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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레터 8월호

그리하여 현대카드론(論) l

지금껏 십수 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수천의 사람을 만나고, 수천의 기사를 써왔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카운팅해보진 않았지만). 그중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기사를 몇 가지 꼽자면 단연 그 첫머리에 ‘현대카드에서 보낸 일주일’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맞다. 편집장이라는 고단한 직위를 맡기 바로 직전, 지난해 10월호에 내보낸 현대카드 탐방기 말이다.

UpdatedOn July 25, 2013

아레나 옴므 플러스 편집장 박지호















지금껏 십수 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수천의 사람을 만나고, 수천의 기사를 써왔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카운팅해보진 않았지만). 그중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기사를 몇 가지 꼽자면 단연 그 첫머리에 ‘현대카드에서 보낸 일주일’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맞다. 편집장이라는 고단한 직위를 맡기 바로 직전, 지난해 10월호에 내보낸 현대카드 탐방기 말이다.
당시 명품 브랜드 한국 지사장, 촉망받는 신진 디자이너, 아티스트, 심지어 현대카드의 경쟁사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서 무수한 피드백을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간절히 현대카드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저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길래 저런 말도 안 되는 성과물들을 툭툭 쏟아내는 것일까.

사실 당시 난 딱딱한 기업 성공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취재를 나가기 직전 홍보팀에서 참고용으로 전해준, 한 일간지 기자가 썼다는 ‘현대카드 성공의 이유’류 제목을 단 책을 몇 장 들춰보지도 않은 채 옆으로 미뤄두고 말았다. 그러고는 속으로 되뇌었다. ‘도대체 난 무엇이 궁금해서 이 어려운 취재 방식을 선택한 것일까’.
당시 한 안티-현대카드 트위터리안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고서 역설적으로 깨달았다. ‘경기도 어려운 요즘 같은 때에는 광고나 신상품 개발 같은 건 삼가고 기부라도 하면서 조용히 지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능력 있다는 건 알겠는데 가끔 너무 잘난 체하는 것 같아요.’ 그랬다. 난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저 도저한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시장은 물론 시대를 선도해 나간다는, 어찌 보면 오만해 보일 정도인 그 애티튜드 말이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흐릿했던 그림은 점차 또렷해져갔고, 퍼즐 조각은 서서히 맞춰졌다. 일주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치지 않고 그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건 어느 순간, 그들의 감성과 작업 방식이 에디터라는 직업과 강한 친연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숫자와 통계를 바탕으로 한 대기업과 한 달간의 문화와 패션 이슈를 다루는 소규모 매거진은 극단의 위치에 서 있다. 일단 결과물이 극단적으로 다르니까. 하지만 난, 분명 그들에게서 우군에게서만 발산되는 내음을 짙게 맡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중앙기차역에 앉아 소백산맥의 오묘한 산세를 매치한 기사를 쓰고, 파리의 톰 브라운 컬렉션 쇼장에서 기형도의 폐쇄된 시(詩) 속 심상의 세계를 떠올린다.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보면서는 눈 먼 보르헤스가 나지막이 읊조린 ‘검은 유머’를 착상한다. 좋은 에디터가 갖추고 있는 자질은 사실 간단하다. 취향이 고급스러울 것. 남다른 감수성(촉수)을 갖고 있을 것. 디테일에 집중할 것. 자신의 감각에 무한한 자신감을 가질 것. 무엇보다 지극히 주관적일 것. 다만 그 지극한 주관을 오랜 탐구를 거쳐 대중 앞에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
당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업무와 상관없이 CEO와 임원들은 불시에 해외여행을 떠난다. 갖가지 모티브와 아이디어를 디테일에서 얻어온다. 고객의 불만의 소리를 담은 통곡의 벽은 <뉴욕타임스> 사옥에 설치된 모티브에서 영감을 얻었다.’
‘좌뇌와 우뇌, 즉 조직을 통해 힘으로 발현되는 로직과 남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마치 가위로 도화지를 자르듯 아이디어를 절취해내는 창의성을 동시에 도모한다.’
‘익스프레션이라는 콘셉트는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바우하우스에서 출발했다. 바우하우스에서 아티스트를 양성하다가 그림이나 조각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가구, 식기, 생활용품으로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하더라. 왜 마케팅을 고정관념으로만 대했을까. 아예 새로운 챕터를 만들어보자 한 게 익스프레션이다. 예술과 생활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처럼 애드버타이징과 자기 표현의 경계가 허물어져야 하지 않을까.’

짐작하겠지만 지금껏 ‘그들’이라고 지칭한 대명사를 고유명사로 바꾼다면 당연히도 정태영 사장이다. 내가 지난 기사에서 스스럼없이 ‘스페셜 원’이라 표기했던 바로 그이 말이다. 그 이후 공식석상과 사석에서 두세 번 그와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취재 당시의 느낌은 더욱 강렬해져갔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오픈식장. <비저네어>라는 세상 모든 크리에이터들과 에디터들의 로망, 그 놀라운 역대 판본들을 덜컥 한자리에 모으는 전무후무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도 그는 놀랍게도 담담했다. 이미 머릿속에는 연이어 오픈할 테마별 라이브러리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던 것이다.
압구정에 위치한 퍼플하우스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서로 약간의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현대카드가 관할하는 바의 메뉴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되짚어보던 그는 취향과 감성에 맞는 위스키와 그렇지 않은 위스키를 완벽하게 구별해내며 ‘이건 좋지.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아?’라는 혼잣말을 무한히 반복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짚어내는 메뉴들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내 취향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나 또한 속으로 무한히 혼잣말을 반복했다. 스페이사이드의 벤리악과 크래건모어는 이미 낡고 말았지, 그렇다면 아일라의 아드벡 정도? 벽면 곳곳의 디테일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는 바의 디자인 장치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강박적인 나만의 취향 재점검은 음악으로, 미술로, 오디오 장치로, 가구로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었다.

사실 사람들의 발상을 뒤엎은 놀라운 결과물들이 연이어 등장할 것이라는 건 그때 이미 짐작했더랬다. 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며칠 전 오래간 만에 현대카드에서 날아온 보도자료를 받아 든 순간, 저절로 ‘헉’ 하는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지난 10년간 쌓아왔던 현대카드의 모든 구분법을 무(無)로 돌리는 새로운 분류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 든 생각은 아, 힘들게 힘들게 만든 내 퍼플카드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두 번째 든 생각은 ‘턴 더 페이지’ 지극히 아날로그적 감수성에 기반한 최첨단 기법, 그 안에 든 감성과 이성의 합류점이 너무나도 궁금해 당장 들여다보고 싶다는 것….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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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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