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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이라 불리는 남자

On May 15, 2017 0

남궁민은 자신보다 대중을 먼저 생각하는 세심한 배우였다.

 

햇볕이 좋았던 4월 어느 날 만난 남궁민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봐,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 입을 뗐다. 특히 공개 연애 중인 모델 진아름에 대해 이야기할 땐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잘 만나고 있어요. 아무 탈 없이 잘요.”
하지만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땐 180도로 바뀌었다. 적당한 크기의 눈이 두 배로 커졌고, 작은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어떤 질문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생각과 느낌, 에피소드를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다.
 

인생캐릭터를 만나다

남궁민은 KBS2 드라마 <김과장>에서 돈에 대한 천부적인 촉을 지닌 ‘삥땅 전문가 김성룡’ 역으로 열연했다. ‘김성룡’은 삥땅 전문가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TQ그룹에 입사해 부정, 불합리와 싸우며 무너져가는 회사를 살리는 인물이다.

남궁민은 ‘김성룡’을 맛깔스럽게 표현해 데뷔 이래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연초 방영된 드라마는 연말 시상식에서 찬밥’이라지만 KBS 연기대상 후보라고 점쳐지는 상황. 남궁민 역시 <김과장>에서 “나 연기 잘하는데? 연말에 대상 받을 건데”라고 너스레를 떨지 않았는가. 하지만 남궁민은 실제로 상 욕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KBS에서 작품 하나만 더 하면 대상을 받을거라는 기자의 말에도 끝내 손사래를 쳤다.

“주시면 감사히 받겠지만 정말 욕심 없어요. 예전에 MBC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이하 <내마들>)를 찍었을 때 그런 욕심은 다 버렸어요. 당시 드라마가 정말 잘됐어요. 체감으론 <김과장>보다 더 잘됐죠. 그런데 연말 시상식 때 후보에만 오르고 상을 못 받았어요.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처참한 결과였죠.”

남궁민은 여러 인터뷰에서 <내마들>을 마치고 슬럼프를 겪었다고 밝힌 바 있다. 속사정은 이랬다. 당시 일명 ‘서브 남주’로 인기를 얻은 그는 ‘다음 작품은 남자 주인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들어오는 ‘서브 남주’ 역할을 계속 거절했다. 그 결과 2년 동안 공백기를 갖게 됐다.

“건방진 생각을 하다가 흐름을 놓쳤어요. 제 자신이 너무 씁쓸했어요. 올해도 상을 못 받으면요? 그때처럼 순수하지 않을 것 같아요. ‘어라? 알겠어’ 하면서 더 열심히 할 거예요.”

하지만 대상보다 더 욕심내는 상이 하나 있다. 바로 ‘베스트 커플’ 상이다. 상대는 ‘2PM’ 준호. 준호는 극에서 남궁민과 대립하다가 TQ그룹 회장의 악행을 바로잡는 ‘서율’ 역을 맡았다. 남궁민과 웃음 포인트를 만드는 역할로, 두 사람의 ‘케미’가 <김과장>을 더 흥행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두 사람의 ‘브로맨스’를 응원하는 시청자도 생겼다.

“준호랑 애드리브로 만든 장면이 많아요. 죽이 잘 맞았죠. 그중 뽀뽀했던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준호가 정말 싫어하는 상황이었는데, 고민하다 감독님에게 ‘얘(준호)가 싫어하려면 뽀뽀밖에 없지 않느냐. 남자는 남자끼리 뽀뽀하면 정말 싫어한다’고 말했죠. 감독님이 흔쾌히 해보라고 하셔서 뽀뽀 장면이 탄생했어요. 보는 분들이 재미있어 하시니까 저도 좋더라고요. 준호와 ‘베커상(베스트 커플상)’은 욕심내도 될 것 같아요.”

시청자가 재미있어 하니 남자와 커플이 돼도 즐거웠다는 남궁민은 인터뷰 중간중간 대중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된다며 대중이 친근하게 생각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체를 바라보는 사람들 입장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연기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대중성이 없는 대중 예술은 아니라는 것. 남궁민은 <김과장>을 통해 매체를 대하는 태도를 배운 것처럼 보였다. 극 초반엔 시청자가 스스로 캐릭터를 파악하도록 다소 불친절하게 캐릭터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감독과 많은 상의 끝에 지금의 김과장을 만들었다.

‘조금 더 과장되게’란 요구에 맞춰 수위를 조절하다 보니 어떤 연령대의 시청자도 좋아할 수 있는 김과장이 탄생했다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TV란 매체가 지닌 특징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TV란 매체는 많은 사람이 공감해야 해요. 조금만 위트 있게 해도 알아듣는 분도 있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나이가 적거나 아주 많은 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쉽게 해야 하죠. 그 수위를 찾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게 제 역할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남궁민이 그린 ‘김과장’은 우리나라 사람과 다른 리액션을 취했고, 다소 촌스러운 헤어스타일과 패션 아이템을 선택했다.

“저는 ‘김성룡’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캐릭터를 세세하고 정성스럽게 분석했죠. 제일 큰 변화가 표정이에요. 저는 그간 표정을 많이 쓰지 않고 연기했어요. 절제하는 연기를 좋아하는데 이번엔 얼굴 근육을 많이 사용했어요. 특히 이마를 많이 움직였죠. (눈썹을 씰룩거리며) 이렇게 얼굴 표정을 많이 썼어요. 눈썹을 잘 보이게 하려고 처음으로 머리도 짧게 잘랐어요."

