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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영의 세계

On March 21, 2018 0

박세영은 매사에 진중하고 또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에 포장이 없다. 고백하건대 그래서 이 인터뷰는 조금 지루하다. 그래서 그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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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은 평범하다. 생각과 사고, 행동 그 모든 게 평범해서 특별하다. 박세영은 따뜻하다. 툭 던진 질문에 눈을 마주하고 정성껏 답한다. 그리고 자연스럽다. '단발성 털털함'을 무장하고 인터뷰 자리에 나온 여배우를 꽤 보았기에, 박세영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왔다. 추위가 한풀 꺾인 어느 날, 강남의 한 카페테라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드라마 <돈꽃>이 최근 종영했다. 어땠나?
결론부터 말하면 힘들었어요.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스타일인데, 이번 작품은 그 한계를 넘었죠. 그런 거 있잖아요, 제가 아무리 밤새 준비해도 이순재, 이미숙, 선우재덕 등 함께하는 선생님들의 분석력 깊이와는 차원이 다른 거. 리허설을 하는 날은 어떻고요. 시청자 입장에서 입 벌리고 구경하게 돼요. 당연한 일이지만, 한계를 맛보았다고 할까요. 극 중반부터는 '연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 '6년 동안 연기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괴감이 들 정도로 작아졌어요.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는, 잘해줬다.(웃음)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모여, 돈을 받고 일하잖아요. 매일매일 스스로 채찍질했어요. 그런 제 성격이 연기하는 데 도움을 줬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저를 갉아먹기도 했죠. 그걸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번 작품이 그 계기가 됐어요. 연기를 하면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오히려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했거든요. <돈꽃>을 하면서, 완벽하진 않지만 부딪혀가며 배워보자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비워야 채워지지 않나.
그게 어렵더라고요. 제가 배우의 꿈을 가진 건 초등학교 때부터예요. 예고와 상명대 영화과를 다니며 계속 꿈을 키웠죠. 2003년도에 아역으로 잠깐 데뷔했다가 이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역 배우를 잠깐 해봤으니 어렸지만 어른의 세계를 조금 본 것이죠. '여기 보통이 아니구나' '단단히 마음먹고 와야 하는 곳이구나' '올인을 해도 될까 말까 하구나' 싶었죠. 그래서 대학 졸업 후 마음 단단히 먹고 데뷔를 했어요. 25살이니까 조금 늦은 나이죠. 하지만 그렇게 고민한 시간들이 밑거름이 됐어요.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진지할 수밖에 없죠.


독한 마음을 먹고 데뷔한 이곳, 어떻던가?
저를 보면 알겠지만 끼가 없어요.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 하는 것도 힘들어요. 그만큼 수줍음이 많아요. 그럼에도 데뷔한 건, 꾸준히 공부해온 연기를 보여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험난한 연예계보다 연기다 더 좋으면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더 좋아서 시작했어요. 해보니 정말 힘들더라고요.(웃음) 수줍음이 많아 연기 외에도 에너지를 쓸 일이 많지만, 다행인 건 연기를 할 때만큼은 수줍지 않아요. 할수록 기쁨이 커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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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MBC 드라마 <돈꽃>에서 여주인공 '나모현' 역을 맡아 열연했다. <돈꽃>은 돈을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실은 돈에 먹혀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작품은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시청률 23.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좋은 성적을 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박세영은 극 중 '태어나길 맑은 영혼'이었으나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겪으며 변해가는 과정을 감정적으로 연기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극 중 상대역 장혁이 인터뷰에서 "박세영은 학구적인 배우"라고 칭찬했다.
데뷔한 지 6년째예요. 열심히 하고 잘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구에게 인정받을 만큼은 아니에요. <돈꽃>은 함께 출연한 선배들이 대부분 경력 20년 이상인 분들이었어요. 학구열을 낼 수밖에 없죠.(웃음) 스스로 재능이 뛰어난 배우가 아니라는 걸 알아서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노력은 당연한 거고 연기를 잘해야죠, 배우는.


