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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중의 안주, 엄마의 밑반찬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 나는 깨달았다. 안주 중의 안주는 밑반찬이라고.

On December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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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만든 밑반찬을 좋아한다. 본가에 갔다 돌아오는 날엔 나는 ‘밑반찬 부자’가 된다. 세상 든든하다.
올해는 내게 특별한 해다. 젊은이들이 한다는 혼술을 나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신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느리고, 그러니깐 ‘꼰대’다. 유행하는 패션이나 인스타그램 성지, 유튜브 콘텐츠에도 무심한 ‘그렇고 그런’ 이모님이랄까. 그런 내가 혼술을 시작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애초에 후배 기자들이 “저는 혼술이 좋아요. 편해요” 할 때마다 “술은 술잔을 부딪히는 게 맛이지” 하며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나다. 한데 지금 누군가가 내게 물어본다면 “술은 TV와 함께 잠옷 차림으로 마시는 것”이라고 당당히 얘기할 것이다.

혼술을 하면서 안주에 예민해졌다. 막걸리가 메인 주종인데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안주를 찾아 돌고 돌아 결국 ‘밑반찬’에 정착했다. 안주 중의 안주는 밑반찬이더라.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 (어차피 마실 술이라면) 기름진 배달 음식을 먹게 하느니 당신의 밑반찬을 먹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밑반찬에 열과 성의를 다하신다.

콩나물무침이나 시금치나물 등 나물류는 말할 것 없고, 미역줄기볶음은 애초에 술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찰떡궁합이다. 연근조림도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예술이고, 호두멸치볶음은 엄마의 필살기다. 진미채볶음이나 콩자반도 안주로 기가 막힌다. 뭐 특별할 거 없는 메뉴지만 나는 이런 밑반찬이 안주로 참 좋다. 잡채가 있는 날이면 그야말로 잔칫날이다. 술 파티다. 단짠이 지겹다면 달걀프라이 2개를 따뜻하게 해 먹는다. 청담동 고급 이자카야가 부럽지 않다. 국물이 당긴다면 엄마가 해주신 미역국을 데워 먹는다. 사랑의 맛이다.

어릴 적 우리 할머니는 잡채를 참 좋아하셨다. 엄마는 할머니 댁에 갈 때면 늘 잡채를 만들어 가셨다. 그때 나는 저 당면이 뭐가 그리 맛있을까, 이해하지 못했는데 40대가 되면서 잡채가 대단한 음식이라는 걸 알았다. 맛도 맛인데 상 차림을 화려하게 만들어준다. 고급 한정식집의 반찬 중 잡채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다 있다. 어릴 적 친언니는 미역국을 좋아했다. 그때 나는 저 시커먼 미역 줄기가 뭐가 그리 맛있을까 했는데 끓이면 끓일수록 맛의 깊이가 더해지는 게 국물 요리 중의 끝판왕이더라. 엄마는 나물 부심이 있다. 왜 저렇게 나물에 에너지를 쏟을까 싶기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 그야말로 한식의 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디서 자란 나물을 고르느냐부터 맛이 천지 차이고, 데치는 정도에 따라 식감도 달라진다. 나물은 고차원 테크닉이 필요한 요리다. 결국 나는 할머니와 부모님, 언니의 식성까지 그대로 닮게 됐다. 와, 피는 물보다 진하더라.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엔 밑반찬이 가득하다. 모두 안주용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쌀통에 쌀이 가득하면 든든하다 했다면 나는 냉장고에 밑반찬이 가득할 때 부자가 된 것 같다. 아, 행복하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12월호

2022년 12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