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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기적

On April 11, 2017 0

의학적으로는 단 1%의 생존 가능성도 없다고 했던 아이. 그러나 태동을 느낀 엄마는 귀한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는 뇌의 90%를 잃었지만 오로지 희미한 청력 하나에 의지해 기적을 노래하는 청년으로 훌쩍 자랐다. 장애인 성악도 박모세(26세, 백석예술대 음악학부 2학년) 군과 어머니 조영애 씨를 만났다.

 

얼마 전 모세 군과 어머니가 함께 출연한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화제입니다.
조영애 KBS <노래가 좋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예전에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에 가족끼리 노래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모세가 그걸 보면서 “저기 가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저는 그냥 건성으로 그러라고 했죠. 그런데 <노래가 좋아>라는 프로그램을 본 모세가 “엄마, 저기 가야죠. 약속했잖아요.” 그러더라고요. 도저히 자신 없어서 못 하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출연했죠.

모세 군 노래 실력이야 아는 분들은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 노래 실력에 더 깜짝 놀랐습니다. 혹시 음악을 하신 적이 있나요?
조영애 전 노래를 해본 적이 없어요. 1년에 한두 번 연말에 모세 친구 엄마들과 스트레스 푼다고 노래방에 가는 게 전부였어요. 그냥 마음을 비우고 모세랑 약속을 했으니까 좋은 추억이나 하나 만들자는 생각으로 나갔던 겁니다. 이렇게 반응이 클지 몰랐어요. 사실 1승을 했을 때는 저 스스로도 ‘사연 때문에 됐나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모세가 행복해하니까 그냥 즐기자며 노래를 했죠. 그런데 막상 2승을 하니까 어리둥절하더라고요.
박모세 나는 좋아하고, 엄마는 어쩔 줄 몰랐어요.

결국 4승까지 하셨죠?
조영애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자꾸 눈물이 나는데 꾹 참았죠. 나 때문에 모세가 실력 발휘를 못 하면 안 되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했어요. 1승 때는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2승 때는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3승 때는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 4승 때는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불렀어요. 정말 놀란 건 방송 출연을 하고 나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우리를 알아보고 응원해주시고, “음반은 언제 낼 거냐?”라고 물어보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우리가 4승을 하고 난 후에는 “이제 모세 안 나오면 무슨 낙으로 방송을 보냐”라고 하시기도 하고. 저는 그냥 장애아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인데 이런 큰 관심을 받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했어요. 모세가 교회에서 찬양할 기회가 많은데 그곳에서도 찬양 후에 앙코르 송으로 ‘사랑을 위하여’를 해달라고 해요.

모세 군은 많은 분이 알아보고 인사하면 기분이 어때요?
박모세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니까 재미있고 행복해요.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해요.

모세 군이 웃음이 많아서 주변을 밝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모세 군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요?
조영애 임신 4개월 말경, 초음파 검진을 했는데 뭔가 심상치 않다는 말을 듣고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았어요. 태아의 머리 후두부 쪽에 뼈가 형성되지 않아 구멍 난 부분으로 뇌가 흘러나와서 아이가 살 가능성이 1%도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산모도 위험할 수 있으니 낙태 수술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어요. 어쩔 도리가 없어 수술을 결정했는데 그때 아이의 태동을 느꼈어요. 그 순간 인위적으로 이 아이를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10개월을 채운 후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서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조영애 생후 3일 만에 대뇌 70%, 소뇌 90%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네 번의 뇌수술과 두 번의 다리 수술을 받았죠. 아이의 온몸에 의료장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제가 어느 곳 하나 아이 몸을 만져줄 수도 없었어요. 산소 호흡기를 달고 가느다란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살아달라고 한 게 제 욕심인 거 같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기적처럼 모세 군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한 거죠?
조영애 병원에서는 전체 뇌의 90%를 잘라냈으니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걷지도 못할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기적처럼 모세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울음소리조차 나지 않던 아이인데 5살 때 말문이 트였고 노래도 그때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아이가 노래를 하니까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죠. 그러다 7살 때 아이가 다니던 선교원에서 연말 재롱잔치를 하는데 모세는 율동을 할 수 없으니 노래를 한 곡 불렀어요. 그 노래를 듣고 많은 사람이 감동과 울림이 있다면서 감탄하더라고요. 그때 모세가 할 수 있는 게 바로 노래라는 걸 알게 됐죠. 당시 모세의 지적 능력은 3살 수준에 머물러 있었어요. 시력은 한쪽은 안 보이고 다른 한쪽은 아주 희미하게 보여요. 그런데 노래할 때만큼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나 봐요.

