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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론의 20년

30년 전 고등학교 동창으로 처음 만났던 강원래와 구준엽은 그중에 20년을 ‘클론’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다.

On August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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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래·구준엽 턱시도 재킷 리마조 테일러, 셔츠&보타이 BH1958.

 

클론에게 위기는 곧 기회였다. 2006년 강원래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을 때 구준엽은 절망에 빠진 친구의 곁을 지켰고, 강원래는 자기 때문에 한순간에 인생이 바뀐 구준엽을 채찍질하고 응원했다. 위기를 딛고 일어난 강원래는 안무가로 제2의 인생을 살면서 강연에서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구준엽은 39살 늦은 나이에 음악 공부를 시작하더니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DJ로 꼽힌다.

강원래와 구준엽은 올해로 30년째 우정을 자랑한다. 미술학도였던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만나 서로 다른 점에 끌려 친구가 됐고, 함께 춤추고 함께 노래하며 같은 추억을 공유했다. 겪지 않아도 될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그들은 단단해졌고, 위기를 극복하며 하나가 됐다. 그리고 지난 6월 구준엽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채워진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 나왔다. 앨범 활동의 마지막 날 만난 두 사람은 촬영 현장을 기분 좋은 웃음으로 채웠다.

 

 

강원래 재킷 신발 모두 디그낙. 구준엽 점프수트 개인 소장품, 선글라스 질 바이 질 스튜어트.

 

“그동안은 화보든 앨범 재킷이든 한 포토그래퍼와만 진행해왔어요. 저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서 그분을 고집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늘 촬영이 낯설긴 하네요. 포토그래퍼부터 에디터, 스타일리스트까지 처음 보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도 오랜만에 준엽이와 ‘의리 넘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사실 평소 우린 그렇게 살갑게 애정표현하는 사이가 아니라 낯간지럽긴 했지만요.(웃음)” (강원래)

“제가 보기와 다르게 낯을 많이 가려요. 쑥스러워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인데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지으려니 오글거리네요. 그래도 이번 앨범 활동의 마지막을 원래와 함께 화보 촬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구준엽)

“영 어색하다”면서도 익살스러운 포즈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서로 그런 모습이 우스운지 한참 동안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게 뭐냐”며 핀잔을 주면서 이내 그 표정을 따라 하는 식이다. ‘쿵짝’이 잘 맞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티격태격하지만 환상의 호흡을 만들어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친구 이상의 무엇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너희는 대체 무슨 사이냐?’라고 물어봐요. 무슨 사이는 무슨 사이겠어요. 그냥 고등학교 친구죠. 우리 사이를 설명해보라는 질문이 가장 어려워요. 여자들은 친구라는 존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데, 남자들은 다르거든요. 우정이나 의리를 생각하면서 관계를 맺지 않죠. 원래와 저도 그렇게 지내왔어요. 우린 굳이 설명할 필요도, 설명할 이유도 없는 ‘그냥’ 친구예요.” (구준엽)

“30년 동안 이렇게 우정을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 30년을 잘 흘려보냈을 뿐이에요. 시간은 당연히 흐르는 거니까 우리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흘렀고, 그 시간을 공유했고, 그 안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냈을 뿐이죠. 여자들은 애인이 생기면 친구를 등지는 경우가 많은데, 남자들은 애인한테 거짓말하고 친구를 만나러 가잖아요. 우리도 그랬어요. 그냥 인생의 한 부분이랄까요? 쟤가 나 같고, 내가 쟤 같은 그런 거요.” (강원래)

“살면서 친구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잖아요. 잠시 친했던 친구도 있고, 의미 없이 시간을 공유하는 친구도 있고요. 원래와 저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겉으로 친한 척 가식 떨 필요도 없고, 싫어도 좋다고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죠. 살면서 이런 친구 한 명만 있으면 그 삶은 성공한 삶이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제 인생은 성공했네요.” (구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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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친구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잖아요. 잠시 친했던 친구도 있고, 의미 없이 시간을 공유하는 친구도 있고요.
원래와 저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겉으로 친한 척 가식 떨 필요도 없고, 싫어도 좋다고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죠.”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 인연이라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참 기묘하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춤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친해졌는데, 우연한 계기로 ‘클론’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20대 초반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댄스 가수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리다가 불의의 사고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말 그대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징글징글한’ 사이라는 거다. 이제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함께 가야 한다며 웃어 보인다.