이미숙과의 호흡은 어땠나? 군기 잡는 무서운 선배 아닌가?(웃음)
애초에는 선배님 앞에만 서면 '얼음'이 됐죠. 근데 그 반대였어요. 오히려 제가 이미숙 선배님을 졸졸 쫓아다녔죠. "선배님, 대사 한 번만 맞춰주세요" 하면서요. 매번 너무 흔쾌히 맞춰주셨어요. 한번은 회식 자리에 갔다가 화장실 입구에서 마주쳤는데, 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제가 다가갈 수 있도록 많이 열어주셨어요.


장혁이라는 배우는 어땠나?
한마디로 표현하면, 배려의 아이콘!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감동적인 순간이 많았어요. 저는 6년 차이고, 선배님은 20년 차예요. 선배님이 저를 무시해도 그럴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경력이나 내공에서 큰 차이가 나죠. 그럼에도 선배님은 제게 "우린 선후배 이전에 파트너야. 동료 배우야"라고 인식시켜줬어요.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아직까지도 제게 존댓말을 쓰세요. 존중의 의미도 있지만, 말을 놓으면 위계가 생기고 그게 오히려 연기하는 데 지장을 준다는 게 선배님의 생각이에요. 선배님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연기 철학에서 나온다는 걸 알고 많이 놀랐어요.


말 나온 김에, 드라마 얘기를 해보자. <돈꽃>을 보면 배우만큼이나 감독(김희원)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적인 장면이 거의 없었지만 긴장감이 만만치 않았다. 그 때문에 '막장'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소재인데도 '명품' 혹은 '명품 막장'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일등 공신이 감독임은 분명해요. 감독님은 큰 그림을 그리고 과감하게 추진하는 능력과 동시에 그것을 디테일하게 표현해내는 섬세한 감성이 있으세요. 그래서 드라마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았죠. 단역 하나하나 캐릭터 분석을 누구보다 완벽히 하고, 매일같이 배우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감동받았어요.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결국 빠지게 되는, 드라마의 바람직한 프로세스를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일요일마다 전체 배우들과 리딩을 했어요. 그때마다 모든 연기자가 입 모아 하는 말이, "새롭다" "신선하다"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보지 못했던 느낌이다" "이런 신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등이었어요. 예를 들어 이 대사 뒤에는 분명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을 법도 한데, 한 번도 뺨을 때린 적이 없었어요. 미드 같은 느낌이랄까요. 마지막까지 이 작품은 제가 상상한 것 그 이상이었고, 그것을 표현하기에 너무 즐거운 작품이었어요.


어쨌든 살인과 혼외 자식 등 극적인 스토리 전개 때문에 초반에는 막장 드라마라는 평가도 있었다.
촬영할 때는 주변 반응을 느끼질 못했어요.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집에 못 들어갔고, 하루이틀은 씻고만 나왔고, 하루이틀은 두 시간 정도 자고 나오는 스케줄이었거든요.(웃음) 막장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에서 우리가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을 극 중 캐릭터들이 쉴 새 없이 해요. 사람을 죽이고, 혼외자를 낳고, 복수하고…. 한데 제 생각은 그래요. 누구나 맘속에서는 오만 가지의 생각을 하잖아요.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을 드라마다 보니 극적으로 표현했고, 그래서 '막장'이라는 단어도 나왔겠죠. 그런 요소를 시청자들이 좋아하기도 했죠.


극 중에서 남편의 혼외자가 등장한다. '나모현'은 그 상황에서도 침착하다.
머리채를 쥐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현명한 해결책이 뭘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렇게 침착했을 거예요.