모세 군은 노래가 왜 좋아요?
박모세 노래할 때는 기분이 좋아요. 행복하고 날아갈 거 같아요. 사람들이 박수도 많이 쳐주고. 노래는 제 삶이고 에너지예요.

모세 군이 음악을 만나면서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을 거 같아요.
조영애 그전에는 매일 엄마랑 둘이 있으니 정말 단조로운 생활이었죠. 매일 대화도 똑같고. 그런데 노래를 하고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무대에도 서고, 새로운 분을 많이 만나게 됐죠. 작가님이나 기자님을 만나 새로운 질문도 받고, 그것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아이가 그런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다 보니 그에 대한 답변을 외워서 대답을 또박또박 잘하니까 말 잘한다고 칭찬도 듣고요. 모세가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밝은 성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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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그 외에도 많은 무대에서 공연했죠?
조영애 2013년 1월 29일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에서 110여 개국 선수들과 4천여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세가 애국가를 불렀어요. 그때의 감동은 정말 잊을 수 없어요. 그날 모세는 감기 기운도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모세 얼굴을 보니까 눈은 풀려 있고 무대로 걸어가면서도 다리가 휘청거렸죠. 제가 더 긴장돼서 그저 무사히 잘 끝나기만을 기도하느라 막상 모세 노래 소리는 듣지도 못했어요. 내려오자마자 잘했다고 칭찬해줬죠. 그 외에도 여자 프로농구 경기에서 애국가를 부른 적이 있고, 미국 12개주 교회 27곳 순회 찬양과 뉴욕 UN본부 ‘UN 세계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 공연 등 여러 곳에서 노래를 했어요. 모세 덕분에 미국에 세 번이나 다녀왔는데 모세가 미국 갔을 때 정말 좋아하면서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미국은 노래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좋았던 거죠.

모세 군이 무대에서 노래할 때 어머니 기분은 어떠세요?
조영애 가슴 졸이며 지켜보느라 무대를 제대로 못 즐기죠. 그래서 장난처럼 모세한테 “모세는 뵈는 게 없어 안 떨리지?” 그렇게 말해요. 그러면 모세가 “엄마는 참~” 하면서 큰 소리로 웃죠. 모세는 그동안 꾸준히 연습한 걸 그대로 하는 거니까 긴장하지 않아요.

모세 군의 오늘이 있기까지 어머니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사랑과 도움이 컸다면서요?
조영애 남편과 시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있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죠. 남편은 어릴 때부터 믿음이 몸에 밴 사람이라 사랑이 많아요. 시어머니는 올해 92살이신데 모세가 태어나면서부터 25년 넘게 교회에서 생활하며 모세를 위해 기도하셨어요. “사람들은 남의 일은 3일이면 잊어버린다. 내가 왔다 갔다 해야 나를 보고 모세를 기억해서 한 번이라도 더 기도를 해줄 거다”라고 하셨죠. 또 모세가 애기 때 한 방울의 영양분이라도 더 주기 위해 소 양을 직접 사다가 깨끗이 손질해서 우린 물에 분유를 타서 먹이시곤 했어요. 집안일이며 식사 준비도 다 도와주시고. 시어머니들 중에는 아이가 아프면 며느리 탓으로 돌리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우리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어요.
박모세 할머니가 지금도 매일 기도해주세요.

모세 군에게 두 살 터울의 누나가 있죠? 사실 아프거나 몸이 불편한 형제가 있으면 다른 한 명은 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특히 어렸을 때는요.
조영애 모세 누나가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 참 예뻐요. 모세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딸아이가 어렸을 때 애정 결핍이었는데 우린 그걸 몰랐어요. 모세가 죽네 사네 하는 상황에서 수시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러면 한 달이 걸리는 건 기본이에요. 그때마다 딸아이를 이모네 집이나 외갓집에 맡겼죠. 어느 날 보니까 아이가 손톱을 다 물어뜯었더라고요. 눈을 깜박거리고 킁킁거리고. 애정 결핍으로 틱 현상이 왔던 거예요. 나중에 알고 나서 남편이랑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때 딸아이가 7살이었어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한창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그걸 못 해줘서 너무 마음 아파요. 어릴 때부터 항상 아픈 동생을 위해 기도해주는 착한 아이였어요.

