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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창욱

On December 06, 2016 0

자기에게 딱 맞는 역할을 찾는 배우는 행운아다. 적역을 맡으면 드라마 전체가 꿈틀댄다. 지창욱은 그런 배우다.

 


지창욱과의 첫 만남은 약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가 막 끝났을 즈음에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인지 모르겠어요.” 고민 가득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연기해야 진심이 전달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최고가 되기보단 최선을 다하려 했고 모든 작품에 애정을 쏟으려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열정을 연기력으로 증명해냈다.

tvN 드라마 <The K2>(이하 <K2>)에서 지창욱은 자신을 고용한 대선 후보의 아내, 그리고 세상과 떨어져 사는 소녀를 지키는 전쟁 용병 출신 보디가드 ‘김제하’ 역을 맡았다. 보디가드의 액션은 화려해야 했고,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나약한 소녀 ‘고안나’(임윤아 분)와의 멜로는 아름다워야 했으며, 권력과 명예 앞에서는 세상 어느 것도 두렵지 않은 절대 악녀 ‘최유진’(송윤아 분)과의 관계는 철저하게 절제되어야 했다. 과거 연인이었던 ‘라니아’(Carsonallen 분)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장면은 안방극장을 함께 울렸고, 그를 사망하게 한 ‘박관수’(김갑수 분)와 대치할 때의 날 선 분노는 보는 이의 등골마저 서늘하게 했다. 우리는 지창욱이 데뷔 후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필모그래피와 내공을 확인했다.

“액션 신과 감정 신이 많아 체력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즐겁게 촬영했어요. 시청자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더 힘을 낼 수 있었죠. 물론 제 인생에서는 지나가는 작품 중 하나가 되겠지만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액션 신이 인상 깊었다. ‘지창욱의 액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회부터 4회까지의 거의 모든 장면에서 그는 ‘뒤돌려차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의 전작인 <힐러>나 <무사 백동수>와는 조금 달랐다. 어깨에 힘을 빼고 현실적인 액션으로 공감도를 높였다. 지창욱은 어느 장면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덕분에 완성도 높은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힐러>도 액션 신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때보다 두 배가량 분량이 많았죠. 액션의 비중도 컸고요. 연출자와 무술감독이 드라마 <추노>를 만든 분이니 오죽했겠어요?(웃음) <힐러>가 만화적인 부분이 강했다면 이번 작품은 현실적인 액션이었어요. ‘제하’는 무술에 상당한 실력이 있는 캐릭터지만 화려하게 힘이 들어간 액션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이를테면 제가 두 번 발차기를 하면 한 번 정도는 맞기도 하는 그런 거요. 사실 제 액션의 원조는 뮤지컬 <그날들>이에요. 대통령 경호원 역할인데, 무술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액션의 진폭을 키울 수 있었죠.”

남자 배우의 ‘연기의 꽃’이라면 단연 ‘액션’이라고 할 수 있다. 지창욱도 그 점에 동의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액션이 왜 좋아요?”
“안 좋아요. 진짜 별로 안 좋아해요.(웃음) 운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과격한 액션이 제 인생에 큰 획을 긋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냥 하다 보니까 이렇게 흘러오게 된 거예요. 제가 ‘나는 액션 배우가 돼야지’ ‘이번 작품도 액션을 할 거야’ 했던 건 아니란 말이죠. ‘이게 마지막 액션 드라마일 거야’라고 수십 번도 더 말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거나,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이 너무 좋은데 액션을 해야 하는 작품이라면 고민해볼 것 같아요. 힘들지만 재미있는 장르니까요. 그리고 남자에게 액션은 로망이거든요. 이젠 그냥 운명 같아요.(웃음)”

지창욱은 액션 신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목욕탕 나체 격투신’. 샤워 도중 침입한 괴한을 단번에 제압하는 장면이다. 바닥이 미끄럽도록 샴푸를 바닥에 뿌리고 자기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수건 한 장을 밟고 서 있는 모습과 비눗물을 채 닦지 못해 찡긋거리는 표정은 압권이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가장 노출이 심했던 장면이에요. 촬영 후반으로 갈수록 몸이 망가질 것을 우려해 초반에 촬영하겠다고 요청했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촬영 첫날 찍었어요.(웃음) 아예 나체 상태로 찍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팬티 한 장만 달랑 입고 남자들과 우루루 액션을 하는 게 민망했어요. 그래도 생각보다 멋진 장면이 탄생한 것 같아서 후회는 없습니다.”