실제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죽여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실제로 연기를 하면서 그 상황을 많이 상상했어요. 그럴 때마다 머리가 너무 아픈 거예요. 게다가 아빠까지 나를 배신했다? 어떻게 얼굴을 보고 살아요. 실제라면 엄마를 지키기 바빴을 거예요. 나중엔 극 중 아빠가 왜 자살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고요. 마지막 부분에서는 연기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
'나모현'은 세 가지 배신을 당하죠. 남편의 배신, 아빠의 배신. 사랑하는 남자의 배신. '나모현'이 믿었던 것들이 모두 가짜가 된 거죠. '이걸 표현해낼 수 있을까?' 어찌할 바를 몰랐던 순간이 너무 많았어요. 드라마엔 나오지 않았지만 숨겨진 시간들이 있잖아요. 그 시간에 '나모현'은 많이 울었을 것이고, 분노했을 거예요. 그 끝에 다다른 결론이 담담함 그리고 복수였을 테고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제가 술을 좋아했다면 애주가가 됐을 거예요.(웃음) 술은 잘 못 하지만 술자리를 피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얘기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죠. 데뷔하고 한 3년간은 스트레스를 안 풀었어요.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라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푸는 방법을 몰라 그대로 쌓아뒀죠. 그땐 잠을 많이 잤어요. 잠든 순간만큼은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어렸을 때는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결국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을 바꿨어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되, 다른 얘기를 하는 걸로요. 얘기를 하면 그 감정이 다시 떠올라 힘들기도 하고, 괜히 저 때문에 친구도 우울해지잖아요.


혼자 동굴에 들어가서 푸는 스타일이다. 힘들지 않나?
하루는 친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분명 힘든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왜 말을 안 해?" 서운하다는 거예요. 그때 '내가 남자 같은 면이 있구나'라고 느꼈죠. 예를 들어 친구가 "오늘은 뭐 촬영했어?" "힘든 건 없었어?" 하고 물으면, 제 또래 여자들은 조잘조잘 얘기해주잖아요. 근데 전 "별거 없었어" 하고 넘겨버려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와 가족들은 제 생각과 고민을 궁금해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이후 제 감정을 드러내려고 노력했지요. 그렇게 2년 정도 노력했더니 좀 나아진 것 같아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일단 자고 싶어요. 잠을 너무 못 잤거든요. 그리고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 거예요. 저요? 조카바보예요.(웃음) 쉬면서 여행도 다닐 거예요.


다이어트는 어떻게 하나?
아시죠? 마른 스타일 아닌 거.(웃음) 평생 마른 체형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수다보다 먹는 걸 더 좋아하는데 어쩌겠어요, 참아야지. 작품 하기 전에 이 악물고 다이어트를 해요. 이제 작품이 끝났으니 2주간은 원 없이 먹을 거예요. 쉬면서 몸도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운동요? 집에서 하는 맨손 운동요. 친구들은 홈 트레이닝이야말로 의지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해야 되면 하는 거죠 뭐.


예능에 출연할 생각은 없나?
예능 애청자이고, 재미있는 걸 너무 좋아해요. 근데 전 '노잼' 캐릭터예요. 제가 나오면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릴 것 같아 함부로 못 나겠어요. 저도 예능을 보다가 재미없으면 바로 채널을 돌리거든요. 얼마 전 큰맘 먹고 <아는 형님>에 출연해 노잼 매력을 발산하고 왔지요.(웃음)


영화나 웹 드라마 등 연기적으로 색다른 시도를 해볼 생각은 없나?
얼마 전 이순재 선생님과 박소담 씨가 하는 연극을 보러 갔어요. 제가 알던 <돈꽃>의 '장국환'이 1퍼센트도 없는 거예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어요. 박소담씨를 보면서도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죠. 저는 연기가 좋아서 배우가 됐어요. 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대학로도 너무나 매력적이에요. 기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기승전-연기' 이야기였다. 박세영은 지금, '연기'로 꽉 차 있다.

박세영은 매사에 진중하고 또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에 포장이 없다. 고백하건대 그래서 이 인터뷰는 조금 지루하다. 그래서 그녀가 좋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제공
후너스엔터테인먼트

2018년 03월호

이달의 목차
에디터
하은정
사진제공
후너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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