외적인 모습에도 공을 들였다. 포인트는 ‘촌스러움’이다. 특히 TQ그룹에 입사하기 전에는 더더욱 촌스럽게 스타일링했다. 자연스러운 브라운 컬러 헤어를 노랗게 물들였고, 깔끔한 재킷을 벗고 광택이 도는 점퍼인 스카잔을 입었다. 클래식한 로퍼 대신 비비드한 양말에 노란색 캔버스 운동화를 신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쟤 센스는 저 정도구나’라고 비웃길 바랐어요. 일부러 안 어울리는 노란색으로 염색했죠. 염색하고 거울을 보는데 제가 봐도 ‘정말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극 초반에 나온 옷들은 제가 직접 구제 시장에서 구매한 아이템이 많아요. 1만원을 내고 3~4벌씩 사왔죠. 곰팡이가 핀 옷도 있었지만 캐릭터에 너무 잘 어울렸거든요."

제스처도 일부러 현란하게 했다. 남궁민은 커피 잔이 놓인 테이블 아래 얌전히 놓여 있던 손을 갑자기 주머니에 집어넣더니 금세 이마로 가져갔다. 동시에 눈썹을 씰룩이면서 순식간에 김과장으로 변신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할 때 손을 많이 안 움직여요. 그런데 김과장은 제스처를 많이 취하죠. 외국인처럼 말이예요.”
 


김과장에서 김부장으로

그뿐만 아니다. 목소리와 말투에도 변화를 줬다. 많은 여성이 듣고 싶은 목소리로 꼽는 중·저음 톤을 하이 톤으로 바꿨다. 또 평소 말하는 속도보다 3배 정도 빠르게 말했다.

“말을 빠르게 하는 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말이 느린 편이거든요. ‘김성룡’이 대사도 많은데 빨리 말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입이 아플 정도로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적응됐어요.”

남궁민은 세심한 노력 끝에 배우 인생 중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아쉬운 점은 있다고 덧붙였다. 거의 원톱 주인공인지라 매 장면마다 등장해 대본을 분석할 시간이 부족했단다.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상당한 양의 대사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체력적인 한계도 느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종영할 때까지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남궁민은 급격한 체력 저하를 극복하려고 촬영 중간 중간에 슈크림빵 같은 고열량 간식을 먹었는데도 하루에 1.5kg씩 살이 빠졌단다. 평소 술을 즐기는데, 너무 피곤해서 술 생각도 안 날 정도였다고. 정말 힘들었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금세 다양한 연령대의 팬이 생긴 것 같아 좋다며 방긋 웃었다.

“어딜 가도 긍정적으로 다가와주세요. 한번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거나하게 취한 분이 ‘김과장~ 김과장님~’ 하면서 저를 툭툭 치시는 거예요. 그걸 본 동료분이 드라마를 안 보는 분이었는지 ‘이 사람아, 김 과장 아니야. 김 과장 몰라? 술 많이 먹었네’ 하시면서 말리더라고요. 많은 분이 마치 저를 어제 본 사람처럼 인사해주시니까 너무 좋아요.”

남궁민은 자신에 대한 평가와 반응을 보고 배우로서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김과장>은 극 초반에 전작인 KBS2 드라마 <오 마이 금비>가 시청률 면에서 부진했고, 이영애가 출연하는 100억원대의 대작인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와 경쟁해야 해서 잘되지 않을 거란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모든 우려를 이기고 큰 성공을 거뒀으니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심지어 우리 스태프도 그렇게 생각했더라고요. 쫑파티 때 취기가 오르니 다 말하던데요? 배우 입장에서 뭔지 모를 자신감은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신 있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남궁민은 앞으로도 이전과 같이 배우로서 자신감을 갖고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다음 작품은 더 잘할 수 있다고 몇 번에 걸쳐 장담했다. <김과장> 종영 후 열흘 남짓 쉬면서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느꼈던 열정을 다시 느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연기에 대해 고민했고 부족함을 느꼈다. 지금 이 상태에 머무르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여 있는 물이 되지 않고 흘러가는 물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단다.

“연기적으로 좋은 말을 많이 들었어요. 너무 감사한데 칭찬을 들을수록 뭔가 부탁받는 느낌이에요. 연기를 계속하려면 제 칼날이 서야겠더라고요. 주변에서 칭찬한다고 ‘나 이 정도는 되는구나’ 하며 만족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잘한다는 말에 신나서 아무것도 안 하면 계속 잘할 수 있겠어요? 올해 안에 무조건 좋은 작품으로 돌아올 거예요. 다음 작품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코미디 장르는 피하고 싶단다. 차라리 살 떨리게 무서운 연기가 낫지 웃음의 포인트를 잡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코미디란 장르가 가벼워 보여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를 웃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트와이스의 ‘TT’를 부르며 춤을 췄을 때도 엄청 당황스러웠단다.

“TQ그룹의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잡으려고 준호와 함께 룸살롱 웨이터로 변장해 ‘TT’를 부르며 춤을 췄어요. 전 내성적인 사람인데 걸 그룹의 안무를 따라 하려니까 상당히 난감해서 ‘도대체 이건 어떻게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티똘이’(‘TQ그룹 똘아이’의 준말)란 별명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촬영 당시엔 정신없어서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만족스러운 별명이에요. 많은 배우들이 좋다며 부러워하시더라고요."

남궁민은 코믹 장르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지만 시즌2의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자신이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며 당연히 출연하겠단다. 다만 승진을 시켜줘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어 현장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김부장’으로 해야겠어요. 저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웃음) 단, 지금보다 연륜이 더 쌓였을 때 완벽하게 해냈으면 좋겠어요.”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진행
김지은
사진제공
935엔터테인먼트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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