이 역대급 목욕탕 액션 신이 탄생되기 전에 지창욱과 감독의 열띤 토론이 있었다. 액션 팀과도 상의를 거듭했고 고민스러운 지점은 주저 없이 털어놨다.
“원래도 감독님, 작가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의견을 내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유독 더 그랬어요. ‘제하’가 너무 안 맞는다 싶으면 좀 맞게 해달라고 했죠. 액션이 너무 화려하다 싶으면 기술을 빼고 감정을 살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요. 간혹 어려운 동작이 있으면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동작으로 수정했어요. 다행히 모든 스태프가 제 의견을 잘 들어주어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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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K2>의 지창욱에게서 멜로를 떼고 볼 순 없다. ‘안나’와의 멜로는 액션만큼이나 쫄깃했다.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갇혀 있어야만 했던 어린 여자 안나를 사랑하는 제하. 그런 제하를 연기한 지창욱. 실제 지창욱의 이상형이 궁금했다.

“지켜야 하는 여자와 지키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 지키고 싶은 여자를 택할래요. 극 중 안나처럼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지만 때로는 강한 면이 있고, 때로는 약한 면도 있는 여자가 좋아요. 제가 여자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소통이 되느냐예요. 대화가 되고, 유머 코드가 맞고, 제 직업을 이해해주는 여자라면 그걸로 충분해요.”
석양을 배경으로 한 안나와의 키스 신은 기자의 죽은 연애 세포를 자극했다. 시청자의 반응도 뜨거웠다. 알고 보니 그 장면은 윤아와 만난 지 3일 만에 만들어진 거였다.

“서울에서 한 달 정도 촬영한 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로케이션 촬영을 갔어요. 그때까지는 윤아 씨와 호흡을 맞추는 장면이 없었고, 사석에서 만난 것도 한 번뿐이었기 때문에 어색하고 서먹했죠.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는데 감독님이 ‘두 사람 키스 신 있다’ 이러시는 거예요. 당황했죠. 그때부터 부랴부랴 윤아 씨와 친해지기 시작했어요.(웃음)”
친해지려는 노력이 갑작스러운 키스 신이었지만 지창욱과 임윤아의 케미스트리를 만들어준 징검다리였던 셈이다.

“생각지도 못한 키스 신이 주어지면 아무리 천하의 배우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일단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요. 오열하는 장면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집중해야 하는데 키스 신이나 애정신은 오죽하겠어요. 남자 배우로서 여배우를 배려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데 촬영 당일 통보라뇨. 저로선 윤아 씨에게 계속 말을 걸고 친해지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키스 신 덕에 윤아 씨와 부쩍 친해진 것 같네요.(웃음)”

잠시 멈칫 하던 지창욱이 껄껄거리며 웃더니 친한 친구들과의 일화를 공개했다.
“주변 친구들이 물어요. ‘야, 키스 신 어땠냐, 좋았냐?’라고요. 제가 배우인 데다, 친구들에겐 로망과도 같은 여배우들과 키스를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묻는 거죠. 글쎄요. 저는 어떤 장면보다도 키스 신이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어떤 배우가 ‘오늘은 키스나 하고 와야지’ 하겠어요?(웃음) 어떻게 하면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장면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작업이에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죠.”

그동안 지창욱은 키스 신 이상의 애정신을 찍은 적이 없다. 정통 멜로드라마의 베드신은 지창욱과 인연이 없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 없다는 눈치다.
“제가 만약에 베드신을 찍으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못 할 거 같아요. 생각만 해도 너무 부끄러워요. 베드신이 있는 작품이라면 출연 결정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베드신이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작품의 흐름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장면이라면 고민될 것 같아요. 단지 상업적 이유로 해야 하는 베드신이라면 안 할래요. 아직은요.”
임윤아와 함께한 스페인 로케이션 촬영은 생각보다 여유가 있었다. 빠듯하게 진행되는 여느 드라마 현장과는 달랐다. 하루 촬영했다면 사흘 정도는 자유시간이어서 지창욱은 친한 지인을 초대해 바이크 여행을 즐겼다.