“저는 춤추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여학생들한테 인기 좀 얻으려고 그 앞에서 춤추고 그랬죠. 근데 옆 반에 저랑 똑같은 애가 있다는 거예요. 심지어 춤을 엄청 잘 춘대요. 그게 원래였죠. ‘나랑 같은 놈이 있다니!’ 하며 신기했는데 알면 알수록 이 친구가 진국인 거예요. 요즘 말로 ‘츤데레’라고 하죠. ‘얘가 날 친구로 생각하긴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까칠하고 차가울 때도 있었는데, 알고 보면 그게 다 저를 위한 거더라고요. 속은 한없이 깊은 진국이라는 걸 아니까 이제는 무슨 말을 해도 서운하지 않아요.” (구준엽)

에디터는 구준엽의 말에 200% 동감했다. 다소 차가운 강원래의 말투는 간혹 그에 대한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조금만 다정다감하게 말해보라”고 지적하자 “천생 경상도 남자라서 그렇다”는 강원래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아버지가 무뚝뚝한 경상도 분이라 그렇게 보고 배우고 자라서 어쩔 수 없어요. 이런 제 성격을 나쁘게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부드럽게 말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솔직하고 가감 없이 말하지 않으면 답답한걸요. 그만큼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려고 해요. 휠체어를 타고 춤추는 제 모습을 본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제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주눅 들 필요는 없잖아요. 이런 제가 신기한 사람도 많겠지만 상관없어요. 이게 저인걸요.” (강원래)

직선적이고 다혈질인 강원래와 달리 구준엽은 극단적으로 소심한 성격이다. 라디오 방송에서조차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강원래와 구준엽, 달라도 너무 다르다.

“트리플 A형이에요. 상대방이 바쁠까 봐 전화도 잘 못 하는 성격이죠. 좋게 생각하면 배려심이 많은 건데, 그냥 소심한 거예요.” (구준엽)

“우리는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친해졌는지 저도 궁금해요.(웃음) 근데 서로가 서로에게 톱니바퀴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준엽의 빈 곳을 제가 채워주고, 저의 부족한 부분을 준엽이 채워주는 식이죠. 만약에 고등학교 친구가 아니라 사회생활 중에 만났더라면 이렇게 오래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강원래)

 


강원래
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구준엽 상·하의 신발 모두 디그낙.

 

20주년 앨범 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1996년 6월 여름 가수를 외치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그때처럼 클론은 다시 새로운 음악을 들고 대중 앞에 나섰다. 하루 18시간 이상 작업실에서 곡 작업에 몰두했던 구준엽이 앨범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앨범은 모두 구준엽의 손때가 묻은 곡으로 채워졌다.

“저는 원래보다 잘하는 게 없어요. 춤도 노래도 원래가 월등히 잘했죠.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의 재능을 따라갈 순 없었어요. 제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인내심이에요. 꾹 참고 진득하니 하는 걸 잘하죠. 그래서 디제잉도, 작곡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작년에 제작자 김창환 씨가 우연히 제 작업실에 들렀고, 그동안 만든 곡을 들려주었더니 ‘클론 앨범으로 내보자!’고 하는 거예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죠. 클론이 데뷔한 지 정확히 21주년이 되는 해에 제가 작업한 곡을 세상에 들려줄 수 있다니 얼마나 의미 깊은 일이에요. 뿌듯하고 기분 좋아요.” (구준엽)

