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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레터 7월호

그리하여 좋은 글이란 I

아실런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잡지를 만든다는 건 꽤나 고단한 행위다. 한 달이라는 한정된 기간에 트렌디하면서도 화제성이강한, 그러면서도 알이 꽉 들어찬 콘텐츠를 3백, 4백 페이지를 넘나드는 책 한 권에 꾹꾹 눌러 담기란 분명 용이한 작업은 아니다. 더군다나 패션지의 본고장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한국 매거진들의 높은 퀄리티를, 그들의 1/10에도 못미치는 비용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건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미러클’에 가깝다.

UpdatedOn June 28, 2013

아레나 옴므 플러스 편집장 박지호













아실런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잡지를 만든다는 건 꽤나 고단한 행위다. 한 달이라는 한정된 기간에 트렌디하면서도 화제성이 강한, 그러면서도 알이 꽉 들어찬 콘텐츠를 3백, 4백 페이지를 넘나드는 책 한 권에 꾹꾹 눌러 담기란 분명 용이한 작업은 아니다. 더군다나 패션지의 본고장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한국 매거진들의 높은 퀄리티를, 그들의 1/10에도 못 미치는 비용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건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미러클’에 가깝다.
여하튼 한국의 잡지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혹시라도 중간에 독자의 관심이 끊기지 않게끔. 현란하면서도 묵직한 이미지와 다양한 정보, 감성으로 꾸욱 눌러 쓴 글들을 곳곳에 배치한 다음 당신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만반의 노력을 경주한다. 비록 한 달이라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지상에서 사장될지라도. <아레나> 또한 마찬가지다. 잡지를 구성하는 두 가지 축은, 그 어느 매체도 범접할 수 없는 독창적인 비주얼과 에디터만의 지문(指紋)이 곳곳에 각인된 글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남다른 비주얼에 대한 갈망, 좋은 글에 대한 탐구를 도통 멈추는 법이 없다.

우연찮게도 이번 달 ‘시인’ 이우성 에디터가 작가 박범신을 인터뷰하였다. 올해로 등단 40년째를 맞는 박범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설 <은교>는 늙어가는 나의 슬픔을 매우 강력하게 반영한 거지. 소설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존재론적 번뇌라든가, 늙어가는 슬픔, 슬픔에서 튕겨져가는 욕망의 근원들, 이런 것은 내가 늙어왔으니까 경험한 거지. … 1년에 장편 하나를 쓰면 쉽게 말하면 열두 달에 원고지 천 매를 썼다는 얘기야. 많이 잡아도 한 달에 백 매를 썼다는 얘기인데, 그럼 하루에 원고지 세 장씩 썼다는 거야. 왜 그것 보고 많이 썼다고 그러는지 난 이해가 안 가. 나는 호숫가 가서 한 시간만 산책하고 돌아와도 이야기가 몇 개씩 가슴에 차버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흔히들 작가 박범신의 장점으로 꼽는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그 감수성보다는, 그가 견지하고 있는 동시대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바꿔 말하자면 현실의 결을 그대로 읽고 반영하는 작가라고나 할까. 이미 수십 년 전 <불의 나라>와 <물의 나라>로 순수문학 작가가 ‘신문 통속소설’을 쓰는 파격을 감행한 이 노(老)소설가는 지금껏 현실과 교감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 소설 <은교>는 그 파격적인 소재 때문이 아니라, 늙어간다는 것의 슬픔과 그럼에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욕망이라는 현실에 눈감지 않은 솔직함의 승리라고 평가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편, 내가 김훈의 글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이 위대한 작가를 내 마음대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기나 한가 싶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일 뿐이니까). 한때 내용 없이 공허한, 화려한 수사만이 난무하는 글에 대한 저항으로 김훈에 깊이 매혹당한 적이 있었다. 주어와 동사만으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정진하겠다는 그 위대한 강박. 글의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줄여 결국 더 심대해지는 그 장엄한 문체. 하지만 현실과 마주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역사 속, 그리고 문장 그 자체로만 침잠해가는 그의 글에는 결국 강박과 의무만이 남는 건 아닐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훈에 비견될 만한, 글에 대한 강박을 평생 지키고 있는 존 버거는 어떤가. 이른바 ‘포토카피(사진복사)’ 기법이라는, 치밀한 시각적 산문을 통해 사진을 찍듯 대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겠다는 전무후무한 글쓰기에 도전하기도 했던 그의 문장 한 대목은 이렇다.

‘바튼 박자가 니농의 핏줄 속으로 들어가 임파구, NK, 베타2 따위를 깡그리 무시해버린다. 니농의 몸이 말한다. 내 무릎 속에 든 음악은 당신 거예요. 내 어깨뼈 밑에 있는 음악, 내 골반을 지나가는 음악 … 나의 허파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음악, 장차 나를 죽일 바이러스, 내 눈이 던지는 대답할 수 없는 물음 속에 든 음악은 지노, 모두 당신 거예요.’ -<결혼을 향하여> 존 버거

결혼을 비롯한 ‘사회제도’ 전반에 냉소를 보내던 삐딱한 청년 앞에 ‘결혼을 향하여’라는 고색창연한 제목을 들이민 이 작가는, 시원스레 정점을 향해 치닫는 속도감과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굳건한 태도로 에이즈 환자가 평범한 남자를 만나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그야말로 우화(寓話) 앞에 속절없이 굴복하도록 이끌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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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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