모세 군 덕분에 행복하고 기쁜 순간도 있지만 힘들고 어려운 때도 많을 거 같아요.
조영애 저는 항상 모세한테 “모세야, 엄마는 너의 영원한 몸종이야”라고 말해요. 먹는 거, 입는 거, 씻는 거, 모든 것을 다 제가 해줘야 하거든요. 그냥 제 삶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어요. 정말 힘든 때는 모세가 저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제가 아파서 아이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할 때죠. 저한테는 아픈 것도 사치예요. 남편이랑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우린 절대 아프면 안 돼. 우리가 지켜내야 할 아이가 있으니까 각자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는 거예요. 모세 덕분에 우리는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껴요.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나요?
조영애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 살아만 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말도 하고 노래도 하고 걸을 수 있잖아요.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화장실에서 혼자 소변을 보고 옷을 입고 나왔는데 제대로 입은 게 아니라 겉옷이 한쪽은 꽈배기처럼 꼬여서 올라가 있는 거예요. 그래도 우린 모세가 혼자 했다는 사실 하나로 행복해요. 하다못해 양치질을 했는데 치약 거품이 온통 입에 묻어 있어도 그걸 보는 게 즐겁죠. 정수기 물을 마시겠다고 물을 잔뜩 흘려도 혼자 하려는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웃음이 나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한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조영애 엄마들의 기준이 아닌 아이 눈높이에 맞추면 좋을 거 같아요.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으니까요. 부모 욕심을 아이한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서포트해주면 좋을 거예요. 저는 모세를 통해서 ‘있는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어요. 사람들은 열 개 중에 아홉 개를 갖고 있어도 없는 한 개 때문에 실망하고 힘들어하잖아요. 그냥 한 가지를 가졌다는 것에 감사하니까 이런 좋은 날도 오는 것 같아요. 모세 키우면서 작은 슈퍼, 목욕탕 청소, 자판기 관리, 우유 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전셋집에서 월세로 다시 지하 월세로,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죠. 많은 분들이 우리 모세를 보면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랑은 모성에서 시작해서 모성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죠. 모세 군에 대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조영애 남편과 저는 항상 “오늘 행복하게 살자. 그러면 오늘이 모여서 평생 행복할 거다”라고 말해요. 삶이라는 게 우리가 계획한다고 해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죠. 사실 지적장애아들은 몸은 건강해 보여도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모세도 마찬가지죠. 의식주만 해결되면 걱정 없는데…. 가장 불편한 건 볼일을 보고 신변 처리를 못한다는 거죠. 그건 남이 해주기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모세에게 비데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제가 죽기 전까지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연습시키는 중입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조영애 모세가 찬양하는 걸 가장 좋아해요. 그저 건강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계속 불렀으면 좋겠어요. 모세가 그 일을 계속하려면 제가 옆에 있어야 하니까 저도 건강해야겠죠. 그동안 어려운 순간도 많았고 죽고 싶을 때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모세 덕분에 더 힘을 낼 수 있었어요. 항상 맑은 날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하지만 햇빛이 화사한 날도 반드시 있죠.

마지막으로 모세 군도 하고 싶은 말 한마디 해주세요.
박모세 엄마랑 여행 많이 가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노래를 계속할 거예요.제 노래를 듣고 많은 사람이 꿈과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 노래가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여서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의학적으로는 단 1%의 생존 가능성도 없다고 했던 아이. 그러나 태동을 느낀 엄마는 귀한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는 뇌의 90%를 잃었지만 오로지 희미한 청력 하나에 의지해 기적을 노래하는 청년으로 훌쩍 자랐다. 장애인 성악도 박모세(26세, 백석예술대 음악학부 2학년) 군과 어머니 조영애 씨를 만났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하지영

2017년 04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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