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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민, 김남일 부부의 교토 나들이

축구 선수 김남일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김보민 아나운서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일본 교토에서 뜨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의 일상.

On May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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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이 축구장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은퇴해야 하는지를 두고 갈등하던 남편의 선택은 ‘현역에 더 머무르자’였다. 2014년 남편은 교토 퍼플 상가 FC로 이적을 결심했고 나는 방송의 무게를 잠시 내려두고 육아와 내조를 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냈다. 약혼 후 함께 찾은 일본 교토의 금각사에서 ‘아이를 낳으면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빌었던 우리의 바람이 이뤄진 걸까? 14년 동안 아나운서로 살아온 나와 30년 동안 축구밖에 모르던 남편의 생활은 그렇게 바뀌었다. 그렇게 내 삶은 두 번째 길로 접어들었다. 우리 결정의 결정적 이유는 아이였다. 반복되는 전지훈련과 시즌 경기 때문에 아빠와 보낸 시간이 1년 남짓뿐인 아들, 그래서 크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볼 때마다 커져 있는 아이에 놀라는 아빠를 생각한다면 이 선택은 아주 잘한 일이다. 남편은 최근 현역 은퇴를 결심한 후 2주 정도 독일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후배 지동원·구자철 선수와 시간을 보내며 머리를 식히고 온 것 같다. 지도자로 새 삶을 시작하는 남편과 하루가 다르게 부쩍 커가는 아들, 그리고 이곳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나까지. 우리 가족 세 사람이 일본 교토에서 그릴 또 다른 그림이 기대된다.
 

교토가 좋다

천년 고도 교토는 일본 최초의 수도였다. 수많은 절과 신사,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즐비하고, 어디서든 셔터만 누르면 작품 사진이 되는 아름다운 도시다. 또 지워지지 않는 한일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토는 분지에다 히에이 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무덥다. 게다가 사계절 관광지라 평생 볼 외국인을 여기서 매일 볼 정도로 관광객이 넘치고 그로 인한 교통 체증과 숙소 부족이 심각하다. 그럼에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도시이자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이 찾는 도시가 된 이유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그 속에서 여유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매력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그런 교토가 좋다.

 

교토 타워 전망대에서 셋이서. 
교토는 우리 가족에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

교토 타워 전망대에서 셋이서. 교토는 우리 가족에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

교토 타워 전망대에서 셋이서. 교토는 우리 가족에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

#1 교토를 소개합니다

교토역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기차역이다. 초행자는 대부분 길을 잃게 마련이다. 하루에 약 60만 명 이상의 승객이 타고 내리며 역의 플랫폼이 34번까지 있다. 게다가 지하철역과 버스터미널, 쇼핑몰, 백화점까지 기하학적으로 디자인된 복합 역사다. 에스컬레이터로 한 층씩 차근차근 직선으로 타고 올라가면 꼭대기에 다다르는데 중간에 내려 올려다보면 수많은 계단이 이어지고, 저녁이면 계단의 끝마다 불빛이 들어오며 다양한 루미나리에를 보여준다. 그 빛의 조화가 신비스러워 가는 이의 발길을 잡고,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한다.

인터넷에서 교토를 검색해보자. 각종 기사와 블로그의 글이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짧은 일정으로는 이 도시를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실제로도 안내 책자에 ‘특성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거리’ ‘이 길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거리’라고 쓰여 있다. 묘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나는 교토 생활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조심스레 정의 내려본다. “교토라 쓰고 작품이라고 읽는다.” 예전에 난 인물이 주가 아닌 풍경을 찍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풍경이 주인공이고 사람은 살짝 얹혀가는 배경이 되어버리고 만다. 셔터만 누르면 경고 카드를 받은 선수처럼 화가 난 표정을 짓는 남편마저도 웃게 만드는 이곳은 바로 교토다. 김~치~.

교토역 계단에서 보는 교토 타워. 나는 서울과는 조금 다른 일상을 만끽하고 있다.

교토역 계단에서 보는 교토 타워. 나는 서울과는 조금 다른 일상을 만끽하고 있다.

교토역 계단에서 보는 교토 타워. 나는 서울과는 조금 다른 일상을 만끽하고 있다.

왜 ‘브이’를 했을까?

왜 ‘브이’를 했을까?

왜 ‘브이’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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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교토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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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식가의 천국

종종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 엄마가 차려준 집밥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톡 쏘는 김치도 먹고 싶고, 구수한 된장찌개도 생각난다. 물론 여기서도 아주 잘 해먹고 있지만 그 맛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견딜 수 있는 건 문화재급 교토 음식 덕분이다. 먹기에 아깝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교토의 전통 가이세키 요리와 우지 말차(일본에서는 ‘맛차’라고 한다)는 두말할 것도 없고, 가게의 대부분이 몇 대에 걸쳐 대물림하는 형태라 100년 이상 된 곳이 아니면 명함조차 못 내밀 정도다.

