으로 아레나 8월호에 그 결과를 첨부할 예정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지조 높은 독자들의 많은 참여를 절절히 부탁한다. 또한 이 티셔츠를 디자인해준 디자이너 장광효 송지오 김서룡 정욱준 홍승완 서상영 최범석과 창간호로부터 <아레나>의 크고 작은 기획에 주옥같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서포터 김성근(그는 나의 위대한 선배 기획자이며 야근이 잦은 부인을 위해 살림의 70%를 담당하기도 하는 살뜰한 남편이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레나>는 트렌드를 다룬다. 그것도 핵심 트렌드를 다룬다. 하지만 트렌드는 야박하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뛰어들 숨소리 요란하게 육탄공세를 퍼붓다가 절정에 치닫기도 전에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등을 돌려버린다. <br><br>[200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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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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