“현지 상황을 고려한 여유 있는 스케줄이었죠. 함께 간 친한 형과 오토바이 한 대를 빌렸어요. 장소를 불문하고 마구잡이로 돌아다녔어요.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 편하게 즐길 수 있었죠. 우연히 지나는 길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거예요. ‘유명한 곳인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가우디가 지은 성당이더라고요. 그 정도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맨땅에 헤딩식’ 여행이었죠.(웃음)”

역동적인 걸 좋아하는 그도 최근에야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됐다고 했다. 연말에는 국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했어요. 최근에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여유로움이 주는 행복감을 알게 됐죠. 한국에 있으면 거의 매일 일만 생각하잖아요. 여행을 가면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일상을 벗어난 느낌이랄까요. 곧 <그날들> 지방 공연을 시작하는데, 중간중간 짬 날 때마다 우리나라의 좋은 곳을 둘러볼 계획이에요.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도 좋은 곳이 많으니까요.”

지창욱에게서 뮤지컬 <그날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다. 드라마 촬영 중에도 <그날들>의 세 번째 무대에 올라 서울 공연을 마쳤다. 올겨울에는 지방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날들>은 3년 전부터 연습을 많이 했고 세 번째 공연이라 아쉬움보다 애정이 남아요. 애정을 넘어 애착이죠. 초연 때 정말 고생하며 연습해서 만든 작품이거든요 그 인물로 무대에 서는 것이 즐겁고 애정을 넘어 애착이 생긴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애착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애착이 남다른 이유는 분명했다. 힘든 시절을 함께해준 고마운 작품이자, 인기 가도를 달릴 때 초심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 작품이 바로 <그날들>이기 때문이다. 지창욱은 단언했다. <그날들>을 통해 연기력도, 인성도 성장했다고.

“2012년 드라마 <다섯손가락>이 끝나고 작품이 뚝 끊겼어요. 당시 이렇다 할 드라마 출연 제의가 없어 연기자로서 큰 위기를 맞았죠. 이것저것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었던 시기였어요.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러던 중 <그날들>에 출연하게 됐고, 이후 두 편의 뮤지컬을 연달아 더 하게 됐어요. 제게는 빛과 소금과도 같은 작품이죠.”
스태프와의 의리도 한몫했다. 힘든 시절 손을 잡아준 제작사 대표와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 힘들어도 계속하게 된다는 지창욱. 그는 스태프와의 약속, 신의, 호흡이 작품의 흥행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솔약국집 아들들> <웃어라 동해야> <무사 백동수>까지, 출연한 작품이 모두 성공했던 때가 있어요. 그다음으로 출연한 <총각네 야채가게>가 흥행에 실패했죠. 바쁜 스케줄 때문에 무척 힘든데 시청률은 안 나올 때, 주연 배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고, 그때 알았어요. ‘시청률은 누구 한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 시청률이 좋지 않아도 현장이 즐거우면 배우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요.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결국엔 지나가잖아요. 어떻게 지나가게 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배우들이 주도적으로 현장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지창욱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목받는 스타다. 최고 몸값을 자랑한다는 전도연의 몸값을 훌쩍 뛰어넘었다. 대한민국이 자랑하고, 중국이 사랑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다.
“예전에 비하면 돈도 많이 벌었죠. 하는 일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많이 번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다만 제가 하는 일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힘든 만큼은 못 버는 것 같아. 이건 별로 안 좋은 직업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삶의 질이 떨어질 것 같거든요. 인기가 많아지고 저를 찾는 분이 많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어요.” 지창욱은 연기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똑똑한 배우다. 이렇듯 그와의 만남은 짧지만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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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 딱 맞는 역할을 찾는 배우는 행운아다. 적역을 맡으면 드라마 전체가 꿈틀댄다. 지창욱은 그런 배우다.

Credit Info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하지영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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