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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고소영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고소영의 얼굴에 이전에는 없던 분위기가 묻어난다.

On March 10, 2017

 


세련되고 상큼한 10년 전 외모 그대로다. 끊이질 않는 수다와 툭 던지는 농담은 그간의 도도한 이미지와 겹쳐지지 않는 생경함으로 다가왔다. 고소영은 세파에 찌든 아줌마 ‘심재복’의 우먼 파워를 그린 KBS2 드라마 <완벽한 아내>를 통해 시청자와 만난다. 고소영이 아줌마 역할이라니? 반가움과 동시에 궁금증이 솟는다. 세월의 나이테를 연기하는 그녀의 표정, 몸짓은 과연 어떠할지…. 이태원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그녀는 여전히 완벽했다.

공백기는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 엄마로서 충실했던 시간이다. 고소영은 2010년 배우 장동건과 결혼해 8살 아들 준혁 군, 4살 딸 윤설 양을 두고 있다.
“두 살 터울로 둘째를 계획했는데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첫아이가 4살 정도 됐을 때 혼자 노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 둘째를 가졌는데, 아이가 만 3살이 될 때까지 곁에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 남편은 작품을 계속하고 있었고, 아이들을 우선순위에 두다 보니 제 일이 좀 더 늦어진 거죠. 워낙 늦게 결혼해 물어볼 사람도, 기댈 곳도 없었어요. 스스로 알아가야 할 것이 많아서 힘들기도 했고요.”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나니 기쁨이 배가 됐다. 고소영은 내향적인 아들, 애교 넘치는 딸을 키우는 재미를 전하며 ‘엄마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첫째는 정확히 부모의 직업을 알지만, 둘째는 아직 몰라요. 둘째가 여자아이라 그런지 시샘이 많더라고요. 한번은 일하는 현장에 데려갔는데 ‘내가 입어야 하는데 엄마가 예쁜 드레스 입으면 어떡해’ 하며 펑펑 울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아들한테는 ‘아빠랑 친구일 때 찍었던 거야’라며 남편과 함께 나온 영화 <연풍연가>를 보여줬더니 오글거려 하더라고요.(웃음) 집에서 대본 연습을 하는 제 모습을 보고 쑥스러워하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예요. 엄마가 TV에 나오면 꼭 보여달라고 하던걸요. 딸도 응원해줘요. ‘촬영장이 너무 추워서 귀가 없어졌다’고 했더니 엄마 귀를 만지면서 ‘귀 다시 생겼어?’라고 묻더라고요. 아이들 모습 보면 힘이 나고 든든해요.”

고소영은 “딸이 육아 예능에 나오면 ‘국민 아이’가 될 텐데…”라며 여느 고슴도치 엄마처럼 딸 자랑을 늘어놨다.
“딸이 애교가 많아요. 매일 제 앞에서 연기하는데 혼자 보기 아깝다니까요. 그런데 방송에 출연했다가는 공주병이 들 것 같아요. 아이가 촬영을 감당해낼지 걱정도 되고요. 생각은 많지만 남편이 유명인이다 보니 저만의 생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죠.”

단란한 가정을 이룬 뒤 생긴 여유일까? 결혼 전에는 없던 넉살과 여유가 고스란히 말투와 표정에 배어 있었다.
“결혼 전후의 차이는 확연해요. 예전엔 씩씩했는데 눈물부터 앞선다든지…. 삶의 경험이 풍부해져서인지 부모가 되고 아이에 대한 애틋함도 깊어졌네요. 결혼 전에 비해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표현도 좀 더 과감해진 듯해요. 제가 19금 농담을 하면 빵빵 터져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쾌감을 즐긴다니까요. 아줌마 다됐죠.(웃음) 영락없는 마흔여섯 아줌마 그 자체인데 주변분들은 ‘옛날엔 안 그랬는데’라며 놀라워하세요.”

