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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소설- 샴페인

맛과 향이 술을 이루는 전부가 아니다. 이달 <아레나>는 다섯 명의 소설가에게 술이 환기하는 정서, 환영, 일상에 대해 짧은 소설을 써보자고 제의했다.

UpdatedOn August 12, 2013

샴페인 샴페인
Liquor : Moët & Chandon

리한나가 플라타너스 나무에 기댄 채 샴페인 병 주둥이의 금박을 벗기고 철사를 푼 다음 조심스레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하늘은 컴컴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 늦은 저녁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린다고 했다. 하지만 리한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한강으로 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딱히 다른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이 지가 축축한 잔디 위에 나이키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타월을 깔고 모엣&샹동 임페리얼 브뤼 다섯 병, 김영모 제과점의 몽블랑, 칠레산 청포도, 그리고 맥스봉을 늘어놓았다.
리한나가 그것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곧 좋아요가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고, 리한나는 8백6만4천8백2명의 팔로어가 있었으므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좋아요 개수를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칼 라거펠트가 멀리서 자전거를 끌며 다가왔다. 그의 자전거에는 제이 지의 것과 같은 나이키 타월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10년 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 적이 있는 제이 지와 칼 라거펠트의 어머니가 나이키 한국 론칭 8주년 기념으로 15만원 이상 구매자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칼 라거펠트가 타월을 깔고 그 위에 누워서 말했다. “술을 줘.” 리한나가 그에게 새 샴페인을 한 병 주었다.
“따서 줘, 따서 술잔에 따라줘.” 칼 라거펠트가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전에 일단 통닭을 시키자.” 리한나가 말했다.
“왜?” 칼 라거펠트가 물었다.
“컵이 없거든.” 리한나가 대답했다.
“그래서?”
“통닭집 아저씨한테 종이컵을 좀 가져다달라고 하자.” “종이컵에 마시면 맛없는데.” “그럼 너희 집에 가서 좀 가져와.”
“왜? 너희 집에 가서 가져와. 더 가깝잖아.”
“하지만 너희 집에 더 좋은 잔이 많잖아.” 리한나가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술잔을 모으시잖아.”
“그건 그래, 하지만.” 칼 라커펠트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제이 지를 바라봤다.
“알겠어, 비욘세한테 오는 길에 집에 들러서 잔을 좀 가져오라고 할게.” 제이 지가 말했다.
“좋았어.” 리한나가 말했다. “통닭집에 들러서 주문도 좀 하라 그래.”
제이 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 지가 비욘세에게 아이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리한나는 셀카를 찍기 시작했고, 그런 리한나를 칼 라거펠트가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제이 지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포도를 먹기 시작했다.
“나도 포도 좀.” 리한나가 말했다. “가져다 먹어.” 제이 지가 말했다.
“젠장.” 리한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30분 뒤, 멀리서, 타월 위에 늘어져 있는 셋을 비욘세가 아이폰으로 찍으며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크리스털 잔이 든 검은색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바닥에 상자를 내려놓고 잔을 꺼냈다. “안녕, 안녕.” 그리고 잔을 하나씩 사람들 손에 쥐어준 다음 새 샴페인을 따서 넘치도록 잔에 부었다. “건배.” 누군가 조그맣게 말했다. “건배.” 누군가 힘없이 그것을 따라 했다.
“맛이 있군.” 제이 지가 말했다.
“나쁘지 않네.” 칼 라거펠트가 말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자, 벌써 두 병이 비었다. 다음 병을 따자. 어서 우리의 혈관을 샴페인으로 가득 채우자. 그러면 우리 스스로가 샴페인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리한나가 말했다.
“아니, 난 오래전부터 내가 샴페인 같다고 생각해왔어.” 비욘세가 고백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노란색 우비를 입은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했다.
“통닭 시키신 분이요!”
그가 크게 외쳤다.
제이 지가 외쳤다. “여기요!”
”1만7천원입니다!” 그가 다가오며 더 크게 외쳤다.
제이 지가 비에 젖은 돈을 그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리한나가 타월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비욘세와 제이 지 그리고 칼 라거펠트도 그녀를 따랐다. 그들은 타월 위로 떨어지는 비를 느끼며 통닭을 먹고 샴페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축축한 기분이야.” 칼 라거펠트가 음울하게 말했다. “왜 우리가 이래야 하지?” 비욘세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모르겠어.” 제이 지가 대답했다. “아무 생각이 안 나.”
리한나가 인스타그램으로 동영상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김사과(소설가)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안정환
ASSISTANT: 박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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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안정환
Assistant 박희원

201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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