보통 ‘의·식·주’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 가족은 ‘식·식·식’이다. 다이어트가 종교와 같은 나를 봉인 해제하게 하는 음식들! 어차피 무엇을 먹어도 살이 찐다면 이왕이면 맛있는 걸로 먹겠다. 나는 소망한다. 먹어도 살 안 찌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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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가득한 교토의 삶. 마음만은 풍요롭다.

여유가 가득한 교토의 삶. 마음만은 풍요롭다.

여유가 가득한 교토의 삶.
마음만은 풍요롭다.

여유가 가득한 교토의 삶. 마음만은 풍요롭다.

여유가 가득한 교토의 삶. 마음만은 풍요롭다.

#3 추운데 덥다

‘나, 돌아갈래.’ 겨울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하는 생각이다. 입김이 난다. 코끝도 시리다. 집 안 어딜 가도 춥다. 히터를 켜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건조해서 목이 메인다. 온돌이, 바닥이 지글지글 끓는 한국이 그립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남부러울 것이 없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그래도 이곳의 겨울이 좋은 이유는 남편과 아들의 온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린 손을 말없이 꼭 잡아주는 남편, 등 뒤에서 백허그 해주는 아들까지. 나는 사랑받는 여자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말인데 올해 겨울은 더 추웠으면 좋겠다.

여름 아침에 나는 집을 나서며 긴팔 옷을 챙겨 입는다. 오늘 낮 최고 기온은 37℃(서늘하네. 39℃ 아닌 게 어디야). 살갗이 따가워 반팔로는 무리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더워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다.

그럼에도 남편은 낮 2시 경기. 90분 축구 경기는 계속된다. 동점인 상황에서 추가 시간이 주어진다. 1분 남짓 남은 시간에 상대팀이 또 공격해온다. 현재 체감온도 40℃를 넘어 계속 올라간다. 지친 선수들이 또 뛴다. 그날 남편은 4킬로그램이 빠졌다. 난 말없이 사골을 고았다.


 

쉬운 듯 어려운 뜨개질.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이곳을 사랑한다.

쉬운 듯 어려운 뜨개질.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이곳을 사랑한다.

쉬운 듯 어려운 뜨개질.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이곳을 사랑한다.

#4 ‘패피’가 될 테야

누가 옷이 날개라고 했던가. 나는 지난 10년 동안 방송을 하면서 수많은 날개들로 나를 치장하고 감춰왔다. 어딜 가더라도 날개들을 챙기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곤 했다. 어느덧 날개는 내게 짐이 되어버렸다. 내려놓자. 이제부터는 날개에만 의지하지 말고, 빛나는 내가 되어서 날아오르자.

교토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그 흔한(?) 유명 브랜드의 의류나 가방을 걸친 이가 거의 없다. 편안하고 가벼운 복장. 변덕스러운 날씨와 비싼 주차료에 자전거가 주 교통수단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일까? 수수하고 단정한 교토 사람들의 패션을 보면서 또 한 번 반성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예민했던 지난날을.

어렸을 때부터 옷 욕심이라면 모델 뺨 치던 내가 교토에 살면서 옷 욕심이 없어졌다. 대신 취미 하나를 얻었다. 생애 처음 뜨개질을 했다. 설렌다. 시작은 모자다. 점점 코를 하나씩 빼먹으면서 크기가 줄어들고 있다. 남편 모자가 아들 모자가 될지도. 다음에는 목도리에 도전! 교토 패션 피플이 되겠어!


 

정원 청소하는 아들. 밥값은 해야 한다. 아들아~

정원 청소하는 아들. 밥값은 해야 한다. 아들아~

정원 청소하는 아들. 밥값은 해야 한다. 아들아~

#5 아들 재능찾기

난 수능 세대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교, 석사, 박사 그리고 또 일본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현재까지도 난 학업 중이다. 물론 아동심리학 교수이신 어머니의 스파르타식 교육 방법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공부는 재능이다. 중학교 때 눈으로만 보고 수학 문제를 푸는 친구를 보며 확신했다.

내 아이의 재능은 무엇일까? 나는 요즘 아들의 재능을 찾는 데 재미를 붙였다. 물론 아들과 함께 매일 뛰어논다. 학원이란 것이 뭔지도 모르는 아들. 그랬더니 어느 날 분수를 가르쳐달라고 먼저 다가온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시험도 없고 숙제도 자율인 학교. 매일 웃으며 학교에 일찍 가겠다고 벌떡 일어나는 우리 아들. 나는 교우 관계나 정리 정돈을 더 엄격하게 가르친다. 공공 화장실에서 신는 신발을 다음 사람이 신기 편하도록 방향을 돌려 가지런히 놓아두는 아들을 보며 오늘도 미소가 절로 난다.

어느 날, 아들이 학교 음악회에서 노래를 한다고 초대 했다. 들뜬 마음으로 가서 놀라운 공연을 보고 말았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노래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고 발걸음은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보라, 이 당당함을. 들어보아라, 남보다 잘하는 사람만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편견을 깬 신선한 목소리를~. 교토는 나에게 깨달음이다.

CREDIT INFO

기획
이예지 기자
글·사진
김보민
2016년 05월호

2016년 05월호

기획
이예지 기자
글·사진
김보민