동갑내기인 장동건·고소영 부부는 연애 시절부터 결혼 7년 차인 지금까지 존댓말로 서로를 대한다. 고소영은 “동갑인데 ‘너’라고 반말을 하면 ‘막장’이 될 것 같았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가까운 사이에도 지켜줘야 하는 선이 필요하다는 공감이 깔려 있다. 그녀는 “결혼 생활에서도 서로 존중하고 싫어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게 된다”라고 존댓말의 장점을 전했다. 고소영이 들려주는 ‘아빠’ 장동건은 아들과 딸을 대할 때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남편이 ‘아들 바보’예요. 표현은 무뚝뚝한데 얘기 나눠보면 아들을 깊이 생각하는 게 느껴져요. 남편이 ‘가끔 아이 뒷모습을 볼 때 저 아이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해서 놀랐어요. 아들이 8살이고 남자아이다 보니 공감대가 형성되나 봐요. 반면 딸이 애교를 부리면 당황스러워해요. 그의 집안에 여자 형제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장고 부부’의 결혼 생활은 판타지다. 하지만 화려하게만 보이는 부부의 일상도 익숙해져가는 시간 속에 희로애락을 겪는 보통 부부와 다르지 않다. 결혼 초기에는 주도권을 쥐고자 다투는 일이 잦았다면,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요즘은 각자 ‘다름’을 인정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결혼하고 일 년 정도는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많은 분이 ‘너희는 다를 것 같다’고 하는데 다른 엄마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결혼 준비 때부터 지금까지 고민이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어느 날은 사이가 안 좋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신기하게 또 회복됐다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이래서 부부가 몇십 년을 한 사람과 사는구나’ 싶어요.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며 어느 정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것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비결인 것 같아요.”



서툴지만 속 깊은 남편이자 아빠인 장동건의 모습도 들려주었다. 촬영장이 아닌 가정에서 장동건은 보통 가장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요란하지 않은 표현에 오히려 진지한 애정이 느껴진다. 장동건은 몇 발짝 앞서 아내 마음을 헤아리는 이상적인 남편은 아니지만, 몇 발짝 뒤에서 아내를 헤아려주는 버팀목이다.

“많은 분이 아시는 것처럼 남편은 착하고 성품 좋고 화도 잘 내지 않아요. 그런데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남편을 오해했었어요. 아이가 말도 못 하고, 원하는 시간에 잠도 안 자니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집에 없는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했었죠.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남자들은 가르치고 시키지 않으면 모른다고요. 한 번도 묻지 않고 알아서 해주길 바라니까 오해가 생겼던 거예요. 저는 알아서 해주길 원했고, 남편은 제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던 거죠.”

실제로 그녀는 ‘완벽한 아내’일까? 헌신적인 아내이자 엄마였노라 자부했지만,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남편 눈에는 완벽하려고 하는 제 모습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아무도 너한테 살림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왜 활동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돌아보니 맞는 말이었어요. 제가 아이들을 두고 나가면 마음이 불편했어요. 잠시 나갔다가 돌아와 물어보면 막상 애들은 엄마를 찾지 않았다고 해요. 엄마 혼자 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던 거죠. 전에는 손수 저녁 메뉴를 짜야 하고, 정리도 깔끔히 해야 했다면 지금은 많이 편해졌어요. 세상에 완벽한 아내는 없다고 생각해요."

고소영은 아내에게 현실적인 조언자이자 든든한 지원군인 장동건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본 남편이 선뜻 하라는 얘기를 못 하더라고요. 10년이라는 공백이 마음에 걸렸는지 ‘끌리는 대로 해. 어떤 식으로든 서포트할게’라고 말해주었죠. 요즘은 남편이 영화 촬영을 마친 뒤라 육아를 많이 도와줘요. 그동안 수고했으니 마음 편히 나가서 일하라고 하더군요. 연기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고맙죠."

세월을 비켜간 듯 싱그러운 미모에 세련된 패션 감각까지, 뛰어난 자기 관리로 ‘미시의 워너비’로 불리는 고소영이지만 다이어트는 그녀 역시 피해갈 수 없는 난제다. 불어난 몸무게 때문에 속상함을 넘어 우울한 시간을 보낸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그녀는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흔적 앞에서 느낀 상실감을 덤덤히 털어놨다.