“밤이면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느라 연락도 잘되지 않던 준엽이가 혼자서 이런 곡을 만들었다는 게 놀라웠어요. 사실 그동안은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 ‘DJ로 성공했구나’ 정도였지, 준엽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 크게 관심 없었거든요. 어느 날 술 마시고 준엽이 작업실에 갔다가 노래를 들었는데 ‘이건 되겠는데?’ 싶었죠. 그때부터 준엽이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어요. 클론스러운데 새로운 스타일이라 마음에 들었어요. 알고 보니 유럽에서 하루 종일 페스티벌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장르라고 하더라고요.” (강원래)

자식 같은 곡을 세상에 내놓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을 것이다. 게다가 하나뿐인 친구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선물을 받은 기분일 게다. 구준엽은 감회가 남다른 듯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서른아홉 살, 늦은 나이에 음악 작업을 시작해서 더 힘들었어요. 감각 좋은 어린 친구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죠. 하루 종일 음악만 생각했어요. 작업실에서 먹고 자는 날이 더 많았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흘렀네요. 이번 앨범 활동을 하면서 고생스러웠던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구준엽)

“준엽이 덕분에 ‘아직 살아 있는 클론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이 이뤄진 것 같아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 있는 가수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준엽이가 그 꿈을 이뤄준 셈이죠. ‘클론이 멈추는 바람에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이 끊겼다’는 평가를 들으면 기분 좋아요. 앞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댄스 문화를 이끌어갔던 클론이고 싶어요.” (강원래)

“이번 앨범 활동을 하면서 과거의 우리를 회상해봤어요. 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아 아쉬워요. 누구 한 명이 실수를 해도 그 자리를 바로 채워주는 게 우리였는데 말예요.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계속 활동했더라면 서태지 씨, 이주노 씨를 능가하는 댄스 가수가 될 수 있었을 거예요. 우리 두 사람의 호흡만큼은 자신하거든요.” (구준엽)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같은 추억을 쌓아온 강원래와 구준엽은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같은 방향이었다. ‘꿈’이었다.

“결혼을 생각하기엔 이미 늦은 것 같아요. 지금은 연애보다 일이 더 좋아요.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곡이 완성됐을 때 그 희열은 마약 같죠. 좀 더 나이 먹으면 해보고 싶은게 많아도 나를 찾아주는 곳이 없을 테니 지금 더 열심히 해야죠. ‘구준엽이 만들면 된다’는 인식이 생길 때까지 앞만 보고 달릴 겁니다. 히치콕 감독도 60살 넘어 <싸이코>를 만들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모나리자’를 60살 넘어서 그렸듯이 저도 60살 넘어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워커홀릭인데 결혼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는다면 그건 복권에 당첨된 것과 똑같을 거예요.(웃음)” (구준엽)

“2004년부터 ‘꿈’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하고 있어요. 제가 꾸는 꿈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저는 어떻게 꿈을 키워왔는지를 전하죠. 클론 활동 당시로 돌아가고 싶었고, 아이를 갖고 싶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다 이뤘어요. 최근에 장애인 인권을 다룬 영화 <엘레베이터>를 만들었는데, 평가는 좋지 않았지만 제가 신나서 했기 때문에 만족스러워요. 앞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예요. 뮤지컬을 제작해보고 싶어 고민 중인데 언제쯤 도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많은 분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강원래)

강원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고 싶은 건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은 대화 곳곳에도 묻어 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여자의 남편, 한 아이의 아빠로 살고 있는 강원래. 그가 꿈꾸는 완벽한 미래의 마지막 퍼즐은 바로 가족이었다.
“저는 보통 남편, 보통 아빠예요.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평범하게 살았으면 해요.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산다고 하잖아요. 우리 가정도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리고 평온하게 흘러갔으면 좋겠어요. 클론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도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금수저’예요. 다 가진 남자거든요.” (강원래)

진정한 의미의 ‘벗’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각기 다른 두 남자가 만나 평생 친구가된 강원래와 구준엽처럼.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
하지영
스타일리스트
전금실, 강지연
헤어
승현(더세컨)
메이크업
송아름(더세컨)
2017년 08월호

2017년 08월호

에디터
이예지
사진
하지영
스타일리스트
전금실, 강지연
헤어
승현(더세컨)
메이크업
송아름(더세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