“작년 가을쯤 관리의 한계를 느꼈어요. 무슨 수를 써도 불어난 체중이 빠지지 않더라고요. ‘나이가 드니 혈액순환이 안 되나?’ 별생각이 다 드는 거예요. 여자로서 슬퍼지는 순간이었어요.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카메라 마사지가 있구나’라고 실감하는 중이에요. 집에 있을 때는 0.5kg도 안 빠지더니 촬영 시작하고 2.5kg이나 빠졌어요. 몸이 가벼워져서 기분 좋아요. 드라마 끝날 때까지 2kg 정도 더 빼서 유지할 거예요.(웃음)”

고소영은 촬영장으로 나서는 발걸음을 ‘활력소’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10년 동안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라며 방긋 웃어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아이 키우는 게 쉽지 않잖아요. 아이들이 사랑스럽지만 늘 붙어 있으면서 저도 모르게 지쳤나 봐요. 일이 활력소가 되고 있어요. 애들 옆에 엄마, 아빠가 둘 다 없으면 안 되니까 잘 조율해야겠지만, 좋은 작품이 있다면 자주 찾아뵐 것 같아요. 저는 드라마보다 예능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맛집에 관심이 많고,요리 프로도 즐겨 봐요. 결혼 초기엔 ‘먹방’을 자주 봤는데 남편이 야밤에 남이 먹는 걸 왜 보냐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본인이 더 많이 봐요.(웃음)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예능이라면 언제든 환영해요.”

오랫동안 내려놨던 배우 타이틀을 다시 단 고소영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지만 한편 걱정도 내비쳤다. 고소영은 “심장이 너무 뛰더라. 긴장해서 잠도 못 이뤘다”라고 촬영 전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촬영을 앞두고 설레고 두려웠어요. 거의 밤을 새우고 촬영장에 나갔죠. 처음에는 카메라 워킹을 할 때 조금만 움직여야 하는데 크게 벗어나기도 하고, 센스 없이 버벅거린 것 같아요. 파트너 윤상현 씨와 아이 키우는 장면을 연기하면서 긴장이 서서히 풀렸죠.”

고소영이 갈아입을 옷은 정해졌다. 그녀가 극 중 소화해야 할 역할은 무능력한 남편(윤상현 분)을 대신해 생업 전선에 뛰어든 두 아이의 엄마 ‘심재복’이다. 화려한 이미지를 시청자의 뇌리에서 걷어내야 한다는 숙제가 온전히 그녀의 몫으로 주어졌다.

“화려한 이미지가 강하다는 건 일장일단이 있어요. 저에 대한 바람이나 기대감이 있다는 뜻이니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가끔 대중에게 비친 모습이 화려하게 꾸민 모습이라 그렇게 각인된 것도 있어요. 그간 멋진 커리어 우먼, 섹시한 여성 캐릭터도 많이 들어왔지만, 친근한 역할을 택한 이유는 또 다른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실제 모습은 새침하고 화려한 이미지와는 정반대거든요. ‘심재복’은 ‘드센 아줌마’라기보다 ‘걸 크러시’에 가까운 인물이에요. 외모적으로 안 어울린다고도 하시는데 진정성 있게 다가가면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마음은 급하지만 서두르지 않을 참이다. 그리고 욕심도 내지 않겠노라 마음을 다잡는다. 고소영은 차근차근 시간이 벌려놓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다.
“이번 작품으로 신드롬이 생기거나 대박 나길 기대하지 않아요. 계단 오르듯 한 계단씩 차분히 밟아갈래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쌓인 연륜으로 아줌마의 고충을 공감하도록 진정성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고요. 욕심 부리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돌아온 그녀에 대한 기대가 높다. 고소영은 대중의 환대가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녀를 오랫동안 기다렸고, 기다렸던 만큼 반갑다.

 

CREDIT INFO

기획
이예지 기자
취재
정은나리(<세계일보> 기자)
사진
하지영
2017년 03월호

2017년 03월호

기획
이예지 기자
취재
정은나리(<세계일보> 기자)
사진
하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